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4
잠에서 깬 시현은 상체를 일으켜 앉은 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놓고 앉았다.
침대 옆, 탁자에 놓여있는 담뱃갑을 본능적으로 찾아들고는 입에 담배부터 하나 물었다.
담배 한 모금을 후우 하고 길게 내뿜는데, 그 너머에는 방문이 보이고, 방문 옆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시현은 놀라거나 하지 않은 체 마치 못 본 사람처럼 태연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방문 옆에 선 이는 하얀 한복 같은 옷을 입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축 늘어뜨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양손을 늘어뜨린 체 소리 없이 서 있는 것이, 누가 봐도 귀신의 모습이었다.
시현은 그렇게 귀신을 보면서도 놀라지도 않을 만큼, 귀신 보는 것이 익숙한 일상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방 안을 채우자, 그 귀신은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 시현이 터벅터벅 걸어가 방문을 열었다.
"헉!"
귀신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던 시현이, 방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방문 앞에는 다은이 화장을 안 한 생얼인 체로 서 있었다.
"뭐야? 뭐 못 볼 거 봤어요?"
다은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묻자 시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냐... 여태 혼자 살아서, 갑자기 사람이 있으니까.... 근데, 왜 거기 서 있어?"
시현이 따지듯이 되묻자, 다은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팔자길래, 오만 잡귀들이 다 꼬이는 거죠?"
시현은 되묻는 다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날 때부터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퉁명스러운 시현의 대답에 다은이 혀끝을 찼다.
"묘한 팔자네요. 죽었어도 벌써 죽었어야 할 팔잔데... 어떻게 여태 살아있는 거죠?"
다은의 물음에, 시현은 예의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기연이 좀 있었어. 그 덕분에 귀신을 보는 영안(靈眼)이 틔였지."
"그걸 본인만 알면 좋은데, 귀신들도 알아. 그러니까 하소연하러 찾아오는 거지."
다은의 핀잔에 시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응시했다.
"말이 짧다?"
시현의 말에 다은이 헛기침을 했다.
"무당 일을 하다 보니... 습관이 돼서요..."
다은이 멋쩍게 대답하자, 시현은 무시하듯 그녀의 곁을 스쳐 방 밖으로 나왔다.
"아침 먹어야지."
태연히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가는 시현을 보며, 다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토 나올 것 같아. 밥이 넘어가? 잡귀들 때문에 시체 냄새가 난 단 말이야."
"말이 짧다~!!"
식사 준비를 하며 시현이 조금 큰 소리로 말하니, 다은은 입술을 씰룩 거리며 궁시렁 거렸다.
시현은 익숙한 듯 빠른 속도로 상을 차렸고, 다은은 그런 모습을 조금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앉아."
시현의 말에 다은이 맞은편에 앉고, 그녀 앞에 따뜻한 흰밥 한 그릇이 놓였다.
가운데는 뚝딱 만든 된장찌개가 모락모락 김을 피어올리고 있었고, 냉장고에서 나온 반찬들도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솜씨가 좋으시네요?"
다은의 물음에, 시현이 자기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일찌감치 혼자 살아서, 혼자 밥 차리고 반찬 해서 먹은 지가 30년이다."
다은이 걱정스레 물었다.
"왜 결혼 안 하셨어요?"
"결혼? 귀신 보며 사는 게 일상인 내가? 온갖 잡귀들이 주위에 득실거리는 내가? 철저히 혼자 살아야 했어.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다가는, 나 때문에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거든."
시현의 대답에 다은은 어쩐지 그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만 했고, 식사가 끝난 후 뒷정리는 다은이 나서서 했다.
정리가 끝난 후 함께 경찰서로 향하니 먼저 나와있던 종수가, 시현에게 인사를 하다 말고 뒤따라온 다은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아... 그 교회 관계자들 정보 다 찾아놨어요."
시현은 종수를 기특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보자."
종수는 시현과 다은을 브리핑실로 안내했고, 두 사람은 종수가 준비한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화면에 떠오른 사람은 교주라고 불리는 중년 남자였다.
"박도식. 44세.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신흥 교단의 교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상 종교는 구색일 뿐, 모종의 사업을 종교라는 허울로 가려서 진행 중인 것이 아닌가 예측하고 있습니다."
