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6
좁고 낡은 연립주택 안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큼지막한 파리가 여기저기서 날아다니고 있었고,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안으로 들어선 시현은 사람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고, 그를 따라 들어서는 체격이 좋은 남자 역시 인상을 쓴 체 말했다.
"시신 상태가 말이 아니었어요."
시현이 제일 안쪽 방에 들어섰을 때, 피해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넓게 퍼진 짙은 핏자국만 남은 상태였다.
"시신의 부패 상태가 이렇게 심한데... 그동안 주변에서 신고조차 안 한 건가?"
시현의 물음에, 뒤에 서 있는 남자가 대답했다.
"이틀 전에 동네 주민과 만난 적이 있답니다."
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체 그 남자를 돌아보았다.
"이틀? 그럴 리가... 이런 썩은내가 진동하는데, 불과 이틀 전에 살아있었다고?"
"그러니깐요. 저희도 믿을 수가 없었는데, CCTV 상으로도 이틀 전에 행적이 확인이 됐어요."
시현은 다시 시신이 있었던 자리를 보았다.
흐릿한 핏자국은 시신이 쓰러졌던 형태를 남겨놓고 있었고, 검붉은 핏자국은 잔혹한 현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시신은?"
"국과수에서 부검 중이긴 한데... 부검의가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아요."
"살해 수법이 뭐야?"
"그게... 좀 애매해요. 워낙 시신의 상태가 썩어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도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다만..."
남자가 말끝을 흐리자, 시현이 그를 돌아보았다.
"목에 아주 작은 구멍 4개가 있었어요."
"목에 구멍 4개?"
"네. 마치 뭐랄까... 흡혈귀한테 물린 듯한 자국이랄까?"
"흡혈귀?"
시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구요. 진짜 흡혈귀 영화에 나오는 그런 상처랑 비슷했거든요. 아마도 그 상처로 인한 과다출혈이 아닐까 싶긴 한데..."
시현은 바닥에 퍼져 있는 시신의 핏자국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다출혈이면 이것보다는 핏자국이 많았겠지."
남자는 민망한 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가요?"
시현이 시신의 흔적 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흔적을 면밀히 살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큼직한 파리들이 귀찮게 굴었지만, 그는 익숙한 듯 태연한 표정으로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흔적의 발끝에 이르고, 발끝을 따라 문 입구로 천천히 향했다.
시현이 천천히 문 앞의 흔적까지 따라가더니,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그의 시선이 창가에 이르자, 의아한 듯 바라보던 남자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그러자 시현이 창문 쪽을 살피며 대답했다.
"피해자가.... 이 창문 앞까지는 문제없이 걸어왔어."
"네? 그걸 어떻게..."
"발자국 말이야."
시현이 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핏방울 자국이 여기서 한걸음 앞...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까지는 피를 흘리지 않았단 소리지. 그런데 여기를 봐."
시현이 가리킨 장판에는 사람 발자국 모양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다른 곳은 자국이 없는데, 이 자리만 발자국이 남아있어."
남자가 다가와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어, 진짜 그러네요?"
시현은 시신의 흔적이 있는 곳이 발자국과 대략 세 걸음 정도 차이 난다는 것을 확인하며 말했다.
"장판에 발의 흔적이 강하게 남은 이 지점에서, 이 사람의 체중이 급격하게 늘은 거야. 그래서 여기서 갑자기 발자국이 크게 남은 거지."
"체중이 늘었다구요?"
시현이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누군가 덮친 거지."
"아...."
이어 시현이 다시 시신이 있는 곳까지 걸어와서, 흔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상대는 피해자의 목덜미를 공격했어. 상대한테 매달린 체, 그로 인한 체중의 증가가 발자국으로 남았지. 그는 과연 어떻게 들어오고 어떻게 나간 걸까?"
시현은 막 내부에서 증거품을 채집하고 나가려는 국과수 요원을 붙잡으며 말했다.
"장갑 하나 줘봐."
요원이 여분의 장갑을 건네주자, 시현은 그 장갑을 받아 손에 씌우고는 창문을 열어 보았다.
낡은 나무 유리창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렸고, 창문이 열리자 쇠창살 같은 보안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로는 못 들어오겠는데요?"
같이 보고 있던 남자의 말에, 시현은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지. 못 들어오겠지. 그런데 들어왔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네?"
남자는 알아듣지 못한 듯 되물었지만, 시현은 대답하지 않은 체 창문을 보며 고심에 빠져있었다.
돌연 시현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연립주택의 계단을 부랴부랴 뛰어 내려갔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방금 전 자신이 열었던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4층 건물의 4층이었기에, 옥상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낡은 건물 외관은 들쑥날쑥한 마감재로, 위태롭긴 해도 발 디딜 곳은 널려 있었다.
