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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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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11분

7화 - 계략


그는 관복을 입고 턱끝에 난 수염을 매만지며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이내 그늘진 나무 아래 놓인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현로를 본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달려왔다.

"와 있었는가?"

다가오는 그를 보며 이현로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어디 가까운 냇가에라도 나가 자리 잡고 있었어야 했나?"

이현로의 심심한 농담에, 김한계(金漢啓)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의 호가 휴계(休溪)이기 때문이었다.

"어디 되지도 않는 농을 다하나?"

이현로가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어떤가? 수양대군이 종친들과의 주기적인 만남을 청했다 하던가?"

순간 김한계가 놀라 해하며 되물었다.

"어찌 아는가? 벌써 이야기를 들었는가?"

이현로의 표정이 짧은 순간이었지만, 굳어졌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 되었네. 내 자세하게는 듣지 못하였으니, 어디 한번 말해보게."

이현로의 물음에 김한계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나도 뭐 전해 들은 것이긴 하네만... 어제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일세. 승정원에서는 찬성하였지만, 의정부에서 적당히 거절한 모양 이네만."

이현로가 피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승정원이야 수양대군 눈밖에 나기 싫으니 그리 하였겠지. 의정부야 김종서 대감이 있으니 쉬이 넘어갈 리 있겠는가."

이현로의 말에 김한계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자자, 그건 그렇다 치고. 어서 이리 와보시게."

김한계가 이현로를 잡아끌듯이 부르니, 이현로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뭘 그리 서두르나?"

그러자 김한계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 양반이 성격이 호방하고 힘이 장사라니까... 보면 자네도 마음에 들 걸세."

이현로는 내키지 않은 듯 헛기침을 한번 하며 수염을 쓰다듬었지만, 일단 여러 인재가 필요한 터인 데다가 절친인 김한계의 추천이니 안 볼 수도 없었다.

진작부터 김한계가 사람을 추천해 준다고 하였었는데, 오늘 아주 벼르고 나온 모양이었다.

김한계가 이현로를 데리고 인근 주막집에 다다르니,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주막 한가운데 자리 잡고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덩치 큰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 보시게, 뭔 백주 대낮부터 술을 그리 마시나?"

김한계가 놀라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가 타박을 하니, 술 마시던 거구의 사내가 히죽거리듯 웃으며 말했다.

"아~ 자네 왔는가? 이리와 자네도 한잔 하게."

"나... 이 사람이... 아, 오늘 내가 중한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자리에서 이리 술 마시고 있으면 쓰나?"

김한계가 타박을 하니, 그 사내가 입가를 쓰윽 닦아내고는 뒤에 서 있는 이현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현로를 향해 꾸뻑 인사를 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안녕하신가, 내 자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만... 내 비록 술을 좀 마시긴 했어도, 아직은 멀쩡하니 이야기를 나누기에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네."

그의 말에 이현로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잘 됐네. 나도 한잔 합시다."

이현로가 말하며 맞은편 자리에 앉으니, 그 사내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고, 김한계는 더욱 놀란 표정이 되었다.

"뭐하나? 서서 술 마시게?"

이현로가 퉁명스레 두 사람을 보며 이야기 하자, 사내는 희희낙락하며 얼른 자리에 앉았고, 김한계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쭈뼛거리며 옆 자리에 앉았다.

"주모~ 여기 술 하고 술잔 좀 더 주쇼!"

사내가 큰 소리로 말하니, 귀가 다 쩌렁쩌렁 울릴 지경이었다.

이현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힘이 장사라더니...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구만."

그 말에 사내가 씨익 웃어 보이고, 그제야 김한계가 나서 말했다.

"홍일 동이라고 저기 남양 사람인데... 지금은 개천군사(价川郡事)로 있네."

김한계가 소개를 다 하기도 전에, 홍일동이 나서 말했다.

"마천(麻川)이라고 부르슈, 군사가 된지는 얼마 안 되었고. 뭐 아직 이렇게 한량하게 지내고 있수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모가 술병 하나와 술잔을 들고 와 술상 위에 놓아주니 홍일동이 얼른 술잔부터 따르기 시작했다.

"내 술이라면 몇 말을 마셔도 멀쩡한 놈이요."

홍일동의 호언장담에 이현로가 예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힘이 장사시고, 술이라면 지지 않는 성격이라 하니, 그 호기는 알겠고. 어떻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잘 알 텐데?"

홍일동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거 뭐... 세상 사람 다 아는 일 아니요? 다음 세상은... 두 대군 중 누구냐? 헌데... 당장 저기 저 좌상대감이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이가... 아무래도 다음 세상을 이끌지 않겠소?"

