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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운명

author
·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03 · 최근 연재: 2025-10-05
읽기 시간 예측: 약 10.64분

2화 - #2


선진당을 몰살시켰던 무관이 신당 안으로 들어서자, 안쪽 시녀들이 서둘러 좌우로 비켜서고 중앙에 있던 무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무녀의 바로 곁에서 그녀를 돕는 보조 무녀 역시 무녀를 따라 인사를 하였다.

"내금위장 오셨습니까?"

족히 50은 넘어 보이는 무녀지만, 젊어 보이는 내금위장을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죽었고, 선진당의 당수는 물론 그 수족들도 모두 죽었소."

내금위장의 말에 흡족한 미소를 짓는 무녀와는 달리, 그녀의 뒤에 있던 보조 무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지며, 눈빛이 흔들렸다.

"실로 다행입니다. 허나, 뭐든지 확실히 해두는 것이 좋겠지요."

무녀는 몸을 돌려 신당에 올려진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에 양손을 살짝 띄워 어루만지듯 만지며 두 눈을 감은 그녀는, 잠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이가 한 명 살아있습니다. 당수도 살아있군요."

그 말에 내금위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그럴 리가?"

그러자 무녀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한 명 정도는 제가 살(殺)을 날려 죽여 드리겠습니다. 염려치 마시지요. 아이가 죽고 나면, 당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주겠나?"

내금위장의 대답에, 무녀는 옆에서 부적 하나를 들어 거울 위에서 태우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손을 내미니 보조 무녀가 대신방울을 내밀었고, 이를 받아 든 무녀가 흔들며 중얼중얼거리더니 점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 무녀를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던 보조 무녀는 옆에 서 있는 내금위장을 힐끔 거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초조해하던 그녀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눈빛이 결의로 채워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주머니 속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어 꾸깃꾸깃 주먹이 움켜쥐고는 아무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무녀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리며 온몸이 붉으락 푸르락 거렸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리며 더욱 세게 대신방울을 흔들었고, 옆에 서 있는 보조 무녀 역시 이를 악물며 얼굴이 붉어졌는데, 누가 볼세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은장도를 뽑아 오른손에 움켜쥐었다.

돌연 대신방울을 흔들던 무녀가 멈춰 섰다.

그녀는 이내 홱하고 고개를 돌려 보조 무녀를 노려보며 외쳤다.

"뭐하는..."

그러나 체 말을 다할 수 없었다.

보조 무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은장도의 칼날을 무녀의 목에 꽂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체 목에 칼이 찔려 눈을 부릅뜬 무녀가 체 쓰러지기도 전에, 이번엔 내금위장의 칼이 보조 무녀를 등을 갈랐다.

"악!"

보조 무녀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대로 쓰러져 절명했다.

내금위장은 쓰러지는 무녀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이보시게!"

하지만 그뿐이었다. 무녀 역시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그녀가 쥐고 있던 대신방울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내금위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보조 무녀를 보며 물었다.

"속행하라!"

그의 말에 보조 무녀는 망설였고, 이를 본 내금위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칼로 그녀의 목을 겨누며 말했다.

"속행하라 하지 않느냐?"

보조 무녀는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예.... 그, 그리하겠습니다."

보조 무녀는 쓰러진 무녀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바닥에 떨어진 대신 방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방울을 흔들며 중얼거리기 시작했으나 일다경도 되지 않아 돌연 검붉은 피를 울컥 토해내며 휘청거렸다.

"어찌 되었느냐?"

그녀가 피를 토한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촉하듯 묻는 내금위장을 보며, 보조 무녀가 대답했다.

"저...저주는 완성 되었습니다... 다만.... 성은이가 다른 주술을 섞어, 결과가 어찌 나올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니? 죽는다는 것이냐, 산다는 것이냐?"

"필경... 어르신께서 죽음에 저주를 거신 것은 맞습니다. 하오나, 성은이가 어떤 주술을 섞었는지 알 길이 없으니...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말씀드린 것입니다."

"젠장!"

내금위장이 분통 터져하더니, 이내 말없이 성큼성큼 신당을 나가버렸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장들은 내금위장이 안에서 화가 난 체 나오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당수와 아이 하나가 살아 있다. 당장 이 잡듯이 뒤져서, 그놈들 목을 가져오너라."

내금위장의 명령에 부장들이 일제히 고개 숙여 대답했다.

"예."

***

의식을 잃은 휘영을 등에 업은 당수가 높은 산길을 올라 당도한 곳에는 허름한 집 한 채가 놓여 있었다.

당수가 지친 표정으로 그곳에 다다르니, 때마침 나물을 채에 담아 밖으로 나오던 노인이 그를 보고 놀라 해 하였다.

"선진당수?"

그가 채를 던져놓고 후다닥 달려 나오니, 당수가 휘영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운사(雲士)어르신, 아이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습니다."

당수의 말에 휘영을 살피던 노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살(殺)을 받았구료."

"살이요?"

"그렇소. 죽음의 저주를 받았소. 헌데 묘하구려. 그 저주에 다른 기운이 섞여 있으니..."

"다른 기운이라뇨?"

"일단 안으로 옮깁시다."

노인이 휘영을 안고 집안으로 향하자, 당수 역시 그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일반적인 집과는 달리, 마치 사찰에 온 듯한 풍경이었고, 중앙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부처님상이 놓여 있었다.