보안창도 허름하고 낡아서 힘을 주어 당기면 빼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할 수 있다곤 해도 너무 위험해 보였다.
굳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할 정도면 원한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일 수 있지만, 그것조차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원한에 의한 살인을 벌일 거라면, 그냥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칼로 찔러 죽이는 게 훨씬 쉬워 보일 정도였다.
"진짜 흡혈귀라도 나타난 건가..."
시현은 4층 현장을 올려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 시현 곁으로 아까 그 남자가 후다닥 따라 나와서는, 같이 4층을 올려다보았다.
"뭐 있어요?"
그 남자의 물음에 시현은 대답 없이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시현이 입에 담배를 물자, 그제야 시선이 시현 쪽으로 향한 남자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시현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쉽지 않겠죠?"
남자의 물음에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뿜어냈다.
"쉽지 않겠는데... 시신을 한번 봐야겠어. 일단 살해 수법을 알아내는 게 먼저일 테니까."
시현이 담배를 피우며 4층을 올려다보자, 남자 역시 따라서 4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일단 동선 쫓아서, 주변 인물들 조사는 시켜 놨어요. 혹시 원한살만한 사람이 있는지, 근래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런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시현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진짜 흡혈귀면 어쩔 거야?"
시현의 물음에 남자가 시현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에? 아이 참... 그냥 해본 소리예요, 선배님도 참..."
그는 시현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는 듯 또다시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했다.
"왜?"
시현은 다시 4층을 올려다보며 이어 말했다.
"흡혈귀면 딱 맞는 추린데..."
시현의 말에 그 남자는 농담인 줄 알고 장단을 맞추며 키득거리고 웃었다.
"그야 그렇죠. 제발 흡혈귀면 좋겠네요. 딱 내 추리가 맞아떨어지게 말이죠. 하하."
그의 시선도 4층으로 향했고, 4층을 바라보는 시현이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
눈을 질끈 감았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분명 칼로 자신을 벤 것 같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슬며시 뜬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니, 자신이 입고 있던 옷만이 살짝 잘려 나가 있었다.
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눈앞에 휘영을 바라보았다.
"한번 해보지, 뭐...."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가 꽤나 무심하게 흘러나왔다.
"뭘....?"
"치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닌 걸로 알고 있어. 다만, 그때까지 지켜줘야 할 게 있어."
휘영이 단검을 품 안에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 같이 나갑시다."
그렇게 말을 한 휘영이 고개를 돌려 어느새 문밖으로 나가 고개만 문틈 사이로 빼꼼히 내밀고 있는 오신부와 윤신부를 향해 말했다.
"이분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치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별다른 연락은 하지 않을 테니, 기다리지 마세요. 차도가 있으면 연락드리죠."
오신부와 윤신부가 서로를 마주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오신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정말... 괜찮겠나?"
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지?"
"서... 다은이요."
"언제 흡혈귀가 된 거지?"
다은은 잠시 생각하며 대답했다.
"한... 2주 정도 지났어요."
"누가 널 흡혈귀로 만들었지?"
"어떤... 남자였어요. 전 그 남자에게 원혼이 씌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 남자는 지금 어디 있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날 이후로 본 적이 없어요."
"너 말고도 흡혈귀가 된 사람이 있나?"
다은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저도 뜻하지 않게 이렇게 됐어요. 제가 그로부터 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예요."
다은의 대답에 휘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갑시다."
그 말을 하고 휘영은 돌아서서 문쪽으로 향했다.
다은은 그런 휘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서둘러 그 뒤를 쫓았고, 다은이 다가오자 윤신부와 오신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에서 훌쩍 물러났다.
"집에 좀 데려다주세요."
휘영이 오신부를 보며 하는 말에, 오신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몇 걸음 앞서서 걸어갔다.
그를 따라 휘영과 다은이 가는 모습을 윤신부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다은이 문득 생각이 났는지 돌아서서 윤신부에게 꾸뻑 인사를 하였다.
휘영은 뒤따라오는 다은을 보지도 않은 체 그녀에게 말했다.
"당분간 내 집에서 지내. 집 밖으로의 외출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허락되지 않을 거야. 여러 가지로 불편하겠지만, 참아봐."
휘영의 단호한 말에, 다은은 "네."하고 대답하였다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왜 마음을 바꾸신 거죠?"
