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5
각 부서에서 올라 오는 결재 서류들을 처리하면서, 베이커리 사업도 진행하느라 서준은 잠 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꿈을 꾸기위해 하루에 3~4시간 정도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문득문득 눈을 뜨고 자신을 쳐다 보던 검은 눈동자가 떠올라, 확인하고 싶었다. 짧게 스쳐 지나간 꿈속의 여자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꿈속의 환영일 뿐인지.
하지만 서준의 노력이 무상하게도 그 이후로 꿈을 꾸진 못했다.
***
TF팀을 구성하고 회의실에 모여있는 팀원들을 처음 봤을때 직원들 사이에서 낯설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기업 간의 공식 협력 초청 모임이라던가, 또는 몇번 갔다가 관심없어 돌아나온 사적인 사교모임 등에서 희미하지만 몇 번 스치듯 지나가며 봤던 얼굴들 중의 하나였다. 비록 몇 년 전이라 하더라도 예리하고 기억력 좋은 서준이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서준은 자신이 그를 알아 봤다는 것을 티 내지 않았다. 현재는 부하직원이고 진정에 있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고 볼 생각이었다. 비록 기분이 더럽더라도.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최도혁실장을 불렀다. 최도혁실장은 비서실장이기 이전에 서준이 가장 믿을 수 있는 후배이기도 했다.
"최실장, 세원식품 아들 외국에 있는거 아니었어?"
"세원식품이라면...."
퍼뜩 기억이 나질 않아 도혁은 잠시 망설였다. 솔직히 진정식품을 인수하기 전까지 일원그룹안에 식품쪽으로는 계열사가 없었기때문에 식품기업쪽으로는 딱히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세원식품이 대기업이긴 하지만 특별히 친분이 있는 기업도 아니었기에 바로 답하는게 더 이상할 것이다.
"홍보팀의 최재원대리."
서준이 대신 답해주자 도혁은 생각도 못한 사실에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네? 그 TF팀에 합류한?"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세원식품을 물려받을 지도 모르는 후계자야.. 심지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대도 있어. 그런데 외국에 있다고 알려진 후계자가 세원이 아닌 진정에서 평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라..."
"왤까요? 까놓고 말해 현재 진정에는 유출될 만한 중요한 자료나 기술 같은 것도 없을 텐데요..., 그렇다면 경험을 쌓으려는 걸까요? 홍보팀 최재원대리 하면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인기많은 직원이라고만..."
도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말끝을 흐렸다.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던 서준은 이제서야 알겠다는 듯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비웃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 닭 쫓던 개가 지붕만 쳐다본 꼴이라는 건데..., 그런데, 왤까? 남아있는 이유가?"
"저도 좀 같이 알면 안 될까요? 최대리가 왜? 개입니까?"
도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그냥 묻기로 했다.
"진정에서 은밀히 작업중이었던거야. 아직은 외국에 있다고 소문내고 조용히 입사했을거야, 진정을 인수하면 세원으로 흡수 합병될테니 직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서 미리 잘 보이려 했을 테고, 열심히 일해서 인정도 받고 싶었을 테지, 홍보팀에 있으면서 사보에도 실렸다며? 좋은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래서 착실하게 기반을 다지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거지..., 나한테."
"아..." 이제서야 이해한 도혁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긴..., 몰랐겠지 내가 이렇게 소리도 없이 갑자기 인수할 거라고는, 일원그룹의 우리 가족들 조차 아무도 생각 못했으니까... 그런데 왜 아직까지 남아있을까? 기분 나빠서? 어떻게 물을 좀 흐려놓고 떠나볼까? 하는 심리인가? 하루라도 빨리 세원으로 출근해서 그곳에서 자리를 만드는게 더 낫지 않아?"
"대표님이 최대리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을까요?"
"내가 왜?"
본인이 최재원을 단박에 알아보고도 저렇게 뜬금없이 물어보니 도혁은 황당했다.
"네?"
"최재원도 그렇게 생각할거라고, 지서준이 왜? 나를 알아보겠어. 라고."
참 오만한 남자가 아닐 수 없다. 일원그룹의 지서준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일일이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지서준이.
도혁은 그런 서준을 향해 슬그머니 엄지를 들어 올렸다.
"자만심이 아니고, 최재원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해. 세원 회장이 가끔 데리고는 다녔는데 드러내놓지는 않았거든, 자기 아들이라고. 밖에서 낳은 아들이야. 알다시피 식품쪽은 나도 그당시 그닥 관심을 두진 않았던 때라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어."
