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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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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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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간 예측: 약 11.31분

7화 - #7


미팅실 문 앞에 선 시현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무슨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문 앞에 서 있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 왔어?"

안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하여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무심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들어오는 시현을 보고는 서둘러 담배를 미리 준비해둔 휴지에 비벼 껐다.

"괜찮습니다."

시현이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말하고는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야, 오랜만이네?"

그의 인사에 시현은 여전히 똑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별일 없으셨죠?"

"별일은... 그저 먹고 사는 거지. 어때? 특수과로 간 건?"

"네 뭐... 그럭저럭 해내고 있습니다."

시현의 대답에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럼 된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비벼 끈 담배가 아쉬운 듯 꽁초를 만지작거렸다.

"몸은...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시현의 물음에 그는 피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나이 되면, 안 아픈 데가 없어. 매일매일 새로운 곳이 아프지."

그의 농담 같은 대답에, 시현은 씁쓸하게 따라 웃었다.

"네가 몇 살이지?"

"올해로 44살입니다."

시현의 대답에 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너도 늙었구나."

그의 말에 시현이 조금은 편해진 웃음을 지었다.

"그렇죠."

"어째 흰머리가 많이 보인다 했다. 염색이라도 하든가."

"뭘 그래요? 늙으면 늙는 거죠."

"요즘 40대가 예전하고 같나? 한참 젊을 때지."

"전 요즘 40대가 아닌가 봅니다. 저도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요."

그는 시현의 대답에 수긍하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 전인가? 자네가 자네 진면목을 처음 보여줬던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해."

그의 말에 시현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어때? 귀신들은 상대할 만 해?"

시현은 대답 대신 고개만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래, 산 사람이 죽은 사람 상대하는 게 쉬울 리가 없지. 바쁠 텐데... 내가 미안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어?"

"네, 말씀하세요."

"다른 게 아니라... 이상한 얘기를 들었어."

"이상한 얘기요?"

시현이 호기심을 보이며 눈에 반짝거리는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 뭐 나야 이제 현직에서 물러난 뒷방 늙은이라지만... 가끔씩 나한테 와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조용히 명함 하나를 내밀어 보여주었다.

시현은 그 명함을 건네받아 보니, -블루아이디어 유용훈 이사- 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예전 내가 반장으로 있을 때, 사기 관련 수사의뢰가 들어와서 조사했었는데, 그때 도움 좀 받았던 친구야. 때마침 동갑이기도 했고, 도움도 좀 받았던 터라, 그 사건 이후에도 서로 알고 지내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도움도 주고, 그렇게 지냈거든. 이 친구가 몇 년 전에 투자 회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얼마 전부터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더라고. 무슨 일인가 싶어 소주 한잔 하면서 얘기 나눠보니까, 조폭이 연관된 투자심사를 맡은 모양이야."

그의 말에 시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명함을 내려놓았다.

"에이, 선배님도... 저 조폭 수사는 안 해요. 아시잖아요."

시현의 대답에 그는 알고 있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지. 알아. 그런데 말이야. 그 조폭의 수법이 좀 이상해서..."

"수법이요?"

"최근에 배우자 살해하고 자기도 자살한 사건 있었지?"

그의 물음에 시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그놈들 수법이라는데? 대놓고 마누라 죽인 범죄자 돼서 죽고 싶지 않으면 투자 진행되게 손을 쓰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시현이 어느새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 그 조폭 새끼 이름이 뭐랍니까?"

"듣자하니까 무슨 법인 회사 대표라든데... 박도철이라고..."

시현의 눈에서 눈빛이 강렬하게 바뀌는 것을 보고는, 그가 짐작했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알고 있었구나."

"네... 지금 조사 중입니다."

"그 깡패 놈들 수법이 교묘해서, 경찰이 범인을 못 잡는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라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던데... 방법이 있을까?"

"일단 제가 부적하나 갔다 드릴게요. 부적 지니고 계시라고 하세요."

그런데 시현의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이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시현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자, 그가 넌지시 대답했다.

"그 부적으로... 지켜줄 수 있긴 한 거야?"

"네... 물론이죠."

시현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자, 그는 다시금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일이란 게... 때론 누굴 지켜야 할 때가 많아. 하지만... 알다시피, 열명이서 지켜도, 살인범 하나 막기가 쉽지 않은 게 우리 일이지."

시현은 그의 우려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시현 역시 부적한장으로 그를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한테는 친구야. 성급한 판단으로 그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당장 나서서 뭔가를 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당장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제가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게 좋을 것 같구나. 눈에 띄는 행동은... 표적이 되기 쉬워."

시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경찰의 입장에서 지켜주겠노라고 말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현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건 아니었지만, 지켜주겠다는 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다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게...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는데..."

그가 내민 것을 본 시현은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그것은 옛날에나 사용했을 것 같은 작은 보자기 꾸러미였는데, 그걸 받아 든 시현이 의아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이게 뭐죠?"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몸에 간직했던 물건이야. 옛날에 용하다는 무당한테서 받은 부적 같은 거라는데... 한번 봐봐."

