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6
막 밖으로 나가려던 시현과 다은, 종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 1층 로비에 이르렀다.
차가 있는 쪽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던 그때, 누군가 종수를 불러 세웠다.
"야, 한종수!"
종수를 부르는 소리에 종수가 멈춰 서고, 앞서 가던 시현과 다은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반갑게 종수를 부르며 다가온 중년 남자를 향해, 종수는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양 과장님..."
"야, 너 뭐 특수과인가 뭔가로 갔다며?"
"아... 네..."
"뭐야, 그 특수과?"
"그게..."
종수는 난처한 표정으로 시현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아이고, 이노무 자식아... 빠릿빠릿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정보과에 추천 넣어줬더만, 엄한 데 가서 삽질을 하고 있냐? 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너 뭐 듣자하니까 실적도 제대로 안나오고 있다며?"
그의 핀잔에 종수가 변명하듯 대답했다.
"그게... 주로 미제사건 관련된 것들을 처리하다 보니..."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종수의 뺨을 장난처럼 툭툭 쳤다.
"아이고 이놈아, 정신 차려 정신, 그런데 가서 뭐 건져먹을 게 있다고 삽질을 하고 있냐? 이놈아, 한참 실적 세워서 기반 탄탄하게 다질 생각 해야지 이놈아, 아이고 이 한심한 놈..."
그런 그를 보며 다은이 화가 난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는 것을 시현이 붙잡아 만류하고는, 그녀를 붙잡고 밖으로 나왔다.
"왜 저런 소리를 듣고 있어요?"
다은이 밖에 나와 성질을 내며 하는 말에, 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이지, 뭐. 행정상으로는 처리되는 사건이 없어. 여기는... 그러니까 실적 개판인 거고."
다은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어이없어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종수가 따라 나오더니, 뭔가 미안한 듯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됐어. 신경 쓰지 마."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그 뒤를 따르는 다은과 종수는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꽤 불편한 표정을 한 체 뒤따랐다.
시현이 운전석에 오르고, 종수가 옆자리에 올라탔다.
다은이 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차는 곧바로 출발했고, 그들을 태운 차량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시외곽에 있는 허름한 폐건물이었다.
차를 대충 건물 옆에 세워놓고 내리니, 다은이 신기한 표정으로 건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예요, 이건? 폐가인 듯 폐가가 아닌 것 같네요."
그녀의 물음에 시현이 피식 웃음 지었다.
"일종에 위장이라고 해두지."
시현이 성큼성큼 건물로 다가가 큼지막한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다은이 뒤따라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종수가 들어가며 문을 걸어 잠갔다.
계단을 따라 지하층으로 내려가자, 허름한 건물 외관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리된 실내가 눈에 들어왔고, 군데군데 제법 영험한 부적이 붙어있는 것을, 다은은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네요?"
다은이 신기한 듯 건네는 말에, 종수가 어깨를 으슥하며 말했다.
"행정 실적은 안 나와도, 알만한 윗분들은 우리가 무슨 일 하는지 다 알고 계세요."
다은이 빙그레 웃어 보이고, 시현은 한쪽에 자리 잡은 네모탄 석좌 위로, 붉은색으로 그려진 둥근 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혹시 필요한 거 있나?"
"소혼으로 불러낼 대상자의 신체 일부가 필요해요. 머리카락이나 손톱..."
말을 하는 와중에, 종수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투명한 봉투에 조심스럽게 담긴 머리카락 등, 사망자들의 몸에서 발췌한 것들이었다.
"오~ 그리고, 그들에 관련된 정보도 필요해요."
다은의 말에 종수는 아까부터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출생년월일부터 가족관계까지 싹 다 있어요."
다은은 종수의 싹싹한 태도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대야가 하나 필요해요, 물은 밑에 살짝 고이는 정도로 물을 받아야 하구요."
