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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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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98분

13화 - 시장


바쁜 종종 걸음을 급히 옮기던 김한계는 시야에 이현로가 들어오자 더욱 발길을 재촉했다.

이현로는 항상 기다리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김한계를 보고 있었다.

"뭣이 그리 바쁜가?"

이현로는 자신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다 못해 거의 뛰어오다 시피하는 김한계를 보며 너털 웃음을 지었다.

김한계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이현로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우, 울었네. 자네 말대로 부엉이가 울었단 말일세."

이현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어디? 근정전에서?"

이현로가 장소를 이야기하니, 김한계의 표정이 휘둥그레졌다.

"마, 맞네. 그랬다 하더군. 근정전에서 부엉이가 울었다고... 어찌 아나? 이미 들은 것인가?"

이현로는 놀라 해하는 김한계의 표정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세. 어디 가서 술판이나 벌여야 하지 않겠나?"

그의 말에 김한계는 아리송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아니, 저치들이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 와중에 또 술판이라니?"

이현로가 고개를 돌려 김한계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더 술판을 벌여야지. 자준이 세를 작게 보임으로써 방심을 유도하고 있으니, 우리가 방심한 척 술판이라도 벌여 줘야 저들이 안심하고 움직일 것 아닌가?"

김한계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이현로를 따라나섰다.

"그래서, 어디로 가실 생각인가?"

이현로는 예의 입꼬리 올라간 표정으로 여유롭게 이야기했다.

"대군 마마를 모시고, 사냥이나 감세."

이현로의 말에 김한계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요즘... 너무 자주 사냥터에서 술판을 벌인다고, 대군 마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으니... 이러다 빌미라도 만들면 어찌하려고 그러나?"

이현로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게. 빌미를 제공하기 전에 판이 뒤집힐 테니... 자, 다 잊고, 사냥 가서 고기에 술 한잔 마셔보세."

이현로는 말 끄트머리에 노래를 부르듯 흥을 곁들이며, 장난스러운 몸짓까지 더하니, 김한계가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술판에 마천(麻川)이 빠질 수 없지, 그 친구 어디 있나? 어서 사냥 가야지."

이현로가 김한계에게 홍일동의 행처를 큰 소리로 묻고 있는 그때, 조금 먼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그는 그림자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바람처럼 그 자리를 떠나 어딘가로 향했다.

몸짓과 움직임이 마치 그림자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사람인양, 햇빛을 피해 다녔고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어느 이름 모를 객잔에서 술 한잔 마시고 있던 한명회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현로는 김한계, 홍일동 등과 함께 사냥을 하러 간 듯합니다."

한명회는 그를 보지도 않은 체,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사냥? 요즘 부쩍 사냥을 자주 다니는 구만. 알았어."

한명회의 대답을 듣고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다시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한명회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풍채 좋은 이가 수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저들의 동태를 좀 더 면밀히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묻고 있는 그는, 수양대군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권람이었다.

한명회의 권람의 이야기를 듣고 살짝 웃어 보였다.

"이현로는 수가 얕아 뻔히 보이는 짓을 잘 하지. 걱정 마시게. 위세를 보이고 싶은 모양이니, 그러라고 내버려 두지."

한명회의 이야기를 들은 권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 고는 약간 퉁명스러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게 뭔가? 기왕이면 좀 더 좋은 곳에서 마시면 좋지 않은가? 내 좀 더 좋은 곳을 알려주겠네."

권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한명회가 껄껄 거리고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지금 우리는 세가 적어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야. 그러니 이렇게 자그마한 곳에서 탁주나 마시면 그뿐인 것을 모르겠는가? 조금만 기다리시게. 그 여한은 내 조만간 풀어줌세."

이야기를 마친 한명회는 여전히 껄껄 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탁주를 따르고 있었고, 권란은 아쉽고 답답한 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



재희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기왕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갈 것 같으면, 좀 더 신녀다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믿음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고심 끝에 만들어낸 명언(?)이었건만, 뭔가 방향이 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히 그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가셔지지를 않았다.

"에이씨, 진짜..."

저도 모르게 있지도 않은 무언가를 발로 걷어차는 듯 짜증내고 있던 재희는,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신녀님..."

수혁의 목소리였다. 재희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안녕하세요."

재희는 저도 모르게 습관적인 인사를 건네었고, 그녀의 뜻밖에 인사를 받은 수혁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재희는 속으로 아차 하면서도, 마지못한 듯 웃어 보였다.

"지내시는데 불편함은 없으십니까?"

수혁은 약간 형식적이지만, 진심 어린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아... 네...."

재희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하니, 수혁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답답하실 텐데, 시장에라도 나가 보시겠습니까?"

시장이란 말에 재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시장이요?"

조선시대 시장이다. 볼거리 먹거리가 제법 가득할 것이다. 적어도 사극 드라마에서는 그랬던 것 같았다.

"예, 장이 열리니, 구경 나가시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재희가 기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얼른 신발을 신었다.