종수의 말에 시현이 되물었다.
"모종의 사업? 무슨 사업?"
"그렇게 보는 이유가 있는데...."
종수가 말을 하며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자, 꽤나 험상궂어 보이는 남자 사진이 스크린위에 떴다.
"박도철. 38세. 박도식의 동생이고, 8년 전에 서울 강남을 기반으로 한 조직 폭력배를 만들어서 3년 만에 전국구 조직으로 키워낸, 그쪽에서 알아주는 스타입니다. 그런 박도철이 의심받고 있는 사건중 하나는 마약 밀매인데, 신종 마약 개발을 박도식이 맡고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그럼... 지금 박도식이 종교라는 허울로 가려놓고 신종 마약을 개발 중이다?"
"추측입니다. 아직 그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시현이 종수를 보며 말했다.
"일단,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에 집중하자. 박도식이 운영하는 교회에 다니던 3,40대 여성 3명이 살해를 당했어. 그것도 가까운 지인에게. 6개월 간격으로. 1년 6개월 전, 최초의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해."
그러자 옆에 있단 다은이 나서 말했다.
"과연 그 사람이 최초의 피해자일까요?"
다은의 말에, 종수가 그녀를 가리키며 "빙고~"라고 기뻐했다.
시현이 다시 종수를 바라보자, 종수가 새로운 화면을 스크린에 띄웠는데, 한 여성의 사진이었다.
"2년 전, 부산에서 자기 남편에게 살해당한 여성입니다. 남편은 현장에서 자살했고요. 그런데 재밌는 게, 자살한 남편, 이 사람이 박도식이 교회를 차릴 수 있도록 자금을 댄 투자자란 점입니다. 투자자가 투자를 하고 두 달 만에 자기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을 했어요. 박도식은 그 덕에 투자를 받고 투자금을 되돌려줄 필요가 없게 돼버렸죠. 그리고 두 달 뒤, 서울로 올라오게 됩니다. 죽은 투자자의 돈으로 서울에 교회를 세운 거죠."
"왜 그렇게 사람들을 살해하고 있는 거지?"
"아직까지는 그가 살해에 관여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당연히 없지. 귀신이 저지른 일이니 증거가 있을 리 만무하잖아? 근데 왜?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일단 저도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고 있긴 합니다."
종수가 말을 하며 피해자 파일을 내밀자, 시현이 파일을 받아 살폈다.
옆에서 곁눈질로 같이 보던 다은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어쩌면 뭔가 더 큰일을 위한 준비일 수 있어요."
그런데 피해자 파일을 살펴보던 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면... 초점이 틀렸던지..."
시현의 말에 종수와 다은이 동시에 시현을 바라보았다.
"왜요?"
종수가 한걸음에 다가와 묻는 말에, 시현이 피해자 파일을 내밀며 말했다.
"피해자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으려니 나오지 않았던 거지. 공통점은 남편들에게 있었어."
"남편들이요?"
시현이 가리킨 것은 마지막 피해자의 남편 사진과 그에 대한 정보가 나열된 페이지였다.
"네 사람 모두 형태는 달라도 투자자들이야. 자금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거나, 투자 기관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를 본 종수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옆에서 다은이 말했다.
"결국 돈이군요."
이어 종수가 가해자 목록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아... 네 맞네요. 다들 투자와 관련된 일을 했어요. 그런데... 단지 투자자란 이유만으로 살해 대상이 됐을까요?"
"그럴 리가 있어? 아까 말한 동생과 관련이 있겠지. 그들이 최근에 투자했던 곳이 어딘지 알아봐. 분명 겹치는 곳이 있을 거야."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은이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그럼 아내는요? 아내는 왜 죽인 거죠?"
"꾸민 거지. 첫 번째 살해 당시에는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 사람이 자기 아내를 죽임으로써,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됐으니 자신에 대한 수사가 덜했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투자를 했고, 그 사람이 죽음으로써 가장 큰 혜택을 본 건 박도식. 증거 불충분으로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기까지 몸 좀 사렸을 테고, 뭔가 좀 더 깔끔한 방법을 찾았을 거야. 그래서 투자자의 아내에게 접촉을 했고, 피해자의 남편인 대상을 가해자로 만드는 거지. 투자 대상도 좀 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법인을 세워서 투자받았을 수 있어. 그 과정에서 분명 동생 도움을 받았을 테고."