다은의 말에 종수가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하며 대답했다.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다은이 종수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기 무섭게, 종수는 후다닥 달려갔다.
그사이 다은은 석좌 위 붉은 원 한가운데 가 서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시현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꽤 많은 일들을 하셨나 봐요?"
"뭐... 그럭저럭"
"작은 의자 하나 있을까요?"
시현은 다은의 말에 한쪽에 놓인 책상 아래서, 캠핑장에서 쓰는 작은 접이식 의자를 꺼내왔다.
시현이 다은에게 내밀자, 다은은 그 의자를 받아 펼쳐서 원 한가운데 놓고는 거기에 자신이 앉았다.
종수가 물을 받은 대야를 들고 달려오자, 다은이 자기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놔주세요."
종수가 다은 앞에 물 받은 대야를 놓고, 다은은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시현을 보며 물었다.
"지금 해요?"
"준비됐으면."
다은은 종수가 준 서류파일을 열어 신원을 확인하고는 서류철을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허벅지 위에 놓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은은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시현과 종수가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녀 주위로 불그스름한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는데, 그와 동시에 앞에 놓인 대야에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종수는 물론, 이런 광경 자체는 시현도 처음 보는 지라, 두 사람 다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결은 이내 솟구쳐 올라 수증기 같은 형태로 춤을 추듯 일렁거리다가, 이내 사람의 형상과 비슷한 모양을 갖추었다.
그때쯤 다은이 눈을 뜨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에 온 네가 누구인지 밝혀라."
그녀의 물음에, 흡사 산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 조..덕...수....
느릿한 데다가 목소리 자체가 약간 퍼지듯 들리긴 했지만, 분명히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당신이 죽을 때, 무슨 일이 있었지? 아내는... 당신이 죽인 건가?"
다은의 물음에, 그것은 마치 괴로운 듯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 으어어어어....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며 그것이 휘청 거리자, 다은이 다시 재촉하듯 물었다.
"누군가에게 강요당한 것인가?"
- 내 안에... 내 안에... 들어왔어...
옆에서 보고 있던 시현이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빙의겠지."
- 난.... 난... 찔렀어.... 내가... 아닌... 내가... 찔렀어...
그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듯 일렁거리며 손 같은 형상이 머리 부분을 휘감았다.
"그것에 대해 말해줘. 그것이 네 몸을 지배할 때, 몸이 뜨거웠나? 차가웠나? 답답하듯 눌리는 느낌이었나, 아니면 자기 몸에서 쫓겨나는 느낌이었나?"
다은이 식은땀을 흘리며 조금 서둘러서 묻고 있었다.
그 형상은 잠시 일렁이다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 추...추워... 추웠어... 나는... 눌렸다.... 발끝으로 밀려났어....
대답을 듣고 있는 다은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해갔고, 이를 악물고 버티기 시작했다.
"그것이 하는 소리를 들었나?"
이번에는 그 형상이 쭈그러들 듯 작아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웃음... 웃음소리....
"그게 누구야? 그것의 이름을 말하던가?"
- 그...그건...
형상이 점점 더 쪼그라들더니 점차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누구야?"
다은이 버럭 소리 지르는 그 순간, 다은의 코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진.....
그걸 끝으로 형상은 완전히 내려앉으며 다시 대야 안의 물이 되어버렸다.
다은은 못내 아쉬운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시현은 얼른 손수건을 들고 달려와 다은의 코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아 주었다.
다은은 지친 듯 힘겨운 숨을 내쉬며 그런 시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진.... 그것의 이름이 진이라고 했어요..."
옆에서 보고 있던 종수가 물었다.
"이름을 말하다 만 걸까요, 아니면 이름이 외자인 걸까요?"
종수의 물음에 다은은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녀 역시 알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악령인지는... 알아낸 거야?"
