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9
최회장의 은밀한 계획에 따라 진정식품에 입사를 했다. 좀 더 비중 있는 부서에 높은 직급을 원했으나, 사모님이 눈치채기 전 모르게 진행하려는 회장님의 뜻에 따라 홍보부에 입사해 조용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가 지서준에 의해 날벼락을 맞았다.
아무도 생각 못한 갑작스러운 일원호텔의 진정식품 인수는 최회장과 재원에게는 그야말로 다 된밥에 재 뿌린 격이었다. 격분한 재원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떻게 분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며칠을 술만 퍼마셨다.
그날도 술을 마시려 방황하다 칵테일바에 들어섰다. 창가 쪽 칸막이가 쳐있는 끝자리에 두 명의 여성이 앉아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여 그곳을 지나치려는 순간, 커다란 안경을 쓴 촌스런 여자가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잠깐 고개를 숙여 안경을 벗고 손가락으로 눈을 살짝 비빈 후 다시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 보였던 여자의 얼굴에 가슴이 덜컹거렸다. 재원이 여자에게 바란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외모와 재력이면 아무리 사생아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어도 여자들은 끊이지 않았고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으면 그만이었다.
저렇게 이쁜 얼굴을 숨기고 있는 여자를 아름답게 꾸며서 자신의 옆에 내세우고 싶은,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자신만 바라보게 하고 싶다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소유욕이 가슴속에서 들끓었다.
지나쳐 멀찍이 앉으려던 생각을 버리고 가까이 옆자리에 앉아 마티니 한잔 시키고 그녀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 진정을 인수한 지서준 이야기를 하고 있어 기분은 나빴지만, 여자의 이름이 다정이고 진정식품 직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날 사표를 제출하려던 재원은 다정에게 자신을 알리고, 아니 더 나아가 확실하게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 함께 그만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다가갈까 알아본 회사 내 다정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독종이라니..., 말이 없어 보이긴 해도 독해 보일 정도는 아니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다정의 본모습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리고 본부장의 TF팀에서 같이 일하게 되면서, 신도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다정에게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자신의 매력에 꿈쩍도 안 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직원들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평이 나있으니, 다정에게도 자신의 이미지가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얼굴에 경련이 일지 않을까 싶을 만큼 오히려 더 웃고 더 친절하게 대했으나, 자신에게 빠지게 될 거라 자신만만했던 재원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모두에게 선을 긋는 다정이 간혹 본부장에게 시선을 던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게 다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면서 느껴지는 그녀의 감정도 함께 읽게 되었다.
본가에 잠시 들르라는 최회장의 비서로부터 전언이 오자 드디어 올것이 왔다는 것을 이제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느꼈다.
가족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가족들과의 숨 막히는 저녁식사 자리가 끝나고 서재로 자신을 부른 최회장은 문이 닫히자마자, 재원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 그 회사에 남아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세원으로 들어와 일단 자리를 잡고, 네 사람들도 만들어야지! 나는 네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아직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아직 거기서 버티고 있는 이유가 뭐냐? 당장 때려치우고 들어와!"
"아버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네가 그딴 거 뭐하러 신경 써? 그건 그놈이 알아서 하겠지, 자리 비워뒀으니까 앞으로 세원으로 출근해!"
"아버지,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왜?!"
재원이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자 화가 난 최회장이 다시 물었다.
"왜? 이유를 말해! 혹시, 여자 때문이냐?"
재원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최회장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대답하는 재원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 못난 놈! 그딴 연애 놀음한다고 지밥그릇도 안 챙기고 그대로 뺏길 셈이냐?"
"아버지, 이번 프로젝트까지만이라도..."
순간 화가 난 최회장은 책상 위를 훑어보다 그나마 조금 덜 무게가 나갈 것 같은 액자를 들어 재원을 향해 던졌다.
최회장은 재원을 제법 아꼈다. 아내의 눈치가 보여 티를 내지 못할 뿐 세원을 물려주려 생각 중이었다. 원래 세원은 아내 집안의 회사였기에 대놓고 재원에게 줄 수 없어 애가 탔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도 모자를 지경에 여자 때문에 저러고 있는 아들이 갑갑했다.
