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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희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05
읽기 시간 예측: 약 8.42분

1화 - #1



헤이즐넛 커피향이 짙게 배어나는 탕비실쪽으로 막 들어서려던 다정의 발걸음이, 들려오는 남자들의 목소리에 멈칫 거렸다.


"얘기 들었어? 일원그룹에서 우리 회사 인수했다고?"


"쫙 퍼졌더라, 새로온 대표가 그 그룹 셋째래."


"한 동안, 뒤숭숭하겠네. 참, 나 아까 독종이 누구랑 통화하면서 웃는거 봤어."


"헉, 나 소름돋았어."


그들이 나누는 입담의 주인공인 그녀, 다정은 씁쓸한 비웃음 한번 날리고는, 들어가려던 탕비실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옥상으로 향했다.


뻑뻑한 옥상 철문이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열리고, 그렇게 밖으로 나온 다정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다정은 생각에 잠겼다.


독종이라니... 이름부터가 다정이지 않은가? 무려 일다정도 아니고 이다정이다.


이름만으로도 다정함이 여느 사람들의 2배인 다정인데, 그 사실을 본인만 알고 있다는게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다정은 자신의 별명에 별로 불만은 없다.


자신이 스스로 자초한 부분이고,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아서 편했다.


다정은 직원들에게 무뚝뚝하고 차가웠다. 함께 차를 마시거나 잡담을 하는등의 개인적인 친분쌓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회사에 오면 오직 일에만 집중했다.


직원들과 융화되지 못하는 그녀는 언제부턴가 직원들 사이에서 독하게 일만 한다는 평을 받으며, 독종이란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별명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부서를 벗어나 다정을 모르는 타 부서 직원들에게도 다정은 그냥 독종이 되어버렸다.


독하게 일만하는 독종인데... 아쉽게도, 속뜻까지는 전달되지 못한 관계로 타 부서에서 다정은 악독한 성격으로 잘못 알려져 각인되었다.


다정은 크게 한번 더 숨을 내쉬고는 사무실로 내려갔다.



*****


드디어 진정식품을 인수한 일원그룹의 셋째아들 지서준본부장이 진정으로 출근했다.


로비를 지나가는 지서준본부장을 본 직원들로부터 빠르게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일반 사람보다 얼굴하나는 더 큰 키, 다부진 몸에 조각같은 얼굴, 마치 뒤에서 후광이 비추는 것같은 정말 진부한 표현들을 다 같다 붙이고 싶은, 너무도 잘생긴 얼굴을 실제로 본다면 이런 표현들로는 부족해서 다 담을 수 없는 외모라고 했다.


여직원들은 한번만이라도 눈이 마주치길 바랐고 지서준왕자님의 신데렐라가 되길 꿈꾸길 일주일..


와장창 꿈이 깨지기까지는 너무 빠른 시간이었다.


쯧쯧, 잘생기고 조각같으면 뭐하나 얼굴에 웃음 한점이 없거늘. 직원들에게도 흔한 미소한번 보여주질 않았다.


처음 출근한 날 임직원들에게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할때도 업무적인 일만 이야기할뿐 무뚝뚝 그자체였다.


정말 딱 풍기는 분위기가 금욕적이고 차가운 인상으로 다가가면 바로 베일듯한 날카로움이 있었다.


실제로도 일할때 가차없고 능력없는 직원들에게 독설도 서슴치 않는 칼같은 상사로 일주일만에 회사에서 독종이라고 불리는 다정은 댈것도 아니라며, 독종이란 별명은 오히려 지서준본부장에게나 더 어울리는 별명이라는 싸늘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자들사이에서 독종이면 어떻고 사이코패스면 어떠랴.


잘생긴 그를 보기위해 쓸데없이 로비를 헤매는 여직원들은 늘어만 갔고 모였다하면 남자들은 부러움과 질투심에 욕을, 여자들은 재력과 능력, 출중한 외모 찬양에, 주제는 어쨌든 본부장님이었다.


***


띠링~띠링~


다정은 문자메시지 소리에 휴대폰을 열었다.


[다정~ 나 로비에 도착했어~]


유일한 친구 수연이었다. 오늘 점심에 파스타가 먹고 싶다며 아침부터 애교를부리더니 시간에 맞춰 회사에 오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 지금 내려갈께 기다려]


항상 구내식당만 이용하는 다정을 위해 가끔 수연이 찾아와 회사를 벗어나 색다른 점심을 먹는건 익숙하고 별다른 일 없는 날중의 하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뭔가 모르게 들뜨고 설레는 기분이다.


