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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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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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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간 예측: 약 6.99분

81화 - #1


저너머 높게 솟아오른 산들을 배경으로,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는 오두막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어져가는 햇살은, 짙은 노을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길 한가운데에 돌아갈 곳 없는 두 아이가 서 있었다.

조금 커 보이는 여자아이는, 동생으로 보이는 앳된 남자아이 손을 꼭 잡은 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눈길로 사방을 살필 뿐이었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자기 배를 내려다보던 남자아이는, 누이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배고파."

배가 고프긴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좀만 참아. 먹을 걸 찾아보자."

여자아이는 남자아이 손을 꼭 잡고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이 생활도 제법 오래한 만큼,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것이라,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 글쎄 진짜라니까..."

누군가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세명의 남자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으잉? 늬들은 뭐냐? 왜 여서 이러고 있어? 엄마는?"

한 남자의 물음에, 여자아이는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돌아가셨어요."

"그래? 쯧쯧... 어쩌다가 돌아가셨데?"

"역병에 걸리셨어요."

역병이란 말에 세 남자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역병? 이 옆 마을에 역병이 돈다더니, 거서 온 모양이네? 쯧쯧..."

"야야, 나서지 마라, 얘들도 걸렸을지 어떻게 알아? 보아하니 저 여자애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두 명의 남자가 겁을 집어 먹고 물러서는 반면, 한 남자는 여자아이 앞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그래, 이름이 뭐니?"

"연희. 송연희라고 합니다."

옆에서 있던 남자아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 대답했다.

"전 삼길입니다. 허삼길."

둘의 대답에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그럼 둘이 남매가 아니구나?"

"예, 저도 가족을 잃었고, 삼길이도 가족을 잃었어요."

남자는 서로 의지하고 있는 두 아이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배고프지? 이거라도 먹어라."

남자는 품 안에 있던 주먹밥을 꺼내어 내주었고, 연희는 놀란 눈으로 얼른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삼길이 역시 얼른 누이를 따라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연희는 받은 주먹밥을 반으로 나누어 삼길이에게 주었고, 삼길이는 받기 무섭게 입으로 가져가 우악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연희 역시 조심스럽게 한입 물었다가, 삼길이가 순식간에 먹어치우자, 남은 자기 것을 다시 삼길이에게 내주었다.

그런 연희를 보며, 남자는 기특한 듯 연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단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운명이란 무엇인가? 뭐 그런 것들을 말이야."

남자는 아이들을 보며, 뭔가 신이 난 듯 다소 허풍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말야... 내가 특별히 너희 점을 봐줄게."

"점을... 보는 게 뭡니까?"

삼길이가 우물 거리며 묻는 말에, 옆에 있던 연희가 삼길을 보며 대답했다.

"그 사람의 운명을 알아보는 거래."

"운명이 뭔데?"

"어떻게 살까,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거."

"그래? 그럼 사는 거야? 죽지만 않으면 됐지 뭐."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아이들답게, 여느 아이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요놈 보게? 허허, 기특한 녀석일세. 좋아. 자, 있어봐라."

남자는 품 안에서 뭔가 붉은색 글귀가 적힌 막대기 몇 개를 꺼내 들었다.

"자, 봐봐라. 이것들을 손으로 꼭 쥐어보거라."

남자가 내민 것을 연희가 받아 들었다.

그 사이, 먼저 가던 사내들이 돌아와 물었다.

"이봐, 안 오고 뭐해? 에? 또 그 짓거리를 하는 게야? 쯧쯧... 아 정신 차려 이 사람아."

누군가의 핀잔에, 남자는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아, 뭔 상관이야? 갈길이나 가!"

"쯧쯧... 한심하기는... 그런다고 밥이 나와 쌀이 나와? 쓸데없는 짓거리나 하고 쯧쯧..."

"아, 남이사! 걱정하지 말고 댁 앞가림이나 잘해!"

"이 사람아, 남 운명 봐준다고 호들갑 떨지 말고, 니 앞가림이나 잘해!"

사내들이 옆에 와서 핀잔을 주든 말든, 남자는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 연희를 보며 웃었다.

"자자, 신경 쓰지 말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마음속으로 '저는 누구입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바닥에 던져 보거라."

연희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마음속으로 '저는 누구입니까?'를 외친 뒤, 바닥에다가 힘껏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나무 막대기는 네 면이 잘린 8개의 나무 조각으로, 마치 윷놀이처럼 바닥에 그 형태를 달리하여 떨어졌다.

남자는 기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나무들의 면을 살폈다.

"보자 보자 보자... 어디 보자.... 그래, 좋아... 오~ 아주 좋은 패가 나왔는데?"

옆에 있던 사내들도 궁금한 듯 고개를 삐죽 내밀며 물었다.

"뭐라는데?"

그러자 남자가 얼른 대답하려는 듯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이고, 이 거봐라? 이거 얘가..."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얘... 얘가..."

남자는 굳어진 표정으로 연희를 위아래 살펴보았다.

얼굴에 묻은 검불이며 허름한 옷까지, 누가 봐도 거지꼴을 한 아이였다.

"얘.... 얘가..."

남자는 말을 잇지 못한 체 망설이고 있었고, 옆에 있던 사내들이 답답한 듯 물었다.

"아, 뭐래? 뭐라고 나온 거길래 말을 안 해?"

"답답하게 뭐하는가? 얼른 말하지 않고?"

남자는 사내들의 독촉에도 황망한 표정으로 연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 가?"

"아, 뭐라는 거여?"

답답한 듯 사내중 하나가 버럭 소리치자, 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이... 얘.... 가... 구, 국.... 모...."

"뭐? 국 뭐?"

"구.... 국... 모..."

사내들은 서로 마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남자를 보며 타박하듯 물었다.

"아 똑바로 말해봐. 국, 뭐?"

"구, 국모가... 될 운명... 이라는데?"

그 말에 사내 둘은 황당무계하다는듯, 이내 큰 웃음을 터드렸다.

"푸하하, 그럼 그렇지. 에라이 이 녀석아... 이런 거지가 무슨... 나~ 참~ 에이 이놈아, 내가 봐도 그것보다는 낫겠다."

"그러니까 말야. 에이 실없는 소리나 하고는. 얼른 가세나."

사내 둘이 키득키득 거리며 갈길을 재촉하자, 남자가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 같이 가!"

남자는 사내들을 따라가면서도, 연신 고개를 돌려 연희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래?"

옆에 있던 삼길이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묻는 말에, 연희는 말없이 그 남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나도 몰라. 딴 데 가자."

"그래."

연희와 삼길은 남자가 간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 놓인 길 너머, 또 다른 마을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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