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신녀의 예언
잠도 오지 않아 뒤척거리던 재희는, 결국 한숨도 제대로 잠들지 못한 체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제 저녁에 우희가, 재희의 가방을 돌려주어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 이북으로 시대적 상황을 대충 짐작해 보긴 했지만, 좀처럼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뜨면 혹 내 방에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말의 희망마저 걷어차버린 아침 햇살이 드러워지고 있었다.
힘겹게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고, 바깥 눈치를 살피며 빼꼼히 문을 열던 재희는 문득 낯익은 얼굴과 마주해 버렸다.
수혁은 재희의 방문 앞을 서성이다가 때마침 문을 열던 재희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였다.
그에 반해 재희는 난처한 표정이 되어, 잠깐 문을 도로 닫을까 하다가 포기하고 활짝 열어젖혔다.
"이 아침에 무슨 일이십니까?"
재희는 짐짓 이 시대에 맞는 표현을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재희를 보며 수혁은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네 왔다.
"잠을 잘 주무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로 마님이 모셔 오시라 당부하였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희의 표정이 일순 놀란 표정이 되었다.
"마, 마님이요? 마님께서 어쩐 일로..."
수혁은 여전히 재밌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야 물론 대신녀님께 궁금한 것들을 여쭙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재희는 난감했다.
자신은 대신녀도 아니거니와, 딱히 역사에 뭐 엄청 대단한 관심이 있어서 사학과로 진학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면에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님이란 사람이 부른다는데 안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가, 가시죠."
일단 재희는 얼른 나와서 신발을 찾아 신었다.
비단신이란 게 생각보다 제법 편하다는 생각을 잠깐 하였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수혁을 따라 집안 길을 걸으니, 흡사 민속촌이라도 놀러 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안채를 지나 걷고 있을 무렵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수혁도 들었는지 발걸음을 멈추어 들려오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니, 재희도 따라서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대체가 동네 창피해서 어찌 다닌답니까?"
굵직하고 위엄 어린 목소리였다.
누군가를 타박하는 듯한 말소리에는 상당한 감정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에 뒤를 이어 차분하면서도 귓속을 파고드는 또렷한 목소리가 있었다.
"그쯤 하시지요, 대군. 작은 마님께서도 대군께 도움이 되어 드리고자 하신 일이 아니십니까?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먼저의 굵직한 목소리는 바로 안평대군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은 듯 헛기침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어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님, 아까 말씀하시기를 제물을 바쳐 대신녀를 얻었다 하셨습니다. 허면, 무당과 그 대신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낯익은 목소리가 대답하였다.
"무당은 돌아갔고, 대신녀는 별당에 머물라하였네.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내게 오라 하였네만."
문득 재희는 어제 본 실록의 내용을 토대로, 안평대군의 정실부인은 이미 죽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마님이라 불리우는 저 여인은 측실부인, 즉 안평대군의 첩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혁이 재희를 힐끗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재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수혁의 뒤를 따라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혁과 재희가 모습을 드러내니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혁이 먼저 인사를 하고, 재희가 뒤따라 얼른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큼지막한 풍채와 사랑채 위에 서 있는 근엄한 표정의 중년의 남자가 아마도 안평대군일 것이다.
그 옆으로 어제 보았던 부인이 서 있었고, 사랑채 앞에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갓을 쓰고 서 있었다.
"그대가 대신녀인가?"
갓을 쓴 사내가 예의 차분한 어조로 재희에게 물어오고 있었다.
재희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문을 그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재희의 코앞에 섰다.
이어 재희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무슨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이곳이 대군이신 안평대군의 거처임을 안다면, 네년의 대답 여하에 따라 목이 달아날 수도 있음을 알 것이다."
재희는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고, 식은땀이 등 뒤로 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예, 예...."
재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그 거창한, 대신녀인지 뭔지 라는 것을 증명해 보거라."
재희의 표정이 난처해졌다.
"예, 예?"
재희가 되묻자, 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못하겠느냐? 대신녀라고 하지 않았느냐? 명색이 대신녀라면 앞일을 예견할 줄 알아야 하거늘. 못하겠느냐? 못하겠다면, 사기가 아니더냐?"
그의 말에 재희는 가슴이 다시 한번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맙소사. 예언이라니...
