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5
차를 운전하고 있는 시현과 그 옆자리에 앉은 다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한참 말없이 가다가 정적을 꺤 건 다은의 질문이었다.
그런 다은의 질문에, 시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디긴, 그 박도식인지 뭔지하는 놈 상판 보러 가지."
그러자 다은이 화들짝 놀랬다.
"에에? 벌써요? 아직 아는 게 없잖아요?"
"뭐... 꼭 알아야 보는 건가? 만나서 보면 알게 되는 것도 있지."
"그러다가 무슨 화를 당하려구요?"
"화는 무슨... 경찰로서 사건 물어보러 가는 것뿐이야."
그 대화가 끝나고 얼마 안 있어서 차는 자그마한 교회 앞에 멈춰 서고 있었다.
"진짜로 만날 거예요?"
다은이 다시금 묻는 말에, 시현은 피식한 웃음을 지었다.
"그냥 먼발치에서 살짝 보기만 하지. 머."
"그러다가 눈치채면.... 입교하기로 한 게 물거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멀리서 볼 거야. 담배나 피우면서..."
담배라는 말에 다은은 그의 품에 있을 담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담배 안에 부적... 꽤 영험한 거 같던데... 누가 만들어 주는 건가요?"
"있어. 나만 아는 어느 땡중."
땡중이란 말에 다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지 몰라도, 법력이 대단하신 분이세요. 땡중이라니... 도움 주시는 분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몰라. 나한테 모든 중은 땡중이야. 대충 이쯤이면 되겠다."
시현이 차를 멈춰 세우더니, 차에서 내려섰고, 다은도 얼른 안전벨트를 풀고 따라 내렸다.
내려서고 보니 꽤 높은 언덕길에 차가 세워져 있었고, 저 아래로 조금 거리가 있긴 하지만, 박도식의 교회가 보였다.
"어때? 이 정도면 괜찮지?"
확인하듯 물어오는 시현을 보며, 다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퉁명스레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멀어가지고는 봐도 뭘 알겠어요?"
그러자 시현이 품에서 쌍만원경을 꺼내 보여줬다.
"짠~"
장난치듯 보여주는 시현을 보면서, 다은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해봤는데... 멀리 서라도 이걸로 보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더라고."
"뭐... 그래요? 저도 그렇게는 해본 적이 없네요."
"이따가 나오면 내가 건네줄 테니까 한번 봐봐. 나보다는 다은 씨가 보는게 낫잖아?"
시현이 처음으로 다은의 이름을 부르니, 다은은 왠지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네, 뭐... 그러죠."
시현은 대답을 듣는둥 마는둥, 망원경을 가지고 길 끝에 가서 교회 앞쪽을 주시했다.
다은은 그런 시현 뒤에 서서 같이 바라보다가, 지루한 듯 핸드폰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있었을까, 서 있는 다리가 저려올 무렵, 시현의 입에서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나왔다."
그 말에 다은은 고개를 번쩍 들어서 눈치를 살피다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시현 곁에 가서 섰다.
"자, 봐봐... 얼른..."
시현이 망원경을 내밀자, 다은이 망원경을 받아 들고 교회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종수가 브리핑했던 인물, 박도식이 교회 앞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다은의 눈에 비치는 순간, 다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뭘까? 겉모습은 인자한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은 지금까지 보아온 수많은 귀신들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것은 태초에 사악함과도 같았다.
더군다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사악한 영가들이 박도식의 주위를 에워싼 체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
다은은 더 보지 못하고 망원경을 내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어느새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그런 다은을 지켜보던 시현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때?"
다은은 시현을 힐끔 보았다가 이내 시선을 떨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처음 봤어요. 마치..."
뭔가 생각하던 다은이 고개를 들어 시현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악마를 직접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어요."
"그래? 쉽지 않다는 뜻이네."
다은이 다시 시선을 떨구며 생각에 빠지듯 이야기했다.
"그런데... 저 사람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영가들을 봤어요. 하나같이 원한이 넘쳐나는 악귀들이었어요."
"악귀들이 주위를 맴돈다? 나 범인이요라고 대놓고 자랑하는 셈이군. 그런데... 보통 그런 악귀들을 한 번에 다 부리는 게 가능한가? 그래서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텐데?"
