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3
기괴한 귀신이 눈앞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니, 그녀는 뒷걸음질 치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기겁한 표정으로 도망치려는 찰나, 그 귀신이 어딘가를 홱 돌아보더니, 도저히 사람의 동작이라고 볼 수 없는, 흡사 거미 같은 움직임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건물 사이 골목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남겨진 여인 앞으로 두 사람이 다가왔다.
그중 젊어 보이는 여인이 다가와 그녀 앞에 앉아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세요. 이제 갔어요."
이제 갔어요라니, 그럼 자기가 헛것을 본 게 아니란 말인가?
"어어... 어어어 어..."
무슨 말을 하지 못한 중년 여인이 여전히 질겁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다가왔던 젊은 여인, 다은이 그런 중년 여인의 손을 양손으로 잡아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다는 다은의 말에 묘한 힘이 깃들어 있었고, 중년 여인은 그 말을 듣자 조금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안심이 되었는지 깊은 숨을 내쉬었고, 그런 그녀 앞으로 이번에는 시현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시죠."
그녀는 시현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녀를 따라 다은도 일어났다.
"그런데... 누구... 시죠?"
그제야 그녀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묻는 말에, 시현이 품 안에서 경찰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수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수사라는 말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뇨. 아주머니는 잘못한 게 없으시죠."
시현은 대답을 하며 경찰 신분증을 품 안에 넣은 뒤, 이번에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어 보여주었다.
"이 사람들... 아는 사람이시죠?"
시현이 내민 건, 아까 사건 파일에 있던 피해자들의 생전 사진이었다.
세장의 사진을 본 그녀는 놀란 표정이 되어 한 사람을 가리켰다.
"이 사람... 수연 언니예요. 수연 언니한테 무슨 일 있나요?"
그녀가 가리킨 사람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였다.
시현은 그녀가 수연을 가리키며 묻는 말에, 사진을 다시 품 안에 갈무리하며 말했다.
"일단 근처 커피숍이라도 가서 얘기하시죠."
시현이 앞장서서 걸으니, 다은이 그녀를 부축하듯 잡아주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았지만, 다은이 부축해 주니 어쩐지 걸을 수 있었고, 두 사람은 시현을 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네 작은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은 말 그대로 아담한 동네 커피숍이었다.
테이블이라고는 두 개밖에 없었고, 테이블에 앉아서 나누는 대화는 카운터에 있는 아저씨한테 고스란히 다 들릴 것 같은 거리였다.
따뜻한 커피 세 잔을 받아가지고 테이블 위에 놓은 시현이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시현의 물음에 그녀는 다은과 시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홍연주라고 해요."
"연주 씨는 수연 씨와 어떤 사이시죠?"
"같이... 교회 다녀요. 교회 다니면서 알게 된 언니예요."
"교회요? 교회 맞아요?"
시현이 확인하듯 되묻는 말에, 연주는 우물쭈물거렸다.
"그게..."
"됐어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수연 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죠?"
"지난주 수요일이요."
"예배는 매일 하시나요?"
"아뇨.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3일 드려요."
"그럼 금요일날 예배 때 나오셨는데 수연 씨를 못 본건 가요?"
"네. 그날 안 나와서, 전화 연락도 해봤는데 전화를 안 받았어요."
"수연 씨는 어제 살해된 체로 발견됐습니다."
시현의 말에 연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그녀를 향해, 시현은 사무적인 태도로 물었다.
"남편분에게 살해당했죠. 이전에 남편과의 사이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 있나요?"
시현의 물음에도 연주는 멍한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연주 씨?"
시현이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연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수연 언니가... 죽었다구요?"
"네. 남편 분에게 살해당하셨습니다."
연주의 표정은 또다시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그분 저도 뵈었는데... 아주 썩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언니를 죽일 만큼 나쁜 사이도 아니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시현의 표정은 마치 모든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태연할 뿐이었다.
"교회에 대해서 좀 묻죠. 목사...라고 하는 게 맞을 까요? 수상한 점 같은 것 없던가요?"
그 말에 연주는 잠시 망설였다.
