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1
시현이 그녀를 처음 보았던 모습은, 비 내리는 날 사건 현장 한쪽에서, 비에 옷 젖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체, 넋 놓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작고 아담한 체구, 견갑골 아래까지 늘어진 긴 생머리에, 조금은 창백해 보이는 피부와 그와 상반된 붉디붉은 입술, 그리고 초점을 잃은 퀭한 눈까지.
그녀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시현은 오랜 형사 생활의 경험을 통해, 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직감했지만, 그런 직감이 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지?"
조심스럽게 묻는 시현의 목소리를 들은 동료 형사 재원이, 넋 놓고 서 있는 그녀를 힐끔 보고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 뭐, 현장에 도착했을 때, 여기 있었다고 하는데...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본인 말에 의하면 이건 악귀(惡鬼)가 벌인 짓이라고 떠들어 댔다네."
재원의 대답에 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악귀?"
"몰라. 악귄지 뭔지... 제정신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일단 현장 수습부터 시켰어. 애들 오면 서에서 조사 좀 해봐야 할 거 같아."
재원의 말을 들으며 시현은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어 그의 앞으로 시신을 수습한 119 대원들이 발길을 재촉하며 지나가자, 시현의 시선은 자연히 그들의 뒷모습 쪽으로 흘러갔다.
"피해자는?"
시현의 질문에, 재원은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어 불을 붙인 다음에야 대답했다.
"40대 초중반. 여성.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는 조리보조였던 거 같아."
"사인은?"
"뭐, 알다시피 감식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하겠지만, 딱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좌상에 의한 과다출혈이지. 정말 너는 안 봐서 다행이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온몸을 아주 난도질을 해놨더라고."
"범인은?"
연이어 묻는 시현의 질문에, 그는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인 후 내쉬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 현장에서 범행 후 자살한 거 같아. 범행에 쓰인 칼로 자기 머리를 찔렀어. 대략적으로 2시간 전에 일어난 일 같고... 저 여자는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에 여기 온 것이 CCTV로 확인이 됐어."
"따로 조사할 건 없는 건가?"
시현의 물음에 재원이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도? 그런데 왜 네가 여기 온 거야? 너 정보과로 간 거 아니었어?"
시현은 입꼬리를 올리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손을 내밀어 담배를 달란 시늉을 해 보였다.
재원은 그에게 담배를 내어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시현은 넋 놓고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반장님 오시면 안부나 전해줘."
시현은 그 말을 남기고 담배를 입에 문 체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있음에도, 바지는 온통 비에 젖어드는 체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시현이 다가가서 대뜸 그녀에게 물으니, 그녀가 비로소 시현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알듯 모를 듯 미묘한 그녀의 눈빛을 보며, 시현은 마치 자기 모습을 숨기려는 것인 양,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시현을 본 여인의 눈빛이 진중하게 변하더니 묘한 말을 꺼냈다.
"그 팔자로 여태 살아있는 게 신기하군요. 아니면... 애초에 그럴 팔자였던가?"
그녀의 말에도 시현은 태연했다. 아니 오히려 익숙한 듯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어째 무당들은 나만 보면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 지금 나는 형사로서 묻고 있는 거니까, 협조 좀 해주시겠어요?"
정중한 시현의 부탁에, 그녀는 가만히 시현을 바라본 채로 뜸을 들이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서다은."
시현은 자신이 물어놓고도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서다은 씨. 저랑 같이 서로 좀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기는 한가요? 당신도... 알 텐데?"
시현은 어딘지 모르게 차디찬 눈빛으로 다은을 바라보며 냉랭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서로 가서 묻는단 거요. 협조해 주시죠?"
말은 협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강압적인 태도였다.
"그럽시다."
다은은 마지못한 듯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시현은 다은을 데리고 사건 현장을 벗어나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량으로 향했다.