다은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저렇게 많은 악귀들을 한 번에 부린다는 건 말이 안돼요. 물론, 백귀(百鬼)를 부리는 술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과는 결이 많이 달라요. 원귀들의 원한이 전달될 텐데, 저 많은 원한을 견뎌낼 수 있을 리 없어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요..."
다은이 말끝을 흐리자, 시현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다은에게 손을 내밀었고, 다은은 그런 시현의 손에 들고 있던 망원경을 넘겼다.
시현은 다시 망원경 너머로 확인을 해보더니, 금세 다시 내리며 말했다.
"들어갔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시현이 차에 올라타자 다은도 따라서 차에 탔다.
차를 유턴시켜서 왔던 길로 돌아가는 길에, 시현이 다은을 보며 달래듯이 말했다.
"걱정 마, 그래 봐야 사람은 사람이야. 제 아무리..."
말을 하다 말고 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현이 놀라 해 하는 것도 잠시, 다은이 무슨 일인가 싶어 시현을 돌아보는 찰나, 갑자기 몸이 뒤로 젖혀졌다.
차가 급가속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바람에 놀란 다은이 비명을 질렀고, 고개를 돌려 시현을 보니 시현의 양손과 오른발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휘감고 있었다.
"이놈들이..."
시현은 자신의 양팔과 오른발로 파고드는 기운에 저항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꼼짝하지 못했고, 차는 가파른 길을 미친 듯이 내려가고 있었다.
시현은 그나마 자유로운 왼발로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오른발은 여전히 악셀을 밟고 있는대다가, 내려가던 힘이 있어서 속도가 쉬이 줄지 않았다.
다은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 품 안에서 부적을 꺼내 시현의 팔과 다리에 갔다 붙였다.
다은이 부적을 붙인 오른팔과 오른발에 검은 기운이 흩어지고 다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얼른 악셀에서 발을 떼었다.
'끼이이이이익'
마치 차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참을 미끄러져 내려간 차는, 다행히 커브길에 들어서기 직전에 멈춰 설 수 있었다.
부적의 기운이 뻗쳤는지, 왼팔에 맺혀 있던 검은 기운도 사라졌고, 온몸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 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후~"
죽다 살아난 듯, 겨우 한숨을 돌리고 나니, 다은도 그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를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인데?"
시현의 말에 다은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럼... 계획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만히 있던 시현이 고개를 바로하며 말했다.
"아니, 그대로."
"위험하지 않겠어요?"
다은의 되물음에 시현이 그 와중에도 피식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계획을 바꿀 거라 생각하겠지, 그런데 우리가 원래대로 한다면, 그놈들 예상을 벗어난 것일 테지. 그놈을 마주했을 때, 뭐 하나라도 더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 이번에 마주했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수 있어."
다은은 시현의 말을 들으면서도, 수긍하거나 대답하지 않은 체,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시현을 응시만 할 뿐이었다.
시현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런 시현을 보며 다은이 물었다.
"차 안에도 이런저런 부적이 있지만, 저 악귀들을 막지 못했어요. 그 담배 연기로도 막지 못할걸요."
그러자 시현이 피식 웃으며 담배를 들어 보여줬다.
"이건 그냥 담배야."
그러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 모습에 다은이 눈살을 찌푸리며 코와 입을 손으로 막고는 창문을 내렸다.
***
서로 돌아온 시현과 다은이 꽤나 지친 듯한 모습을 자리에 털썩 앉자, 종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뭐 나온 거 있어?"
시현이 묻는 말에, 종수는 리포트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뭐... 선배님 예상이 대충 맞는 거 같습니다."
시현은 종수가 내민 리포트를 받아 펼쳐 보더니, 이내 재밌다는 듯한 표정이 되어 자세를 바로 고쳤다.
그런 시현을 보며 종수가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두알붐이란 법인 회사가 있어요."
"두알붐?"
"네, 저도 무슨 뜻인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두알붐이란 회사의 대주주가 플라가스란 회산데, 여기가 박도철이 대표로 있는 회삽니다."
"그러니까, 두알붐이란 회사가 있고, 그 회사에 자금을 댄 게 박도철의 회사란 거지?"
"네. 그 두알붐의 주주가 박도식이구요, 사망한 투자자들이 두알붐이란 회사를 투자대상 회사로 지정했어요. 그리고 투자를 받은 지 얼마 안돼서, 그들이 죽은 거구요."
시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글쎄요."