평소라면 아니라고 바로 대답했겠지만, 아까 수연의 안부를 물었을 때의 눈빛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연주가 뭔가 말하려 하자, 시현과 다은이 귀를 쫑긋이 세웠다.
"잘 모르겠지만... 오늘 제가 수연 언니 안부를..."
말을 하던 연주가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은 마치 그대로 멈춰버린 듯 굳어져 있었다.
시현의 어깨너머로 커피숍 아저씨의 두 눈과 마주쳤는데, 그 두 눈은 흡사 아까 보았던 목사의 눈빛과 똑같이 섬뜩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연주는 할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그녀 곁에 앉아 있던 다은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스쳐 지나가듯 번득거렸던 커피숍 아저씨의 눈빛을, 다은이 본 것이었다.
"왜요?"
시현은 연주가 말을 하다 말고 멈춰서는 커피를 들이켜자, 의아한 듯 물었고 다은은 시현 어깨너머의 커피숍 아저씨와 연주를 번갈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은이 생각을 마치고 의아해하는 시현을 향해 눈으로 신호를 주자, 시현은 잠시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연주의 손을 볼 수 있었다.
비로소 다은이 눈짓으로 자기 등 뒤에 있는 카운터의 남자를 가리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시현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품 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태연히 커피잔을 비운 뒤,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금세 담배 연기를 모락모락 피어났고, 잠시 후 이를 본 카운터에 남자는 시현 쪽으로 다가왔다.
"손님, 죄송하지만 여긴 금연구역입니다."
그 남자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건네 왔는데, 자리에 앉아 다가온 남자를 올려다본 시현은, 그 남자를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물었다.
"그런가요?"
"네. 어서 담배를 꺼주시죠."
그 남자는 담배연기에, 말을 마치자마자 콜록거리면서 기침을 했다.
다은은 그 남자를 예리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는데, 돌연 그 남자의 귀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쏙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됐어요."
다은이 말하자, 시현이 남자를 보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네요."
시현은 휴지를 놓고 담배를 지져서 꺼버렸다.
남자는 그런 시현을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고, 다은은 그런 그를 눈여겨 나지막한 소리로 연주와 시현에게 말했다.
"방금 전에 떠났어요."
그러자 연주가 놀라 물었다.
"뭐가요?"
"저분한테서 뭔가 다른 걸 보셨죠?"
다은의 말에 연주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돋았다.
"제가... 뭘요?"
"그게 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그걸 보는 순간 무서우셨을 거예요."
연주는 무서움에 몸서리쳤다.
"오늘 제가 본 게 다 뭐죠? 귀신인가요?"
"네, 아마도 그럴 거예요."
다은의 대답에 연주는 표정이 더욱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다은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냈다.
"이거... 가지고 계세요. 그리고 앞으로 그 교회에 나가지 마세요."
"이걸 가지고 있으면 괜찮은 건가요?"
"네. 앞으로 석 달. 석 달 동안은 몸에 반드시 지니고 계셔야 해요. 교회에는 나가지 마시구요."
연주는 꼭 그렇게 하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에는 시현이 나서 물었다.
"그 교회는, 정확하게 정체가 뭐예요? 진짜 교회는 아닌 거 같은데..."
"그게.... 안에 교주님이 따로 계세요."
"교주? 그 사람을 교주라고 불러요?"
"네... 그게... 주변에 아픈 분들이 다 그분 통해 기도해서 나았다고... 저도 아는 분이 다리가 불편해서 항상 절뚝거리셨는데, 어느 날 멀쩡히 잘 걸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치료했냐고 물으니까, 거기 가서 기도했다고..."
다은이 그 말을 듣자 궁금한 듯 물었다.
"아주머니는... 어디 불편하셔서 거기 가신 거예요?"
연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제가 아니라... 저희 남편이요. 남편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을 다쳤는데... 치료를 다했는데도 손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거든요. 그 때문에 지금 공장에서 쫓겨날까 눈치 보고 있어서요."
연주가 말끝을 흐리자, 다은이 시현을 바라보았고, 시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연주에게 말했다.
"거기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건... 기존에 다니던 신자의 추천이 있어야 해요."
"그럼, 연주 씨가 저희를 추천해 주시겠어요?"