시현의 물음에 다은이 다시 시현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차가운 느낌과 누르는 느낌, 이 두 가지 느낌을 전달하는 종류의 악령에 대해 알아보면 저쪽에서 사용하고 있는 술법(術法)을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시현이 궁금한 듯 다은에게 물었다.
"그런데... 보통 그런 악령들은 자기 이름을 밝히나?"
다은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보통 힘이 강한 악령들은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강한 존재로써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죠."
"그때... 멀리서 그놈을 봤을 때... 수많은 영가들이 그놈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했지? 그놈들이 전부 이런 놈들인가?"
다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달라요. 악귀들이 달라붙어 주위를 맴돌고 있다지만, 그놈들은 그리 센 놈들이 아니에요. 빙의를 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본체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면, 보통 악귀가 아니에요. 특별한 술수에 의해 힘을 더했거나, 적어도 수백 년간 원한이 쌓인 원귀(怨鬼)여야 해요."
"다행이네. 이런 놈이 그렇게나 많다면, 이 세상은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러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도대체 왜... 죽이는 거야?"
***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서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고, 방금 들어선 남자를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 방금 들어선 남자보다 나이가 더 있어 보였지만, 마치 모두가 아랫사람인 것처럼 그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들어선 남자는 태연했다.
큼지막한 체격에 부리부리한 두 눈, 잡아먹을 듯한 기세는 어느 누구라도 주눅이 들만 했다.
험악한 인상으로 들어선 그는, 꽤 잔인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아이고, 다들 와 계셨네?"
그를 따라 몇몇 사내가 들어섰는데, 하나같이 인상이 험악했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전체 좌석을 에워싸듯 둘러섰고, 그런 이들을 보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더욱 두려운 표정이 되었다.
"자자, 앉읍시다."
먼저 들어섰던 남자가 여유를 부리며 먼저 상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자리에 앉았다.
이제 먼저 들어선 남자를 따라 들어온 사내들만 벽 쪽에 도열하듯 서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을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투자사 분들께서 관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준 덕에, 사업이 착착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추가 투자건에서도 여러분들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의 말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어 그 남자에게 말했다.
"저... 박대표. 박대표가 사업을 열정적으로 하는 것은 알겠지만, 아무런 실적 발표 없이 추가 투자를 진행하는 건 무리가 있네. 우리도 회사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심사하는 것뿐이라..."
그러나 그가 체 말을 다하기도 전에, 벽 쪽에 서 있던 사내 한 명이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아, 쒸벌넘이 대표님 말씀하시는데 시비를 걸어?"
그는 위협적으로 다가서며 욕설을 내뱉은 사내를 보며 기겁하며 대답했다.
"시, 시비가 아니라... 절차를 얘기하는 걸세, 절차..."
"절차는 시벌넘아, 니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가 발언한 남자의 머리채를 움켜잡자, 그 남자의 입에서 절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악"
그러자, 박대표라고 불린 제일 먼저 들어섰던 남자가 손을 들어 만류했다.
"자자, 살살해라."
"예, 대표님."
머리채를 잡았던 사내는 박대표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뒤로 물러났고, 괜히 말 꺼냈다가 머리채를 뜯긴 남자는 울상이 되어 있었다.
박대표는 좌중을 돌아보며 웃음기 있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저, 뭐 거 씨벌, 절차고 뭐고 난 그런 거 모르겠고. 투자 진행이 안될 경우, 댁들 모가지를 내놓는 게 좋을 거야. 당신들 이전에 여기서 절차 운운했던 인간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알지? 경찰이 조사한다고 해서 뭐가 나올 거 같아?"
이내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말을 이었다.
"이달 말이야. 목숨 걸고 투자 진행시켜, 안되면 그 새끼는 지 마누라 죽인 범죄자가 돼서 무덤에 묻힐 테니까."
박대표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고, 에워쌌던 사내들은 위협적인 시선으로 노려보며 박대표를 뒤따라 나갔다.