시현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리포트에 나와있는 회사 정보를 보고 있었다.
왜? 투자까지 이미 받았고, 먼저 사례처럼 개인 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죽인다고 해서 박도식이 얻을 수 있는 혜택 같은 건 없었다.
투자 회사가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지분은 이미 그 회사로 일정 부분 넘어간 상태였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다은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그런 투자회사들은 뭘 보고 투자를 해요?"
다은의 질문에 시현과 종수가 동시에 다은을 바라봤고, 어리둥절해하는 다은을 보다가 이내 시현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렇지. 그걸 알아봐야겠네. 왜 투자를 했는가? 뭘 보고 투자했느냐 말이야."
"아, 그러려면 투자신청 당시에 제출했던 서류를 찾아봐야겠네요."
"그래, 그런데... 투자회사는 어쨌든 돈이 될 거라 생각했으니 투자를 했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들, 그 이유와 그 남편들을 죽인 이유가 연결될 거 같진 않은데..."
시현이 고심에 빠지는 듯한 표정이 되자, 다은이 다시 나서 말했다.
"소혼술 한번 하자니깐요."
"넌 왜 몸에 좋지도 않은 걸 자꾸 하려고 그래?"
"아 뭐 어때요? 전 오래 살 생각 없다니깐요."
"그러다가 20살에 요절하는 수가 있어!"
시현이 버럭 소리치자, 다은이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미 21살이거든요."
"어쨌든!"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종수는 그저 눈치만 볼뿐이었다.
"아, 몰라요. 형사님이 싫어해도 전 할 거예요."
시현은 그런 다은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누굴 불러내게?"
"남편이요. 가장 최근에 죽은 사람."
"그래서?"
"빙의당해 죽었을 때 어땠는지, 자길 죽인 게 누군지 알고는 있는지.... 왜 그랬을 거 같은지... 물어봐야죠."
시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 가지고는 득 될 게 없어. 어차피 지금 알고 있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아. 정히 소혼술을 하려거든, 그들에게 뭘 물어볼지 제대로 준비해서 물어보라고."
시현의 말에 다은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리자, 종수가 나서 물었다.
"그때... 저도 참관해도 되나요?"
종수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으니, 시현과 다은이 아무 말 없이 종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한참 말없이 가다가 정적을 꺤 건 다은의 질문이었다.
그런 다은의 질문에, 시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디긴, 그 박도식인지 뭔지하는 놈 상판 보러 가지."
그러자 다은이 화들짝 놀랬다.
"에에? 벌써요? 아직 아는 게 없잖아요?"
"뭐... 꼭 알아야 보는 건가? 만나서 보면 알게 되는 것도 있지."
"그러다가 무슨 화를 당하려구요?"
"화는 무슨... 경찰로서 사건 물어보러 가는 것뿐이야."
그 대화가 끝나고 얼마 안 있어서 차는 자그마한 교회 앞에 멈춰 서고 있었다.
"진짜로 만날 거예요?"
다은이 다시금 묻는 말에, 시현은 피식한 웃음을 지었다.
"그냥 먼발치에서 살짝 보기만 하지. 머."
"그러다가 눈치채면.... 입교하기로 한 게 물거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멀리서 볼 거야. 담배나 피우면서..."
담배라는 말에 다은은 그의 품에 있을 담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담배 안에 부적... 꽤 영험한 거 같던데... 누가 만들어 주는 건가요?"
"있어. 나만 아는 어느 땡중."
땡중이란 말에 다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지 몰라도, 법력이 대단하신 분이세요. 땡중이라니... 도움 주시는 분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몰라. 나한테 모든 중은 땡중이야. 대충 이쯤이면 되겠다."
시현이 차를 멈춰 세우더니, 차에서 내려섰고, 다은도 얼른 안전벨트를 풀고 따라 내렸다.
내려서고 보니 꽤 높은 언덕길에 차가 세워져 있었고, 저 아래로 조금 거리가 있긴 하지만, 박도식의 교회가 보였다.
"어때? 이 정도면 괜찮지?"
확인하듯 물어오는 시현을 보며, 다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퉁명스레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멀어가지고는 봐도 뭘 알겠어요?"
그러자 시현이 품에서 쌍만원경을 꺼내 보여줬다.
"짠~"
장난치듯 보여주는 시현을 보면서, 다은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해봤는데... 멀리 서라도 이걸로 보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더라고."
