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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희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05
읽기 시간 예측: 약 10분

11화 - #11



다정은 팀원들과 섞여 농담을 주고받지도 음식을 즐기지도 못했다.


'아니, 세원식품 아들이면 그 회사를 다녀야지. 진정에는 왜 있었던 거야? 웃기는 사람이네... 산업 스파이 아냐?"


경쟁업체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어도 세원식품이라면 진정식품과는 비교도 되지않는 대기업이 아닌가. 세원에 비하면 동네 마트수준인 진정에 눈독 들일 만한 정보나 기술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재원이 참 수상하다는 생각을 한 다정은 자신을 향한 자신만만 혹은 비웃는듯한 기묘한 재원의 눈빛에 도저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
다정씨, 왜 이렇게 안 드세요? 이곳이 궁중 갈비찜으로 유명하다던데 좀 드세요"


항상 이대리님, 이다정대리님이라고 부르던 재원이 예고도 없이 다정씨라 부르며 앞접시에 갈비찜을 올려주자 경악한 모두의 시선이 다정에게 집중되었다.


"
괜찮습니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드세요."


'부담스럽고, 불편해서 정말 미치겠네! 저 음흉한 눈빛은 또 무슨 뜻인지...'


다정은 제발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말라고 속으로 빌었다.


"
다정씨는 평소 주말에 뭐하며 보내세요? 영화 보는 거 좋아하세요?"


재원의 기세 등등한 목소리에서 다정은 뭐라 꼬집을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다정이 응할 거라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어조였다.


대리라는 직급을 빼고 다정씨라고 친밀하게 부르며 팀원들 모두 느낄 수 있도록 자신에게 과한 관심을 주는 재원 때문에 다정은 또다시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너무도 따가워 자리를 유지하고 있기 힘들었다.


"
죄송합니다. 제가 사실 오늘 속이 좀 안 좋아서요... 참고 먹어보려 했는데 도무지 위가 아파서 힘들 것 같네요. 죄송하지만, 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팀원들 중 누구도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걸 안 다정은 사람들의 반응은 상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룸을 나섰다.


예상 밖의 다정의 행동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 재원은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들어오지않았다. 식탁 밑으로 손톱이 파고들도록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며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정을 따라나서려 몸을 일으킨 재원은 자신을 보고 있는 팀원들을 그제야 느끼고는 아차 싶은 얼굴을 서둘러 갈무리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
아무래도 다정씨가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아 보이네요. 걱정돼서 따라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계산은 제가 하고 갈 테니 마저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부랴부랴 룸을 나서는 재원의 뒷모습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성급히 닫히는 문을 쳐다보았다.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이과장이 또다시 총대를 매고 침묵을 깨뜨렸다.


"
진짜 믿을 수가 없어요. 최대리님 눈이 어떻게 되신 거 아니에요? 취향이 독특하시네요?"


표대리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짜증스럽게 톡 쏘자, 이대리도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호응을 했다.


"
그러게요, 솔직히 좀 놀랍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다정대리님을..., 생긴 건 그렇다 쳐도 독종이라면서요?"


이대리는 같은 부서인 황과장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
우리 이대리가 어때서? 독종은 연애도 못하나? 이대리가 말이 없고 진중해서 그렇지, 괜찮은 사람이야!"


"
같은 부서라고 편드시는 거예요? 성격이 독사같이 못되고 독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회사 내 독종이라고 소문이 난 거죠!"


황과장이 다정을 옹호하자 표대리가 흥분해서 따지고 들었다.


"
무슨 소리야? 성격이 못되다니? 독종이란 별명은 회사에 오면 꾀부리지 않고 독하게 일만 하다 퇴근한다며 우리 부서에서 장난스럽게 붙여진 별명이지 성격이 독하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우리 이대리가 다른 사람들한테 못되게 군적 있어? 무뚝뚝해서 그렇지 성격이 나쁘거나 한건 아니지! 그동안 최대리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서 보고만 있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 이대리가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싫다고 대놓고 거절하지도 못하고 무안하지 않게 티를 내는대도 저렇게 들이대면 나라도 짜증 나겠네. 방금도 봐! 이대리가 최대리한테 뭐라 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우리한테 눈치 보여 먹지도 못하고 자리를 피한 거잖아"


최과장이 냉기 가득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향해 기가 차다며 "
" 탄식을 내뱉었다.


듣고 보니 최과장의 말처럼 다정이 자신들에게 나쁘게 군적은 없었다. 일을 할 때 빼고는 무심할 뿐이었다.


씁쓸한 기운이 룸 안에 퍼져나갔다. 다들 군침이 도는 정갈하고 푸짐한 한정식을 한 상 가득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썼다.


그리고 미처 방음이 완벽하지 못한 음식점 옆룸에서 그들의 대화를 서준이 듣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서준 또한 팀원들이 같은 식당 옆룸에서 점심을 할거라고는 생각지 못한대다가 우연히 들려온 옆방의 대화내용에 못마땅한 듯 입매를 찡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겨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
아하~ 독하게 일만 해서 독종이라..., 어울리네"


"
누구? 여자?"