사실 액자를 던지면서도 맞추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피할 줄 알았던 재원이 그대로 맞아버려 액자 모서리가 이마를 스치며 상처를 냈다. 최회장은 이래저래 속상한 마음에 노성을 질렀다.
"내 눈앞에서 꺼져!, 두말없다. 다음 주에는 무조건 세원으로 출근해라!"
더 이상 설득이 안될 것 같은 최회장의 모습에 재원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왔다. 대문을 나서는 재원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친절한 재원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험악한 표정이었다.
자신은 그렇게 다정을 갖기 위해 애를 쓰는데 사무실에 도착한 자신을 향해 걱정을 내비치는 건 다른 팀원들뿐, 오히려 다정은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자신을 외면해 버리니 재원은 속이 쓰렸다.
자신을 그렇게 하루 종일 외면하더니 본부장을 쳐다볼 때의 다정 본인은 모르겠지만 양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여 사춘기 소녀처럼 보였다. 다정이 가끔 본부장을 남모르게 힐끗 쳐다본다는 걸 재원은 어느 순간 눈치챘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나니까 그래도 쳐다봐주는 거지 본부장 눈에 차기나 할 것 같아?' 재원은 다정을 비웃으며, 언젠간 자신에게 넘어올 순간을 기다리며 참았는데, 자신을 보지 않는 다정에게 화가 나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가끔 다정을 쳐다보는 본부장도 불안했다.
회의 중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을 응시하던 재원은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진정을 그만두면 다정과는 아마 여기서 끝일 것이다. 더 이상 최회장을 설득할 수 없고, 다정 때문에 세원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내가 세원식품 후계자라는 걸 몰라서일 수도 있어...' 재원은 다정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려준다면 자신을 보는 눈빛이 바뀔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을 보고 웃어줄 다정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재원은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
도혁은 본부장실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대답이 없어 의아한 생각에 뒤를 돌아 앉아있는 비서들에게 물었다.
"대표님, TF팀에 계신가요?"
"아뇨, 안에 계실텐데요."
"대표님! 최실장입니다." 이비서의 대답에 도혁은 문을 두드리며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다.
안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도혁은 문을 닫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준이 생각에 잠겨 사무실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도혁이 들어왔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 쳐다도 안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계속 서성였다.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건지 포기한건지 자리에 앉더니 도혁에게 물었다.
"도혁아, 넌 처음 본 여자한테 제일 먼저 뭐부터 물어봐?"
'이 양반이 갑자기 뜬금없이' 도혁은 요즘 안하던 행동을 하는 서준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무슨일 있으세요? 갑자기 처음 본 여자라뇨?"
"사람을 처음 보면 인사를 하거나 이름을 물어보겠지?" 서준은 도혁의 물음에도 혼잣말하며 자신의 물음에 자신이 대답했다. 도혁은 서준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동참하기로 했다.
"네, 저같아도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여쭤볼것 같습니다."
"맞아, 나를 본부장님이라고 불렀다는건..." 서준이 말끝을 흐리자 도혁이 냉큼 대답했다.
"저희 회사 직원이겠죠" 서준은 도혁을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대표님도 아니고 본부장님이라고 불렀어. 그렇다는건 일원호텔이 아닌 진정식품 직원이라는 소리겠지"
도혁은 당최 서준을 따라갈 수 없어 그냥 듣기로 했다.
"네, 호텔직원들은 모두 대표님이라고 부르니까요."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날 본부장님이라고 불렀고, 진정에 있으면서 모든 직원을 다 본건 아니겠지만, 스치며 본 적도 없는 얼굴이야... 그런데, 낯설지가 않아..."
이쯤되자, 도혁도 궁금했다. 서준이 말하는 처음 본 낯설지 않은 그녀가 누군지.
"뭐가요? 외모가요? 분위기?"
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 미간에 힘을 주었다.
"아니 그냥 느낌, 처음 봤는데 처음이 아닌것같고, 익숙한 기분? 뭔가 가슴이 간질간질한? 그런 느낌이 든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꿈이라서 그런가?"
"무슨말인지 도대체가 모르겠네요." 수수께끼도 아니고 도혁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넌 모르겠지... 암튼 그런게 있어."
"쳇" 도혁이 못마땅하다는 듯 소리를 내자, 서준이 사납게 눈썹을 밀어 올렸다.
