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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23분

64화 - #2


빈청 안에 모여있는 대신들은 중구난방으로 설왕설래가 한창이었다.

그들의 주된 이야기는 바로 백석산 봉화를 피어오르게 만든 왜구들에 대한 것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빈청 안으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섰다.

일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였고, 누군지를 알아보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좌상?"

"이제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다들 좌상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들 좌상의 안위를 앞다투어 물었고, 들어선 좌상은 대신들을 돌아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좌상이 다가와 자리에 앉자, 대신들도 따라서 다시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우상이 먼저 좌상을 보며 물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왜변이 일어나 의논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이판인 유상옥이 좌상의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투덜거리듯이 이야기했다.

"왜변이랄 것까지 있겠습니까? 뭐 고작 500명 가지고..."

그러자 병판이 탁상을 탁탁 치며 말했다.

"허허, 거참... 답답합니다. 누차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단순한 왜구들이 아닙니다. 잘 훈련된 병사들이에요. 벌써 수적 우세에 있는 조선군을 두 차례나 격파하고 한양으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답답해하는 병판을 보며 우상이 달래듯이 이야기했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좌상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우상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좌상에게로 쏠렸다.

좌상은 그들을 한 번씩 돌아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잘 훈련된 병사 일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지방 병력만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그렇다고 중앙군을 보내기에도 그 수가 적어 명분이 서질 않지요."

모두가 좌상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중앙군을 내보낼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이어 다시 한번 좌중을 살핀 좌상이 천천히 이어 말했다.

"세자마마를 출정시키세요."

그 말에 모두가 아연실색한 표정이 되었다.

"세, 세자마마를요?"

특히나 유상옥이 놀란 얼굴로 좌상을 보며 되물었고, 이에 좌상이 설명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왜구 500 정도는, 제압치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허나, 얕잡아 봤다가 이미 두 번이나 패했고, 민가에 피해가 막심하다 들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왜구 500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좌상의 말에 모두가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심을 살피기 위해 세자마마가 출정함으로써, 중앙군을 보낼 명분을 얻게 되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함으로써 이 나라 국본의 위상을 돋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유상옥이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과연 좌상대감이십니다. 위기를 기회로 사용한다? 이 어찌 혜안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이어 고개를 끄덕거리던 우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괜히 세자마마께서 출정하셨다가, 혹 변이라도 당하시면..."

그러자 좌상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 걱정되시면, 조선제일검이라는 홍여립 장군으로 하여금 보좌케 하시지요. 설마, 홍장군이 따라가는데, 무슨 변이 생기겠습니까?"

좌상의 말에 대신들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주, 훌륭하신 생각 같습니다. 당장 주상께 아뢰어야겠습니다."

유상옥이 신이 나서 말하자, 그런 유상옥을 보며 좌상이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출정?"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세자를 보며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그러하옵니다. 저하."

"난데없는 출정이라니, 대체 무슨 꿍꿍이 들인가?"

"왜구들를 진압하고 왜구들로 피해본 지역의 백성들을 두루 살피고 오라시는 어명이십니다."

세자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지만, 표정은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를 명목으로 나를 제거하기 위함인가?"

세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니, 수현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도총부의 수장이자, 이 사람의 스승이신 홍여립 장군이 보좌할 것입니다."

그러자 세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나를 보내 놓고, 그 사이 무슨 일을 벌이겠다는 심산인가? 연희를 노림인가?"

세자의 말에 수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연희 곁에 꼭 붙어 있겠습니다."

세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수현을 노려보았다.

"뭘 붙어있어? 딱 떨어져 있어."

"아, 예예. 딱 떨어져서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쪽에 다소곳이 앉아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연희는 세자와 수현의 대화를 듣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세자는 연희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는듯하던 연희는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게... 음... 그런 의견을 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연희의 대답에 세자가 수현을 돌아보았다.

"아, 좌상대감이 주청을 드렸다 합니다."

"좌상? 요 며칠 와병을 핑계로 입궐하지 않더니,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출정 보내려 한다?"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세자를 보며 수현이 말을 이었다.

"와병이야 꾀병 일지 모르겠으나, 왜구들이 한양으로 향하고 있다 하니,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세자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했다.

"현재 나를 노리는 천태호는 천무방이라는 주술 집단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고, 그런 천무방을 뒤에서 도와준 이가 바로 좌상대감이다. 좌상대감은 천무방에 천태호라는 자를 이용해 내 어머니에게 기생령을 심었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급하게 어머니를 처형시켰어. 그는 궁궐 안의 모든 이들을 자기 수족 부리듯 부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 와병을 핑계로 입궐하지 않다가, 왜구가 나타나자 입궐해 나를 출정 보내려 하고 있다. 이것을 어찌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세자의 말을 듣고있던 연희는 궁금한 듯 물었다.

