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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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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1.1분

14화 - 천기누설


펼쳐져있는 무수한 고서들과 다양한 문양과 장식들이 놓여 있는 가운데, 서적 하나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진서연의 표정이 길동의 눈에 들어와 있었다.

그 곁에는 잔뜩 기가 죽은 표정의 유림이 진서연의 눈치를 살피며 고서를 흘낏 거리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진서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술법은 그런 종류의 술법이 아닌데... 그 자리에 구미호가 있었다고?"

진서연이 확인하듯 되묻는 물음에, 옆에 긴장한 얼굴로 앉은 유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어, 내가 어서 구해온 건 아니고... 애초부터 그 댁에 머물고 있었어. 그 댁 아가씨가 친구니 어쩌니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더라고..."

진서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아니 그럼... 양반댁 아가씨가 애지중지하는 친구를 제물로 바쳤단 말이야?"

진서연의 되물음에 유림이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그럴 리가 있것서? 거 뭐냐... 그 댁 마나님이 그 구미호를 아주 눈꼴시려 하더라고. 그래, 내가 마침 구미호가 필요하니 제물로 받쳐보자 한 거지."

진서연이 콧방귀를 뀌며 되물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언니 마음대로 했어? 내가 분명 닭 목가지 하나 비틀면 될 거라고 했었을 텐데..."

진서연의 눈빛이 냉랭하니, 유림이 더욱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니... 그게 그냥... 너야 닭 한 마리면 되겠지만, 난 뭐... 너만 한 것도 아니고... 더 좋은 제물을 넣으면 더 좋을 줄 알았지...."

진서연이 한동안 더 냉랭하게 쏘아보니, 진유림은 어쩔 줄 몰라하며 식은땀까지 흘렸다.

이어 진서연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고서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 한들 이해가 안 되네... 대체 어떤 구미호길래? 천년이 체 안됐다 하지 않았어?"

진서연의 물음에 유림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응, 맞아... 아직 체 천년이 안됐다고 했어. 그냥 대충 천년호라고 부르고 제사를 지내긴 했는데..."

진서연이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이상하네... 천년이 체 안된 구미호라면 그럴만한 힘이 없을 텐데..."

그러다가 문득 진서연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내 책을 뒤적거리던 진서연이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냐... 어쩌면, 천년이 체 안됐어도 천년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구미호였을 수 있어, 그녀가 만약... 혈비(血妃)의 자식이라면..."

진서연이 고서들을 뒤적거리며 혼잣말처럼 말하자, 유림이 놀라 되물었다.

"혀... 혈비? 그 3천 년 묵었다는 구미호 말이야?"

진서연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사람들 말일뿐이지, 실제로 3천 년을 묵었는지, 3만 년을 묵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기록을 보고 유추하건대, 3천 년은 확실히 넘었고. 아마도 최초의 구미호가 아닌가 싶어."

진서연의 말에 유림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죽었잖아? 몇년 전에..."

진서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죽었지. 하지만 그사이 낳은 자식이 꽤 되는 걸로 아는데... 혹, 그 구미호가 혈비의 자식이라면... 보통 구미호가 아냐... 그 구미호는 여느 요괴들과는 달라. 만약 그런 녀석을 제물로 바쳤다면..."

이어 진서연이 하나의 고서를 찾아내 그 내용을 유심히 읽더니 사색이 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유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맙소사. 어쩌면... 시공을 넘어왔을지 모르겠어."

유림의 표정이 당황스러워졌다.

"시... 시공? 그게 뭔데? 대체 나한테 뭘 알려준 거야?"

진서연이 유림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후대에서 왔다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먼 훗날의 사람이 온 거야. 실물이 오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단지 몇일 후를 비추는 정도이니, 그럴싸해 보일 것이라 생각했지."

유림이 놀라 되물었다.

"후, 훗날? 얼마나 훗날? 10년? 20년?"

진서연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말했다.

"알 수 없어. 하지만 단 1년 뒤의 사람이라고 해도, 적어도 그 사람은 1년 동안 일어날 일을 알고 있을지 몰라. 10년이면 10년 동안 일어날 일을, 100년이면 100년 동안 일어날 일이야. 평범한 사람일 지라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수 있으니..."

진서연이 굳어진 표정으로 유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야말로 신녀구나."

진서연의 말에 유림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 진짜 신녀라면... 잘된 거 아냐?"

진서연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멍청하긴... 그녀가 천기누설을 하면... 역사가 바뀌는 거야. 맙소사... 이런 큰일을 벌여놓고 잘도 태평하게 있었구나."

이어 진서연이 길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 신녀분께서 원하시는 것이,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시는 거라고?"

멍하니 있던 길동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진서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잘됐어. 큰 일을 벌이기 전에 어서 되돌려 보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돌려보내야 해. 가서 전하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천기누설하지 말라고. 내가 어떻게든 돌아갈 방법을 찾아볼 테지만, 혹여 천기누설을 하면 하늘의 노여움을 사,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하거라."