"어디서 합니까?"

재희가 신이 난 듯한 표정으로 물으니 수혁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가까운 곳에서 열립니다. 금방 가실 수 있습니다."

재희가 수혁을 따라 집을 나서니,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우희가 있었다.

어느덧 그녀의 눈빛은 증오와 질투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수혁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재희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는 재희는 그저 시장 구경에 신이나 있을 뿐이었다.

수혁의 말대로 시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니, 놀란 재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사람 많네요?"

마치 의외라는 듯한 재희의 말투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수혁이 더 의아한 표정으로 재희를 보며 말했다.

"음... 시장이니깐요."

그런 느낌을 알아본 것일까, 재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그, 그렇죠. 시장이니까... 오~ 저거 이쁘다."

재희가 비단 놓인 곳으로 후다닥 달려가니, 수혁이 피식 웃으며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물론 시장이니 사람 많은 것이 당연한 지는 모르겠지만, 재희가 생각했을 때 자기가 살던 시대와 조선시대의 인구수 차이가 크니, 많다 하더라도 얼마나 많겠냐 하는 생각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막상 사람이 바글바글한 모습을 보니 꽤나 의외라고 느낀 것이었다.

'시장통'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이 많았고, 생각보다 정말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죽거나 노비가 될 수 있다는 긴장감과, 현실적이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머릿속이 엉망이었는데,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나오니 뭔가 한결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체증 같은 것이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답답한 가슴이 좀 뚫리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우린 살 수 있을까요?"

문득 걷고 있던 재희가 묻는 말에 수혁이 다시금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재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전 그런... 정치싸움? 그런 건 정말 무섭거든요. 괜히 잘못돼서 사형당한다든가... 노비로 팔려간다든가... 그렇게 될까 봐 정말 무서워요."

재희의 말에 수혁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런 일 없도록 곁에서 지켜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안평대군에게서 신녀를 호위하라는 명을 받았을 것이다.

이 사람은 자신의 소임에 충실한 사람이니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지만, 그래도 막상 눈앞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얼굴이 발그레 해지고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아... 네..."

재희는 멋쩍게 대답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깔깔 대며 웃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뭐죠?"

재희가 궁금해하니, 수혁이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도 놀이패가 있는 모양입니다."

놀이패란 말에 재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이패요? 오오~~"

재희는 얼른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갔고, 이번에도 수혁은 웃으며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라나섰다.



===



꽤나 으리으리한 집에 독특한 장식들이 눈에 띄는 집이었다.

커다란 대문을 지나 작은 문 하나를 더 지나서 멈추니, 때마침 방을 나서고 있던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단아하고 우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카롭게 느껴지는 외모였다.

그녀가 나오니, 앞서 걷던 유림의 표정이 굳어지고 괜지 모르게 겁을 먹은 듯이 보였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는 느껴지는 느낌이 남다른 여인이었으나, 길동은 당당하게 서서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런 길동을 보고 그녀는 조금 재밌다는 듯이 웃는 얼굴이 되었다.

"남다른 녀석이구나."

길동을 보고 거만한 웃음을 짓는 여인을 보고, 길동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 왔습니다."

길동의 말에 유림이 나서 말을 보태었다.

"안평대군 댁에서 보낸 아이란다. 제대로 답을 하지 않으면, 큰 화를 면하기 힘들 것이야."

유림의 말에 그녀, 진서연이 코웃음을 쳤다.

"피바람이 쓸려나가게 될지도 모르고, 권세를 앞세우는구나."

진서연이 쌀쌀맞은 표정으로 신을 신고는 어딘가로 차분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유림은 놀란 표정이 되어 길동의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그녀를 뒤따라 걸었다.

길동 역시 두 사람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서, 서연아... 부탁이다. 이러다 언니 목이 날아갈지도 몰라."

유림이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을 하니, 진서연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쯧쯧, 배포가 그거밖에 안되니, 제대로 된 신을 모시지 못하는 거요, 그 가문은 며칠 못가 스러질 팔자이니, 내버려 두시면 알아서 해결될 거요."

길동이 의아한 표정으로 뒤따라오다 물었다.

"스러질 팔자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길동의 물음에 유림이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아아, 아니란다. 신녀들의 말을 그냥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돼."

난처해하는 유림을 뒤로하고 의기양양하게 걷던 진서연의 발걸음이 멈추어 섰다.

이어 홱하고 돌아서서는 길동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 어디 사는 누구냐?"

그러자 길동이 진서연을 똑바로 보고 대답했다.

"저는 홍가 길동이라고 하옵니다."

진서연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되물었다.

"홍... 홍길동? 그 홍상직 어른의 얼자 말이더냐?"

길동은 이제 되려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 예에... 그렇습니다만...."

진서연은 아연실색한 것으로 모자라 손을 떨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네가 안평대군 댁에 있는 것이냐? 그럴 리가 없다. 너는 장수할 팔자이거늘....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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