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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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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목차 다음화 ▶
읽기 시간 예측: 약 10.74분

1화 - 피의 밤


별빛마저 어둠이 집어삼킨, 침묵 같은 밤이었다.

가마를 든 묵직한 발걸음들이 그 야심한 밤길을 헤치고 궁궐 문 앞에 당도하니, 그를 알아본 병사들이 황급히 예를 갖추었다.

그는 서둘러 가마에서 내려서서 궁궐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따라 수하들이 재빨리 따라붙자, 궁궐 안쪽에 기다리고 있던 병사 하나가 나서 말했다.

"이 안이 심히 좁으니, 여러 재상들께서는 겸종(傔從)을 제거하고 혼자 들어오시라 명하셨나이다."

병사의 말을 들은 그는 꽤나 불편한 표정이 되었으나, 마다하지 않고 수하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수하들은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곧 궁궐 문 밖으로 나갔다.

수하들이 나간 모습을 확인한 그는, 서둘러 발길을 옮겼고, 그에게 말을 건네었던 병사는 그의 입궐을 알리는 듯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병조판서 조극관 입궐이요."

궁궐 문이 닫히고, 조속히 발걸음을 옮기는 조극권은 누군가 자신을 가로막아선 이들을 발견하고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뭣하는 것이냐, 나는 지금..."

하지만 그는 말을 다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일말에 주저함도 없이 날아드는 철퇴에, 그의 두개골이 함몰되어 뇌수가 터져 나올 만큼 강력한 일격이 가해졌다.

맥없이 허물어진 그의 육신은 피와 함께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져 버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꽤나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다가와서, 쓰러진 조극관을 내려다보며 특유의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시는 마당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는 비아냥 거리듯 이야기하고는 낄낄 거리듯 웃었고, 옆에 선 수하들 역시 그를 따라 웃음 지었다.

"치워라."

그의 한마디에, 수하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마치 쓰레기 자루 치우듯이 조극관의 시신을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치워지는 시신을 확인한 그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때, 또다시 누군가의 입궐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의정 황보인 입궐이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입가에는 잔혹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잔혹한 철퇴는 거칠 것이 없었고, 별빛조차 가리어진 그 밤은 길고도 혹독한 밤이었다.

그렇게 나라의 대신들이 철퇴 아래 죽어가고 있던 바로 그 시간,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된 단종은 무서움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그의 앞에 호랑이와 같은 눈빛의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무섭고 잔혹한 눈빛으로 어린 임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 그의 수하인 듯한 사내 한 명이 거친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와 말했다.

"일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어린 임금 앞에 태산처럼 자리 잡고 앉은 그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이자, 사내는 곧 물러났다.

그는 울먹거리고 있는 어린 임금을 바라보며 묵직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용이가... 욕심을 좀 부렸습니다. 능지처참함이 마땅하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그리도 이뻐하시던 용이가 아니겠습니까? 강화로 유배를 보낼까 하는데, 주상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의 물음에 어린 임금은 대답조차 하지 못할 만큼 공포에 질린 체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런 임금을 보며, 수양대군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두 눈동자는 오로지 어린 단종에게 향해 있었으며, 단종은 그 눈빛이 너무도 두려워 오줌을 지릴 지경이었다.

"그 교활한 김종서가... 살아남아 어딘가에 숨어있는 모양인데... 걱정하지 마시지요. 아침이면 그자의 목을 베어 효수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황보인, 이양, 민신, 조극관, 윤처공, 이명민, 원구, 조번 등이... 감히 용이와 결탁하고 불궤(不軌) 한 짓을 공모하여 거사할 날짜까지 정하였으니... 심히 위급하여 조금도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여, 이리 지금 아뢰옵니다."

말은 흡사 보고를 하는 듯 하지만, 어린 임금을 조롱하고 있었으니, 그 기세만으로도 어린 임금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제부터는 군국(軍國)의 중한 일은 모두 제게 위임하여 총치(摠治)케 하시지요, 나라를 바닥부터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비장한 말이나, 입가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기나긴 밤에 끝없이 이어졌던 피의 변란, 이날을 가리켜 후세는 이렇게 불렀다.

계유정난(癸酉靖難).



===



가는 듯, 제법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강당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선은 유교의 국가죠? 그런 조선에서 일어났던 일대 사건, 그것이 바로 계유정난이다. 삼촌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았단 말이야? 그럼 그전에는 없었냐? 물론 있었죠. 고려시대에도 그런 일은 있었죠."

조용한 강의실 안에는 대략 30여 명의 학생들이 강의 중인 교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재희는 바로 그 학생들 중 한 명으로, 오른쪽 가장 끝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손에 딱 쥐기 좋은 크기의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고, 여러 장의 자그마한 포스트잇이 색색이 붙어 있었다.

"간혹 세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적이 많았다, 뭐 이런 소리들 하는데... 이거 사실 군사정권 시절에 정권 잡은 군부에서 자기들 합리화시키려고 자기들하고 처지 비슷한 세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뿐이에요. 세조는 말이야, 완전히 실패한 군주다. 태종이 어렵게 철폐했던 공신들을 다시 등장시켰고, 그 공신들에게 대납의 권리로 경제권을 주고, 살인을 저질러도 죄를 묻지 않게 했단 말이지. 어렵게 이루어 놓은 법치국가를 하루아침에 뒤집어엎어놓고 있었던 인물이 바로 세조다. 그 대가를 아주 잔인하게 치루죠. 그의 아들 예종이 즉위 1년 만에 독살을 당해 죽죠."