"뭐... 그래요? 저도 그렇게는 해본 적이 없네요."
"이따가 나오면 내가 건네줄 테니까 한번 봐봐. 나보다는 다은 씨가 보는게 낫잖아?"
시현이 처음으로 다은의 이름을 부르니, 다은은 왠지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네, 뭐... 그러죠."
시현은 대답을 듣는둥 마는둥, 망원경을 가지고 길 끝에 가서 교회 앞쪽을 주시했다.
다은은 그런 시현 뒤에 서서 같이 바라보다가, 지루한 듯 핸드폰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있었을까, 서 있는 다리가 저려올 무렵, 시현의 입에서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나왔다."
그 말에 다은은 고개를 번쩍 들어서 눈치를 살피다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시현 곁에 가서 섰다.
"자, 봐봐... 얼른..."
시현이 망원경을 내밀자, 다은이 망원경을 받아 들고 교회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종수가 브리핑했던 인물, 박도식이 교회 앞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다은의 눈에 비치는 순간, 다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뭘까? 겉모습은 인자한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은 지금까지 보아온 수많은 귀신들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것은 태초에 사악함과도 같았다.
더군다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사악한 영가들이 박도식의 주위를 에워싼 체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
다은은 더 보지 못하고 망원경을 내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어느새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그런 다은을 지켜보던 시현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때?"
다은은 시현을 힐끔 보았다가 이내 시선을 떨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처음 봤어요. 마치..."
뭔가 생각하던 다은이 고개를 들어 시현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악마를 직접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어요."
"그래? 쉽지 않다는 뜻이네."
다은이 다시 시선을 떨구며 생각에 빠지듯 이야기했다.
"그런데... 저 사람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영가들을 봤어요. 하나같이 원한이 넘쳐나는 악귀들이었어요."
"악귀들이 주위를 맴돈다? 나 범인이요라고 대놓고 자랑하는 셈이군. 그런데... 보통 그런 악귀들을 한 번에 다 부리는 게 가능한가? 그래서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텐데?"
다은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저렇게 많은 악귀들을 한 번에 부린다는 건 말이 안돼요. 물론, 백귀(百鬼)를 부리는 술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과는 결이 많이 달라요. 원귀들의 원한이 전달될 텐데, 저 많은 원한을 견뎌낼 수 있을 리 없어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요..."
다은이 말끝을 흐리자, 시현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다은에게 손을 내밀었고, 다은은 그런 시현의 손에 들고 있던 망원경을 넘겼다.
시현은 다시 망원경 너머로 확인을 해보더니, 금세 다시 내리며 말했다.
"들어갔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시현이 차에 올라타자 다은도 따라서 차에 탔다.
차를 유턴시켜서 왔던 길로 돌아가는 길에, 시현이 다은을 보며 달래듯이 말했다.
"걱정 마, 그래 봐야 사람은 사람이야. 제 아무리..."
말을 하다 말고 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현이 놀라 해 하는 것도 잠시, 다은이 무슨 일인가 싶어 시현을 돌아보는 찰나, 갑자기 몸이 뒤로 젖혀졌다.
차가 급가속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바람에 놀란 다은이 비명을 질렀고, 고개를 돌려 시현을 보니 시현의 양손과 오른발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휘감고 있었다.
"이놈들이..."
시현은 자신의 양팔과 오른발로 파고드는 기운에 저항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꼼짝하지 못했고, 차는 가파른 길을 미친 듯이 내려가고 있었다.
시현은 그나마 자유로운 왼발로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오른발은 여전히 악셀을 밟고 있는대다가, 내려가던 힘이 있어서 속도가 쉬이 줄지 않았다.
다은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 품 안에서 부적을 꺼내 시현의 팔과 다리에 갔다 붙였다.
다은이 부적을 붙인 오른팔과 오른발에 검은 기운이 흩어지고 다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얼른 악셀에서 발을 떼었다.
'끼이이이이익'
마치 차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참을 미끄러져 내려간 차는, 다행히 커브길에 들어서기 직전에 멈춰 설 수 있었다.
부적의 기운이 뻗쳤는지, 왼팔에 맺혀 있던 검은 기운도 사라졌고, 온몸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 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후~"
죽다 살아난 듯, 겨우 한숨을 돌리고 나니, 다은도 그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를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인데?"