하지만 이내 재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과거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니, 능히 예언이 가능할 것이다.
딴에는 공부한다고 저장해 놓고 얼마 보지도 않았던 조선왕조실록이지만, 다행히 다운로드를 받아놓은 덕에 인터넷이 안되도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어제 날짜를 물어본 이후 이무렵 전후 기록을 그런대로 살펴본 터였다.
그래, 어제가 4일이라 했으니 오늘 일어날 일은...
재희가 서둘러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 오늘... 수양대군... 수양대군께서..."
재희의 입에서 수양대군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양대군께서... 재, 재인(梓人)...재인을, 이명민에게 청하였으나. 이... 이명민이 거절한 것을 두고, 하, 한명회가 이를 따질 것입니다."
재희의 난데없는 발언에 모두 놀란 표정이 되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재희 앞에 선 사내가 고개를 돌려 안평대군을 바라보니, 안평대군도 그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는 다시 재희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현로라 한다. 네 말이 사실인지는 차후에 확인해 볼 것이다. 이 이야기는 허락이 있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발설해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엄중한 그의 발언에 재희는 연달아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여나 네가 살기 위해 한 거짓부렁이라면, 그 거짓의 죄를 물어 네년의 혀를 자를 것이다. 들어가 쉬고 있거라."
이현로가 그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안평대군과 함께 사랑채 안으로 들어갔다.
재희는 그제야 숨을 돌렸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렸다.
"괜찮으십니까?"
수혁이 걱정스러운 듯 그녀에게 묻는 말에, 재희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만 들어가서 쉴 수 있게 모시거라."
부인이 걱정스러운 듯 수혁에게 말하니, 수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재희를 다시 방으로 안내하였다.
한편, 사랑채 안으로 들어온 안평대군이 자리에 앉으며 이현로에게 물었다.
"어떤가? 괜한 소리 같은가?"
이현로는 맞은편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현로의 대답에 안평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지니, 이현로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다니?"
안평이 되물으니, 이현로가 살짝 웃어 보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 아침... 한명회가 이명민을 찾아가 재인을 청한 일과 관련하여 따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안평이 놀라 되물었다.
"그래? 그럼 그것은 예언이 아니지 않은가?"
이현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요. 이미 일어난 일이니 예언은 아니지요. 다만... 그 일은 제가 보고받고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일이고, 관련된 몇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녀가 지금 알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안평대군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허면... 진정 보지도 않고, 있을 일을 예언했다 보시는가?"
이현로가 잠시 긴 한숨을 내쉬고는, 뒤늦게 대답했다.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다만, 평범하지는 않은 듯 하니, 잠시 동안은 곁에 두도록 하시지요."
안평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 한명회란 친구는 끝내는 내 눈밖에 나는 구만."
안평의 분에 어린 말소리에 이현로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칠삭둥이라 그런지, 사람 보는 안목이 부족한 친굽니다. 기껏해야 한지기일 뿐이니, 잊으시지요."
안평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내 그래도 자네의 추천이 있었기에, 혹여 마음을 바꿀까 나쁘게 생각치는 않고 있었는데, 쯧쯧..."
안평이 혀를 차며 투덜거리자, 이현로는 예의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송구스럽습니다. 애초에 저보다는 권람 그 친구와 더 친한 것도 있었고, 진작 부터 수양대군을 마음에 두었던 모양입니다. 소인의 잘못이니,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이현로의 대답에 안평이 손을 휘이 내저었다.
"아니 아니, 아닐세. 내가 설마 자네를 책망하겠는가? 그나저나 이명민이라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수양대군께서 사람을 보내 재인을 보내달라 청했던 모양입니다. 헌데, 공역이 많음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더니, 한명회가 찾아와 따진 모양입니다."
안평이 콧방귀를 뀌며 투덜거렸다.
"흥, 이 내가 중히 쓰겠다는 것을 마다하고, 기꺼이 수양 형님의 개 노릇을 하시겠다?"
안평이 심기 불편해 하자, 이현로가 위로하듯 이야기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결국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이 사랑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방으로 돌아온 재희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보았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다행히 보조배터리가 하나 더 있었다.
재희는 시간이 될 때, 최대한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내용을 필사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방 속에 있던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었다.