"경쟁자 라면?" "본처에게 딸이 있는데, 그 사위가 장모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 제기랄!, 당분간 업무는 TF팀에서 할 테니까, 앞으로 모든 결재 서류는 본부장실 말고, TF팀에 있는 내 방으로 가져와,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면 뭔가 보이겠지"
'이런 찝찝한 기분은 질색인데...' 서준은 최재원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기분이 언짢았다.
***
구내식당에 들어 선 서준과 도혁은 식판을 들고 일부러 TF팀 직원들이 앉아 있는 근처로 지나가는 척을 했다. 둘을 발견한 표대리가 눈을 빛내며 서준을 불렀다.
"본부장님, 저희랑 같이 드세요~"
"그럴까요?"
이전의 서준이었다면 당연히 거절 했을테지만, 자신이 목적한 바가 바로 이것 이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십시오." 서로 인사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최재원이 직원들과 평소 어떤 대화들을 나누는지 이런식으로는 알 수 없겠지만, 은연중에 느껴지는 업무시간 외의 최재원과 직원들의 간격이나 분위기를 알고 싶었다.
정작 서준이 합석을 하고 나자, 다들 조용히 밥만 먹으며 대화를 나눌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언의 압박감을 느낀 도혁이 웃으며 물었다.
"저희가 합석해서 괜히 불편하신 건 아닌가 싶네요... 하하, 편하게 생각하고 대화들 나누시면서 즐겁게 식사하십시오."
커다란 덩치로 어울리지않게 사근사근 웃으며 말하는 도혁에게 서준은 잘했다는 의미로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합석을 권했던 표대리가 전혀 아니라는 듯 양손을 흔들며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티 나게 거짓말을 했다.
"아뇨, 전혀요"
솔직히 표대리도 본부장님이 자신의 권유를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받을지는 몰랐다. 아무리 조각같이 잘생긴 남자라도, 그 남자가 어려운 직장 상사라면 한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니까.
그때, 눈치가 없는 건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관심이 없는 건지, 최재원대리가 생선살을 발라 다정의 식판 위에 올려놓으며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생선구이 정말 맛있네요. 안 드시고 계셔서... 뼈 바르기 힘드셔서 그런가 해서요."
순간,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식탁 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은 상관없다는 듯 최재원대리는 다정을 향해 웃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움찔 놀란 다정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이 남자, 왜 자꾸 이러지? 본부장님도 같이 계신데...'
아까부터 같은 식탁에 앉아있는 본부장님 때문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신경쓰이던 참이었다.
혹시, 앞으로는 꿈에 나오지 않을 테니 실물이라도 실컷 보라는 신의 뜻인가? 하는 미친 생각을 잠시 하고 있었다.
'지금 그런 망상을 할 때가 아니었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앞으로 이런 행동 하지 말아 주세요.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다정은 더 이상 입안으로 밥이 들어갈 것 같지 않아 식판을 들고 일어서며 최재원대리에겐 단호하게, 팀원들에겐 굳은 목소리로 양해를 구하곤 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갔다.
남아있던 팀원들은 어색한 얼굴로 최재원대리를 힐끗 쳐다봤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는 재원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식사를 마저 끝내지도 않고 사라진 다정이 배고프진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저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입맛이 사라진 재원은 팀원들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서준을 향해서는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이곤 식당을 나섰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동안 놀라움에 입을 열지 못하다가, 황과장의 말에 또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뭐, 하긴 우리 이대리가 귀엽긴 하지... 하하하. 최대리가 보는 눈이 있어."
다정 또래 여동생이 있는 황과장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황과장의 의견에 공감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최재원대리를 은근 마음에 두고 있던 표대리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최대리님이 뭐가 아쉬워서..., 다른 여자들 다 놔두고.. 하필, 독종을..."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은 식탁에서 표대리의 혼잣말을 못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안에 담긴 질투심도.
서준과 도혁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았다. 서로를 향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아직은 미션 클리어를 못한 두 사람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
"다음주 에는 식품연구개발팀과 레시피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제품을 몇 가지 여러분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주세경 파티시에와 함께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최상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많이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배포한 자료는 주세경 파티시에의 경력과 포트폴리오입니다. 홍보 제작 시 관련 자료로 첨부하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서준은 고개를 들고 팀원들을 쳐다봤다. 팀원들 모두 호기심을 가지고 파티시에의 자료를 읽어보며 기대감에 눈을 빛내고 있었지만, 최재원 혼자만 달달해 보이는 마카롱 사진을 보고 있는 다정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마치 다정이 마카롱인 양 달달한 눈빛으로.
서준은 형광빛 민트색 니트를 입은 다정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바삭한 마카롱보다는 몽실몽실한 솜사탕인데...'
