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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희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05
읽기 시간 예측: 약 9.65분

10화 - #10



"그래서 이쁩니까?"


서준의 눈빛에 쫄아 꼬랑지를 내린 도혁은 결론을 물었다.


도혁의 볼멘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응"


경악한 도혁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서준의 입가엔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니 바빠서 잠잘 시간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여자는 어디서 만난 거야? 진정식품 직원이라고? 헉! 설마?'


머리에 떠오른 촌스럽게 생긴 이다정대리의 얼굴에 도혁은 머리를 마구마구 저었다. 그럴 리가...


"귀엽기도 하고요?" 조심스럽게 묻는 도혁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귀엽?... 기도 하기는 한데..., 그렇다기보다는 좀 단아하게 아름답다는 말이 더 맞지."


꿈속을 헤매고 있는 서준의 눈을 보며 도혁은 '이대리가 아니었나? 그럼 누구지?' 생각을 하며 항상 자신이 옆에 있었는데 언제 여자를 만난 건지 존경과 경애를 표하고 싶었다.



서준은 도혁의 물음에 꿈속의 여자를 다시 떠올렸다.


꿈속이라는 걸 자각하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를 확인했다. 혹여라도 바로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싶은 걱정에 숨소리마저 죽였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여자는 정말 아름답다는 말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불필요한 미사여구도 필요 없었다.


서준이 살면서 이제껏 본 여자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여자에게서 풍기는 우아한 느낌은 전혀 퇴색됨이 없었다.


그래서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환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서준은 순간 여자를 바라보면서 처음 봤지만 처음이 아닌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단연코, 실제로 봤다면 잊을 수 없는 얼굴일 테니까.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이렇게 서걱거리게 하는 여자를 그냥 지나쳐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벗고 자는 습관이 있던 서준은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꿈속이라도 신경 쓰이는 마음에 조용히 일어나 서둘러 간단히 옷을 챙겨 입었다.


침대로 다시 올라가면 혹시라도 움직임에 깨어날까 조심스러워, 주방에서 식탁의자를 가져와 침대 곁에 놓고 의자에 앉아 가만히 잠든 여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다시 보아도, 친숙한 느낌이었다. 어디서 만났을까? 생각에 빠져 쳐다보고 있을 때, 여자의 속눈썹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바다처럼, 깊고 고요한 눈동자가 서서히 드러났다.


여자는 눈을 뜨고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기만 했다.


역시, 자신이 꿈속에서 그려 낸 환상이 틀림없다.


눈을 뜬 여자는 감고 있을 때 보다도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음악소리가 들리면 약속처럼 여자가 사라지고 자신이 꿈에서 깨어난다는 걸 알고 있다.


서준은 조금만 더 이 여자를 자신의 꿈속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자신의 바람을 아는 것처럼 여자도 소리 없이 자신의 눈을 응시하더니 스르륵 일어나 앉았다.


"본부장님?"


꿈을 꾼 이래 처음으로 듣게 된 여자의 첫마디가 본부장님이라니... 전혀 생각도 못한 단어에 서준은 순간 당황했다.


"본부장님?"


'설마, 저 여자가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여자일까?'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꿈일 뿐인지, 실제 자신의 회사 직원인지 묻기를 주저하는 자신을 향해 말하기를 종용하는 그녀의 몸짓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아...


마지막 허탈한 여자의 얼굴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불현듯 생각에 빠져있던 서준에게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리자 도혁은 피식 웃었다.


항상 일에만 빠져 일만 하다 죽을 것 같았던 서준에게 저렇게 생각만으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자신도 찬성이었다. 도혁은 서준이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즐겼으면 했다.


자신도 마찬가지 인생이지만.



***



혹시나 꿈속에서 듣지 못한 다음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출근한 다정은 오늘도 본부장님의 자리가 비어있자, 꿈을 현실로 끌어들이려 혼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꿈은 그냥 꿈이지...'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던 다정은 어제와 다르게 평소의 모습을 찾은 최재원대리의 밝은 목소리에 의아함을 느끼고는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느낀 게 다정만은 아니었던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다른 팀원들도 마주 인사하면서 눈빛에는 물음표를 달고 재원을 쳐다봤다.


재원을 맘에 두고 있던 표대리만 으레 그렇듯 그에게 궁금함을 대놓고 물어봤다.