이현로가 그의 말에 웃음 지으며 말했다.

"자, 한잔 하십시다."

세 사람이 같이 잔을 나누어 마시고는, 술잔을 내려놓자 이현로가 말했다.

"큰일이요. 사내라면 살면서 큰일 한번 치러 봐야 하지 않겠소? 듣자 하니 두 살 위라 들었는데..."

이현로가 말을 체 다 끝내기도 전에, 홍일동이 큼지막한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거 뭐... 한두 살 차이 가지고, 말 편히 하슈."

이현로가 그 모습에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좋소. 내 조만간 그분께 인사 올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겠소. 한번 잘 해 보십시다."

홍일동이 크게 웃으며 다시 술잔을 들어 보였다.

"고맙소. 내 한번 잘 해 보리다."

세 사람이 다시 술잔을 나누어 마시며, 큰 소리로 웃었다.



===



늦은 시간까지 실록을 옮겨 적던 재희는 손목이 뻐근해져 오니, 공책과 볼펜을 가방 안에 잘 넣어둔 뒤 방을 나섰다.

벌레 우는 소리가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며, 시원한 바람을 타고 울려 퍼지는 것이, 상쾌한 기분이 드는 저녁이었다.

"후..."

왠지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니, 마음속에 답답했던 것들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이렇게 지내고 괜찮은 것인지 알 길 없었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 고민해봐야 해답은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주어진 상황에, 그저 최선의 선택을 하면 그뿐인 것이다.

재희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 재희는 대궐집을 두르고 있는 벽을 따라 걸었다.

전에는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궐 담장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이 시멘트로 복원되었거나, 오래되어 그 형태만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렇게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게 터벅터벅 걷던 재희는, 막 들어서서 걸어오던 이현로와 마주쳤다.

재희는 놀란 표정으로 얼른 인사를 했고, 이현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를 마주 보고 섰다.

"뭐하시는 건가?"

이현로가 묻는 말에 재희는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그, 그냥... 바람을 좀 쐬고 있었습니다."

재희는 왠지 이 이현로라는 사람이 조금 무서웠다.

그는 재희 앞으로 좀 더 다가와 서서 말했다.

"자네 말대로 됐더군. 수양이... 종친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는 자리를 가지자고 청했다고..."

재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잠시 이현로가 말없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느지막이 말을 이었다.

"큰 변란이 있을 것이라 했지? 그때... 임금을 볼모로 조정 대신들을 왕명으로 불러다가 죽인다고?"

재희는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분명 그럴 것입니다."

이현로는 다시 말없이 재희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재희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처한 표정으로 서서 이현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이현로가 말했다.

"너도 이제 엄연한 안평대군의 사람이다.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터... 허니, 최선을 다해 대군을 지키거라. 알겠느냐?"

이현로의 말에 재희가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현로는 그런 재희를 보며 서 있다가, 몸을 돌려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재희는 그 자리에 서서 걸어가는 이현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다가, 이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얼른 방으로 돌아가자 싶은 생각에 몸을 돌렸다가,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해 했다.

"아고, 깜짝이야."

재희가 놀라 한걸음 물러서서 보니, 언제 와 있었는지 수혁이 서 있었다.

"왜 그리 놀라십니까?"

수혁이 걱정스레 묻는 말에 재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흘겨보자, 수혁이 살짝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저는... 걱정이 되어서..."

"제발 그렇게 기척 없이 따라다니지 좀 마세요."

재희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수혁을 지나 성큼성큼 걸어가니, 수혁이 멋쩍은 표정이 되어 재희의 뒤를 쫓아 걸었다.

"신녀님,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이리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뒤따라 걸으며 사과하는 수혁이었지만, 재희는 들은 체 만 체였다.

결국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리니, 방밖에 홀로 남은 수혁이 짧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잠시 후, 갑자기 문을 열고 재희가 나서니 수혁이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난데없는 재희의 말에 수혁이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제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사람을 좀 찾아주십시오."

수혁이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죄송하지만, 저도 신녀 님 곁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기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자 재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달리 도와줄 만한 사람도 없는 겁니까?"

재희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수혁이 대답했다.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재희는 살짝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푸념하듯 대답했다.

"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마치고 재희는 도로 문을 닫았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털썩 주저앉은 재희는 속상한 마음에 심경이 복잡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괜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 것 같아 수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잠시 망설이던 재희는 다시 일어서서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빼꼼히 열린 문 밖을 살펴보지만,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 수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재희는 하는 수 없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도로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는 원래의 복잡한 심경에다가 수혁에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 겹쳐서 더욱 심난해져 버렸다.

"아 몰라 몰라..."

재희는 엎드리며 짜증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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