각 부서에서 올라 오는 결재 서류들을 처리하면서, 베이커리 사업도 진행하느라 서준은 잠 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꿈을 꾸기위해 하루에 3~4시간 정도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문득문득 눈을 뜨고 자신을 쳐다 보던 검은 눈동자가 떠올라, 확인하고 싶었다. 짧게 스쳐 지나간 꿈속의 여자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꿈속의 환영일 뿐인지.
하지만 서준의 노력이 무상하게도 그 이후로 꿈을 꾸진 못했다.
***
TF팀을 구성하고 회의실에 모여있는 팀원들을 처음 봤을때 직원들 사이에서 낯설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기업 간의 공식 협력 초청 모임이라던가, 또는 몇번 갔다가 관심없어 돌아나온 사적인 사교모임 등에서 희미하지만 몇 번 스치듯 지나가며 봤던 얼굴들 중의 하나였다. 비록 몇 년 전이라 하더라도 예리하고 기억력 좋은 서준이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서준은 자신이 그를 알아 봤다는 것을 티 내지 않았다. 현재는 부하직원이고 진정에 있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고 볼 생각이었다. 비록 기분이 더럽더라도.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최도혁실장을 불렀다. 최도혁실장은 비서실장이기 이전에 서준이 가장 믿을 수 있는 후배이기도 했다.
"최실장, 세원식품 아들 외국에 있는거 아니었어?"
"세원식품이라면...."
퍼뜩 기억이 나질 않아 도혁은 잠시 망설였다. 솔직히 진정식품을 인수하기 전까지 일원그룹안에 식품쪽으로는 계열사가 없었기때문에 식품기업쪽으로는 딱히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세원식품이 대기업이긴 하지만 특별히 친분이 있는 기업도 아니었기에 바로 답하는게 더 이상할 것이다.
"홍보팀의 최재원대리."
서준이 대신 답해주자 도혁은 생각도 못한 사실에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네? 그 TF팀에 합류한?"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세원식품을 물려받을 지도 모르는 후계자야.. 심지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대도 있어. 그런데 외국에 있다고 알려진 후계자가 세원이 아닌 진정에서 평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라..."
"왤까요? 까놓고 말해 현재 진정에는 유출될 만한 중요한 자료나 기술 같은 것도 없을 텐데요..., 그렇다면 경험을 쌓으려는 걸까요? 홍보팀 최재원대리 하면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인기많은 직원이라고만..."
도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말끝을 흐렸다.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던 서준은 이제서야 알겠다는 듯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비웃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 닭 쫓던 개가 지붕만 쳐다본 꼴이라는 건데..., 그런데, 왤까? 남아있는 이유가?"
"저도 좀 같이 알면 안 될까요? 최대리가 왜? 개입니까?"
도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그냥 묻기로 했다.
"진정에서 은밀히 작업중이었던거야. 아직은 외국에 있다고 소문내고 조용히 입사했을거야, 진정을 인수하면 세원으로 흡수 합병될테니 직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서 미리 잘 보이려 했을 테고, 열심히 일해서 인정도 받고 싶었을 테지, 홍보팀에 있으면서 사보에도 실렸다며? 좋은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래서 착실하게 기반을 다지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거지..., 나한테."
"아..." 이제서야 이해한 도혁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긴..., 몰랐겠지 내가 이렇게 소리도 없이 갑자기 인수할 거라고는, 일원그룹의 우리 가족들 조차 아무도 생각 못했으니까... 그런데 왜 아직까지 남아있을까? 기분 나빠서? 어떻게 물을 좀 흐려놓고 떠나볼까? 하는 심리인가? 하루라도 빨리 세원으로 출근해서 그곳에서 자리를 만드는게 더 낫지 않아?"
"대표님이 최대리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을까요?"
"내가 왜?"
본인이 최재원을 단박에 알아보고도 저렇게 뜬금없이 물어보니 도혁은 황당했다.
"네?"
"최재원도 그렇게 생각할거라고, 지서준이 왜? 나를 알아보겠어. 라고."
참 오만한 남자가 아닐 수 없다. 일원그룹의 지서준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일일이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지서준이.
도혁은 그런 서준을 향해 슬그머니 엄지를 들어 올렸다.
"자만심이 아니고, 최재원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해. 세원 회장이 가끔 데리고는 다녔는데 드러내놓지는 않았거든, 자기 아들이라고. 밖에서 낳은 아들이야. 알다시피 식품쪽은 나도 그당시 그닥 관심을 두진 않았던 때라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어."
