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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운명

author
·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03 · 최근 연재: 2025-10-05
목차 다음화 ▶
읽기 시간 예측: 약 10.54분

3화 - #3


난장판이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을 것 같았다.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온갖 무구(巫具)들에서 풍겨오는 날 선 기운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발 디딜 틈 없이 온갖 것들이 깔려 있는 바닥 위로 걸음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건너편 문 앞에 이를 무렵, 문 앞에 반쯤 실성한 체 덜덜 떨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얼굴에 반 정도가 피투성이가 된 것이, 머리 위쪽에 상처가 있는 것 같았다.

반쯤 넋이 나간 눈으로 다가오는 그를 보더니 조금 묘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문이 열리고 안에서 신부복을 한 중년 남자가 나오다가 다가오는 그를 보고는 흠칫하더니, 이내 알아보고는 반색을 했다.

"아, 휘영씨 왔어?"

신부는 그 남자, 휘영을 알고 있는 듯 인사를 건네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이쪽이야 이쪽..."

휘영의 시선이 신부에게로 향하고, 그를 따라 문 너머의 가파른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무당복을 입은 체 쓰러져 있는데, 발바닥은 피투성이가 되어 피를 줄줄 흘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아직 앳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부랴부랴 그녀의 발바닥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지독한 놈은 처음이야."

앞서 걷는 신부가 혀를 끌끌 차며 하는 말에도, 발바닥이 피투성이가 된 무당을 보는 와중에도, 휘영이란 남자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무심한 체 그대로였다.

마치 익숙한 듯 담담한 그는, 그저 신부를 따라 걸을 뿐이었고, 2층 창가 쪽 방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그저 퀘퀘한 곰팡이 냄새와 비릿한 피냄새 뿐이었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썩은내가 코를 마비시킬 것만 같았다.

눈살을 찌푸린 휘영을 보며, 신부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코밑에 바르고는 내밀었다.

"이거 바르면 좀 나아."

휘영은 귀찮은 듯 고개를 살짝 흔들어 보이자, 신부는 예상했었다는 듯이 바로 주머니에 넣었다.

두 사람 앞에는 커다란 침대가 있었고, 쇠사슬로 양손과 양발을 침대에 묶어놓은 한 사람이 보였다.

이제 겨우 갓 스무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젊은 남자였는데,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피칠갑을 하고서는 눈이 하얗게 까뒤집힌 상태였다.

묶여 있는 남자를 앞에 두고, 두 명의 스님이 앉아서 불경을 외우며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두 스님 모두 땀을 흠뻑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스님, 일단 좀 쉬었다 하시죠."

신부의 말에 두 스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불경과 목탁을 멈췄다.

두 사람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신부를 보더니,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가 좀 지긋해 보이는 스님이 일어나다가 휘청이자, 젊은 스님이 얼른 부축했다.

"오늘은... 더는 힘들 것 같습니다."

노스님이 어렵사리 말을 꺼내자, 신부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젊은 스님이 노스님을 모시고 바깥으로 나가고 나자, 휘영이 침대 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

그러자 젊은 남자의 고개가 90도 가까이 꺾이며 다가온 휘영을 응시하고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게 뭐야? 산 놈도 아니고, 죽은 놈도 아닐세?"

기괴한 목소리였다. 일반 사람이 듣는다면 등골이 서늘해질 목소리였다.

그러나 휘영은 익숙한 듯 태연한 표정이었고, 마치 아는 사람의 안색을 살피는 듯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야?"

휘영의 물음에 그는 낄낄 거리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쉽게 알려주면 쓰나? 여태 저 잡것들이 애쓰는 거 못 봤어?"

마치 조롱하듯이 말하는 그를 보며, 휘영은 무심한 듯 피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신부를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오신부님, 남자는요...? 살려요?"

휘영의 물음에 잠시 눈을 껌뻑 거리던 오신부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암, 사람은 살려야지."

"살아도... 산 게 아닐 거 같은데요? 못 느끼셨어요? 이미 장기가 썩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된 거죠?"

오신부는 안타까운 표정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2주 됐어. 보통 지독해야지."

"진작에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허스키한 휘영의 목소리가 방안에 낮게 깔리고 있었다.

"키키키... 진작에 왔으면, 이 놈을 살릴 수 있었단 소린가? 자신만만하네?"

그가 조롱하듯 말하고 있지만, 휘영은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신부는 그런 휘영을 보며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내선에서 해결하려고 했지."

"제가 좀 비싸죠?"

"뭐... 싼 건 아니지."

오신부의 대답에 휘영은 이해한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반면 남자의 표정은 금세 일그러졌다.

자신을 무시하는 휘영의 태도가 마뜩잖은 모양이었다.

"뭐하는 놈인지... 네놈과 네놈 식구들까지 모조리 지옥불에 불태워 주마."

휘영은 남자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침대 한쪽에 털썩 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근처에도 오지 않으려 했건만,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옆에 걸터앉자 오히려 남자의 표정이 의아해질 정도였다.

"거, 뭐... 같잖은 소리할거면 닥치고 있어. 얘가 살든 죽든 넌 어차피 소멸될 거니까."

그러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품 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네놈 따위가 뭘 할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말을 하던 남자의 표정이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휘영이 너무도 태연자약하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이는 게 아닌가?