말을 마친 시현이 종수를 보며 말했다.
"투자 회사 목록에서 일치하는 회사를 찾아보고, 그 회사와 박도철의 관계를 찾아봐. 분명 나오는 게 있을 거야."
종수가 자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시현이 다은을 보며 말했다.
"당신 무당이지?"
다은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살해 수법을 알아내야지. 어떤 악귀를 부리는지, 어떤 술수를 부리는지 말이야. 시신 확인하러 가자."
밖으로 나가는 시헌을 다은이 뒤따라 가며 말했다.
"소혼술(召魂術)을 쓸까요?"
앞서가던 시현이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다은을 보며 물었다.
"그거... 죽은 사람 영혼을 불러내는 거 말이지?"
"네."
"그거 리스크가 제법 큰 걸로 아는데?"
시현의 물음에 다은이 잠시 망설였다.
"뭐... 수명이 조금 깎인다고 하긴 하던데...."
"됐어. 뭐 그런 방법까지 써? 그거 아니어도 알아낼 수 있어."
"말로만 그렇지, 소혼술 하셨던 저희 할머니도 60세 넘게 사셨어요."
다은이 다시 걸어가는 시현을 뒤따르며 핑계 대듯 말하자, 시현은 돌아보지도 않은 체 걸어가며 대답했다.
"요즘 100세 시대다."
"전 그때까지 살 생각 없거든요."
경찰서를 나선 두 사람은 곧바로 차로 향했고, 차에 올라타서 경찰서를 떠나가자, 경찰서 벽에 기대고 있던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켜 떠나가는 두 사람의 차를 응시했다.
이어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반대쪽에서 전화받는 소리가 나자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예, 형님. 지금 방금 출발했습니다."
그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에 주목하고 있었고, "네네"하는 대답을 몇 번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좁다란 골목으로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침대 옆, 탁자에 놓여있는 담뱃갑을 본능적으로 찾아들고는 입에 담배부터 하나 물었다.
담배 한 모금을 후우 하고 길게 내뿜는데, 그 너머에는 방문이 보이고, 방문 옆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시현은 놀라거나 하지 않은 체 마치 못 본 사람처럼 태연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방문 옆에 선 이는 하얀 한복 같은 옷을 입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축 늘어뜨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양손을 늘어뜨린 체 소리 없이 서 있는 것이, 누가 봐도 귀신의 모습이었다.
시현은 그렇게 귀신을 보면서도 놀라지도 않을 만큼, 귀신 보는 것이 익숙한 일상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방 안을 채우자, 그 귀신은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 시현이 터벅터벅 걸어가 방문을 열었다.
"헉!"
귀신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던 시현이, 방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방문 앞에는 다은이 화장을 안 한 생얼인 체로 서 있었다.
"뭐야? 뭐 못 볼 거 봤어요?"
다은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묻자 시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냐... 여태 혼자 살아서, 갑자기 사람이 있으니까.... 근데, 왜 거기 서 있어?"
시현이 따지듯이 되묻자, 다은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팔자길래, 오만 잡귀들이 다 꼬이는 거죠?"
시현은 되묻는 다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날 때부터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퉁명스러운 시현의 대답에 다은이 혀끝을 찼다.
"묘한 팔자네요. 죽었어도 벌써 죽었어야 할 팔잔데... 어떻게 여태 살아있는 거죠?"
다은의 물음에, 시현은 예의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기연이 좀 있었어. 그 덕분에 귀신을 보는 영안(靈眼)이 틔였지."
"그걸 본인만 알면 좋은데, 귀신들도 알아. 그러니까 하소연하러 찾아오는 거지."
다은의 핀잔에 시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응시했다.
"말이 짧다?"
시현의 말에 다은이 헛기침을 했다.
"무당 일을 하다 보니... 습관이 돼서요..."