"경쟁자 라면?" "본처에게 딸이 있는데, 그 사위가 장모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 제기랄!, 당분간 업무는 TF팀에서 할 테니까, 앞으로 모든 결재 서류는 본부장실 말고, TF팀에 있는 내 방으로 가져와,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면 뭔가 보이겠지"
'이런 찝찝한 기분은 질색인데...' 서준은 최재원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기분이 언짢았다.
***
구내식당에 들어 선 서준과 도혁은 식판을 들고 일부러 TF팀 직원들이 앉아 있는 근처로 지나가는 척을 했다. 둘을 발견한 표대리가 눈을 빛내며 서준을 불렀다.
"본부장님, 저희랑 같이 드세요~"
"그럴까요?"
이전의 서준이었다면 당연히 거절 했을테지만, 자신이 목적한 바가 바로 이것 이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십시오." 서로 인사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최재원이 직원들과 평소 어떤 대화들을 나누는지 이런식으로는 알 수 없겠지만, 은연중에 느껴지는 업무시간 외의 최재원과 직원들의 간격이나 분위기를 알고 싶었다.
정작 서준이 합석을 하고 나자, 다들 조용히 밥만 먹으며 대화를 나눌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언의 압박감을 느낀 도혁이 웃으며 물었다.
"저희가 합석해서 괜히 불편하신 건 아닌가 싶네요... 하하, 편하게 생각하고 대화들 나누시면서 즐겁게 식사하십시오."
커다란 덩치로 어울리지않게 사근사근 웃으며 말하는 도혁에게 서준은 잘했다는 의미로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합석을 권했던 표대리가 전혀 아니라는 듯 양손을 흔들며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티 나게 거짓말을 했다.
"아뇨, 전혀요"
솔직히 표대리도 본부장님이 자신의 권유를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받을지는 몰랐다. 아무리 조각같이 잘생긴 남자라도, 그 남자가 어려운 직장 상사라면 한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니까.
그때, 눈치가 없는 건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관심이 없는 건지, 최재원대리가 생선살을 발라 다정의 식판 위에 올려놓으며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생선구이 정말 맛있네요. 안 드시고 계셔서... 뼈 바르기 힘드셔서 그런가 해서요."
순간,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식탁 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은 상관없다는 듯 최재원대리는 다정을 향해 웃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움찔 놀란 다정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이 남자, 왜 자꾸 이러지? 본부장님도 같이 계신데...'
아까부터 같은 식탁에 앉아있는 본부장님 때문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신경쓰이던 참이었다.
혹시, 앞으로는 꿈에 나오지 않을 테니 실물이라도 실컷 보라는 신의 뜻인가? 하는 미친 생각을 잠시 하고 있었다.
'지금 그런 망상을 할 때가 아니었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앞으로 이런 행동 하지 말아 주세요.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다정은 더 이상 입안으로 밥이 들어갈 것 같지 않아 식판을 들고 일어서며 최재원대리에겐 단호하게, 팀원들에겐 굳은 목소리로 양해를 구하곤 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갔다.
남아있던 팀원들은 어색한 얼굴로 최재원대리를 힐끗 쳐다봤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는 재원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식사를 마저 끝내지도 않고 사라진 다정이 배고프진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저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입맛이 사라진 재원은 팀원들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서준을 향해서는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이곤 식당을 나섰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동안 놀라움에 입을 열지 못하다가, 황과장의 말에 또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뭐, 하긴 우리 이대리가 귀엽긴 하지... 하하하. 최대리가 보는 눈이 있어."
다정 또래 여동생이 있는 황과장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황과장의 의견에 공감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최재원대리를 은근 마음에 두고 있던 표대리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최대리님이 뭐가 아쉬워서..., 다른 여자들 다 놔두고.. 하필, 독종을..."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은 식탁에서 표대리의 혼잣말을 못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안에 담긴 질투심도.
서준과 도혁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았다. 서로를 향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아직은 미션 클리어를 못한 두 사람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
"다음주 에는 식품연구개발팀과 레시피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제품을 몇 가지 여러분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주세경 파티시에와 함께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최상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많이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배포한 자료는 주세경 파티시에의 경력과 포트폴리오입니다. 홍보 제작 시 관련 자료로 첨부하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서준은 고개를 들고 팀원들을 쳐다봤다. 팀원들 모두 호기심을 가지고 파티시에의 자료를 읽어보며 기대감에 눈을 빛내고 있었지만, 최재원 혼자만 달달해 보이는 마카롱 사진을 보고 있는 다정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마치 다정이 마카롱인 양 달달한 눈빛으로.
서준은 형광빛 민트색 니트를 입은 다정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바삭한 마카롱보다는 몽실몽실한 솜사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