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 #2
서책을 보고 있던 홍소찬에게 하인이 다가와 고했다.
"대감마님, 손님이 찾아왔사옵니다."
홍소찬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물었다.
"손님? 예고도 없이 누가 찾아온 겐가?"
홍소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하인을 따라온 두 젊은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홍소찬을 보자 인사를 먼저 올렸고, 홍소찬은 그중 남자를 알아보자 반가운 표정이 떠오르며 얼굴이 환해졌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도총관이 아니신가?"
그는 바로 도총관 임수현이었고, 그의 곁에 선 이는 소연이었다.
홍소찬이 서둘러 나와 수현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어찌 된 일이신가? 기별도 없이 찾아오고?"
홍소찬이 환하게 웃으며 묻는 말에, 수현도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청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수현의 말에 홍소찬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청해? 무엇을?"
그러자 소연이 나서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소인, 백무 어르신을 모시던 제자 소연이라 하옵니다."
백무라는 말에 홍소찬이 뜻밖이라는 얼굴로, 이내 기억이 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백무를 만나러 갔을 때 본 적 있는 것 같구만."
"예, 아시다시피 그간 세자빈 마마를 위해 법당에 신주를 모셨던 것을 기억하실 것이옵니다."
"그래. 알지."
"이제 그곳에 다른 것을 모실까 합니다."
소연의 말에 홍소찬이 미심쩍다는듯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것?"
"예, 대감께옵서... 가지고 계신 물건을... 모셨으면 합니다."
홍소찬은 짐짓 모르는 척하며 되물었다.
"내... 내가? 내가 뭘...."
모르쇠로 나오는 홍소찬을 보며 수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봉혼벽륜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것을 안전하게 법당 안에 모셔야 세자빈 마마께 나쁜 일이 생기지 않고 오래도록 건강히 사실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잠시 망설이던 홍소찬은 세자빈을 위한 일이라고 하니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았네. 내 가져옴세."
홍소찬은 예령의 방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따라들 오시게."
홍소찬을 따라간 수현과 소연은 예령의 방앞에 멈춰 섰고, 방안에 들어선 홍소찬은 이부자리 사이에 숨겨놓았던 봉혼벽륜을 꺼내 들었다.
잠시 그 봉혼벽륜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그는 천천히 방 밖으로 나와 소연에게 내밀며 말했다.
"잘 부탁하네."
소연이 조심스럽게 받아 들으며 대답했다.
"염려 마시옵소서. 세자빈 마마께옵서 무탈하실 수 있게, 잘 모시겠사옵니다."
홍소찬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수현과 소연은 인사를 하고 그의 집에서 나왔다.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말위에 나란히 올라서며 수현이 소연을 향해 대견하다는듯 말했다.
"이제는 말 타는 품세가 제법 그럴 듯 하구나."
소연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다 도총관 나리 덕이옵니다."
"말을 내어준 것 외에는 딱히 도와준 것이 기억나지 않는데?"
"가장 중요한 말을 내어 주셨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말 타는 법을 연습할 수 있었겠사옵니까?"
"그러한가?"
두 사람은 웃으며 말고삐를 흔들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곧바로 법당으로 갈 것인가?"
"예, 할 일은 우선적으로 해놓아야만 마음이 놓입니다."
"그래. 내 잠시 들를 곳이 있네. 그곳만 잠깐 들렸다 가세."
소연은 짐작되는 바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두 사람이 머지않아 당도한 곳은 그리 크지 않은 묘소였다.
인근에 말을 세워둔 수현은 천천히 묘소 앞으로 다가갔다.
묘소에는 두 개의 봉분이 있었는데, 하나는 스승인 홍여립의 묘였고, 다른 하나는 사형인 표영호의 묘였다.
수현은 두 봉분 앞에 미리 챙겨 온 술잔에 술을 따라 올린 뒤, 절을 하고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이제 모든 것이 정리되었습니다. 편히 눈 감으십시오."
이어 표형호의 봉분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도, 이제 미련은 모두 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오."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수현이, 미련을 털어내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풀잎들을 털어내었다.
이어 말과 함께 있는 소연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 것은 어찌 되었는가?"
