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11
그녀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무당집 특유의 알싸한 향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자그마한 방 한가운데, 큼지막한 책상 너머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년의 남자가 돋보기 안경을 추켜올리며 안으로 들어선 그녀를 응시했다.
"뭘 쭈뼛거려? 어여 앉아."
노인의 호통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책상 양끝에는 잘 가꿔진 초록빛 난잎이 화려한 화분에 담겨 싱싱함을 뽐내고 있었고, 한쪽에는 이름 모를 한자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떻게 왔어?"
"네.... 저기..."
그녀가 무어라 대답하려는데, 노인이 그녀를 힐끔 보더니 눈앞에 있는 검은 표지의 책을 펼쳐 들었다.
"남편이 문제야?"
"... 네."
노인은 혀끝을 끌끌 차고는, 책장을 연신 넘겨댔다.
"남편 사주 줘봐."
"남편... 사주요?"
노인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꾸짓듯 말했다.
"아, 사주를 줘야, 뭔 팔자인지 알 거 아냐? 이런데 처음 와봐?"
"아... 근데, 남편은 죽었는데...."
그러자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남편 때문에 온 거 아니었어? 그럼 왜 온 건데?"
"남편 때문에 온 거 맞아요."
"죽었다며?"
"네."
여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노인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다 눈을 껌뻑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무슨 소리야? 죽은 남편이 왜?"
여자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자꾸... 죽은 남편이 보여요."
보통 그런 얘기를 할때면, 대다수 사람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말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여인은 뭔가 재밌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천진한 표정이었다.
"죽은 남편이 보인다고?"
"네. 남편뿐만 아니에요. 이 사람, 저 사람... 다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노인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천천히 느린 동작으로 오른손을 슬며시 내려서 책상 아래쪽 서랍을 조심스럽게 열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들이 왜 보일까? 그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나?"
노인은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
여인은 아주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공통점이 있어요."
"어떤 공통점?"
"모두 제가 죽인 사람들이에요."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여인을 보며 노인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재빨리 서랍에 넣은 손으로 안에든 물건을 움켜잡는 순간,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머리를 잃은 노인의 몸이 의자에서 흐물거리듯 무너져내렸고, 마주 앉은 여인의 목은 길쭉하게 뻗어 나와 흡사 뱀처럼 꿈틀거렸다.
'우드득 우드득'
뼈가 바스러지는 괴이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지고, 거대해진 여인의 머리는 맛있는 것을 먹는 듯 입을 우물거렸다.
"히히히히히...."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그녀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방안에 스며들듯 울려 퍼졌다.
***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재현의 코를 엄습해 왔다.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서자, 몇몇 사람들이 오다니는 모습과 사진 찍고 있는 부서 내 막내 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아, 왔어?"
누군가 재현을 보고 알은체를 하자, 재현은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무슨 일이야?"
재현 앞으로 다가온 이는 재현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동기, 문태식 팀장이었다.
"에이씨, 밥 먹기 글렀어. 살인 사건이야."
"살인 사건?"
"그래. 어찌나 참혹한지... 어우..."
문 팀장이 너더리를 내며 손사레를 치자 재현의 시선이 사무실 안쪽 방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리며 움직이고, 냄새가 풍겨오는 방향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저 방안에 시신이 있을 것이다.
발걸음을 옮기려는 재현을 문 팀장이 가로막았다.
"보지 마. 아우, 며칠 동안 잊지 못할 거 같아."
"익숙해."
재현은 별일 아니란 듯, 문 팀장을 지나 그 방으로 들어섰다.
재현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엔틱한 책상 너머로 목위로 머리가 없는 사람의 시신이 의자에 앉은 체 죽어 있었다.
잘려나간 목 부위는 흡사 물어뜯긴 듯 불규칙적으로 훼손되어 있었고, 뜯긴 살점에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재현이 놀란 눈으로 쳐다만 보고있자, 문 팀장이 뒤로 다가서며 말했다.
"머리가 없어서... 찾아보고 있긴 한데, 못 찾았어."
재현은 사망한 시신의 주위를 눈여겨 쳐다보았다.