이상하네... 중얼거리며 다정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비에서 수연을 데리고 둘이 가끔 찾는 파스타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엉덩이를 대자마자 수연은 뭐가 그리도 궁금했는지 다정을 향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야! 너네 회사 일원그룹 셋째, 지서준한테 인수된거라며? 뭐야~뭐야~ 나한테 왜 말도 안해주고~ 어때? 지서준봤어? 정말 그렇게 잘생기고, 섹시하고, 멋지고, 몸도 장난아니라며? 그렇게 끝내줘? 말해봐~ 궁금해~"


"숨은 쉬시고요~, 한수연씨! 저도 아직 못봤습니다~ 나보러 온거야? 지서준본부장님 보러 온거야? 너 설마 본부장님 보려고 일찍부터 로비에서 서성거렸던건 아니지?"


어이없다는 얼굴로 다정이 묻자, 수연은 두손을 맞잡고 턱에 대며 애교를 부렸다.


"기지배~나한테는 온리 다정이지~~"


수연의 넉살에 다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쉽다..그래도, 얼굴한번 봤으면 했는데...히히"


"쓰-읍" 다정은 밉지않은 시선으로 수연을 째려봤다.


수연은 다정을 향해 헤헤 실없이 웃으며 맛있는거 먹자며 메뉴판을 들어 다정의 눈빛을 차단했다.


***


수연과 점심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는 중, 회사앞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거의 끝나가도록 지나가지 못하고 무거운 수레를 끌고가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파란불이 끝나 빨간불로 바뀌자마자 서있던 차들이 경적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러다 할머니가 사고나 당하지 않을까 싶은 걱정에 다정은 할머니를 향해 달려가 뒤에서 수레를 밀어주었다. 연약한 할머니가 끌기에는 정말 무거운 수레였다.


다정이 어금니를 앙다물고 힘을내며 밀고있는 어느순간 수레가 가볍게 밀리기 시작했다. 의아함에 고개를 돌리던 다정의 시야에 옆에서 같이 수레를 밀어주는 본부장님의 잘생기고 무뚝뚝한 얼굴이 들어왔다.


'우씨, 깜짝이야~ 우리팀 여직원들이 휴게실에서 입이 닳도록 노래를 부르는 이유를 알것같네..'


다정은 다시 고개를 돌려 수레를 미는데 집중했다. 횡단보도를 다 넘어오자 할머니가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무뚝뚝하신 본부장님은 고개만 한번 까닥이고는 횡하니 돌아서 가차없이 회사를 향해 단정하게 걸어갔다. 인정한다 멋있긴 하다.


다정은 할머니에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본부장님의 듬직한 뒷모습이 사라질때까지 바라보다 회사로 들어섰다.


그 두사람의 뒷모습을 할머니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시나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여직원들이 혼이 나간 얼굴로 좀비처럼 로비를 서성였다.


******


그날밤


다정은 이상하게 기분이 술렁여서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억지로 잠이 들려는 찰나 오후에 횡단보도에서 마주친 본부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핏, 뭐야~' 스스로 헛웃음을 내뱉고는 잠에 빠져 들었다.


다정은 잠귀가 밝은 편이다.


혼자 살고 있는 다정의 현관문은 여러개의 잠금장치를 거쳐야 열린다.


그렇게 문을 봉쇄했어도 깊은잠에 들어도 작은 소리에도 바로 깨어나는 예민함을 가졌다.


그날밤 다정은 자신을 깨우는 시선을 느꼈다.


이상하다..분명 저 철통같은 문을 소리없이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정은 맨 꼭대기 층도 아니라서 옥상에서 베란다를 통해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해도 쉽지는 않을테고 문단속을 해서 창문여는 소리또한 민감한 자신이 자고 있다고 해도 못듣지는 않았을텐데..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두려움에 눈을 뜨고 싶지않기도 하고, 자신의 침실에 소리없이 들어와 뻔뻔하게 자고있는 얼굴을 쳐다볼 수 있는 능력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눈을 뜨고 싶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 는 없지..에라 모르겠다. 눈을 뜬 다정은 경악으로 입을 벌리고 바보같이 상대방을 바라만 봤다.


"당신 누구지?"


차가운 표정의 지서준본부장님이 얼굴을 뚫어버릴듯한 기세로 다정으로 노려보고있었다.


'헐~ 본부장님이 어떻게 내 침대에 앉아 있는거지? 우리집에 어떻게 들어온거야?'


다정이 입을 열어 물어보려는 순간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엥? 내 알람 소리인데?


다정은 눈을떴다. 그리곤 홱하니 일어나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어휴~꿈이었구나..뭐야, 나...설마 어제 본부장님을 보고 한눈에 반했나? '


핏, 웃음이 샜다.


'그냥 꿈한번 꾼것 뿐인데 무슨...그래도, 솔직히 잘생기긴 했더라..뉴스나 tv에서만 보다가 실물을 보곤 연약한 내심장이 놀랐나부다..히힛'


다정은 웃음띤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두손으로 자신의 뺨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정신차려 이다정!'


다정은 자신을 추스리며 출근준비를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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