최회장의 은밀한 계획에 따라 진정식품에 입사를 했다. 좀 더 비중 있는 부서에 높은 직급을 원했으나, 사모님이 눈치채기 전 모르게 진행하려는 회장님의 뜻에 따라 홍보부에 입사해 조용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가 지서준에 의해 날벼락을 맞았다.
아무도 생각 못한 갑작스러운 일원호텔의 진정식품 인수는 최회장과 재원에게는 그야말로 다 된밥에 재 뿌린 격이었다. 격분한 재원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떻게 분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며칠을 술만 퍼마셨다.
그날도 술을 마시려 방황하다 칵테일바에 들어섰다. 창가 쪽 칸막이가 쳐있는 끝자리에 두 명의 여성이 앉아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여 그곳을 지나치려는 순간, 커다란 안경을 쓴 촌스런 여자가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잠깐 고개를 숙여 안경을 벗고 손가락으로 눈을 살짝 비빈 후 다시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 보였던 여자의 얼굴에 가슴이 덜컹거렸다. 재원이 여자에게 바란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외모와 재력이면 아무리 사생아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어도 여자들은 끊이지 않았고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으면 그만이었다.
저렇게 이쁜 얼굴을 숨기고 있는 여자를 아름답게 꾸며서 자신의 옆에 내세우고 싶은,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자신만 바라보게 하고 싶다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소유욕이 가슴속에서 들끓었다.
지나쳐 멀찍이 앉으려던 생각을 버리고 가까이 옆자리에 앉아 마티니 한잔 시키고 그녀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 진정을 인수한 지서준 이야기를 하고 있어 기분은 나빴지만, 여자의 이름이 다정이고 진정식품 직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날 사표를 제출하려던 재원은 다정에게 자신을 알리고, 아니 더 나아가 확실하게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 함께 그만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다가갈까 알아본 회사 내 다정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독종이라니..., 말이 없어 보이긴 해도 독해 보일 정도는 아니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다정의 본모습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리고 본부장의 TF팀에서 같이 일하게 되면서, 신도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다정에게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자신의 매력에 꿈쩍도 안 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직원들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평이 나있으니, 다정에게도 자신의 이미지가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얼굴에 경련이 일지 않을까 싶을 만큼 오히려 더 웃고 더 친절하게 대했으나, 자신에게 빠지게 될 거라 자신만만했던 재원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모두에게 선을 긋는 다정이 간혹 본부장에게 시선을 던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게 다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면서 느껴지는 그녀의 감정도 함께 읽게 되었다.
본가에 잠시 들르라는 최회장의 비서로부터 전언이 오자 드디어 올것이 왔다는 것을 이제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느꼈다.
가족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가족들과의 숨 막히는 저녁식사 자리가 끝나고 서재로 자신을 부른 최회장은 문이 닫히자마자, 재원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 그 회사에 남아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세원으로 들어와 일단 자리를 잡고, 네 사람들도 만들어야지! 나는 네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아직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아직 거기서 버티고 있는 이유가 뭐냐? 당장 때려치우고 들어와!"
"아버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네가 그딴 거 뭐하러 신경 써? 그건 그놈이 알아서 하겠지, 자리 비워뒀으니까 앞으로 세원으로 출근해!"
"아버지,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왜?!"
재원이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자 화가 난 최회장이 다시 물었다.
"왜? 이유를 말해! 혹시, 여자 때문이냐?"
재원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최회장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대답하는 재원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 못난 놈! 그딴 연애 놀음한다고 지밥그릇도 안 챙기고 그대로 뺏길 셈이냐?"
"아버지, 이번 프로젝트까지만이라도..."
순간 화가 난 최회장은 책상 위를 훑어보다 그나마 조금 덜 무게가 나갈 것 같은 액자를 들어 재원을 향해 던졌다.
최회장은 재원을 제법 아꼈다. 아내의 눈치가 보여 티를 내지 못할 뿐 세원을 물려주려 생각 중이었다. 원래 세원은 아내 집안의 회사였기에 대놓고 재원에게 줄 수 없어 애가 탔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도 모자를 지경에 여자 때문에 저러고 있는 아들이 갑갑했다.