"알아보았으나, 별다른 징후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천태호 정도의 주술력에, 그러한 야망을 가진 자라면, 악귀로 변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네만."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 다만, 악귀라는 것이 살아생전의 능력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악귀로 떠돈 시간과 가진 원한에 비례하는 법이기에, 이제 막 죽은 천태호는 설령 악귀가 된다한들, 보잘것없는 망령일 뿐입니다. 더욱이 그는 세상에 대한 원한보다는 자신이 가진 야망에 깊이 빠져 있던 자이니, 악귀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네만. 이제 그만 가세."
수현이 말위에 오르고, 소연 역시 뒤따라 말위에 올랐다.
수현은 말고삐를 돌려 가려다가 멈춰 잠시 묘소의 봉분을 돌아보았다가, 이내 다시 앞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
고운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훈장을 따라 천자문을 외우고 있었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세자빈이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공부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신이 난 듯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있던 그녀 곁으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네었다.
"마마."
그녀는 다름 아닌 소연이었다.
"이제 그만 환궁하시지요. 오래 나와 계시면 아니되옵니다."
"그래."
세자빈은 몸을 돌리기전 멀찍이서 아이들과 함께 희희낙락하는 삼길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더없이 환한 미소를 한번 짓고는 이내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녀의 발길이 멈춘곳엔 부드러운 표정의 늠름한 세자가 말위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수현과 수행 무사들이 일렬로 대기하고 있었다.
소연이 말 한필을 끌고 와 세자빈 앞으로 가져오자, 세자가 나서 말했다.
"아니다. 세자빈은 나와 함께 탈 것이다."
소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하오나..." 하며 되물으려 했으나, 어느덧 세자빈은 세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세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세자빈에게 손을 내밀었고, 세자빈 역시 그를 바라보며 더없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세자빈의 손을 잡고, 세자가 그녀를 끌어올리자, 세자빈은 익숙한 듯 세자의 뒤에 올라타 그를 꼭 끌어안았다.
"불편하오?"
세자가 너스레 물어오는 말에 세자빈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더없이 편합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꼭 끌어안으시오."
"세자저하, 세자빈마마, 다른사람들의 눈도 생각해 주시지요..."
수현이 못말리겠다는듯이 둘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다른 것은 다 기억나는데, 어째 궁궐 예법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세자빈의 능청스러운 말에 세자가 피시식 솟아나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말이 큰 소리로 울고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세자가 탄 말을 필두로 일행 모두가 궁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대감마님, 손님이 찾아왔사옵니다."
홍소찬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물었다.
"손님? 예고도 없이 누가 찾아온 겐가?"
홍소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하인을 따라온 두 젊은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홍소찬을 보자 인사를 먼저 올렸고, 홍소찬은 그중 남자를 알아보자 반가운 표정이 떠오르며 얼굴이 환해졌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도총관이 아니신가?"
그는 바로 도총관 임수현이었고, 그의 곁에 선 이는 소연이었다.
홍소찬이 서둘러 나와 수현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어찌 된 일이신가? 기별도 없이 찾아오고?"
홍소찬이 환하게 웃으며 묻는 말에, 수현도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청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수현의 말에 홍소찬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청해? 무엇을?"
그러자 소연이 나서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소인, 백무 어르신을 모시던 제자 소연이라 하옵니다."
백무라는 말에 홍소찬이 뜻밖이라는 얼굴로, 이내 기억이 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백무를 만나러 갔을 때 본 적 있는 것 같구만."
"예, 아시다시피 그간 세자빈 마마를 위해 법당에 신주를 모셨던 것을 기억하실 것이옵니다."
"그래. 알지."
"이제 그곳에 다른 것을 모실까 합니다."
소연의 말에 홍소찬이 미심쩍다는듯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것?"
"예, 대감께옵서... 가지고 계신 물건을... 모셨으면 합니다."
홍소찬은 짐짓 모르는 척하며 되물었다.
"내... 내가? 내가 뭘...."
모르쇠로 나오는 홍소찬을 보며 수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봉혼벽륜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것을 안전하게 법당 안에 모셔야 세자빈 마마께 나쁜 일이 생기지 않고 오래도록 건강히 사실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잠시 망설이던 홍소찬은 세자빈을 위한 일이라고 하니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았네. 내 가져옴세."
홍소찬은 예령의 방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따라들 오시게."
홍소찬을 따라간 수현과 소연은 예령의 방앞에 멈춰 섰고, 방안에 들어선 홍소찬은 이부자리 사이에 숨겨놓았던 봉혼벽륜을 꺼내 들었다.