사방팔방 피가 잔뜩 묻어있는 모습과 그 형태를 보면서, 어떻게 혈흔이 저렇게 남을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가며 방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서고는 몸을 바짝 낮추어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문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재현의 뒷모습을 의아한 눈길로 쳐다봤다. 자리에서 일어난 재현이 벽에 묻는 피로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고는 문 팀장을 돌아보았다.
"여 있네. 머리."
"뭐?"
"머리가 여기 있다고."
"무슨 소리야?"
문 팀장이 뭔가 싶어 다가가 벽에 묻은 혈흔을 보았다.
가만히 보니 혈흔만 있는 게 아니라 뜯겨 나간 것 같은 살점도 같이 보였다.
"머리가 분쇄된 거야."
재현의 말에 문 팀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분쇄? 박살 났다고?"
"그래.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얼마 안 남아있네."
"그래... 분쇄됐으면... 뼈라도 남아야지. 아니면 저런 살점이 머리 크기만큼 있던가."
"머리는 뇌수로 차 있어. 갈면 얼마 안 나와."
문 팀장이 "으..." 하며 기겁을 했다.
"그런 소리를 잘도 하네."
재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문 팀장을 돌아봤다.
"동네 안전이나 지키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허구한 날 보다 보면 별거 아냐."
"잘났어. 광수대에서 가져가. 난 이런 사건 질색이야."
재현은 예의 피식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두눈은 놓치는게 없는지 연신 현장을 두리번거렸다.
"목격자나 CCTV는 확보된 거 있어?"
"하고 있어. 신원은 확인된 거 같던데..."
"신원정보나 줘봐. 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좀 볼게."
그러다가 시신 뒤에 있는 병풍을 흘끗 보고는 고개를 돌려 문 팀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박수무당인가?"
"맞아. 어떻게 알았어?"
재현은 혹시 뭐라도 있을까 병풍을 자세히 보기 위해 책상 옆으로 다가섰다가, 턱끝으로 시신을 가리켰다.
"옷."
재현의 위치에서 시신의 아래쪽까지 확인할 수 있었기에, 남자들이 입는 개량 한복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병풍에서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한 재현이 시신 곁으로 바짝 다가가자, 문 팀장이 걱정되는 듯 만류했다.
"야야, 조심해라. 이상한 흔적 남기지 말고. 감식반에서 난리 난다."
재현은 못 들은 척, 몸을 숙여 시신의 오른쪽을 보았다.
오른쪽은 보조책상으로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신의 왼쪽 편으로 돌아서 들어와야 했다.
그 오른쪽 보조책상 서랍이 열려 있고, 거기에는 붉은빛이 감도는 나무 막대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시신의 손끝이 향한 곳이 그곳임을 눈여겨본 재현은, 이 사람이 죽기 직전 이 물건을 잡으려 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재현이 주머니에서 비닐장갑 하나를 꺼내어 손에 씌우더니, 시신이 잡으려 했던 그 나무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길이는 한 척 정도 되는 자그마한 막대기였고, 마치 나무줄기를 그대로 떼어다가 코팅만 한 것 같이 번들 거렸다.
"치위용안목(治危龍眼木)이라..."
재현이 막대기에 새겨진 글귀를 읽으며 다시 조심스레 바깥으로 나오자, 문 팀장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게 뭔데?"
"글세. 나도 모르지."
재현은 그막대기를 감식반이 가져다 놓은 물건들 사이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들어 그 안에 담았다.
뒤이어 그걸 품 안에 갈무리하자, 문 팀장이 미쳤어?라며 눈으로 말하고 입으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그걸 왜 챙겨?"
"좀 알아보고 제 자리에 다시 갔다 놓을게. 도와달라며?"
"야, 그래도 그렇지. 증거를 가져가면 어떻게?"
"무슨 증거? 감식반 애들 조사 끝낸 거 아냐?"
"그... 그렇긴 하지만..."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던 물건이야. 그러니까 그냥 놔둔 거 아냐? 내가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그래. 알아보고 고스란히 갔다 놓든지, 너한테 갔다 주든지 할 테니까, 못 본 척 해."