진서연의 말에 길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이어 진서연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녀를 같은 시대를 되돌려 놓으려면 같은 힘이 필요해. 아니면 그 보다 더 강한 힘..."

유림이 걱정스러운 듯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 애가 정말 혈비의 자식이라면, 어디 가서 찾지?"

진서연이 긴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를 떠올리듯 이야기했다.

"확실한 하나가 있긴 하지. 그보다 더 강한 힘... 삼본(三本)..."

유림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삼본? 그게 뭔데...?"

진서연이 흡사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삼본... 최강이자 최초의 구미호 혈비를 처단한 직후, 전리품으로 챙긴 3가지... 혈비의 피(狐血), 혈비의 뼈(狐骨), 혈비의 눈물(狐淚)... 그중 피가 있다면, 능히 그녀를 되돌려 보낼 수 있을 것이야."

진서연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림을 보며 이번에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삼본이 아니라도 그에 맞먹는 힘은 더 있어. 당장 떠오르는 게 그거라는 거지. 어쨌든 한번 찾아보자고."

유림은 대답 없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



"돌아갈 수 있다고?"

재희는 놀라고 기쁜 표정이 되어 길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뻐하는 재희를 보며 길동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분명 그리 말했습니다. 반듯이 돌려보내 드릴 터이니, 결코 천기누설을 하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문득 재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처, 천기누설?"

길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천기누설을 하면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였습니다."

재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미 천기누설을 하지 않았던가?

"그, 그래. 알았으니 잘 부탁한다고 전해다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길동이 물러나고, 그 옆에 서 있던 수혁이 의아한 듯 재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언가 마음에 걸리시는 일이 있습니까?"

갑작스레 표정이 어두워진 재희를 보며 수혁이 묻는 말에, 재희는 이내 웃는 표정이 되어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돌아갈 방법이 있다 하니, 기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서요."

천기누설을 이미 했다고 이야기하면, 진서연인가 하는 그 무당이 일을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짓말을 해버렸다.

재희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만 하자. 나도 살아야 하니까... 죽으면 천기누설 안 하고 비밀을 지킨 들 무슨 소용이야. 딱 내가 살만큼만 이야기할 테니까, 돌려보내 줘...'

재희는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골몰해 있었고, 그런 재희를 보며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수혁의 물음에 재희가 고개를 흔들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 아뇨. 아닙니다. 그저 생각할 것이 많아 그럽니다. 그, 그럼..."

재희가 문을 닫으며 방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가만히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수혁은 잠시 후 발길을 돌렸다.



===



달빛이 환하게 비추고, 그 달빛에 구름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시각.

딱 봐도 험상궂은 인상에 범상치 않은 이들이 인적 드문 곳에 잔뜩 모여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 모두가 자세를 바로 하며 예를 갖추었다.

"어떻습니까? 모두 강호에서 제법 알아주는 자들입죠."

이채원이 히죽거리듯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니, 그를 따라온 이현로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딱 봐도 믿음이 가는 친구들이구만. 수고했네. 앞으로 할 일이 많으이... 자네 공은 잊지 않고 챙겨줄 테니까, 바짝 한번 해보자고."

이현로의 말에 이채원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대답했다.

"예, 나리. 맡겨주십시오."

이채원의 대답에 이현로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나리는 무슨... 거사 날까지 들키지 않고 잘하고, 수양 쪽 사람들 행동은 하나하나 놓치지 말고 감시하라고."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한놈도 빠짐없이 지켜보겠습니다."

이채원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이현로가 그를 보며, 예의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이채원은 험상궂은 사내들을 보며 고개를 까닥 흔들어 보이니, 사내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일제히 그 장소를 떠나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내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본 이채원은 서둘러 이현로의 뒤를 따랐고, 이현로는 자신의 뒤에 이채원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거사일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곧 저들이 움직일 거야."

이현로의 말에 이채원이 예의 싱글거리는 웃음을 띄운 체 물었다.

"허면 저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장이라도..."

이현로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냐... 맛있는 것들이 잔뜩 놓일 잔치상을 차리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무언가?"

이현로의 난데없는 잔치상 타령에 이채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예? 자, 잔치상이요?"

"그래, 잔치상. 이게 잔치상이 아니고 무언가? 신녀의 말대로라면, 그야말로 상다리 휘어질 정도의 잔치상이지. 우린 저들이 그 상을 다 차리고 나면, 저들을 치우고 우리가 그 잔치상을 차지하면 그뿐이야. 그보다 더 좋은 수가 어디 있겠는가?"

이채원은 이현로의 말을 이해하기 힘든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이내 결론이 궁금한 듯 이현로에게 되물었다.

"허면... 소인은 어찌하면 되는 것입니까?"

이현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이채원을 바라보았다.

"어쩌긴 이 사람아... 저들이 거사를 일으킬 때까지 기다려야지. 저들의 거사일이, 바로 우리의 거사일이야."

이채원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저들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 다는 결론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이채원의 대답을 듣자, 이현로는 다시 발길을 재촉하며 걸었고, 이채원은 그 뒤를 따라 걸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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