다은이 멋쩍게 대답하자, 시현은 무시하듯 그녀의 곁을 스쳐 방 밖으로 나왔다.
"아침 먹어야지."
태연히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가는 시현을 보며, 다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토 나올 것 같아. 밥이 넘어가? 잡귀들 때문에 시체 냄새가 난 단 말이야."
"말이 짧다~!!"
식사 준비를 하며 시현이 조금 큰 소리로 말하니, 다은은 입술을 씰룩 거리며 궁시렁 거렸다.
시현은 익숙한 듯 빠른 속도로 상을 차렸고, 다은은 그런 모습을 조금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앉아."
시현의 말에 다은이 맞은편에 앉고, 그녀 앞에 따뜻한 흰밥 한 그릇이 놓였다.
가운데는 뚝딱 만든 된장찌개가 모락모락 김을 피어올리고 있었고, 냉장고에서 나온 반찬들도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솜씨가 좋으시네요?"
다은의 물음에, 시현이 자기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일찌감치 혼자 살아서, 혼자 밥 차리고 반찬 해서 먹은 지가 30년이다."
다은이 걱정스레 물었다.
"왜 결혼 안 하셨어요?"
"결혼? 귀신 보며 사는 게 일상인 내가? 온갖 잡귀들이 주위에 득실거리는 내가? 철저히 혼자 살아야 했어.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다가는, 나 때문에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거든."
시현의 대답에 다은은 어쩐지 그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만 했고, 식사가 끝난 후 뒷정리는 다은이 나서서 했다.
정리가 끝난 후 함께 경찰서로 향하니 먼저 나와있던 종수가, 시현에게 인사를 하다 말고 뒤따라온 다은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아... 그 교회 관계자들 정보 다 찾아놨어요."
시현은 종수를 기특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보자."
종수는 시현과 다은을 브리핑실로 안내했고, 두 사람은 종수가 준비한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화면에 떠오른 사람은 교주라고 불리는 중년 남자였다.
"박도식. 44세.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신흥 교단의 교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상 종교는 구색일 뿐, 모종의 사업을 종교라는 허울로 가려서 진행 중인 것이 아닌가 예측하고 있습니다."
종수의 말에 시현이 되물었다.
"모종의 사업? 무슨 사업?"
"그렇게 보는 이유가 있는데...."
종수가 말을 하며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자, 꽤나 험상궂어 보이는 남자 사진이 스크린위에 떴다.
"박도철. 38세. 박도식의 동생이고, 8년 전에 서울 강남을 기반으로 한 조직 폭력배를 만들어서 3년 만에 전국구 조직으로 키워낸, 그쪽에서 알아주는 스타입니다. 그런 박도철이 의심받고 있는 사건중 하나는 마약 밀매인데, 신종 마약 개발을 박도식이 맡고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그럼... 지금 박도식이 종교라는 허울로 가려놓고 신종 마약을 개발 중이다?"
"추측입니다. 아직 그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시현이 종수를 보며 말했다.
"일단,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에 집중하자. 박도식이 운영하는 교회에 다니던 3,40대 여성 3명이 살해를 당했어. 그것도 가까운 지인에게. 6개월 간격으로. 1년 6개월 전, 최초의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해."
그러자 옆에 있단 다은이 나서 말했다.
"과연 그 사람이 최초의 피해자일까요?"
다은의 말에, 종수가 그녀를 가리키며 "빙고~"라고 기뻐했다.
시현이 다시 종수를 바라보자, 종수가 새로운 화면을 스크린에 띄웠는데, 한 여성의 사진이었다.
"2년 전, 부산에서 자기 남편에게 살해당한 여성입니다. 남편은 현장에서 자살했고요. 그런데 재밌는 게, 자살한 남편, 이 사람이 박도식이 교회를 차릴 수 있도록 자금을 댄 투자자란 점입니다. 투자자가 투자를 하고 두 달 만에 자기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을 했어요. 박도식은 그 덕에 투자를 받고 투자금을 되돌려줄 필요가 없게 돼버렸죠. 그리고 두 달 뒤, 서울로 올라오게 됩니다. 죽은 투자자의 돈으로 서울에 교회를 세운 거죠."