추천해 달란 말에 연주가 놀란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네? 제가요?"
"네. 저희를 추천해 주고, 연주 씨는 더 나오지 마세요. 그다음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잠시 고민하는 연주를 보며, 다은이 달래듯이 이야기했다.
"걱정 마세요. 저희가 탈 없게 지켜드릴게요. 귀신도 저희가 다 쫓아드리고요. 이대로 놔두면, 귀신이 호시탐탐 노릴 수도 있어요."
귀신이 노린다는 말에 연주는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네, 그럴게요. 제가 추천해 드릴게요."
시현과 다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의 의지를 확인했다.
"내일모레가 예배죠?"
"네."
"오늘은 저희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연주를 데리고 나와 그녀의 집까지 함께 걸어갔다.
집은 인근에 있는 단독주택이었고, 2층 구조로 되어 위층에 전세로 살고 있었기에, 2층으로 현관문 위에 다은이 준 부적을 시현이 붙여놓았다.
부적 붙이는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연주에게, 다은은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다 마무리되면, 그땐 부적을 떼셔도 돼요. 저희가 탈없이 잘 마무리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연주가 다시 한번 인사를 하니,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어가 쉬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별일 없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연주는 연신 인사를 하며 집으로 들어갔고, 인사를 나눈 다은과 시현은 계단을 내려와 차가 있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어두워진 밤길이지만, 촘촘히 놓인 가로등 덕에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귀신을 보게 된 걸까? 뭔가 해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걸까?"
시현의 말에 걸어가던 다은이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마도요. 그리고 저 아주머니... 일반 사람치고는 영기가 꽤 좋아요. 약간... 신기(神氣)가 있달까..."
"그래?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일찍 보게 된 걸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고요. 어쨌든 위험해진 건 분명해요."
"괜찮을까? 근처에 사람을 둬야 하나?"
"아뇨. 저 부적이면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거예요. 그보다, 저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그런 짓을 하게 만드는 악령이 어떤 악령인지 알아야죠.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어요. 적을 알아야 대비를 하죠."
다은의 말을 들으며 시현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기겁한 표정으로 도망치려는 찰나, 그 귀신이 어딘가를 홱 돌아보더니, 도저히 사람의 동작이라고 볼 수 없는, 흡사 거미 같은 움직임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건물 사이 골목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남겨진 여인 앞으로 두 사람이 다가왔다.
그중 젊어 보이는 여인이 다가와 그녀 앞에 앉아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세요. 이제 갔어요."
이제 갔어요라니, 그럼 자기가 헛것을 본 게 아니란 말인가?
"어어... 어어어 어..."
무슨 말을 하지 못한 중년 여인이 여전히 질겁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다가왔던 젊은 여인, 다은이 그런 중년 여인의 손을 양손으로 잡아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다는 다은의 말에 묘한 힘이 깃들어 있었고, 중년 여인은 그 말을 듣자 조금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안심이 되었는지 깊은 숨을 내쉬었고, 그런 그녀 앞으로 이번에는 시현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시죠."
그녀는 시현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녀를 따라 다은도 일어났다.
"그런데... 누구... 시죠?"
그제야 그녀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묻는 말에, 시현이 품 안에서 경찰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수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수사라는 말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뇨. 아주머니는 잘못한 게 없으시죠."
시현은 대답을 하며 경찰 신분증을 품 안에 넣은 뒤, 이번에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어 보여주었다.
"이 사람들... 아는 사람이시죠?"
시현이 내민 건, 아까 사건 파일에 있던 피해자들의 생전 사진이었다.
세장의 사진을 본 그녀는 놀란 표정이 되어 한 사람을 가리켰다.
"이 사람... 수연 언니예요. 수연 언니한테 무슨 일 있나요?"
그녀가 가리킨 사람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였다.
시현은 그녀가 수연을 가리키며 묻는 말에, 사진을 다시 품 안에 갈무리하며 말했다.
"일단 근처 커피숍이라도 가서 얘기하시죠."