교수의 청량한 목소리와 흥미진진한 내용 때문이었을까?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는 꽤나 높아 보였다.

재희 역시 수업을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학생 중에 한 명이었다.

예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특히나 좋아했던 재희였고, 그 때문에 구태여 한국사학과를 찾아 지원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드라마도 꼭 사극 위주로, 그것도 기왕이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특히나 좋아하는 재희기도 했다.

문득 누군가 옆구리를 툭툭 치는 것이 느껴져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친구 윤아가 재희를 게슴츠레 바라보며 말을 건네 왔다.

"이거 고등학교 때 들었던 거 아이가?"

자기는 한사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호언장담을 하면서도, 꼭 재희랑 단둘이 있을 때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투리를 마구 뱉어내는 씩씩한 부산 아가씨였다.

"아....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내용이 좀 더 심오하지. 그래도 들어볼 만 해."

재희가 살짝 웃어 보이며 애써 대답했다.

그것은 일종에, 수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은유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재희의 바램을, 아니 눈치를, 정작 윤아는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고딩때 박터지게 듣고 또 들었는데, 여와 또 들어야 되나? 돌아삐겠네. 설민서기가 훠얼씬 재밌다."

옆에서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는 윤아에게 애써 미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가끔은 자기 할 말 다하는 윤아가 부러울 때도 있긴 했지만, 때때로 그런 모습이 철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나 지금처럼 듣고 싶은 수업을 마음대로 듣지 못할 땐, 마음 같아서는 꿀밤이라도 쥐어박고 싶지만, 그럴만한 성격이 되지 못하는 재희였다.

그런 재희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윤아는 계속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배딱지 붙어가 디지겠고마, 와 아직도 10신데? 미챠 돌아삐겠네."

거의 끝쪽 자리에 앉은 오늘을 후회하는 것일까? 다음부터는 꼭 일찍 와서 앞자리 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재희지만, 재희도 아침잠이 많아 그것만큼은 쉽지 않았다.

"그의 아들은 그러한 폐단을 알고 있었어요. 예종. 그래서 이 공신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막으려고 했단 말야. 그런데 공신들이 가만있었겠냐고? 결국 재위 1년을 조금 넘긴 시점에 독살을 당해 죽게 되는데, 이게 결국 그 아버지, 세조로 인한 것이다. 결국 자기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인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지."

수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업만큼이나 윤아의 투덜거림도 이어지고 있었다.

재희는, 윤아에게 적절한 미소로 화답하며 최대한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 다음 시간에는 계유정난 당시 상황과 관련된 장소를 하나 선정해서, 그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각자 발표할 내용을 리포트로 작성해서 제출하세요."

교수의 난데없는 과제에,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일제히 탄식을 내뱉으니, 교수의 아미가 꿈틀거렸다.

"간단하게 해. 한두 장이면 충분해."

한심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책을 들고 강의실을 나서자, 학생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나가기 시작했다.

"야, 우리 뭐라도 먹자, 배고프다."

윤아가 난데없이 서울말로 애교를 부리자, 재희의 표정이 자기도 모르게 굳어져 버렸다.

"왜? 뭐 먹게?"

언제 왔는지,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 오는 이가 있었다.

같은 과 얼짱으로 유명세 단단히 타고 있는 지훈이었다.

지훈이가 다가와 살짝 미소까지 머금은 체 말을 건네 오니, 윤아가 또렷한 서울말로 대답했다.

"아~ 아침을 안 먹었더니... 배가 좀 고파서..."

정말 마음 같아서는 꿀밤 두대 쥐어박고 싶었다.

분명 아침에 만났을 때, 아침에 입맛 없어서 사발면 먹고 왔다고 그랬던 걸 기억하고 있건만.

"그래? 그럼 같이 햄버거 먹으러 갈래?"

지훈의 말에 윤아의 눈빛이 폭발할 것 같이 반짝거렸다.

"햄버거? 음... 그럴까?"

윤아가 애절한 눈빛으로 재희를 바라보니, 재희도 마지못한 듯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 그래. 그러지 머."

재희가 억지로 대답하고 있는 사이, 지훈 너머로 다른 누군가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뭐하냐?"

무심한 듯 씩씩한 목소리의 동현이었다.

"아, 햄버거 먹으러 가려고."

지훈의 대답에 동현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햄버거? 햄버거 좋지. 나도 콜."

동현의 말에 지훈이 피식 웃어 보였다.

"웬일이냐? 햄버거 먹으러 가자고 하고."

동현이 과장스럽게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아~ 아침을 못 먹었더니 야 현기증이 날 정도야. 점심시간 되기 전에 쓰러지겠어."

재희가 의아한 듯 동현을 보며 물었다.

"웬일이야? 아침밥 안 먹으면 세상 무너지는 줄 아는 애가?"

동현이 재희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그러더니 이내 울상이 된 표정으로 말했다.

"깜빡하고 쌀 떨어진 줄 몰랐어. 학교 와서 먹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부족하네. 아~ 벌써 어지럽다."

장난스럽게 과장된 행동을 하는 동현의 어깨를, 지훈이 툭툭 치며 말했다.

"됐고. 얼른 가자. 나도 배고프다."

지훈이 앞장서 가자, 동현과 윤아가 그 뒤를 부랴부랴 따라나서고, 재희도 뒤이어 가방을 챙겨 들고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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