앞에 앉아 나물반찬을 집어 올리던 세경은 언제나 차가운 분위기에 무표정한 얼굴만 보여주던 서준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미소 지으며 생각에 빠져 있는 진기한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젓가락 사이로 나물반찬이 떨어지는지도 느끼지 못한 채 서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세경을 냉담한 눈빛으로 태연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
너도 다음 주에 만나게 될 거야. TF팀 직원"


피식 웃던 서준은 의외의 모습이 참 많아... 라고 중얼거리더니 궁금해 눈을 치켜뜨는 세경은 나 몰라라 평연히 혼자서 식사를 시작했다.


세경의 눈에는 오히려 평소와 다른 서준의 행동이 더 의외의 모습이었다.


"
오래 살고 볼일이라더니, 네가 누굴 생각하며 혼자 실실 웃는 얼굴을 다 보게 되는 날이 오는구나..."


농담처럼 말하며 식사를 재개한 세경의 얼굴에서 씁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멀어져 가는 다정의 뒷모습을 놓칠세라 부랴부랴 뒤따라 다정의 손목을 붙잡은 재원은 또다시 친절을 얼굴에 씌웠다.


"
다정씨, 많이 안 좋아요? 제가 약..." 재원은 다정이 손을 맵차게 뿌리치자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다정을 쳐다봤다.


다정은 더 이상 한계를 넘은 재원을 그냥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싸늘한 목소리를 냈다.


"
최대리님,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저한테 관심 있으신 거라면 죄송해요. 저는 최대리님 그냥 직장 동료일 뿐이에요. 너무 부담스럽고 불편하니까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
다정씨, 저 다정씨 오래전부터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회사로 들어오라고 독촉하셔도 다정씨 때문에 그냥 진정에 남아 있었고요. 저 그만큼 다정씨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다정씨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드릴 수 있어요. 그럴 능력도 되고요. 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재원은 다정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불쾌했지만, 참고 다시 한번 다정을 향해 사근사근한 말투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
죄송합니다. 저는 최대리님 한 번도 다르게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이후로도 달리 생각할 생각 전혀 없고요."


다정의 냉정한 대답에 재원은 머릿속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
왜? 본부장 때문에?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봐? 언감생심 본부장과 뭐 어떻게 해볼 수 있나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재원의 섬뜩한 눈빛과 말투에 다정은 소름이 끼쳤다.


"
제 마음을 최대리님이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럼 전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에 뜨끔했지만 다정은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게 행동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하고 재원이 그냥 자신에게 신경을 꺼줬으면 싶었다.


"
왜 나는 안되는데? 내가 본부장보다 못하게 뭐야? 세원에 자리도 만들어 줄 수 있어. 집? 차? 명품? 나도 다 해줄 수 있다고"


다정은 재원의 말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느끼고 무시하며 돌아섰다.


그동안 벽에 대고 혼자 떠들어 대고 있었던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한 재원은 다정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울분을 삭이려 노력했다.


'흥, 두고 봐 본부장한테 버림받고도 그렇게 뻣뻣하게 굴 수 있는지, 날 붙잡지 않은걸 나중에 후회하게 될 테니까'



***



남은 오후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퇴근 전 본부장님 방에 들어가는 재원의 모습을 뒤로하고 바로 사무실을 나와버렸다.


다행히 금요일이라 주말 동안 재원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집에 오자마자 긴장이 풀려버렸다.


씻고 나온 다정은 만사가 귀찮아 저녁도 거르고 목욕가운을 입은 채로 냉장고에서 맥주 6캔들이 번들과 과자봉지 몇 개 집어 들고 거실에 앉아 TV를 틀었다.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돌려도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없어 무심히 드라마에 멈춰놓고 맥주의 풀탑을 따서 목부터 축였다.


어제도 술 오늘도 술..., 느는 건 주량과 나의 뱃살뿐이로구나. 한숨을 쉰 다정은 TV에 시선을 주었다.


드라마에서는 다정에게 마치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재벌남과 가난한 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반대하는 남주의 가족이 여주를 찾아와 싸늘한 얼굴로 독설을 내뱉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
쳇, 이렇게 알려주지 않아도, 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라는 건 알고 있다고."


낮에 본부장님을 향한 다정의 마음을 언감생심이라 표현했던 재원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던 그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원은 너그러이 자신을 받아 주겠다는 소리 아닌가.


"
재수 없어, 내가 뭐가 모자라서? 우리 집은 마음이 재벌이야!"


큰소리로 삿대질을 하며 투덜거렸지만 씁쓸한 기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가져다 놓은 과자는 거의 손도 안 대고 맥주만 마셔댔더니 금방 취기가 찾아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야 하는데... 라며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는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 라며 귀찮은 마음에 자신과 타협하며 목욕가운만 걸친 채 그대로 침대 위로 기어올라갔다.


요즘엔 미쳤나 봐. 매일 꿈을 꾸네...


꿈속에서도 여지없이 밀려드는 술기운을 떨쳐내려 안간힘을 쓰며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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