시현이 앞장서서 걸으니, 다은이 그녀를 부축하듯 잡아주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았지만, 다은이 부축해 주니 어쩐지 걸을 수 있었고, 두 사람은 시현을 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네 작은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은 말 그대로 아담한 동네 커피숍이었다.
테이블이라고는 두 개밖에 없었고, 테이블에 앉아서 나누는 대화는 카운터에 있는 아저씨한테 고스란히 다 들릴 것 같은 거리였다.
따뜻한 커피 세 잔을 받아가지고 테이블 위에 놓은 시현이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시현의 물음에 그녀는 다은과 시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홍연주라고 해요."
"연주 씨는 수연 씨와 어떤 사이시죠?"
"같이... 교회 다녀요. 교회 다니면서 알게 된 언니예요."
"교회요? 교회 맞아요?"
시현이 확인하듯 되묻는 말에, 연주는 우물쭈물거렸다.
"그게..."
"됐어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수연 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죠?"
"지난주 수요일이요."
"예배는 매일 하시나요?"
"아뇨.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3일 드려요."
"그럼 금요일날 예배 때 나오셨는데 수연 씨를 못 본건 가요?"
"네. 그날 안 나와서, 전화 연락도 해봤는데 전화를 안 받았어요."
"수연 씨는 어제 살해된 체로 발견됐습니다."
시현의 말에 연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그녀를 향해, 시현은 사무적인 태도로 물었다.
"남편분에게 살해당했죠. 이전에 남편과의 사이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 있나요?"
시현의 물음에도 연주는 멍한 표정으로 시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연주 씨?"
시현이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연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수연 언니가... 죽었다구요?"
"네. 남편 분에게 살해당하셨습니다."
연주의 표정은 또다시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그분 저도 뵈었는데... 아주 썩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언니를 죽일 만큼 나쁜 사이도 아니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시현의 표정은 마치 모든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태연할 뿐이었다.
"교회에 대해서 좀 묻죠. 목사...라고 하는 게 맞을 까요? 수상한 점 같은 것 없던가요?"
그 말에 연주는 잠시 망설였다.
평소라면 아니라고 바로 대답했겠지만, 아까 수연의 안부를 물었을 때의 눈빛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연주가 뭔가 말하려 하자, 시현과 다은이 귀를 쫑긋이 세웠다.
"잘 모르겠지만... 오늘 제가 수연 언니 안부를..."
말을 하던 연주가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은 마치 그대로 멈춰버린 듯 굳어져 있었다.
시현의 어깨너머로 커피숍 아저씨의 두 눈과 마주쳤는데, 그 두 눈은 흡사 아까 보았던 목사의 눈빛과 똑같이 섬뜩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연주는 할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그녀 곁에 앉아 있던 다은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스쳐 지나가듯 번득거렸던 커피숍 아저씨의 눈빛을, 다은이 본 것이었다.
"왜요?"
시현은 연주가 말을 하다 말고 멈춰서는 커피를 들이켜자, 의아한 듯 물었고 다은은 시현 어깨너머의 커피숍 아저씨와 연주를 번갈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은이 생각을 마치고 의아해하는 시현을 향해 눈으로 신호를 주자, 시현은 잠시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연주의 손을 볼 수 있었다.
비로소 다은이 눈짓으로 자기 등 뒤에 있는 카운터의 남자를 가리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시현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품 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태연히 커피잔을 비운 뒤,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금세 담배 연기를 모락모락 피어났고, 잠시 후 이를 본 카운터에 남자는 시현 쪽으로 다가왔다.
"손님, 죄송하지만 여긴 금연구역입니다."
그 남자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건네 왔는데, 자리에 앉아 다가온 남자를 올려다본 시현은, 그 남자를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물었다.
"그런가요?"
"네. 어서 담배를 꺼주시죠."
그 남자는 담배연기에, 말을 마치자마자 콜록거리면서 기침을 했다.
다은은 그 남자를 예리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는데, 돌연 그 남자의 귀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쏙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됐어요."
다은이 말하자, 시현이 남자를 보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네요."
시현은 휴지를 놓고 담배를 지져서 꺼버렸다.
남자는 그런 시현을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고, 다은은 그런 그를 눈여겨 나지막한 소리로 연주와 시현에게 말했다.