운전석에는 시현의 파트너 종수가 차창 너머로 다가오는 시현과 다은을 바라보다가 시동을 걸었고, 시현은 뒷좌석에 다은을 태운 뒤 보조석에 올라탔다.
"누구죠?"
종수가 의아한 듯 묻자, 시현은 귀찮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증인 비슷한 거."
"증인? 증인이 있어요?"
"비슷한 거라고."
시현의 괴상한 답변에, 종수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지만 더 묻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이번이 몇 번째죠?"
뒷좌석에 앉아 차창밖을 바라보던 다은이 문득 꺼낸 말에, 시현이 백미러로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몇 번째라뇨?"
시현의 물음에, 다은은 다 알고 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백미러에 비친 시현을 마주 보았다.
"처음이 아니란 거... 제가 모를까 봐 그러시나요?"
시현은 꽤나 불쾌한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불편한 심기를 표정으로 드러냈다.
"아직 확인된 게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처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거고."
시현이 마치 시선을 피하는 듯, 백미러에서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런 시현의 대답을 들은 다은 역시 차창밖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코가 꽉 막힌 것 같이 답답하군요. 차 안에 뭔 짓을 한 거야..."
말끝을 흐리는 다은의 모습을 시현이 백미러 너머로 힐끔 보았다가, 이내 아무 소리도 못 들은 것처럼 차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차는 30여분을 달려 인근 경찰서에 당도했고, 차에서 내린 시현과 다은은 4층에 위치한 취조실로 향했다.
방안에 들어선 시현은 맞은편에 다은을 앉히자마자,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현장엔 왜 간 거죠?"
다은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비명소리를 들었어요. 너무나 처참한 비명소리를... 뛰어올라갔는데... 썩은내가 진동하더군요."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데... 썩은내가 났다구요?"
다은의 눈이 시현의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지만, 이번에는 시현도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묻는군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진심이라면, 제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요."
"무당들도 모두 잘 맞추는 건 아니긴 하더군요."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대화가 이어졌다.
"진짜 썩은내가 아니라, 악귀 같은 것들이 나타날 때 나는 귀기(鬼氣)의 냄새를 말한 겁니다."
시현은 알았다는 듯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현장에 있던 범인이나 피해자 중 본인이 알고 있던 사람이 있나요?"
"아뇨."
"현장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 모두 죽어 있던가요?"
"범인은 아직 살아있었죠."
잠깐, 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그대로 다은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자살하는 걸... 봤나요?"
다은은 의외의 대답을 똑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살해하는 걸, 봤죠."
"누가 누구를요?"
"악귀가, 그 남자를."
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난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자살하는 걸 봤다고 해두죠."
"자살당했다고 하시죠."
시현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변하여 다은을 응시했다.
다은은 그런 시현의 이글거리는 눈빛에도 기죽는 거 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부검하실 거죠? 다녀오세요. 기다리죠."
"부검?"
"당신이 원하는 증거가... 그 육체에 남아있을 거니깐요."
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 대답은 제가 드릴 대답이 아닌 것 같군요. 다녀오시고 나서 이야기하시죠."
시현은 기가 찼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어차피 부검실에 다녀오기는 해야 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죠."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막 열자, 때마침 주차를 하고 도착한 종수와 마주쳤다.
"어? 어디 가세요?"
종수의 물음에 시현은 태연히 그를 스쳐 지나가며 대답했다.
"부검 결과 들으러."
"벌써요?"
시현은 종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체, 걸어가며 말했다.
"그 여자 잘 지키고 있어. 금방 올게."
그러고는 종수의 시선에서 사라진 시현은 종수가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병원은 경찰서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차로 10분도 체 안 걸리는 거리였지만, 비 오는 날이라 차가 막혀 20분이나 걸려버렸다.
시현은 병원 외부 주차장에 주차하느라, 병원 입구까지 뛰어야 했다.
잠깐 사이에 옷이 꽤나 젖어 버리긴 했지만, 지금 그런 것을 탓할 정신이 없었다.