잠시 그 봉혼벽륜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그는 천천히 방 밖으로 나와 소연에게 내밀며 말했다.
"잘 부탁하네."
소연이 조심스럽게 받아 들으며 대답했다.
"염려 마시옵소서. 세자빈 마마께옵서 무탈하실 수 있게, 잘 모시겠사옵니다."
홍소찬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수현과 소연은 인사를 하고 그의 집에서 나왔다.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말위에 나란히 올라서며 수현이 소연을 향해 대견하다는듯 말했다.
"이제는 말 타는 품세가 제법 그럴 듯 하구나."
소연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다 도총관 나리 덕이옵니다."
"말을 내어준 것 외에는 딱히 도와준 것이 기억나지 않는데?"
"가장 중요한 말을 내어 주셨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말 타는 법을 연습할 수 있었겠사옵니까?"
"그러한가?"
두 사람은 웃으며 말고삐를 흔들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곧바로 법당으로 갈 것인가?"
"예, 할 일은 우선적으로 해놓아야만 마음이 놓입니다."
"그래. 내 잠시 들를 곳이 있네. 그곳만 잠깐 들렸다 가세."
소연은 짐작되는 바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두 사람이 머지않아 당도한 곳은 그리 크지 않은 묘소였다.
인근에 말을 세워둔 수현은 천천히 묘소 앞으로 다가갔다.
묘소에는 두 개의 봉분이 있었는데, 하나는 스승인 홍여립의 묘였고, 다른 하나는 사형인 표영호의 묘였다.
수현은 두 봉분 앞에 미리 챙겨 온 술잔에 술을 따라 올린 뒤, 절을 하고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이제 모든 것이 정리되었습니다. 편히 눈 감으십시오."
이어 표형호의 봉분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도, 이제 미련은 모두 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오."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수현이, 미련을 털어내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풀잎들을 털어내었다.
이어 말과 함께 있는 소연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 것은 어찌 되었는가?"
"알아보았으나, 별다른 징후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천태호 정도의 주술력에, 그러한 야망을 가진 자라면, 악귀로 변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네만."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 다만, 악귀라는 것이 살아생전의 능력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악귀로 떠돈 시간과 가진 원한에 비례하는 법이기에, 이제 막 죽은 천태호는 설령 악귀가 된다한들, 보잘것없는 망령일 뿐입니다. 더욱이 그는 세상에 대한 원한보다는 자신이 가진 야망에 깊이 빠져 있던 자이니, 악귀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네만. 이제 그만 가세."
수현이 말위에 오르고, 소연 역시 뒤따라 말위에 올랐다.
수현은 말고삐를 돌려 가려다가 멈춰 잠시 묘소의 봉분을 돌아보았다가, 이내 다시 앞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
고운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훈장을 따라 천자문을 외우고 있었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세자빈이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공부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신이 난 듯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있던 그녀 곁으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네었다.
"마마."
그녀는 다름 아닌 소연이었다.
"이제 그만 환궁하시지요. 오래 나와 계시면 아니되옵니다."
"그래."
세자빈은 몸을 돌리기전 멀찍이서 아이들과 함께 희희낙락하는 삼길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더없이 환한 미소를 한번 짓고는 이내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녀의 발길이 멈춘곳엔 부드러운 표정의 늠름한 세자가 말위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수현과 수행 무사들이 일렬로 대기하고 있었다.
소연이 말 한필을 끌고 와 세자빈 앞으로 가져오자, 세자가 나서 말했다.
"아니다. 세자빈은 나와 함께 탈 것이다."
소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하오나..." 하며 되물으려 했으나, 어느덧 세자빈은 세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세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세자빈에게 손을 내밀었고, 세자빈 역시 그를 바라보며 더없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세자빈의 손을 잡고, 세자가 그녀를 끌어올리자, 세자빈은 익숙한 듯 세자의 뒤에 올라타 그를 꼭 끌어안았다.
"불편하오?"
세자가 너스레 물어오는 말에 세자빈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더없이 편합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꼭 끌어안으시오."
"세자저하, 세자빈마마, 다른사람들의 눈도 생각해 주시지요..."
수현이 못말리겠다는듯이 둘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다른 것은 다 기억나는데, 어째 궁궐 예법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세자빈의 능청스러운 말에 세자가 피시식 솟아나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말이 큰 소리로 울고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세자가 탄 말을 필두로 일행 모두가 궁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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