"참나... 뻔뻔하기도 해라. 뭐 짚이는 게 있는 거야?"
"조금.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
재현이 현장을 벗어나 바깥쪽으로 향하자 뒤에서 문 팀장이 소리쳤다.
"야, 언제 밥이나 먹자."
재현은 대답 없이 손만 흔들어 보이고는 홀연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
"꺄하하하하"
세희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안방 문이 열리고 수호가 밖으로 나왔다.
꽤나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느릿느릿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 물을 컵에 따라 마신 수호의 눈에 TV 앞에서 깔깔 거리며 웃고 있는 세희가 보였다.
그녀 앞에 아까 사준 치킨이 반쯤은 없어진 체였고, 손에는 여전히 치킨이 들려져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연신 깔깔 거리는 세희의 모습에 궁금증이 일어 앞으로 슬며시 다가가 보니, TV에서는 어느 예능 프로가 한참 우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이없는 실소를 지은 수호가 세희를 보며 물었다.
"열두 사도인지 뭔지 죽이러 온다는데, 세상 이리 태평할 수도 있구나?"
왜 또 저래? 세희는 웃다 말고, 굳어진 얼굴로 수호의 의중을 짐작하고자 눈을 가늘게 뜨며 돌아보았다.
"갑자기 왜 또 시비를 걸고 그러실까아?"
세희의 물음에 수호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꼈다.
"지금 이게 내가 시비 거는 걸로 보여? 걱정하는 걸로 보이는 게 아니라?"
세희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은요~? 그런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데?"
"하~참~"
어이없다는듯 수호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세희를 돌아보았다.
"그 열두 사도 이야기는 혹시 지어낸 거세요?"
비아냥 거리는 수호의 질문에 세희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죽이러 온다고, 올 때까지 벌벌 떨면서 삽니까?"
"아니, 뭐 그건 아니라도..."
"나도 기감(氣感)이란게 있어서, 위험이 다가오면 얼추 알아채거든요?"
"오~? 그래? 어유~ 야~ 기특하네."
수호가 장난스럽게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자, 세희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게 뭐 하는 거죠?"
"왜? 기특해서 머리 좀 쓰다듬어 준 건데?"
가만히 수호를 노려보던 세희가 갑자기 수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 뭐야?"
놀라는 수호의 뒷 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 세희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이봐, 이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수호는 망했다..라는 얼굴로 세희 손에 들린 물건을 아쉽게 쳐다보았다.
그것은 바로 수호가 뒤춤에 한 장 꽃아 둔 타로카드였다.
"내 거 하나 만들려고?"
세희가 기세 등등하게 타로카드를 흔들며 쏘아붙이자, 수호는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혹시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세희가 카드를 힐끔 보더니 수호에게 내보이며 물었다.
"이거... 무슨 의미죠?"
그 카드는 첫 번째, 광대 카드였다.
"그, 그거? 광대. 광대야 광대..."
세희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
"내가 모를 줄 알고? 내가 딴 건 몰라도, 눈치는 좀 있는 편이라서... 광대 말고 다른 의미도 있죠?"
"무, 무슨 의미?"
"나중에 내가 따로 알아봐서 알게 되면... 뒷감당 가능하겠어요? 그땐... 야차 하나로는 안 끝날 텐데?"
수호가 되려 기가찬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 야~ 너~ 지금 협박하는 거야?"
"네,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지금. 완전."
수호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이내 활짝 웃는 얼굴로 능청스럽게 굴었다.
"에이~ 장난이야, 장난... 무슨 의미가 있어? 그냥 장난치려고 그랬던 거지."
수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다가와 타로카드를 잡으려 했으나, 세희가 얼른 팔을 굽혀 수호의 손길을 피했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 뭐 이런 얘기 못 들어 보셨나?"
"어, 못 들어 봤어. 얼른 내놔!"
수호가 살짝 짜증을 내자, 세희가 마지못한 듯 카드를 뺏기며 말했다.
"진짜, 다른 의미 없지~요?"