다은의 물음에, 걸어가던 휘영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고, 다은 역시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휘영은 이내 다시 걸어가며 무심한 듯,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걸어가는 휘영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서 있던 다은은, 이내 그를 따라 걸었다.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큼지막한 파리가 여기저기서 날아다니고 있었고,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안으로 들어선 시현은 사람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고, 그를 따라 들어서는 체격이 좋은 남자 역시 인상을 쓴 체 말했다.
"시신 상태가 말이 아니었어요."
시현이 제일 안쪽 방에 들어섰을 때, 피해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넓게 퍼진 짙은 핏자국만 남은 상태였다.
"시신의 부패 상태가 이렇게 심한데... 그동안 주변에서 신고조차 안 한 건가?"
시현의 물음에, 뒤에 서 있는 남자가 대답했다.
"이틀 전에 동네 주민과 만난 적이 있답니다."
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체 그 남자를 돌아보았다.
"이틀? 그럴 리가... 이런 썩은내가 진동하는데, 불과 이틀 전에 살아있었다고?"
"그러니깐요. 저희도 믿을 수가 없었는데, CCTV 상으로도 이틀 전에 행적이 확인이 됐어요."
시현은 다시 시신이 있었던 자리를 보았다.
흐릿한 핏자국은 시신이 쓰러졌던 형태를 남겨놓고 있었고, 검붉은 핏자국은 잔혹한 현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시신은?"
"국과수에서 부검 중이긴 한데... 부검의가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아요."
"살해 수법이 뭐야?"
"그게... 좀 애매해요. 워낙 시신의 상태가 썩어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도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거든요. 다만..."
남자가 말끝을 흐리자, 시현이 그를 돌아보았다.
"목에 아주 작은 구멍 4개가 있었어요."
"목에 구멍 4개?"
"네. 마치 뭐랄까... 흡혈귀한테 물린 듯한 자국이랄까?"
"흡혈귀?"
시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구요. 진짜 흡혈귀 영화에 나오는 그런 상처랑 비슷했거든요. 아마도 그 상처로 인한 과다출혈이 아닐까 싶긴 한데..."
시현은 바닥에 퍼져 있는 시신의 핏자국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다출혈이면 이것보다는 핏자국이 많았겠지."
남자는 민망한 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가요?"
시현이 시신의 흔적 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흔적을 면밀히 살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큼직한 파리들이 귀찮게 굴었지만, 그는 익숙한 듯 태연한 표정으로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흔적의 발끝에 이르고, 발끝을 따라 문 입구로 천천히 향했다.
시현이 천천히 문 앞의 흔적까지 따라가더니,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그의 시선이 창가에 이르자, 의아한 듯 바라보던 남자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그러자 시현이 창문 쪽을 살피며 대답했다.
"피해자가.... 이 창문 앞까지는 문제없이 걸어왔어."
"네? 그걸 어떻게..."
"발자국 말이야."
시현이 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핏방울 자국이 여기서 한걸음 앞...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까지는 피를 흘리지 않았단 소리지. 그런데 여기를 봐."
시현이 가리킨 장판에는 사람 발자국 모양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다른 곳은 자국이 없는데, 이 자리만 발자국이 남아있어."
남자가 다가와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어, 진짜 그러네요?"
시현은 시신의 흔적이 있는 곳이 발자국과 대략 세 걸음 정도 차이 난다는 것을 확인하며 말했다.
"장판에 발의 흔적이 강하게 남은 이 지점에서, 이 사람의 체중이 급격하게 늘은 거야. 그래서 여기서 갑자기 발자국이 크게 남은 거지."
"체중이 늘었다구요?"
시현이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누군가 덮친 거지."
"아...."
이어 시현이 다시 시신이 있는 곳까지 걸어와서, 흔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상대는 피해자의 목덜미를 공격했어. 상대한테 매달린 체, 그로 인한 체중의 증가가 발자국으로 남았지. 그는 과연 어떻게 들어오고 어떻게 나간 걸까?"
시현은 막 내부에서 증거품을 채집하고 나가려는 국과수 요원을 붙잡으며 말했다.
"장갑 하나 줘봐."
요원이 여분의 장갑을 건네주자, 시현은 그 장갑을 받아 손에 씌우고는 창문을 열어 보았다.
낡은 나무 유리창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렸고, 창문이 열리자 쇠창살 같은 보안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로는 못 들어오겠는데요?"
같이 보고 있던 남자의 말에, 시현은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지. 못 들어오겠지. 그런데 들어왔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네?"
남자는 알아듣지 못한 듯 되물었지만, 시현은 대답하지 않은 체 창문을 보며 고심에 빠져있었다.
돌연 시현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연립주택의 계단을 부랴부랴 뛰어 내려갔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방금 전 자신이 열었던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4층 건물의 4층이었기에, 옥상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낡은 건물 외관은 들쑥날쑥한 마감재로, 위태롭긴 해도 발 디딜 곳은 널려 있었다.