시현이 보자기를 풀러 보니, 그 안에서 어른 엄지손가락 만한 나무 패가 하나 나왔다.

기괴한 문구가 정밀하게 새겨진 그 나무 패는, 영안이 틔은 시현이 보기에도 평범한 나무 패는 아니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어야지. 그거라도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가져왔어."

"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현도 얼른 따라 일어났다.

"뭐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그래도 현역 시절에 알아둔 인맥이 좀 있어서, 어디 가서 종로서 오동팔이 하면 따지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

그의 말에 시현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오반장님."

"반장은... 언제 적 호칭이야."

"저한테는 영원한 반장님이시죠."

그는 시현의 대답에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뒤따라 나온 시현은 그가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허리 숙여 인사를 했고, 그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서야 품 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시현은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내뿜으며, 손에 든 나무패를 만지작거렸다.

"묘한 물건이네."

***

"벽조목이네요."

다은은 나무패를 단번에 알아보듯 이야기했다.

"벽조목?"

"네."

그러자 옆에 있던 종수가 훈수 두듯 말했다.

"그거 인터넷에 보면 많던데요. 벽조목인지 뭔지... 그런데 그게 효과가 있긴 한 거예요?"

종수의 말에 다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들은 다 가짜예요. 대추나무 대충 잘라서 전기충격 가해놓고 벽조목이랍시고 파는 건데, 하나도 도움 안돼요. 이건 진짜 벽조목이에요. 벼락 맞고 타서 떨어진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만든 건데... 크기로 보건대, 만들 때 이거 하나만 만든 것 같지는 않네요. 깃든 영험함이 절로 느껴져요. 만든 이후에도 꽤 큰 신 모셨던 사람이 애지중지했었던 모양이에요."

다은의 말에 시현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나무패를 넘겨받았다.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좀 될 거란 거지?"

시현이 되묻는 말에 다은은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뭐... 도움이 안 되지는 않겠지만... 무조건 도움이 될 거라고 보는 것도 좀 그렇죠. 도구는 도구일 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거야 그렇지."

그러자 종수가 나서 물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쓰는 거에 따라 달라지다뇨? 어떻게 달라지는 건데요?"

그러자 다은이 종수를 보며 말했다.

"종수씨가 이걸 가지고 있으면, 자그마한 단도 정도의 힘이 되겠지만, 저나 여기 형사님이 쓰시면, 기다란 장도 정도 위력을 발휘하겠죠."

다은의 말에 종수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저는 단도 정도 수준이란 건가요?"

"영능력에 한해서 그렇다는 거죠."

다은이 퉁명스럽게 위로하듯 말하지만, 종수는 여전히 시무룩해 보였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냐. 사실상 박도식과 박도철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지. 박도철은 박도식의 수법을 이용해서 투자사들을 협박해서 돈을 갈취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그 수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법에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인 거고."

이야기를 들은 종수가 나서 말했다.

"다시 모였을 때, 녹취를 하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그들이 협박하는 목소리나 모습을 담으면,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시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봐야 협박죄 정도로 기소할 수 있겠지. 살인교사는 증거 불충분이 될게 뻔해."

그 말에 다은이 나서 대답했다.

"어차피 애초에 증거를 확보하기는 힘든 싸움 아니었나요? 법적으로 그들을 처벌하려고 하면 답이 없어요."

시현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이미 시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저들의 만행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조사는? 해봤어?"

시현이 종수에게 묻는 말에, 종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대를 칼로 난도질해서 죽이는 형태의 살인사건 중에, 가장 오래된 사건들 위주로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그런 사건이 너무 많아요. 여기 다은씨 말로는 못해도 100년 이상 된 사건이어야 한다는데... 안타깝게도 전산화된 기록이 그만큼이 없어요."

종수가 말을 마치자마자 다은이 이어 말했다.

"현생을 살고 있는 사람의 몸에 깃들어, 그 주변 사람과 그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으려면 원귀의 원한이 엄청 깊고 강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게, 바로 시간이죠. 못해도 100년 이상 원한이 누적된 원귀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가능성은?"

시현이 묻는 말에 다은이 고심하듯 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몇 가지 방법이 있죠. 주술적인 방법으로 원귀의 한을 증폭시킬 수도 있지만, 까다로워요. 그리고 그 원귀를 계속 유지시키기 힘들 뿐만 아니라, 통제하기도 쉽지 않아요. 더욱이 그자는 수많은 악귀들을 다루고 있었어요. 다른 악귀들을 그렇게 다루면서도, 동시에 강력한 원귀를 통제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또 다른 건 원한 자체가 엄청 크거나,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에 영력을 가지고 있었거나...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지만, 그런 윈귀를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가지고 있다는 건 더더욱이 생각하기 힘든 경우라고 봐요."

다은의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잠시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모두 각자 머릿속으로 해결방법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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