"방금 전에 떠났어요."
그러자 연주가 놀라 물었다.
"뭐가요?"
"저분한테서 뭔가 다른 걸 보셨죠?"
다은의 말에 연주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돋았다.
"제가... 뭘요?"
"그게 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그걸 보는 순간 무서우셨을 거예요."
연주는 무서움에 몸서리쳤다.
"오늘 제가 본 게 다 뭐죠? 귀신인가요?"
"네, 아마도 그럴 거예요."
다은의 대답에 연주는 표정이 더욱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다은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냈다.
"이거... 가지고 계세요. 그리고 앞으로 그 교회에 나가지 마세요."
"이걸 가지고 있으면 괜찮은 건가요?"
"네. 앞으로 석 달. 석 달 동안은 몸에 반드시 지니고 계셔야 해요. 교회에는 나가지 마시구요."
연주는 꼭 그렇게 하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에는 시현이 나서 물었다.
"그 교회는, 정확하게 정체가 뭐예요? 진짜 교회는 아닌 거 같은데..."
"그게.... 안에 교주님이 따로 계세요."
"교주? 그 사람을 교주라고 불러요?"
"네... 그게... 주변에 아픈 분들이 다 그분 통해 기도해서 나았다고... 저도 아는 분이 다리가 불편해서 항상 절뚝거리셨는데, 어느 날 멀쩡히 잘 걸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치료했냐고 물으니까, 거기 가서 기도했다고..."
다은이 그 말을 듣자 궁금한 듯 물었다.
"아주머니는... 어디 불편하셔서 거기 가신 거예요?"
연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제가 아니라... 저희 남편이요. 남편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을 다쳤는데... 치료를 다했는데도 손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거든요. 그 때문에 지금 공장에서 쫓겨날까 눈치 보고 있어서요."
연주가 말끝을 흐리자, 다은이 시현을 바라보았고, 시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연주에게 말했다.
"거기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건... 기존에 다니던 신자의 추천이 있어야 해요."
"그럼, 연주 씨가 저희를 추천해 주시겠어요?"
추천해 달란 말에 연주가 놀란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네? 제가요?"
"네. 저희를 추천해 주고, 연주 씨는 더 나오지 마세요. 그다음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잠시 고민하는 연주를 보며, 다은이 달래듯이 이야기했다.
"걱정 마세요. 저희가 탈 없게 지켜드릴게요. 귀신도 저희가 다 쫓아드리고요. 이대로 놔두면, 귀신이 호시탐탐 노릴 수도 있어요."
귀신이 노린다는 말에 연주는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네, 그럴게요. 제가 추천해 드릴게요."
시현과 다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의 의지를 확인했다.
"내일모레가 예배죠?"
"네."
"오늘은 저희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연주를 데리고 나와 그녀의 집까지 함께 걸어갔다.
집은 인근에 있는 단독주택이었고, 2층 구조로 되어 위층에 전세로 살고 있었기에, 2층으로 현관문 위에 다은이 준 부적을 시현이 붙여놓았다.
부적 붙이는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연주에게, 다은은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다 마무리되면, 그땐 부적을 떼셔도 돼요. 저희가 탈없이 잘 마무리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연주가 다시 한번 인사를 하니,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어가 쉬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별일 없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연주는 연신 인사를 하며 집으로 들어갔고, 인사를 나눈 다은과 시현은 계단을 내려와 차가 있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어두워진 밤길이지만, 촘촘히 놓인 가로등 덕에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귀신을 보게 된 걸까? 뭔가 해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걸까?"
시현의 말에 걸어가던 다은이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마도요. 그리고 저 아주머니... 일반 사람치고는 영기가 꽤 좋아요. 약간... 신기(神氣)가 있달까..."
"그래?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일찍 보게 된 걸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고요. 어쨌든 위험해진 건 분명해요."
"괜찮을까? 근처에 사람을 둬야 하나?"
"아뇨. 저 부적이면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거예요. 그보다, 저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그런 짓을 하게 만드는 악령이 어떤 악령인지 알아야죠.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어요. 적을 알아야 대비를 하죠."
다은의 말을 들으며 시현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