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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운명

author
·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03 · 최근 연재: 2025-10-05
읽기 시간 예측: 약 10.56분

7화 - #7


물 한 컵을 따라 마신 휘영의 시선의 작은 방 쪽으로 향했다.

잠시 서서 그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휘영이,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고는,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문쪽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려던 그는, 그대로 멈춰 서서는 그 상태 그대로 뭔가 생각에 잠긴 듯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하는 작은 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자, 비로소 안에서 기어들어갈 듯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대답 소리를 들은 휘영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방안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고, 구석에 아주 약하게 켜놓은 수면등이 아니었다면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리라.

수면등은 침대 위에 달려 있었고, 침대는 비어 있었다.

침대 옆에, 문쪽을 향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다은이 양 무릎을 가슴에 붙인 체로 앉아 있었고, 고개를 살짝 들어 꽤나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들어선 휘영을 응시했다.

눈빛을 붉은빛으로 물들어 번득 거리는 것이, 흡사 짐승의 눈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와. 식사는 해야지."

툭 던지듯 무심한 목소리에 다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놀리시는 건가요? 아니면 모르시는 건가요? 너무 배가 고파서 빵을 먹으려고 해 봤어요. 밥도 시도해 봤고, 고기도 먹어보려 했어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어요. 먹으면 구역질이 나고... 죽을 것만 같았다구요."

다은의 원망 어린 목소리에도, 휘영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알아. 그러니까 나와."

무심한 목소리를 남겨놓은 체 휘영은 문을 열어놓고 나가버렸다.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다은은, 반쯤은 호기심에 이끌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원래대로라면 환하게 밝혀져 있어야 할 거실일 텐데, 두꺼운 암막 커튼이 햇빛을 막고 거실 전등은 어두웠다.

전등을 가만히 보니 총 4개가 밝혀져야 할 전등이 1개만 밝혀져 있었다.

따로따로 동작하는 전등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휘영이 3개의 전등을 빼놓았으리라.

배려인가 싶은 생각에 살짝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설명을 해줘도 식사를 같이 하자는 행동은 이해되지 않았다.

주방 쪽으로 걸어가 보니, 식탁에는 식사가 이미 차려져 있었다.

휘영이 앉은 쪽에는 밥과 국의 일반적인 식사가 보인 것에 반해, 다은 쪽에는 핏물이 고여있는 고기가 마치 스테이크처럼 하얀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작은 접시에는 둥근 형체의 핏덩어리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포크와 나이프가 보였다.

"앉아. 하나는 소 안심, 다른 하나는 소 생간이야. 먹어볼 만할 거야."

휘영의 말에 다은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소의 생간이었고, 그걸 보자 엄청난 허기와 식욕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양손으로 생간을 집어 들고 허겁지겁 베어 물었다.

맛을 떠나서 묘한 쾌감이 그녀의 정신을 어지럽히고, 미친 듯이 간을 씹어 먹고 있을 때, 돌연 서슬 퍼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단순히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휘몰아치는 강렬한 살기가 반쯤 실성해 있던 다은의 정신을 번쩍이게 만들기 충분했기에, 그녀는 그 소리에 굳은 듯이 멈춰 있었다.

흡혈귀가 된 다은 조차도 두려움을 느낄 만큼, 차갑고 살벌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는 휘영이 보였다.

"사람처럼 먹어. 지금부터는."

그것은 권유나 부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협박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심장에 말뚝이 박힐 것만 같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죄, 죄송해요..."

다은이 조심스럽게 접시 위에 남은 생간을 내려놓자, 휘영이 옆에서 손수건을 꺼내 다은 앞으로 던져주었다.

"짐승같이 행동하면, 짐승처럼 대할 테니까. 주의해."

싸늘한 휘영의 말에, 다은은 대답하지 못한 체 손에 묻은 핏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솟구쳐 오르는 욕망을 꾹 눌러 참으며, 한 손에는 나이프를, 다른 한 손에는 포크를 든 체, 마치 스테이크를 썰듯이 생간을 잘라 입에 넣어야 했다.

잠깐은 기분이 언짢기도 했지만, 그의 이런 행동이 결국 자신을 위한 행동일 거란 생각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피 외에도... 먹을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다은이 우물우물 고기를 썰어 먹으며 말하더니,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는 휘영을 응시하며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걸 먹으면... 괜찮다는 걸?"

휘영은 대답하지 않은 체 묵묵히 식사를 하며 뜸을 들이다가, 입안에 음식을 다 씹어 삼킨 후에야 말문을 열었다.

"한 100년 전에도... 흡혈귀를 만난 적 있어. 뭐, 나름 친했다고 해두지."

흡혈귀를 알고 있다는 말에 다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도... 있나요? 아, 아니... 계신가요?"

다급히 되묻는 다은을 보며, 휘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럼... 죽은... 건가요?"

"내가."

뜻밖의 대답에 다은은 잘못 들은 듯 "네?"하고 되물었다.

"내가 죽였다고. 진짜로 심장에 말뚝을 박으니까 먼지가 되어 사라지던데?"

다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친하셨다면서요...?"

휘영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은의 두 눈을 응시하며 무심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제 파악 못하고 사람을 노리길래... 그냥 죽여 버렸어."

다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저도... 그러실 건가요? 제가 만약... 사람을 공격하면?"