사실 액자를 던지면서도 맞추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피할 줄 알았던 재원이 그대로 맞아버려 액자 모서리가 이마를 스치며 상처를 냈다. 최회장은 이래저래 속상한 마음에 노성을 질렀다.
"내 눈앞에서 꺼져!, 두말없다. 다음 주에는 무조건 세원으로 출근해라!"
더 이상 설득이 안될 것 같은 최회장의 모습에 재원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왔다. 대문을 나서는 재원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친절한 재원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험악한 표정이었다.
자신은 그렇게 다정을 갖기 위해 애를 쓰는데 사무실에 도착한 자신을 향해 걱정을 내비치는 건 다른 팀원들뿐, 오히려 다정은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자신을 외면해 버리니 재원은 속이 쓰렸다.
자신을 그렇게 하루 종일 외면하더니 본부장을 쳐다볼 때의 다정 본인은 모르겠지만 양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여 사춘기 소녀처럼 보였다. 다정이 가끔 본부장을 남모르게 힐끗 쳐다본다는 걸 재원은 어느 순간 눈치챘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나니까 그래도 쳐다봐주는 거지 본부장 눈에 차기나 할 것 같아?' 재원은 다정을 비웃으며, 언젠간 자신에게 넘어올 순간을 기다리며 참았는데, 자신을 보지 않는 다정에게 화가 나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가끔 다정을 쳐다보는 본부장도 불안했다.
회의 중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을 응시하던 재원은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진정을 그만두면 다정과는 아마 여기서 끝일 것이다. 더 이상 최회장을 설득할 수 없고, 다정 때문에 세원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내가 세원식품 후계자라는 걸 몰라서일 수도 있어...' 재원은 다정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려준다면 자신을 보는 눈빛이 바뀔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을 보고 웃어줄 다정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재원은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
도혁은 본부장실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대답이 없어 의아한 생각에 뒤를 돌아 앉아있는 비서들에게 물었다.
"대표님, TF팀에 계신가요?"
"아뇨, 안에 계실텐데요."
"대표님! 최실장입니다." 이비서의 대답에 도혁은 문을 두드리며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다.
안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도혁은 문을 닫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준이 생각에 잠겨 사무실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도혁이 들어왔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 쳐다도 안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계속 서성였다.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건지 포기한건지 자리에 앉더니 도혁에게 물었다.
"도혁아, 넌 처음 본 여자한테 제일 먼저 뭐부터 물어봐?"
'이 양반이 갑자기 뜬금없이' 도혁은 요즘 안하던 행동을 하는 서준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무슨일 있으세요? 갑자기 처음 본 여자라뇨?"
"사람을 처음 보면 인사를 하거나 이름을 물어보겠지?" 서준은 도혁의 물음에도 혼잣말하며 자신의 물음에 자신이 대답했다. 도혁은 서준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동참하기로 했다.
"네, 저같아도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여쭤볼것 같습니다."
"맞아, 나를 본부장님이라고 불렀다는건..." 서준이 말끝을 흐리자 도혁이 냉큼 대답했다.
"저희 회사 직원이겠죠" 서준은 도혁을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대표님도 아니고 본부장님이라고 불렀어. 그렇다는건 일원호텔이 아닌 진정식품 직원이라는 소리겠지"
도혁은 당최 서준을 따라갈 수 없어 그냥 듣기로 했다.
"네, 호텔직원들은 모두 대표님이라고 부르니까요."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날 본부장님이라고 불렀고, 진정에 있으면서 모든 직원을 다 본건 아니겠지만, 스치며 본 적도 없는 얼굴이야... 그런데, 낯설지가 않아..."
이쯤되자, 도혁도 궁금했다. 서준이 말하는 처음 본 낯설지 않은 그녀가 누군지.
"뭐가요? 외모가요? 분위기?"
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 미간에 힘을 주었다.
"아니 그냥 느낌, 처음 봤는데 처음이 아닌것같고, 익숙한 기분? 뭔가 가슴이 간질간질한? 그런 느낌이 든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꿈이라서 그런가?"
"무슨말인지 도대체가 모르겠네요." 수수께끼도 아니고 도혁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넌 모르겠지... 암튼 그런게 있어."
"쳇" 도혁이 못마땅하다는 듯 소리를 내자, 서준이 사납게 눈썹을 밀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