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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희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05
목차 다음화 ▶
읽기 시간 예측: 약 9.39분

8화 - #8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진 다정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책상 정리를 하는둥 마는둥 부랴부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다른 직원들과 마주치고 싶지않아 비상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며 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도착했어?"


"나 로비에 앉아 있어. 천천히 내려와~"


"나 지금 내려가고 있어."


"그래~"


로비에 앉아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기웃거리는 수연을 낚아채, 분위기가 좋아 둘이 자주 찾는 칵테일 바로 향했다.


"너, 정말 나 만나러 온거 맞지? 누구에게 밀린 것 같은 기분이야."


"당연하지, 이 불타는 청춘이, 만나 달라는 남자들 모두 뿌리치고! 내가 다정이 너랑 좋은 시간 보내려고 찾아왔구만, 너무한 거 아냐?"


수연은 과장되게 말하며 억울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 너어무 황송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정이 수연을 따라 과장된 어투로 말하자, 수연이 귀엽게 혀를 내밀며 애교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본부장님 지하주차장에 차 주차하셔서 로비에서 볼 일이 거의 없어. 수연아..."


다정이 수연의 헛수고를 알려주었다.


"아니, 호텔 대표잖아. 기사 딸린 차타고 다니는거 아니야? 재벌들은?"


다정은 어깨를 으쓱이며 얼마전 점심시간 화장실안에서 듣게 된 여직원들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기사가 회사 앞에 모셔다주고 했었다는데, 요즘은 우리회사 인수한 초창기잖아 이래저래 바쁘니까 출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편하게 그냥 본부장님이 알아서 운전하고 다니신다나봐"


수연이 자신의 본부장님을 연예인처럼 생각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나중에 사인이나 받아다 줄까? 하는 생각에 그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나왔다.


다정은 메뉴판을 들어올렸다.


"일단 주문부터 하자~,난 블루하와이, 너는?"


"난 섹스온더비치! 언제나 이름이 마음에 들어."


"아무럼요." 다정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요즘 많이 바쁜가봐? 새로운 프로젝트때문에 정신없다며? 엄마가 너 요새 밥은 먹고 일하는지 걱정하시더라"


"하긴 부모님들 얼굴 본지 오래됐다...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같이 가자"


다정과 수연의 부모님은 제주도에서 함께 펜션을 운영하며 한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그래서 수연과는 친구보다는 자매에 가까웠다.


"참, 혼자 오지말고 옆구리에 남자 하나씩 끼고 오라시더라, 그게 말처럼 쉽니?"


투덜거리는 수연은, 한눈에 반한 남자와 미친듯이 열정적인 사랑 한번 해보는게 소원이었다.


아직 그런 남자를 못 만나 찾아 헤매고 있는 자신은, 낭만을 꿈꾸는 로맨티스트라 부르짖었다.


"지난번 만나고 있다는 남자는? 이번에는 진짜라며?"


수연은 모르는 일이라는듯 눈을 크게 뜨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런, 그 남자도 운명의 남자는 아니였나 보다.


"너는? 눈 정말 수술 안할거야? 안경이 답답하지도 않아? 예쁜 얼굴 다가리고! 더 늦으면 노안 와서 수술도 못해!"


"빨리 노안 오라고 악담을 해라, 아주!"


다정의 으름장에 수연은 걱정하는거야, 걱정! 이라며 장난스런 윙크를 날렸다.


"아직은 안경이 편해."


아버지 직장때문에 어머니만 제주도에 남겨놓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던 다정이, 이쁘다는 이유로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며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수연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제주도에 있던 수연은 옆에 있어주지 못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의 시선이 귀찮다며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고만 하는 다정이 사실은 편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다.


혹여나 과거가 되풀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란걸, 그래서 수연은 트라우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다정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축복이 아닌 독이 된다는 것을 다정을 보며 알았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향한 질투심과 욕망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나쁜것들, 천벌이나 받아라!!'


***



"오랜만에 찾아온 상쾌한 아침이었는데..."


차를 몰고 회사 건물을 벗어나며 서준은 자신의 하루를 망친 최재원이 앞으로 어떻게 나오려나 걱정이 되었다.


"그나저나 알려줬으면 데려가야 하는거 아냐?"


얼마전 자신의 호텔 한식레스토랑에서 세원 회장이 지인들과 모임을 가지고 있다는 도혁의 은밀한 귀뜸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로비를 지나면서 우연인 척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당신의 아드님이 내 회사의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놀랐다, 일을 아주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듣고 있던 회장의 얼굴이 사뭇 섬뜩해보였는데 오늘 최재원의 이마를 보니 알려진것처럼 자상하진 않은가보다.


추운 겨울밤이라 그런지 거리가 더욱 한산하게 느껴졌다.