"하온데, 저하. 그 기생령이란 것이 사람 몸에 있다가 나오게 되면 뭔가 안 좋은 것입니까? 꼭 그렇게 처형을 시켜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야, 행동이 갑작스레 바뀌거나 하니 의심을 살 수도 있고... 또..."

말을 멈춘 세자는 수현의 눈을 마주하더니,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 상궁은? 그 상궁은 어찌 되었느냐?"

수현도 잊고 있다가 생각난 듯 "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장 소연이를 불러오너라. 그 상궁을 만나봐야겠다."

'예, 저하."

수현이 서둘러 세자에게 인사를 올리고는 먼저 돌아섰다. 연희를 돌아보며 아쉬운 인사를 나누려 그녀에게 다가서던 세자는 자신을 따라오려 채비하는 연희를 보고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
괜찮겠느냐?"

세자의 물음에 연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세자를 보며 되물었다.

"
예? 무엇이 말입니까?"

"
혹여 그녀를 만나는 것이 불편할까 싶어 묻는 것이다. 불편하다면 예서 기다려도 좋다."

세자의 목소리에 자신을 향한 애정으로 기인한 걱정이 느껴져 연희는 가슴속이 따뜻해져옴을 느꼈다. 연희는 세자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
괜찮습니다. 저하의 뒤에 꼭 붙어 있을 것입니다."

신뢰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희를 보며 세자 역시 마주 웃어 보이며 말했다.

"
그래, 꼭 붙어서 따라오너라."

세자가 연희와 함께 밖으로 나서자, 시립해 있던 내관과 상궁들이 그뒤를 따랐다.

세자는 그들을 돌아보며 명했다.

"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오너라."

세자의 말에 내관과 상궁들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세자와 거리를 두며 따르기 시작했다.

"
지내기에 어떠하냐?"

세자의 물음에 연희가 수줍은 미소를 띠워 보였다.

"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신을 신고, 좋은 것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하의 곁에 있음이 가장 좋습니다."

연희의 말에 세자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
그래, 나 역시 좋다. 네가 좋은 옷을 입으니 좋고, 네가 좋은 신을 신으니 좋고, 또 네가 좋은 것을 먹으니 내 배가 다 부른 것 같구나."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애정어린눈빛을 교환하며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걸었다.

"
하온데 저하, 저하는 앞으로 제가 어찌하길 바라십니까?"

"
어찌하기는, 조만간 나와 혼인을 해야하지 않겠느냐?"

세자가 헛기침을 하며 당연하다는 투로 이야기하니 연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되물었다.

"
예에? 그게... 가능한 것이옵니까? 그리고... 세자빈 간택이 이미..."

"
물론... 세자빈이야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긴 하다만, 너만 괜찮다면... 후궁이... 되는 것이야..."

세자가 어물어물 말끝을 흐리자, 연희도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이내 달큰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이를 전환하려는 듯, 연희가 애써 웃음 지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
그럼... 후궁은 혼례를 어찌 올립니까? 꽃가마타고 민들레 가락지도 끼워주시는 겁니까?"

"
꽃가마는 그렇다치고 민들레 가락지? 아니, 금가락지도 아니고, 은가락지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민들레 가락지냐?"

"
저는 왠지 그게 더 좋습니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가 꽤 좋아했었나 봅니다."

"
뭐... 네가 좋다면야, 무언들 못하겠느냐? 내 전국 방방곡곡을 다 뒤져서라도 만들어 주마."

세자의 말에 연희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민들레는 지천에 널린 것이 민들레입니다. 하다 못해 궁궐 안에도 있사옵니다."

"
어찌 그런 흔한 것으로 만들어 주겠느냐? 내 조선 팔도를 샅샅이 뒤져 가장 이쁜 민들레를 찾아 만들어 줄 것이다."

세자의 말에 연희도 웃고, 웃는 연희를 보며 세자도 따라 웃었다.

그 무렵, 저 앞에서 수현이 소연과 함께 세자를 향해 걸어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세자 앞에 이르러 인사를 올리고, 수현이 세자를 보며 말했다.

"
안 그래도 소연이 예의주시 하고 있었는데, 그상궁의 행동이 이틀 전부터 이전과 달랐다고 합니다."

"
이틀? 그래, 지금은 어떠하더냐?"

세자가 소연을 보며 묻자, 소연이 세자를 보며 대답했다.

"
예, 아무래도 잡아두었던 영을 소환한 듯합니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어째서 붙잡혀 있는지를 물었으며, 기생령한테서 느껴지는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그래, 그렇다면 내 물을 것이 있다. 지금 어디 있느냐?"

세자의 말에 수현이 나서 대답했다.

"
아직은 궐내각사에 수하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가자."

"
예."

세자가 앞장서고, 그 뒤를 수현과 연희, 소연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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