곧바로 응급실 쪽으로 향한 그는 이곳 전담 부검의이자 그의 오랜 친구인 영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침통한 표정의 영미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그의 머릿속을 엄습해왔다.
"오랜만이야."
대뜸 인사를 건네 오는 시현을, 영미가 힐끔 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수요일에 이미 보지 않았나?"
"그러니까."
시현의 실없는 농담에 영미는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신은?"
"어떤 시신?"
"둘 다."
영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쪽은 의사인 나도 도저히 못 봐주겠던데...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 하더라도, 너무 과한 거 같아."
"다른 쪽은?"
"깔끔해. 칼이 머리에 박혀서 즉사했어. 왜 두 사람의 살해 방법이 이렇게 차이 나는 거지? 같은 장소에 있어서 당한 건가?"
영미의 물음에 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소리야? 머리에 칼박은 놈이 범인이야. 범행 후 자살한 거고."
그러자 영미가 눈살을 찌푸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
"뭐? 자살이라고?"
"그래."
영미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자기 눈앞에 놓인 시신을 가리켰다.
"이걸 보고 자살이라고?"
시현은 의아한 듯 영미의 곁에 서서 죽은 남자 시신의 머리 부분을 바라보았다.
"왜? 문제 있어?"
"이걸 보라고 이걸. 이 좌상..."
영미는 시신의 머리에 있는 깊숙이 찔린 듯한 좌상을 가리켰다.
"그게 왜?"
"안 보여?"
영미가 답답한 듯 다시 묻자, 시현은 시신의 머리 좌상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가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그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이제 알겠어? 이게 자살이라고? 말도 안 돼. 못해도 서너 번은 찔렀어. 첫 번째에 이미 뇌가 손상됐다고, 그런데 그 상태로 자기 머리를 또 찔렀다는 게 말이 돼?"
영미의 말에 시현은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죽은 상태로 다시 자신의 머리를 연이어 찔렀다는 말인가?
그제야 시현은 다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육신에 남아있는... 증거.
작고 아담한 체구, 견갑골 아래까지 늘어진 긴 생머리에, 조금은 창백해 보이는 피부와 그와 상반된 붉디붉은 입술, 그리고 초점을 잃은 퀭한 눈까지.
그녀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시현은 오랜 형사 생활의 경험을 통해, 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직감했지만, 그런 직감이 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지?"
조심스럽게 묻는 시현의 목소리를 들은 동료 형사 재원이, 넋 놓고 서 있는 그녀를 힐끔 보고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 뭐, 현장에 도착했을 때, 여기 있었다고 하는데...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본인 말에 의하면 이건 악귀(惡鬼)가 벌인 짓이라고 떠들어 댔다네."
재원의 대답에 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악귀?"
"몰라. 악귄지 뭔지... 제정신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일단 현장 수습부터 시켰어. 애들 오면 서에서 조사 좀 해봐야 할 거 같아."
재원의 말을 들으며 시현은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어 그의 앞으로 시신을 수습한 119 대원들이 발길을 재촉하며 지나가자, 시현의 시선은 자연히 그들의 뒷모습 쪽으로 흘러갔다.
"피해자는?"
시현의 질문에, 재원은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어 불을 붙인 다음에야 대답했다.
"40대 초중반. 여성.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는 조리보조였던 거 같아."
"사인은?"
"뭐, 알다시피 감식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하겠지만, 딱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좌상에 의한 과다출혈이지. 정말 너는 안 봐서 다행이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온몸을 아주 난도질을 해놨더라고."
"범인은?"
연이어 묻는 시현의 질문에, 그는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인 후 내쉬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 현장에서 범행 후 자살한 거 같아. 범행에 쓰인 칼로 자기 머리를 찔렀어. 대략적으로 2시간 전에 일어난 일 같고... 저 여자는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에 여기 온 것이 CCTV로 확인이 됐어."