남겨진 이들은 표정이 잿빛으로 변한 체, 어찌해야 할지 시름에 잠겼다.
차가 있는 쪽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던 그때, 누군가 종수를 불러 세웠다.
"야, 한종수!"
종수를 부르는 소리에 종수가 멈춰 서고, 앞서 가던 시현과 다은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반갑게 종수를 부르며 다가온 중년 남자를 향해, 종수는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양 과장님..."
"야, 너 뭐 특수과인가 뭔가로 갔다며?"
"아... 네..."
"뭐야, 그 특수과?"
"그게..."
종수는 난처한 표정으로 시현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아이고, 이노무 자식아... 빠릿빠릿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정보과에 추천 넣어줬더만, 엄한 데 가서 삽질을 하고 있냐? 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너 뭐 듣자하니까 실적도 제대로 안나오고 있다며?"
그의 핀잔에 종수가 변명하듯 대답했다.
"그게... 주로 미제사건 관련된 것들을 처리하다 보니..."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종수의 뺨을 장난처럼 툭툭 쳤다.
"아이고 이놈아, 정신 차려 정신, 그런데 가서 뭐 건져먹을 게 있다고 삽질을 하고 있냐? 이놈아, 한참 실적 세워서 기반 탄탄하게 다질 생각 해야지 이놈아, 아이고 이 한심한 놈..."
그런 그를 보며 다은이 화가 난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는 것을 시현이 붙잡아 만류하고는, 그녀를 붙잡고 밖으로 나왔다.
"왜 저런 소리를 듣고 있어요?"
다은이 밖에 나와 성질을 내며 하는 말에, 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이지, 뭐. 행정상으로는 처리되는 사건이 없어. 여기는... 그러니까 실적 개판인 거고."
다은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어이없어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종수가 따라 나오더니, 뭔가 미안한 듯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됐어. 신경 쓰지 마."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그 뒤를 따르는 다은과 종수는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꽤 불편한 표정을 한 체 뒤따랐다.
시현이 운전석에 오르고, 종수가 옆자리에 올라탔다.
다은이 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차는 곧바로 출발했고, 그들을 태운 차량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시외곽에 있는 허름한 폐건물이었다.
차를 대충 건물 옆에 세워놓고 내리니, 다은이 신기한 표정으로 건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예요, 이건? 폐가인 듯 폐가가 아닌 것 같네요."
그녀의 물음에 시현이 피식 웃음 지었다.
"일종에 위장이라고 해두지."
시현이 성큼성큼 건물로 다가가 큼지막한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다은이 뒤따라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종수가 들어가며 문을 걸어 잠갔다.
계단을 따라 지하층으로 내려가자, 허름한 건물 외관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리된 실내가 눈에 들어왔고, 군데군데 제법 영험한 부적이 붙어있는 것을, 다은은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네요?"
다은이 신기한 듯 건네는 말에, 종수가 어깨를 으슥하며 말했다.
"행정 실적은 안 나와도, 알만한 윗분들은 우리가 무슨 일 하는지 다 알고 계세요."
다은이 빙그레 웃어 보이고, 시현은 한쪽에 자리 잡은 네모탄 석좌 위로, 붉은색으로 그려진 둥근 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혹시 필요한 거 있나?"
"소혼으로 불러낼 대상자의 신체 일부가 필요해요. 머리카락이나 손톱..."
말을 하는 와중에, 종수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투명한 봉투에 조심스럽게 담긴 머리카락 등, 사망자들의 몸에서 발췌한 것들이었다.
"오~ 그리고, 그들에 관련된 정보도 필요해요."
다은의 말에 종수는 아까부터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출생년월일부터 가족관계까지 싹 다 있어요."
다은은 종수의 싹싹한 태도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대야가 하나 필요해요, 물은 밑에 살짝 고이는 정도로 물을 받아야 하구요."
다은의 말에 종수가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하며 대답했다.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다은이 종수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기 무섭게, 종수는 후다닥 달려갔다.