노인은 휘영을 그 상 앞에 바로 눕혀 맥을 짚고는 꽤나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놀랍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엄청난 내공이 휘영의 몸 곳곳에 흩어져 있소."

"백선의 내력입니다. 백선이 죽기 전 휘영에게 내력을 주었습니다."

"쯧쯧... 올바른 방법으로 전수된 것이 아니니... 기혈이 뒤틀려 까닥하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뻔하였소. 아이가 타고난 기질이 훌륭하고, 천운을 타고났으니 이 정도인 것이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기맥이 모조리 타버렸을 것인데... 그런 상태에서 저주의 살을 받았으니... 살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소."

"부탁드립니다, 운사 어르신. 이제 살아남은 아이는 휘영 뿐입니다."

"애초에 칼(刀)로 키워지려 했던 아이들.... 그대들의 방법이 옳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요."

훈계하듯 말하는 운사를 보면서, 당수는 절을 하듯 납작 엎드렸다.

"이제와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다만 이 아이를 살리고자 할 뿐입니다. 거사고 뭐고 필요 없습니다. 제게는... 자식 같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어르신..."

운사는 당수의 간곡한 청을 들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글세... 누군가 죽음의 살을 날렸으나, 또한 그 죽음에서 살아나는 주술을 함께 걸었으니... 묘하다 묘해... 이 아이는 살았으면서 산 것이 아니고, 죽어야 하나 죽지 못하는 묘한 상태가 되어 버렸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선이 중간계와 선계 사이를 오가는 존재라면, 이 아이는 명계와 중간계 사이 그 어디쯤에서 멈춰 버린 것 같구려."

"그럼 어찌 되는 것입니까?"

"나도 알지 못한다네... 과연 이 아이가 살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 죽게 될 것인지..."

잠시 고민하던 운사가 당수를 보며 말했다.

"이 아이를 살리고자 한다면, 이 아이를 선계로 데려가 봐야 할 것 같네."

"선계로 데려가신다고요? 허면...."

"그래, 그곳에서 다른 신선들과 함께 이 아이에게 걸린 저주와 주술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네. 또한 이 아이의 뒤틀린 기혈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다른 신선들의 도움이 필요하네. 이는 오랜 시간이 될 것이네. 인간의 수명으로 기다릴 수 없는 시간이 될 게야."

당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는 휘영을 잠자코 내려다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운사를 보며 대답했다.

"그리 해주십시오. 휘영이가 살아 있을 수만 있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아비가 그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듯, 당수는 휘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은 마치 다시 못 볼 이별을 대하듯, 자상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휘영을 보며 말했다.

"휘영아, 부디 꼭 살아남거라. 그래서, 언젠가 바뀐 세상에서, 너의 삶을 살기를 바라마."

당수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운사에게 큰절을 올렸다.

"부디... 휘영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운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수는 잠시 휘영을 바라보다가 서둘러 그곳을 나섰다.

발길을 돌려 떠나려던 당수는 집 문 앞에서 멈춰 서서 집을 한번 더 돌아보고는 결심한 듯 입술을 꽉 다물고, 산 아래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당수의 머리는 저잣거리에 효수되었다.

당수의 목 옆에는 이름 모를 아이의 목도 같이 걸려 있었는데, 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내금위장 뒤쪽에 서 있던 부장 두 명은 웃는 얼굴로 서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긴장된 눈빛이었다.

"설마... 걸리진 않겠지?"

부장 하나가 나지막한 말로 중얼거리듯 말하자, 다른 부장이 살짝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설마... 그리고 무녀의 살을 받았다잖아. 제까짓 게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어? 이걸로 끝내자고."

둘은 확인하듯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만족스러운 표정에 내금위장이 방향을 바꿔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자,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쳤다.

"수고했어. 이제야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겠구만. 두 사람 공은 후하게 쳐줄 테니, 오늘 밤은 마음껏 즐기시게들."

내금위장의 말에 두 사람은 헤벌쭉한 표정이 되었다.

그곳을 떠나가는 내금위장과 이를 수행하는 수하들이 이내 줄줄이 뒤따르고, 효수된 당수의 얼굴은 목이 잘려 죽은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어쩐지 편안해 보이는 것 같았다.

***

시간은 유수(流水)처럼 흘러 조선의 왕궁 주위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나무로 지어진 허름한 집 대신 시멘트로 만든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왕과 신하들이 오다니던 곳은, 이제 관람객들이 대신 오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온 날들과 다름없이 해는 지고 달이 떴으며, 어둠이 찾아왔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어느 공장의 지하실은 흐릿한 불빛 아래 고요한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도배한 듯한 한 남자가, 불빛 아래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주위를 살폈다.

수십여구의 시신이 널브러진 체, 사방이 피투성이인데, 검은 옷 때문인지 그 남자만 멀쩡해 보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성인 남자의 팔 길이 만한 검이 한 자루 쥐어져 있었는데, 검신(劍身)에 새겨진 금빛 글자 위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검을 한번 세게 휘두르자, 검신에 묻어있던 피가 가 떨어져 나가고, 깨끗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등 뒤에 메고 있는 검자루에 검을 꽃아 넣은 뒤, 담배를 피우며 유유히 그곳을 떠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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