"따로 조사할 건 없는 건가?"
시현의 물음에 재원이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도? 그런데 왜 네가 여기 온 거야? 너 정보과로 간 거 아니었어?"
시현은 입꼬리를 올리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손을 내밀어 담배를 달란 시늉을 해 보였다.
재원은 그에게 담배를 내어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시현은 넋 놓고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반장님 오시면 안부나 전해줘."
시현은 그 말을 남기고 담배를 입에 문 체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있음에도, 바지는 온통 비에 젖어드는 체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시현이 다가가서 대뜸 그녀에게 물으니, 그녀가 비로소 시현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알듯 모를 듯 미묘한 그녀의 눈빛을 보며, 시현은 마치 자기 모습을 숨기려는 것인 양,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시현을 본 여인의 눈빛이 진중하게 변하더니 묘한 말을 꺼냈다.
"그 팔자로 여태 살아있는 게 신기하군요. 아니면... 애초에 그럴 팔자였던가?"
그녀의 말에도 시현은 태연했다. 아니 오히려 익숙한 듯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어째 무당들은 나만 보면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 지금 나는 형사로서 묻고 있는 거니까, 협조 좀 해주시겠어요?"
정중한 시현의 부탁에, 그녀는 가만히 시현을 바라본 채로 뜸을 들이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서다은."
시현은 자신이 물어놓고도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서다은 씨. 저랑 같이 서로 좀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기는 한가요? 당신도... 알 텐데?"
시현은 어딘지 모르게 차디찬 눈빛으로 다은을 바라보며 냉랭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서로 가서 묻는단 거요. 협조해 주시죠?"
말은 협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강압적인 태도였다.
"그럽시다."
다은은 마지못한 듯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시현은 다은을 데리고 사건 현장을 벗어나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량으로 향했다.
운전석에는 시현의 파트너 종수가 차창 너머로 다가오는 시현과 다은을 바라보다가 시동을 걸었고, 시현은 뒷좌석에 다은을 태운 뒤 보조석에 올라탔다.
"누구죠?"
종수가 의아한 듯 묻자, 시현은 귀찮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증인 비슷한 거."
"증인? 증인이 있어요?"
"비슷한 거라고."
시현의 괴상한 답변에, 종수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지만 더 묻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이번이 몇 번째죠?"
뒷좌석에 앉아 차창밖을 바라보던 다은이 문득 꺼낸 말에, 시현이 백미러로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몇 번째라뇨?"
시현의 물음에, 다은은 다 알고 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백미러에 비친 시현을 마주 보았다.
"처음이 아니란 거... 제가 모를까 봐 그러시나요?"
시현은 꽤나 불쾌한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불편한 심기를 표정으로 드러냈다.
"아직 확인된 게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처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거고."
시현이 마치 시선을 피하는 듯, 백미러에서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런 시현의 대답을 들은 다은 역시 차창밖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코가 꽉 막힌 것 같이 답답하군요. 차 안에 뭔 짓을 한 거야..."
말끝을 흐리는 다은의 모습을 시현이 백미러 너머로 힐끔 보았다가, 이내 아무 소리도 못 들은 것처럼 차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차는 30여분을 달려 인근 경찰서에 당도했고, 차에서 내린 시현과 다은은 4층에 위치한 취조실로 향했다.
방안에 들어선 시현은 맞은편에 다은을 앉히자마자,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현장엔 왜 간 거죠?"
다은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비명소리를 들었어요. 너무나 처참한 비명소리를... 뛰어올라갔는데... 썩은내가 진동하더군요."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데... 썩은내가 났다구요?"
다은의 눈이 시현의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지만, 이번에는 시현도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묻는군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진심이라면, 제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요."
"무당들도 모두 잘 맞추는 건 아니긴 하더군요."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대화가 이어졌다.
"진짜 썩은내가 아니라, 악귀 같은 것들이 나타날 때 나는 귀기(鬼氣)의 냄새를 말한 겁니다."
