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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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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1.29분

5화 - 증명


아침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본 적이 있었던가.

오늘은 평소의 하루라면, 늘 맞이하던 일상 중에 하루라면, 이 새소리에 잠이 깸을 기뻐할 지도.

하지만 잠에서 깨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자리에서 일어난 재희는, 역시나 조선 시대에 와 있음을 깨닫고 속상해하고 있었다.

잠깐의 이벤트라면, 이렇게 며칠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한다면, 어쩌면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 돌아갈 수 있긴 한 것인지 막막할 따름이니, 하루하루가 너무 길고 고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 시대라면, 신분이 천한 사람은 매를 맞아 죽기도 하고, 까딱 잘못해서 높은 사람들의 눈밖에 나면 머리가 잘려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가 아니던가.

언제 어떻게 잘못될까 가슴 졸이고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기에, 더 힘든 것 같았다.

"안에 계십니까?"

바깥에서 부르는 소리에 재희가 서둘러 옷매무새를 다듬고 문을 빼꼼히 열어 보았다.

첫날 보았던 우희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문밖에 서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재희는 그녀가 안평대군의 딸이란 사실을 상기하며, 서둘러 문밖으로 나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어려 보인다던가 착해 보인다고 방심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 내내 방에만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답답하실 것 같아, 동무라도 해드릴까 싶어 와봤습니다."

우희의 말에 재희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었다.

"아... 아, 네... 괘, 괜찮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희가 대답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우희 너머 별채로 향하는 문에, 수혁이 막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재희 쪽을 바라보며, 우희를 확인하고는 살짝 놀란 표정이 되어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재희의 눈길을 의식한 우희가 고개를 돌려 수혁을 보더니 반가운 표정이 되었다.

"아, 수혁 오라버니 오십니까?"

우희가 쪼르르 수혁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니, 수혁이 살짝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우희 아가씨, 이른 아침부터 어인 일이십니까?"

"대신녀님께서 어제 하루 종일 방에만 계셨다 들었습니다. 답답하실 것 같아 동무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우희의 말을 들으며 수혁이 웃어 보이고는, 재희 쪽으로 다가와 마찬가지로 인사를 건네 왔다.

재희 역시 서둘러 마주 인사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재희를 보며 수혁이 말을 건네 왔다.

"아침에 일어나시는 대로 보자고, 이공께서 언질해 두셨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그리 반갑지 않은 말이었다.

재희는 그 이현로란 인물이, 왠지 모르게 무섭고 두려웠다.

이현로란 인물은 역사에서의 평가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역사 자체가 승자의 기록이니 만큼, 패자인 안평대군이나 그의 책사인 이현로에 대해 평이 좋았을 리가 없다.

그러나 어제 만나본 이현로는 그녀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모도 기품 있고 당차 보이는 데다가,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무거운 압박감이, 보통 인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고 있었다.

재희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수혁을 따라나섰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우희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이 되어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수혁은 재희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 이현로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생각과는 달리 작고 허름해 보이는 집이었는데, 수혁이 집 앞에 이르니, 이현로는 이미 마당에 나와 무언가를 매만지고 있었다.

"어, 왔는가?"

이현로는 자신이 만지고 있던 나무 조각을 내려놓고 일어나며, 어제와는 달리 평온한 표정으로 재희를 반겼다.

"이리 들어오시게."

이현로가 방 안으로 들어가니, 재희가 쭈뼛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뒤따라 들어갔고, 수혁은 바깥에서 기다렸다.

방안에 들어오자 이현로는 방 위쪽에 자리 잡고 앉으며 말했다.

"앉지."

재희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조심스럽게 그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현로는 어제와는 달리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그래,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지 물어도 되겠는가?"

재희는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이 나오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마음먹은 이상 생각해 두었던 말을 꺼내었다.

"오늘... 수양대군이 매월 종친들과 임금님이 만나는 자리를 갖자고 청할 것입니다."

재희의 이야기를 듣는 이현로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래? 어찌 그런 것이냐?"

이현로의 되물음에 재희는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저... 저는 있을 일만 알뿐,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현로는 아쉬운 듯하면서도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런 소소한 일 말고, 앞으로 있을 큰 일을 물어도 되겠느냐?"

재희는 긴장된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가 묻는 저의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에 기록된 내용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봤을 때, 계유정난을 막지 못하면 자신도 이곳에서 죽던지 혹은 노비로 팔려갈 것이 분명했다.

"그... 그것이..."

재희는 살기 위해 이야기해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고 흔한 말로 천기누설이 아닌가.

심장이 쿵쾅거리듯 뛰고 손에 땀이 쥐어졌다.

"어려운 것이라면, 앞으로 있을 수양대군의 행적만 알려주어도 충분할 것이다."