"최대리님, 어제는 기운이 없으신 것 같더니 오늘은 많이 좋아지셨나 봐요? 아니면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아뇨,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는 좀 일이 있어서..., 저 때문에 신경 쓰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점심은 제가 쏘겠습니다.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동안 같이 일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고, 말씀드려야 할 것도 있고요. 다들 점심에 소담집 괜찮으세요?"


"최대리, 거기 비싼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그냥 간단하게 순댓국도 괜찮아~"


소담은 회사 근처에 있는 비싼 한정식집으로 회사원들이 한 끼 식사 비용을 지불하기에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느닷없는 재원의 식사대접이 그것도 일반식당도 아닌 고급식당인 만큼 팀원들에게 조금은 난처한 기분이 들게 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요. 드릴 말씀도 있고요. 다들 부담 갖지 말고 모두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야, 비싸고 맛있는 거 얻어먹고 좋은데..." 이과장님은 더 이상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웅성거리던 팀원들도 사달라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사주겠다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재원이 민망해할 것 같아 어영부영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리님도 꼭 같이 가셔야 합니다~"


재원은 자리에 앉으며 다정을 향해 혹여라도 다정이 거절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다른 팀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큰소리로 못을 박았다.


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거북한 다정은 거절의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팀원들 모두 참석하는 자리고 혹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눌 수 도 있으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정의 속내를 알아차렸으면서도 재원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며 오히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체하지나 않기를 바라야지...' 다정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오전 내내 본부장님은 TF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본부장님의 빈자리를 다시 한번 힐끗 쳐다본 다정은 사무실을 나서는 팀원들의 뒤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따라나섰다.


본부장님 방을 슬그머니 쳐다보는 다정의 모습을 눈치챈 재원의 기세가 사뭇 흉흉해졌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다정의 태도를 상상하며 재원은 자신의 사나운 기운을 갈무리하려 노력했다.



"정말 이렇게 얻어먹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황과장도 부하직원에게 비싼 점심을 얻어먹는다는 게 멋쩍어 다시 한번 물었다.


"하하, 아닙니다. 정말 제가 한 번쯤은 사고 싶었습니다."


재원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양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설마..., 청첩장을 돌리시려는 건 아니시죠?"


표대리 못지않게 재원에게 마음이 있던 식품연구실 이대리가 그것만은 아니길 바란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아쉽게도 그쪽은 아닙니다."


재원은 웃으며 팀원들을 돌아보다가 맨 끝에 앉아 있는 다정을 힐끗 보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은..., 조만간 진정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그만두고 싶었는데..., 제 아버지가 워낙 완고하셔서 이제는 본인 회사로 들어와 앞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길 바라시네요. 하하"


순간 룸 안으로 침묵이 깔렸다.


"허참, 뜬금없기는, 갑자기..."


이과장님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며 음식이 줄줄이 들어와 식탁 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부담 갖지 말고 드세요. 정말 제가 퇴사하기 전 대접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들 어색한 목소리로 잘 먹겠다고 인사를 하고 쭈뼛거리며 음식에 손을 가져가려 노력했다.


"그런데 혹시 무슨 회사?"


이번에는 표대리가 재원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진정식품하고는 경쟁업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네요."


재원은 극적인 효과를 내고자 뜸을 들였다.


"경쟁업체요? 그럼 식품회사인가요?"


표대리가 놀라서 다시 물었다.


"네..., 세원식품이요"


또다시 룸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음식을 먹던 팀원들 모두 TV 화면 속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굳은 채 재원을 쳐다봤다.


"세... 세원식품? 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그... 세원식품?"


이과장이 모두를 대표해 얼떨떨한 목소리로 묻자, 재원은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동안 말씀 못드려 죄송합니다."


대답을 하면서 재원은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다정을 쳐다봤다.


'그럼 그렇지. 진즉 말할걸 그럼 한시라도 빨리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쯧'


안경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느낌만으로도 다정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재원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 최대리님 금수저였구나. 어쩐지... 미리 언질이라도 좀 주시지..."


표대리가 눈을 빛내며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음식 식으면 맛없습니다. 어서 드세요~"


재원은 기분 좋은 얼굴로 싹싹하게 말하며 손짓했다.


예측하지 못한 재원의 폭탄발언에 당황했던 팀원들은 이내 "그래, 최대리에게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느껴지더라~", "사람이 답지 않게 겸손하네" 라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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