그사이 다은은 석좌 위 붉은 원 한가운데 가 서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시현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꽤 많은 일들을 하셨나 봐요?"
"뭐... 그럭저럭"
"작은 의자 하나 있을까요?"
시현은 다은의 말에 한쪽에 놓인 책상 아래서, 캠핑장에서 쓰는 작은 접이식 의자를 꺼내왔다.
시현이 다은에게 내밀자, 다은은 그 의자를 받아 펼쳐서 원 한가운데 놓고는 거기에 자신이 앉았다.
종수가 물을 받은 대야를 들고 달려오자, 다은이 자기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놔주세요."
종수가 다은 앞에 물 받은 대야를 놓고, 다은은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시현을 보며 물었다.
"지금 해요?"
"준비됐으면."
다은은 종수가 준 서류파일을 열어 신원을 확인하고는 서류철을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허벅지 위에 놓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은은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시현과 종수가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녀 주위로 불그스름한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는데, 그와 동시에 앞에 놓인 대야에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종수는 물론, 이런 광경 자체는 시현도 처음 보는 지라, 두 사람 다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결은 이내 솟구쳐 올라 수증기 같은 형태로 춤을 추듯 일렁거리다가, 이내 사람의 형상과 비슷한 모양을 갖추었다.
그때쯤 다은이 눈을 뜨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에 온 네가 누구인지 밝혀라."
그녀의 물음에, 흡사 산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 조..덕...수....
느릿한 데다가 목소리 자체가 약간 퍼지듯 들리긴 했지만, 분명히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당신이 죽을 때, 무슨 일이 있었지? 아내는... 당신이 죽인 건가?"
다은의 물음에, 그것은 마치 괴로운 듯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 으어어어어....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며 그것이 휘청 거리자, 다은이 다시 재촉하듯 물었다.
"누군가에게 강요당한 것인가?"
- 내 안에... 내 안에... 들어왔어...
옆에서 보고 있던 시현이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빙의겠지."
- 난.... 난... 찔렀어.... 내가... 아닌... 내가... 찔렀어...
그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듯 일렁거리며 손 같은 형상이 머리 부분을 휘감았다.
"그것에 대해 말해줘. 그것이 네 몸을 지배할 때, 몸이 뜨거웠나? 차가웠나? 답답하듯 눌리는 느낌이었나, 아니면 자기 몸에서 쫓겨나는 느낌이었나?"
다은이 식은땀을 흘리며 조금 서둘러서 묻고 있었다.
그 형상은 잠시 일렁이다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 추...추워... 추웠어... 나는... 눌렸다.... 발끝으로 밀려났어....
대답을 듣고 있는 다은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해갔고, 이를 악물고 버티기 시작했다.
"그것이 하는 소리를 들었나?"
이번에는 그 형상이 쭈그러들 듯 작아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웃음... 웃음소리....
"그게 누구야? 그것의 이름을 말하던가?"
- 그...그건...
형상이 점점 더 쪼그라들더니 점차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누구야?"
다은이 버럭 소리 지르는 그 순간, 다은의 코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진.....
그걸 끝으로 형상은 완전히 내려앉으며 다시 대야 안의 물이 되어버렸다.
다은은 못내 아쉬운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시현은 얼른 손수건을 들고 달려와 다은의 코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아 주었다.
다은은 지친 듯 힘겨운 숨을 내쉬며 그런 시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진.... 그것의 이름이 진이라고 했어요..."
옆에서 보고 있던 종수가 물었다.
"이름을 말하다 만 걸까요, 아니면 이름이 외자인 걸까요?"
종수의 물음에 다은은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녀 역시 알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악령인지는... 알아낸 거야?"
시현의 물음에 다은이 다시 시현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차가운 느낌과 누르는 느낌, 이 두 가지 느낌을 전달하는 종류의 악령에 대해 알아보면 저쪽에서 사용하고 있는 술법(術法)을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시현이 궁금한 듯 다은에게 물었다.