"물론."

잠깐이지만, 바로 대답하는 휘영의 두 눈에서 놀랍도록 차가운 냉기 어린 눈빛을 보았다.

저 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진심이란 것을 다은은 느낄 수 있었다.

행여나 자신이 다른 그 어떤 누구에게라도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휘영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의 심장에 대못을 박을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다은은 애써 태연한 척, 눈길을 떨구며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 거렸다.

"100년이면... 보통 사람은 그런 모습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인데... 얼마나 오랫동안 사신 거죠?"

"몰라. 안세 봤어."

무심한 그의 대답이 어쩐지 방어적으로 느껴졌다.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어요. 묘한 이질감... 당신은 어떤 존재죠?"

그녀의 질문에 휘영의 식사가 멈춰버렸다.

그리고 막 입가로 향하던 그의 젓가락은 그대로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 버렸고, 휘영의 무심한 시선이 다은의 시선과 마주쳤다.

"사람이었던."

뜻밖의 대답에 다은이 다시 무어라 질문하려는데, 휘영의 대답이 이어졌다.

"너처럼."

두 번째 대답에 다은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뭐라고 뒤이어 물어볼 말이 있었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무얼 물어보려고 했었는지 잊어버렸다.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휘영이 다시 식사를 재개하며 말했다.

"식사나 마저 해."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다은은 자신의 접시 쪽으로 시선을 떨구었고, 남은 식사는 아무런 대화 없이 마쳐야 했다.

식사가 끝나고 티슈로 입가를 닦아내던 다은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휘영에게 다시 말을 건네었다.

"이제 전... 뭘 하면 되죠?"

그릇들을 들고 싱크대로 향하려던 휘영이 멈춰서, 다은을 물끄러미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듯한 무표정한 얼굴에 아무것도 관심 없을 것 같은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널 흡혈귀로 만든 녀석을 찾아야지."

"찾으면요?"

"글세... 그건 찾고 나서 고민해 볼까 싶은데?"

그러고는 빈 밥그릇과 국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가서 그릇들을 물에 담가놓으며 말했다.

"식사 다했으면 빈 식기는 물에 담가놔."

그의 말에 다은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그러든가."

휘영은 예의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휘적휘적 자기 방으로 걸어가 버렸다.

너무 당연한 듯한 반응에, 눈을 껌뻑이며 들어가는 휘영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다은은, 왠지 모를 한숨을 내쉬고는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책상에 앉아 손으로 펜을 돌리며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시현은, 언제나처럼 같은 몽타주를 띄워놓고 있었다.

때마침 시현 근처를 지나던 정 과장이 시현 모니터를 보더니 다가와 뒤에 서며 말했다.

"참, 오래도 본다. 지금쯤이면 그냥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겠어요. 혹시 알아? 담배 많이 펴서 폐암으로 죽었을지?"

정 과장의 말에 시현은 문득 차도에서 마주쳤던, 맞은편에서 담배를 피우던 청년이 생각났다.

갑자기 모니터 앞으로 쭈욱 고개를 내밀어 유심히 보던 시현이 넋 나간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나 이 사람 본 것 같아."

시현의 말에 정 과장이 막 자리를 떠나려다가 잘못 들은 듯 멈춰서 돌아보며 물었다.

"뭐?"

"이 자식... 이 자식 봤어. 어제... 어제 분명히... 내가 그 사건 현장 쪽으로 가다가.... 택시에서 내렸을 때... 사거리... 그 사거리에서 봤어."

정 과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몽타주를 힐끔 보았다.

30년 전에 작성된 몽타주라 연필로 그린 듯, 흐릿한 느낌이 있었고, 인상착의도 사실 길거리에 나가면 10명 중에 2, 3명은 비슷할 것 같은 용모였다.

"아이고... 아 생각을 해봐요. 30년 전이야... 지금쯤이면 우리만큼 늙었을 텐데... 그 정도면 용모가 달라졌겠죠. 지금 저 몽타주면, 딴 놈이에요, 딴 놈. 그리고 이 몽타주 이거.... 참... 이렇게 생긴 사람, 지금이라도 길거리 나가서 붙잡으면 한 시간에 열명은 잡겠어요."

정 과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하는 말에, 시현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정 과장은 그 말을 남겨놓고, 홀연히 자기 갈길을 가버렸고, 홀로 남은 시현은 모니터 위에 떠 있는 몽타주를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긴... 지금쯤 늙었겠지."

하지만 말과는 달리 눈빛은 뭔가 강렬한 기운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뱀파이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 시현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온 시현의 눈에, 때마침 서류봉투를 들고 가는 최형사가 눈에 들어왔다.

"최형사!"

최형사는 유도선수 출신으로 체격이 꽤 좋은 편인데, 바로 전날 함께 흡혈귀 농담을 주고받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

"아, 송 과장님."

그가 시현에게 거수경례를 하자, 시현이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고는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사건 현장 가는 거지? 나 좀 태워줘."

"어, 뭐... 더 보실게 남아 있지 않을 텐데요? 사건 현장 증거품 수집하고 정리됐을 거예요. 차라리 부검 쪽을 확인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 아냐. 현장이 아니라, 그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그래."

"아... 네, 뭐... 저야 어차피 가봐야 하니깐요. 같이 가시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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