시현은 알았다는 듯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현장에 있던 범인이나 피해자 중 본인이 알고 있던 사람이 있나요?"
"아뇨."
"현장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 모두 죽어 있던가요?"
"범인은 아직 살아있었죠."
잠깐, 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그대로 다은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자살하는 걸... 봤나요?"
다은은 의외의 대답을 똑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살해하는 걸, 봤죠."
"누가 누구를요?"
"악귀가, 그 남자를."
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난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자살하는 걸 봤다고 해두죠."
"자살당했다고 하시죠."
시현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변하여 다은을 응시했다.
다은은 그런 시현의 이글거리는 눈빛에도 기죽는 거 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부검하실 거죠? 다녀오세요. 기다리죠."
"부검?"
"당신이 원하는 증거가... 그 육체에 남아있을 거니깐요."
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 대답은 제가 드릴 대답이 아닌 것 같군요. 다녀오시고 나서 이야기하시죠."
시현은 기가 찼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어차피 부검실에 다녀오기는 해야 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죠."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막 열자, 때마침 주차를 하고 도착한 종수와 마주쳤다.
"어? 어디 가세요?"
종수의 물음에 시현은 태연히 그를 스쳐 지나가며 대답했다.
"부검 결과 들으러."
"벌써요?"
시현은 종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체, 걸어가며 말했다.
"그 여자 잘 지키고 있어. 금방 올게."
그러고는 종수의 시선에서 사라진 시현은 종수가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병원은 경찰서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차로 10분도 체 안 걸리는 거리였지만, 비 오는 날이라 차가 막혀 20분이나 걸려버렸다.
시현은 병원 외부 주차장에 주차하느라, 병원 입구까지 뛰어야 했다.
잠깐 사이에 옷이 꽤나 젖어 버리긴 했지만, 지금 그런 것을 탓할 정신이 없었다.
곧바로 응급실 쪽으로 향한 그는 이곳 전담 부검의이자 그의 오랜 친구인 영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침통한 표정의 영미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그의 머릿속을 엄습해왔다.
"오랜만이야."
대뜸 인사를 건네 오는 시현을, 영미가 힐끔 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수요일에 이미 보지 않았나?"
"그러니까."
시현의 실없는 농담에 영미는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신은?"
"어떤 시신?"
"둘 다."
영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쪽은 의사인 나도 도저히 못 봐주겠던데...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 하더라도, 너무 과한 거 같아."
"다른 쪽은?"
"깔끔해. 칼이 머리에 박혀서 즉사했어. 왜 두 사람의 살해 방법이 이렇게 차이 나는 거지? 같은 장소에 있어서 당한 건가?"
영미의 물음에 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소리야? 머리에 칼박은 놈이 범인이야. 범행 후 자살한 거고."
그러자 영미가 눈살을 찌푸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
"뭐? 자살이라고?"
"그래."
영미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자기 눈앞에 놓인 시신을 가리켰다.
"이걸 보고 자살이라고?"
시현은 의아한 듯 영미의 곁에 서서 죽은 남자 시신의 머리 부분을 바라보았다.
"왜? 문제 있어?"
"이걸 보라고 이걸. 이 좌상..."
영미는 시신의 머리에 있는 깊숙이 찔린 듯한 좌상을 가리켰다.
"그게 왜?"
"안 보여?"
영미가 답답한 듯 다시 묻자, 시현은 시신의 머리 좌상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가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그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이제 알겠어? 이게 자살이라고? 말도 안 돼. 못해도 서너 번은 찔렀어. 첫 번째에 이미 뇌가 손상됐다고, 그런데 그 상태로 자기 머리를 또 찔렀다는 게 말이 돼?"
영미의 말에 시현은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죽은 상태로 다시 자신의 머리를 연이어 찔렀다는 말인가?
그제야 시현은 다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육신에 남아있는...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