이것만이 살길이란 생각에 현시점 이후로, 최대한 자세한 내용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 우희가, 재희의 가방을 돌려주어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 이북으로 시대적 상황을 대충 짐작해 보긴 했지만, 좀처럼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뜨면 혹 내 방에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말의 희망마저 걷어차버린 아침 햇살이 드러워지고 있었다.
힘겹게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고, 바깥 눈치를 살피며 빼꼼히 문을 열던 재희는 문득 낯익은 얼굴과 마주해 버렸다.
수혁은 재희의 방문 앞을 서성이다가 때마침 문을 열던 재희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였다.
그에 반해 재희는 난처한 표정이 되어, 잠깐 문을 도로 닫을까 하다가 포기하고 활짝 열어젖혔다.
"이 아침에 무슨 일이십니까?"
재희는 짐짓 이 시대에 맞는 표현을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재희를 보며 수혁은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네 왔다.
"잠을 잘 주무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로 마님이 모셔 오시라 당부하였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희의 표정이 일순 놀란 표정이 되었다.
"마, 마님이요? 마님께서 어쩐 일로..."
수혁은 여전히 재밌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야 물론 대신녀님께 궁금한 것들을 여쭙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재희는 난감했다.
자신은 대신녀도 아니거니와, 딱히 역사에 뭐 엄청 대단한 관심이 있어서 사학과로 진학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면에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님이란 사람이 부른다는데 안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가, 가시죠."
일단 재희는 얼른 나와서 신발을 찾아 신었다.
비단신이란 게 생각보다 제법 편하다는 생각을 잠깐 하였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수혁을 따라 집안 길을 걸으니, 흡사 민속촌이라도 놀러 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안채를 지나 걷고 있을 무렵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수혁도 들었는지 발걸음을 멈추어 들려오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니, 재희도 따라서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대체가 동네 창피해서 어찌 다닌답니까?"
굵직하고 위엄 어린 목소리였다.
누군가를 타박하는 듯한 말소리에는 상당한 감정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에 뒤를 이어 차분하면서도 귓속을 파고드는 또렷한 목소리가 있었다.
"그쯤 하시지요, 대군. 작은 마님께서도 대군께 도움이 되어 드리고자 하신 일이 아니십니까?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먼저의 굵직한 목소리는 바로 안평대군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은 듯 헛기침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어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님, 아까 말씀하시기를 제물을 바쳐 대신녀를 얻었다 하셨습니다. 허면, 무당과 그 대신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낯익은 목소리가 대답하였다.
"무당은 돌아갔고, 대신녀는 별당에 머물라하였네.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내게 오라 하였네만."
문득 재희는 어제 본 실록의 내용을 토대로, 안평대군의 정실부인은 이미 죽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마님이라 불리우는 저 여인은 측실부인, 즉 안평대군의 첩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혁이 재희를 힐끗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재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수혁의 뒤를 따라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혁과 재희가 모습을 드러내니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혁이 먼저 인사를 하고, 재희가 뒤따라 얼른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큼지막한 풍채와 사랑채 위에 서 있는 근엄한 표정의 중년의 남자가 아마도 안평대군일 것이다.
그 옆으로 어제 보았던 부인이 서 있었고, 사랑채 앞에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갓을 쓰고 서 있었다.
"그대가 대신녀인가?"
갓을 쓴 사내가 예의 차분한 어조로 재희에게 물어오고 있었다.
재희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문을 그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재희의 코앞에 섰다.
이어 재희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무슨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이곳이 대군이신 안평대군의 거처임을 안다면, 네년의 대답 여하에 따라 목이 달아날 수도 있음을 알 것이다."
재희는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고, 식은땀이 등 뒤로 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예, 예...."
재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그 거창한, 대신녀인지 뭔지 라는 것을 증명해 보거라."
재희의 표정이 난처해졌다.
"예, 예?"
재희가 되묻자, 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못하겠느냐? 대신녀라고 하지 않았느냐? 명색이 대신녀라면 앞일을 예견할 줄 알아야 하거늘. 못하겠느냐? 못하겠다면, 사기가 아니더냐?"
그의 말에 재희는 가슴이 다시 한번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맙소사. 예언이라니...
하지만 이내 재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과거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니, 능히 예언이 가능할 것이다.