보안창도 허름하고 낡아서 힘을 주어 당기면 빼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할 수 있다곤 해도 너무 위험해 보였다.
굳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할 정도면 원한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일 수 있지만, 그것조차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원한에 의한 살인을 벌일 거라면, 그냥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칼로 찔러 죽이는 게 훨씬 쉬워 보일 정도였다.
"진짜 흡혈귀라도 나타난 건가..."
시현은 4층 현장을 올려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 시현 곁으로 아까 그 남자가 후다닥 따라 나와서는, 같이 4층을 올려다보았다.
"뭐 있어요?"
그 남자의 물음에 시현은 대답 없이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시현이 입에 담배를 물자, 그제야 시선이 시현 쪽으로 향한 남자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시현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쉽지 않겠죠?"
남자의 물음에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뿜어냈다.
"쉽지 않겠는데... 시신을 한번 봐야겠어. 일단 살해 수법을 알아내는 게 먼저일 테니까."
시현이 담배를 피우며 4층을 올려다보자, 남자 역시 따라서 4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일단 동선 쫓아서, 주변 인물들 조사는 시켜 놨어요. 혹시 원한살만한 사람이 있는지, 근래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런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시현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진짜 흡혈귀면 어쩔 거야?"
시현의 물음에 남자가 시현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에? 아이 참... 그냥 해본 소리예요, 선배님도 참..."
그는 시현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는 듯 또다시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했다.
"왜?"
시현은 다시 4층을 올려다보며 이어 말했다.
"흡혈귀면 딱 맞는 추린데..."
시현의 말에 그 남자는 농담인 줄 알고 장단을 맞추며 키득거리고 웃었다.
"그야 그렇죠. 제발 흡혈귀면 좋겠네요. 딱 내 추리가 맞아떨어지게 말이죠. 하하."
그의 시선도 4층으로 향했고, 4층을 바라보는 시현이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
눈을 질끈 감았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분명 칼로 자신을 벤 것 같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슬며시 뜬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니, 자신이 입고 있던 옷만이 살짝 잘려 나가 있었다.
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눈앞에 휘영을 바라보았다.
"한번 해보지, 뭐...."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가 꽤나 무심하게 흘러나왔다.
"뭘....?"
"치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닌 걸로 알고 있어. 다만, 그때까지 지켜줘야 할 게 있어."
휘영이 단검을 품 안에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 같이 나갑시다."
그렇게 말을 한 휘영이 고개를 돌려 어느새 문밖으로 나가 고개만 문틈 사이로 빼꼼히 내밀고 있는 오신부와 윤신부를 향해 말했다.
"이분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치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별다른 연락은 하지 않을 테니, 기다리지 마세요. 차도가 있으면 연락드리죠."
오신부와 윤신부가 서로를 마주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오신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정말... 괜찮겠나?"
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지?"
"서... 다은이요."
"언제 흡혈귀가 된 거지?"
다은은 잠시 생각하며 대답했다.
"한... 2주 정도 지났어요."
"누가 널 흡혈귀로 만들었지?"
"어떤... 남자였어요. 전 그 남자에게 원혼이 씌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 남자는 지금 어디 있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날 이후로 본 적이 없어요."
"너 말고도 흡혈귀가 된 사람이 있나?"
다은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저도 뜻하지 않게 이렇게 됐어요. 제가 그로부터 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예요."
다은의 대답에 휘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갑시다."
그 말을 하고 휘영은 돌아서서 문쪽으로 향했다.
다은은 그런 휘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서둘러 그 뒤를 쫓았고, 다은이 다가오자 윤신부와 오신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에서 훌쩍 물러났다.
"집에 좀 데려다주세요."
휘영이 오신부를 보며 하는 말에, 오신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몇 걸음 앞서서 걸어갔다.
그를 따라 휘영과 다은이 가는 모습을 윤신부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다은이 문득 생각이 났는지 돌아서서 윤신부에게 꾸뻑 인사를 하였다.
휘영은 뒤따라오는 다은을 보지도 않은 체 그녀에게 말했다.
"당분간 내 집에서 지내. 집 밖으로의 외출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허락되지 않을 거야. 여러 가지로 불편하겠지만, 참아봐."
휘영의 단호한 말에, 다은은 "네."하고 대답하였다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왜 마음을 바꾸신 거죠?"
다은의 물음에, 걸어가던 휘영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고, 다은 역시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휘영은 이내 다시 걸어가며 무심한 듯,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걸어가는 휘영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서 있던 다은은, 이내 그를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