"그런데... 보통 그런 악령들은 자기 이름을 밝히나?"
다은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보통 힘이 강한 악령들은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강한 존재로써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죠."
"그때... 멀리서 그놈을 봤을 때... 수많은 영가들이 그놈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했지? 그놈들이 전부 이런 놈들인가?"
다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달라요. 악귀들이 달라붙어 주위를 맴돌고 있다지만, 그놈들은 그리 센 놈들이 아니에요. 빙의를 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본체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면, 보통 악귀가 아니에요. 특별한 술수에 의해 힘을 더했거나, 적어도 수백 년간 원한이 쌓인 원귀(怨鬼)여야 해요."
"다행이네. 이런 놈이 그렇게나 많다면, 이 세상은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러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도대체 왜... 죽이는 거야?"
***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서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고, 방금 들어선 남자를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 방금 들어선 남자보다 나이가 더 있어 보였지만, 마치 모두가 아랫사람인 것처럼 그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들어선 남자는 태연했다.
큼지막한 체격에 부리부리한 두 눈, 잡아먹을 듯한 기세는 어느 누구라도 주눅이 들만 했다.
험악한 인상으로 들어선 그는, 꽤 잔인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아이고, 다들 와 계셨네?"
그를 따라 몇몇 사내가 들어섰는데, 하나같이 인상이 험악했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전체 좌석을 에워싸듯 둘러섰고, 그런 이들을 보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더욱 두려운 표정이 되었다.
"자자, 앉읍시다."
먼저 들어섰던 남자가 여유를 부리며 먼저 상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자리에 앉았다.
이제 먼저 들어선 남자를 따라 들어온 사내들만 벽 쪽에 도열하듯 서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을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투자사 분들께서 관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준 덕에, 사업이 착착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추가 투자건에서도 여러분들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의 말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어 그 남자에게 말했다.
"저... 박대표. 박대표가 사업을 열정적으로 하는 것은 알겠지만, 아무런 실적 발표 없이 추가 투자를 진행하는 건 무리가 있네. 우리도 회사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심사하는 것뿐이라..."
그러나 그가 체 말을 다하기도 전에, 벽 쪽에 서 있던 사내 한 명이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아, 쒸벌넘이 대표님 말씀하시는데 시비를 걸어?"
그는 위협적으로 다가서며 욕설을 내뱉은 사내를 보며 기겁하며 대답했다.
"시, 시비가 아니라... 절차를 얘기하는 걸세, 절차..."
"절차는 시벌넘아, 니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가 발언한 남자의 머리채를 움켜잡자, 그 남자의 입에서 절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악"
그러자, 박대표라고 불린 제일 먼저 들어섰던 남자가 손을 들어 만류했다.
"자자, 살살해라."
"예, 대표님."
머리채를 잡았던 사내는 박대표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뒤로 물러났고, 괜히 말 꺼냈다가 머리채를 뜯긴 남자는 울상이 되어 있었다.
박대표는 좌중을 돌아보며 웃음기 있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저, 뭐 거 씨벌, 절차고 뭐고 난 그런 거 모르겠고. 투자 진행이 안될 경우, 댁들 모가지를 내놓는 게 좋을 거야. 당신들 이전에 여기서 절차 운운했던 인간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알지? 경찰이 조사한다고 해서 뭐가 나올 거 같아?"
이내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말을 이었다.
"이달 말이야. 목숨 걸고 투자 진행시켜, 안되면 그 새끼는 지 마누라 죽인 범죄자가 돼서 무덤에 묻힐 테니까."
박대표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고, 에워쌌던 사내들은 위협적인 시선으로 노려보며 박대표를 뒤따라 나갔다.
남겨진 이들은 표정이 잿빛으로 변한 체, 어찌해야 할지 시름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