딴에는 공부한다고 저장해 놓고 얼마 보지도 않았던 조선왕조실록이지만, 다행히 다운로드를 받아놓은 덕에 인터넷이 안되도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어제 날짜를 물어본 이후 이무렵 전후 기록을 그런대로 살펴본 터였다.
그래, 어제가 4일이라 했으니 오늘 일어날 일은...
재희가 서둘러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 오늘... 수양대군... 수양대군께서..."
재희의 입에서 수양대군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양대군께서... 재, 재인(梓人)...재인을, 이명민에게 청하였으나. 이... 이명민이 거절한 것을 두고, 하, 한명회가 이를 따질 것입니다."
재희의 난데없는 발언에 모두 놀란 표정이 되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재희 앞에 선 사내가 고개를 돌려 안평대군을 바라보니, 안평대군도 그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는 다시 재희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현로라 한다. 네 말이 사실인지는 차후에 확인해 볼 것이다. 이 이야기는 허락이 있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발설해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엄중한 그의 발언에 재희는 연달아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여나 네가 살기 위해 한 거짓부렁이라면, 그 거짓의 죄를 물어 네년의 혀를 자를 것이다. 들어가 쉬고 있거라."
이현로가 그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안평대군과 함께 사랑채 안으로 들어갔다.
재희는 그제야 숨을 돌렸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렸다.
"괜찮으십니까?"
수혁이 걱정스러운 듯 그녀에게 묻는 말에, 재희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만 들어가서 쉴 수 있게 모시거라."
부인이 걱정스러운 듯 수혁에게 말하니, 수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재희를 다시 방으로 안내하였다.
한편, 사랑채 안으로 들어온 안평대군이 자리에 앉으며 이현로에게 물었다.
"어떤가? 괜한 소리 같은가?"
이현로는 맞은편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현로의 대답에 안평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지니, 이현로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다니?"
안평이 되물으니, 이현로가 살짝 웃어 보이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 아침... 한명회가 이명민을 찾아가 재인을 청한 일과 관련하여 따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안평이 놀라 되물었다.
"그래? 그럼 그것은 예언이 아니지 않은가?"
이현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요. 이미 일어난 일이니 예언은 아니지요. 다만... 그 일은 제가 보고받고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일이고, 관련된 몇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녀가 지금 알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안평대군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허면... 진정 보지도 않고, 있을 일을 예언했다 보시는가?"
이현로가 잠시 긴 한숨을 내쉬고는, 뒤늦게 대답했다.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다만, 평범하지는 않은 듯 하니, 잠시 동안은 곁에 두도록 하시지요."
안평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 한명회란 친구는 끝내는 내 눈밖에 나는 구만."
안평의 분에 어린 말소리에 이현로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칠삭둥이라 그런지, 사람 보는 안목이 부족한 친굽니다. 기껏해야 한지기일 뿐이니, 잊으시지요."
안평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내 그래도 자네의 추천이 있었기에, 혹여 마음을 바꿀까 나쁘게 생각치는 않고 있었는데, 쯧쯧..."
안평이 혀를 차며 투덜거리자, 이현로는 예의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송구스럽습니다. 애초에 저보다는 권람 그 친구와 더 친한 것도 있었고, 진작 부터 수양대군을 마음에 두었던 모양입니다. 소인의 잘못이니,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이현로의 대답에 안평이 손을 휘이 내저었다.
"아니 아니, 아닐세. 내가 설마 자네를 책망하겠는가? 그나저나 이명민이라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수양대군께서 사람을 보내 재인을 보내달라 청했던 모양입니다. 헌데, 공역이 많음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더니, 한명회가 찾아와 따진 모양입니다."
안평이 콧방귀를 뀌며 투덜거렸다.
"흥, 이 내가 중히 쓰겠다는 것을 마다하고, 기꺼이 수양 형님의 개 노릇을 하시겠다?"
안평이 심기 불편해 하자, 이현로가 위로하듯 이야기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결국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이 사랑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방으로 돌아온 재희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보았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다행히 보조배터리가 하나 더 있었다.
재희는 시간이 될 때, 최대한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내용을 필사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방 속에 있던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었다.
이것만이 살길이란 생각에 현시점 이후로, 최대한 자세한 내용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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