시현의 말에 다은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럼... 계획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만히 있던 시현이 고개를 바로하며 말했다.
"아니, 그대로."
"위험하지 않겠어요?"
다은의 되물음에 시현이 그 와중에도 피식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계획을 바꿀 거라 생각하겠지, 그런데 우리가 원래대로 한다면, 그놈들 예상을 벗어난 것일 테지. 그놈을 마주했을 때, 뭐 하나라도 더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 이번에 마주했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수 있어."
다은은 시현의 말을 들으면서도, 수긍하거나 대답하지 않은 체,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시현을 응시만 할 뿐이었다.
시현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런 시현을 보며 다은이 물었다.
"차 안에도 이런저런 부적이 있지만, 저 악귀들을 막지 못했어요. 그 담배 연기로도 막지 못할걸요."
그러자 시현이 피식 웃으며 담배를 들어 보여줬다.
"이건 그냥 담배야."
그러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 모습에 다은이 눈살을 찌푸리며 코와 입을 손으로 막고는 창문을 내렸다.
***
서로 돌아온 시현과 다은이 꽤나 지친 듯한 모습을 자리에 털썩 앉자, 종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뭐 나온 거 있어?"
시현이 묻는 말에, 종수는 리포트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뭐... 선배님 예상이 대충 맞는 거 같습니다."
시현은 종수가 내민 리포트를 받아 펼쳐 보더니, 이내 재밌다는 듯한 표정이 되어 자세를 바로 고쳤다.
그런 시현을 보며 종수가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두알붐이란 법인 회사가 있어요."
"두알붐?"
"네, 저도 무슨 뜻인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두알붐이란 회사의 대주주가 플라가스란 회산데, 여기가 박도철이 대표로 있는 회삽니다."
"그러니까, 두알붐이란 회사가 있고, 그 회사에 자금을 댄 게 박도철의 회사란 거지?"
"네. 그 두알붐의 주주가 박도식이구요, 사망한 투자자들이 두알붐이란 회사를 투자대상 회사로 지정했어요. 그리고 투자를 받은 지 얼마 안돼서, 그들이 죽은 거구요."
시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글쎄요."
시현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리포트에 나와있는 회사 정보를 보고 있었다.
왜? 투자까지 이미 받았고, 먼저 사례처럼 개인 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죽인다고 해서 박도식이 얻을 수 있는 혜택 같은 건 없었다.
투자 회사가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지분은 이미 그 회사로 일정 부분 넘어간 상태였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다은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그런 투자회사들은 뭘 보고 투자를 해요?"
다은의 질문에 시현과 종수가 동시에 다은을 바라봤고, 어리둥절해하는 다은을 보다가 이내 시현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렇지. 그걸 알아봐야겠네. 왜 투자를 했는가? 뭘 보고 투자했느냐 말이야."
"아, 그러려면 투자신청 당시에 제출했던 서류를 찾아봐야겠네요."
"그래, 그런데... 투자회사는 어쨌든 돈이 될 거라 생각했으니 투자를 했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들, 그 이유와 그 남편들을 죽인 이유가 연결될 거 같진 않은데..."
시현이 고심에 빠지는 듯한 표정이 되자, 다은이 다시 나서 말했다.
"소혼술 한번 하자니깐요."
"넌 왜 몸에 좋지도 않은 걸 자꾸 하려고 그래?"
"아 뭐 어때요? 전 오래 살 생각 없다니깐요."
"그러다가 20살에 요절하는 수가 있어!"
시현이 버럭 소리치자, 다은이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미 21살이거든요."
"어쨌든!"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종수는 그저 눈치만 볼뿐이었다.
"아, 몰라요. 형사님이 싫어해도 전 할 거예요."
시현은 그런 다은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누굴 불러내게?"
"남편이요. 가장 최근에 죽은 사람."
"그래서?"
"빙의당해 죽었을 때 어땠는지, 자길 죽인 게 누군지 알고는 있는지.... 왜 그랬을 거 같은지... 물어봐야죠."
시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 가지고는 득 될 게 없어. 어차피 지금 알고 있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아. 정히 소혼술을 하려거든, 그들에게 뭘 물어볼지 제대로 준비해서 물어보라고."
시현의 말에 다은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리자, 종수가 나서 물었다.
"그때... 저도 참관해도 되나요?"
종수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으니, 시현과 다은이 아무 말 없이 종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