회사 앞 신호등에 걸려 정차한 서준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늦은 시간이고 눈발도 살짝 흩날리고 있어 다들 집에 들어갔는지 지나가는 사람은 몇 없었다.


'훗' 서준의 입술 사이에서 웃음이 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사이에서 뒤뚱하게 걸어가는 다정을 발견했다.


온몸을 푹 감싸는 커다란 검은 패딩에 얼굴위까지 반이상 하얀 목도리로 칭칭감아 얼어죽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이 엿보였다. 얼마나 껴입었는지 데굴데굴 굴러도 될 것 같았다.


혼자인줄 알았던 이다정대리의 팔짱을 끼고 있는 일행이 보였다.


아담한 다정과는 다르게 키가 훤칠했다. 빨간색 하프코트에 부츠를 신은 그녀는 머리색이 밝아서 그런지 화려해 보였다. 완전 극과극 이었다.


"의외네, 이다정대리 성격에 팔짱을 끼고 걸을 정도라면...가족 인가?"


번화가쪽으로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서준은 바뀐 신호에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차를 출발시켰다.


집까지 운전하는 내내 잔잔한 미소가 서준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물론 서준 자신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샤워를 마친 서준은 냉장고에서 맥주 한캔을 꺼내들고 거실 쇼파에 앉아 느긋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의 여유인것 같았다. 매일 새벽에 들어와 3~4시간정도 잠깐 눈만 붙이고 다시 나가기 일쑤였다.


차가운 맥주가 목뒤로 넘어가자, 그동안 쌓인 피로가 조금쯤은 씻겨나간듯 서준의 입에서 묵직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늘은 푹 자야겠다는 생각에 서류를 더 보고 자려던 미련을 접고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웃음이 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이다정대리가 떠올랐다.


"넘어져도 아프지도 않겠다."


그동안 최재원이 끊임없이 허물려고 노력했던 벽이, 오늘은 더욱 더 견고하게 단단해져버린 느낌이었다. 퇴근하던 최재원의 뒷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도대체 자신이 출근하기전 최재원과 다정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던걸까.


자신도 모르게 잠이들었나보다. 생각을 하고 있었던것 같은데 어느새 꿈속이었다.



***



오랜만에 허물없는 수연과 가진 술자리라, 긴장이 풀어졌는지 칵테일 몇 잔 마셨을 뿐인데 알딸딸하고 어지러웠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자 노곤해진 다정은 침대에 벌러덩 눕자마자 스르륵 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술기운에 모든게 다 귀찮았다. 그냥 이대로 푹 잠들고 싶은데, 느껴졌다. 본부장님의 시선이.


'아~정말! 나오라 하는 날에 찾아오면 오죽 좋아? 갑자기 이렇게 나오면 반칙아냐?'


다정은 꿈속에서도 느껴지는 술기운을 밀어내려 애쓰며 살포시 눈을떴다.


역시나 본부장님의 침실이었다.


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의자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다정을 응시하고 있는 본부장님이 보였다.


한참이 지나도록 본부장님은 다정을 향해 차가운 시선만 던질뿐 말이 없었다.


'뭐야? 눈싸움 하자는것도 아니고..., 어젯밤 꿈속에서는 이런 눈빛 아니였잖아요... 본부장님...'


도로록 도로록 눈동자만 굴리던 다정도, 누가 이기나 내기하듯 본부장님의 짙고 검은 눈동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초조해진 다정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내가 졌다.'


다정은 속으로 항복을 외치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본부장님?"


다정이 조심스럽게 부르자, 미동도 없던 본부장님이 그제서야 반응을 보였다. 놀랍다는 얼굴로.


"본부장님?"


의외라는 눈빛으로 눈썹을 치켜올리며 다정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헐..' 흠칫 놀란 다정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대며 눈을 크게 떴다.


오호라~, 그러고 보니 잠을 잘때 안경을 쓰진 않을테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남들이 들으면 '네가 안경 벗으면 변신하는 슈퍼맨 이냐?'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다정의 두꺼운 안경알이 정말 그런 역할을 했다.


커다란 안경테로 얼굴을 거의 가려 버리면 빙글대는 안경알 너머로 검은 점만 보였다. 정말.


"혹시..."


답지 않게 본부장님이 뜸을 들였다.


독설도 서슴없이 날리는 칼같은 남자가 저렇게 말끝을 흐린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뒷말이 너무도 궁금해 애가 탄 다정은, 빨리 말하라고 연신 고개짓하며 눈빛으로 재촉했다.


그런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귀여워 보이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드디어 말 하려나 보다.


'그래, 말해! 어서!'


본부장님의 열리는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에라이~' 뒷말을 듣지 못한 다정은 알람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하는 직장인의 비애야..." 알람을 끄지 못하고 잠든 자신을 다독이며 거친 손길로 알람을 끄고 일어나 앉으려다 숙취로 인해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도로 누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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