"왜 그렇게 사람들을 살해하고 있는 거지?"
"아직까지는 그가 살해에 관여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당연히 없지. 귀신이 저지른 일이니 증거가 있을 리 만무하잖아? 근데 왜?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일단 저도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고 있긴 합니다."
종수가 말을 하며 피해자 파일을 내밀자, 시현이 파일을 받아 살폈다.
옆에서 곁눈질로 같이 보던 다은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어쩌면 뭔가 더 큰일을 위한 준비일 수 있어요."
그런데 피해자 파일을 살펴보던 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면... 초점이 틀렸던지..."
시현의 말에 종수와 다은이 동시에 시현을 바라보았다.
"왜요?"
종수가 한걸음에 다가와 묻는 말에, 시현이 피해자 파일을 내밀며 말했다.
"피해자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으려니 나오지 않았던 거지. 공통점은 남편들에게 있었어."
"남편들이요?"
시현이 가리킨 것은 마지막 피해자의 남편 사진과 그에 대한 정보가 나열된 페이지였다.
"네 사람 모두 형태는 달라도 투자자들이야. 자금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거나, 투자 기관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를 본 종수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옆에서 다은이 말했다.
"결국 돈이군요."
이어 종수가 가해자 목록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아... 네 맞네요. 다들 투자와 관련된 일을 했어요. 그런데... 단지 투자자란 이유만으로 살해 대상이 됐을까요?"
"그럴 리가 있어? 아까 말한 동생과 관련이 있겠지. 그들이 최근에 투자했던 곳이 어딘지 알아봐. 분명 겹치는 곳이 있을 거야."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은이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그럼 아내는요? 아내는 왜 죽인 거죠?"
"꾸민 거지. 첫 번째 살해 당시에는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 사람이 자기 아내를 죽임으로써,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됐으니 자신에 대한 수사가 덜했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투자를 했고, 그 사람이 죽음으로써 가장 큰 혜택을 본 건 박도식. 증거 불충분으로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기까지 몸 좀 사렸을 테고, 뭔가 좀 더 깔끔한 방법을 찾았을 거야. 그래서 투자자의 아내에게 접촉을 했고, 피해자의 남편인 대상을 가해자로 만드는 거지. 투자 대상도 좀 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법인을 세워서 투자받았을 수 있어. 그 과정에서 분명 동생 도움을 받았을 테고."
말을 마친 시현이 종수를 보며 말했다.
"투자 회사 목록에서 일치하는 회사를 찾아보고, 그 회사와 박도철의 관계를 찾아봐. 분명 나오는 게 있을 거야."
종수가 자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시현이 다은을 보며 말했다.
"당신 무당이지?"
다은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살해 수법을 알아내야지. 어떤 악귀를 부리는지, 어떤 술수를 부리는지 말이야. 시신 확인하러 가자."
밖으로 나가는 시헌을 다은이 뒤따라 가며 말했다.
"소혼술(召魂術)을 쓸까요?"
앞서가던 시현이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다은을 보며 물었다.
"그거... 죽은 사람 영혼을 불러내는 거 말이지?"
"네."
"그거 리스크가 제법 큰 걸로 아는데?"
시현의 물음에 다은이 잠시 망설였다.
"뭐... 수명이 조금 깎인다고 하긴 하던데...."
"됐어. 뭐 그런 방법까지 써? 그거 아니어도 알아낼 수 있어."
"말로만 그렇지, 소혼술 하셨던 저희 할머니도 60세 넘게 사셨어요."
다은이 다시 걸어가는 시현을 뒤따르며 핑계 대듯 말하자, 시현은 돌아보지도 않은 체 걸어가며 대답했다.
"요즘 100세 시대다."
"전 그때까지 살 생각 없거든요."
경찰서를 나선 두 사람은 곧바로 차로 향했고, 차에 올라타서 경찰서를 떠나가자, 경찰서 벽에 기대고 있던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켜 떠나가는 두 사람의 차를 응시했다.
이어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반대쪽에서 전화받는 소리가 나자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예, 형님. 지금 방금 출발했습니다."
그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에 주목하고 있었고, "네네"하는 대답을 몇 번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좁다란 골목으로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