여태까지 이런 태도로 자신을 대한 인간을 본적 없는 남자 안에 악령은,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아무런 말도 못 한 체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반대로 휘영이 마치 악령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 담배 연기를 남자 쪽으로 내뿜으며 물었다.

"니가 원하는 게 뭐야?"

이젠 아예 사람이 목소리가 아닌 울림 같은 소리로 악령이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거? 일단 네놈부터 갈기갈기 찢어 죽여 놓는 것부터 해야 할 것 같구나."

그가 눈을 부릅뜨니, 침대가 잠시 들썩 거렸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악령은 뭔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자 표정이 일그러졌고, 다시금 뭔가 힘을 쓰는 것 같았으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악령이 당황한 듯 휘영에게 물으니, 휘영이 피식 웃으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시끄럽고, 목적이 있을 거 아냐? 목적이 뭐야?"

말을 하며 휘영이 남자의 턱을 잡고 고개를 이쪽저쪽 돌려보며 살피자, 악령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목적? 타락한 인간 세상의 종말을 원한다, 네놈들의 욕망은 끝이 없으니, 이미 지옥에 있는 악마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너희들의 종말과 동시에 이 세상에 모든 악마를..."

"닥쳐."

갑자기 휘영이 말을 자르자, 악령은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런 교과서적인 얘기할 거면 닥치고 있어. 시끄러우니까."

"뭐라고? 네놈이..."

"닥쳐."

휘영은 태연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손끝에 발라서 악령이 씌운 남자의 이마에 어떤 글자를 새겨 넣었다.

입에는 여전히, 담배를 문 체...

담배 연기 때문에 악령에 씌운 남자가 콜록 거리며 기침을 했고, 악령은 괴로운 듯 남자의 몸 밖으로 일렁거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흡사 남자의 몸에서 빠져나오려는 듯해 보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딜 나오려고 그래?"

휘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조롱하듯 말하니, 악령 씌운 남자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뭐하는 짓이야? 왜 나를 이 몸에 묶어 놓는 것이냐?"

"왜? 나올라고 했어? 안 나온다며?"

남자의 표정은 어이없다 못해 벙찐 표정이 되어버렸다.

"나오지 마, 뭘 나와. 어차피 얘도 틀렸어. 그냥 얘 육신이랑 같이 불태워 버리는 게 나아."

그 말에 남자는 물론 뒤에 서 있던 신부의 표정까지 하얗게 질려 버렸다.

"아직 죽지 않았다. 살인을 할 셈인가?"

협박하듯 말하고 있지만, 기세는 한풀 꺾여 있었다.

"상관없어. 지금까지 한두 명 죽인 것도 아니고... 너도 알겠지만, 나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서..."

휘영은 남자의 오른손에도 붉은색 글자를 새겨놓고, 왼쪽 손에 새기기 전에 "아참" 하며 오신부를 향해 말했다.

"신부님. 주차장에 제 차 있는데, 제 차 뭔지 아시죠? 문 열려있거든요. 트렁크에 있는 휘발유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휘... 휘발유?"

놀라서 묻는 신부를 보며 휘영이 남자 쪽에서 보이지 않게 살짝 윙크를 해 보이자, 신부가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알겠네. 가, 가져오지."

오신부가 엉거주춤 서둘러 방을 나서자, 휘영은 다시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왼손을 향해 다가갔다.

바로 그 순간, 남자의 왼손 쪽에서 붉은 기운이 쑤욱하고 뿜어져 나오더니, 옆 창가 쪽에 형체를 맺기 시작했다.

"네 이노옴~~!!"

그 형체는 휘영을 향해 소리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마치 예상했었다는 듯 침대에서 일어난 휘영이 어느새 꺼내 든 단검으로 베어버렸다.

"끼아아아악~"

괴이한 비명소리와 함께, 단검에 베인 악령은 허공에서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고, 그 소리를 들은 오신부가 나가자마자 다시 들어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끄, 끝난건가?"

오신부의 물음에 휘영이 손에 든 단검을 품 안에 갈무리하며 대답했다.

"네... 이 친구 병원부터 데려가 봐야겠어요."

"아, 알았네."

오신부는 부랴부랴 문을 열어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묶여 있는 젊은 남자의 쇠사슬을 풀기 시작했다.

휘영은 그런 상황에 아랑곳없이 태연히 계단을 따라 내려가서는 왔던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도 아닌 것이, 사람 행세를 하고 다니는구나."

갑자기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휘영은 발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보니, 1층 문 옆에 앉아 있는 피투성이 여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휘영이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죽었어야 했는데... 명부에 이름이 없구나. 묘한 팔자로다. 쯧쯧"

겉모습은 40대 초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입에서 할머니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휘영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뒤,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린 게 꼴에 조상신이라고...."

그는 그 말을 남겨놓고 돌아서서 왔던 길을 천천히 돌아갔다.

흩날리던 담배 연기가 앉아 있는 여인에게 날아들자, 돌연 그녀의 표정이 사색이 되더니, 할머니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끼아악~! 이게 뭐야!"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니, 정신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온전히 돌아온 원래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끝났나?"

그 사이 휘영은 이미 주차장으로 나간 상태였다.

오래된 검은색 세단 자동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고, 부르릉 거리는 거친 엔진 소음과 함께 그 건물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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