이현로가 재희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자신의 목적을 낮추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소한 것들은 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므로 재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서 이 시점에서 살아야 하고, 더 길게는 계유정난을 피해 살아남아야 한다.

재희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달 뒤... 큰 변고가 있을 것입니다."

재희가 결심하여 이야기하니, 이현로의 표정이 굳어졌다.

"변고? 누가? 수양대군이?"

재희는 일단 이야기를 꺼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며 조금 더 수월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예, 한 달 뒤 수양대군에 의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입니다."

재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니, 이현로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게."

재희는 긴장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명회의 주도로 큰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찾아가 죽일 것이고, 수양대군의 수하들이 사대문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이어 임금님을 손에 넣고 임금의 명으로 조정 대신들을 불러들여 차례대로 죽일 것입니다."

이현로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궁궐이 그리 쉽게 수양대군의 손에 넘어갈 것이라 말하는 것이냐?"

하지만 재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날 임금님께서는 궁궐에 계시지 않으실 겁니다."

이현로가 놀란 표정이 되었고, 그런 그의 표정을 살피며 재희가 말을 이었다.

"그날... 임금님께서는 적적함을 달래고자 경혜공주님의 집을 찾아가 묵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수양대군이 경혜공주님의 집으로 가 임금님을 볼모로 잡을 것입니다."

이현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실제로 요 근래에 임금이 경혜공주의 집을 찾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한 달 뒤라면, 이현로가 준비하고 있는 것보다 열흘 남짓 빠른 시기이다.

시기와 정황이 적절히 들어맞고 있었다.

이현로가 놀란 눈으로 재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너는 누구냐? 누구길래 그러한 일들을 알고 있는 것이냐?"

그 질문에 재희는 다시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까, 미래에서 왔다고 한다면 믿을까?

재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저 미천한 점쟁이일 뿐입니다."

솔직하게는 그저 살고 싶은 한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이 모든 상황에서 빠져나와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문득 이현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돌아가 쉬고 있거라. 다음에는 내가 찾아가도록 하마. 되도록 바깥출입을 삼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 달 뒤라...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서둘러야겠구나."

이현로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재희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이현로는 기다리고 있던 수혁에게 이야기했다.

"자네에게 부탁 좀 함세."

수혁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염려 마시지요."

재희는 밖으로 나와 신을 신고 이현로에게 인사를 한 뒤 수혁을 따라 집을 나섰다.

문밖으로 나오면서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좀처럼 멈추지를 않았다.

마치 나쁜 일을 하고 난 뒤, 들킬까 봐 조마조마해하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었다.

이미 쏟아진 물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재희는 불안함과 동시에 왠지 모르게 어떤 기대감이 생기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



어둠이 어수룩하게 자리 잡은 저녁 시간, 침묵만이 가득했던 방을 향해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감마님, 자준 나리 오셨습니다."

방안에서 홀로 책을 보고 있던 수양대군은 자준이란 말에 보고 있던 책을 옆으로 치웠다.

방문이 열리고 왜소해 보이는 체격에 사내가 들어와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수양대군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앉게."라고 말을 하니, 그가 수양대군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예상한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10월 중순께 안평대군이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수양대군은 예상했었다는 듯이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찌하면 좋겠나? 국경(國卿)과 사겸(四兼) 마저 안평의 편을 들고 있으니, 내 함부로 나설 수가 없지 않은가?"

수양대군의 이야기를 들은 자준, 한명회가 대답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저 호랑이 우의정이 안평을 감싸고도는 이상, 대군께서 나서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거기까지 들은 수양대군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허나...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명회가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하니, 수양대군이 그를 보며 물었다.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한명회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요 근래, 임금께서 경혜공주마마의 사가에 종종 머문다고 합니다. 임금께서 그곳에 머무는 날, 우리가 그곳에서 사로잡는다면... 교지를 이용해 적들을 처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양대군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가능하겠는가?"

한명회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비록 안평대군의 세에는 미치지 못하나, 능히 해볼 만합니다. 가칙(可則)이 이미 준비를 마쳤으니, 거사일을 정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수양대군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안평 쪽은 어찌하고 있다던가?"

그 물음에 한명회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첩이 굿이나 주술 따위에 빠져, 어제도 집안에서 큰 굿판을 벌인 모양입니다. 미물 따위를 데려다가 굿판을 벌여서 신녀를 얻었다는 말이 있던데, 우리에게는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명회의 말에 수양대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세간의 이목이 그쪽으로 몰리니, 저들은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것입니다. 반면 저희는 움직이기 훨씬 편하겠지요."

수양대군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한명회가 말을 이었다.

"준비되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저들이 준비를 마치기 전에 선공(先攻)을 해야 할 것입니다."

수양대군이 다시 한번 수긍하듯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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