수호가 카드를 품 안에 넣으며 대답했다.
"있어. 어릿광대, 바보, 뭐 그런 의미들이 있지."
세희가 부리부리하게 눈을 치켜뜨자, 수호가 고개를 저으며 방어하듯 양손을 들어올렸다.
"별거 아냐. 원래 의미란게..."
그러나 체 말을 다하지 못했다.
별안간 세희가 수호의 머리카락을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아~! 야, 너 뭐해?"
수호가 당황하여 외치는 순간, 세희가 성질을 내며 소리쳤다.
"뭐어~? 바보오~?"
"야야야, 아아, 야, 잠깐만, 잠깐만..."
그러다 수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은 세희의 손을 덥석 움켜잡더니 고개를 숙였다.
수호의 동작에 세희는 손목이 꺾이는 것을 느껴 어쩔 수 없이 놓아주고 뒤로 물러서려는 그 순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세희가 그만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 했다.
"어?"
세희가 놀란 표정으로 수호의 소매를 붙잡는 찰나, 수호가 세희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붙잡았다.
그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이 얼어붙듯 서로를 붙잡은 체 서 있는데, 방금 전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온 재현이 두 사람을 보고는 멈칫 굳어져버렸다.
"니네 뭐하냐?"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로를 쳐다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재현에게로 향했다.
자그마한 방 한가운데, 큼지막한 책상 너머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년의 남자가 돋보기 안경을 추켜올리며 안으로 들어선 그녀를 응시했다.
"뭘 쭈뼛거려? 어여 앉아."
노인의 호통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책상 양끝에는 잘 가꿔진 초록빛 난잎이 화려한 화분에 담겨 싱싱함을 뽐내고 있었고, 한쪽에는 이름 모를 한자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떻게 왔어?"
"네.... 저기..."
그녀가 무어라 대답하려는데, 노인이 그녀를 힐끔 보더니 눈앞에 있는 검은 표지의 책을 펼쳐 들었다.
"남편이 문제야?"
"... 네."
노인은 혀끝을 끌끌 차고는, 책장을 연신 넘겨댔다.
"남편 사주 줘봐."
"남편... 사주요?"
노인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꾸짓듯 말했다.
"아, 사주를 줘야, 뭔 팔자인지 알 거 아냐? 이런데 처음 와봐?"
"아... 근데, 남편은 죽었는데...."
그러자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남편 때문에 온 거 아니었어? 그럼 왜 온 건데?"
"남편 때문에 온 거 맞아요."
"죽었다며?"
"네."
여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노인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다 눈을 껌뻑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무슨 소리야? 죽은 남편이 왜?"
여자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자꾸... 죽은 남편이 보여요."
보통 그런 얘기를 할때면, 대다수 사람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말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여인은 뭔가 재밌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천진한 표정이었다.
"죽은 남편이 보인다고?"
"네. 남편뿐만 아니에요. 이 사람, 저 사람... 다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노인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천천히 느린 동작으로 오른손을 슬며시 내려서 책상 아래쪽 서랍을 조심스럽게 열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들이 왜 보일까? 그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나?"
노인은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
여인은 아주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공통점이 있어요."
"어떤 공통점?"
"모두 제가 죽인 사람들이에요."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여인을 보며 노인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재빨리 서랍에 넣은 손으로 안에든 물건을 움켜잡는 순간,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머리를 잃은 노인의 몸이 의자에서 흐물거리듯 무너져내렸고, 마주 앉은 여인의 목은 길쭉하게 뻗어 나와 흡사 뱀처럼 꿈틀거렸다.
'우드득 우드득'
뼈가 바스러지는 괴이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지고, 거대해진 여인의 머리는 맛있는 것을 먹는 듯 입을 우물거렸다.
"히히히히히...."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그녀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방안에 스며들듯 울려 퍼졌다.
***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재현의 코를 엄습해 왔다.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서자, 몇몇 사람들이 오다니는 모습과 사진 찍고 있는 부서 내 막내 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아, 왔어?"
누군가 재현을 보고 알은체를 하자, 재현은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무슨 일이야?"
재현 앞으로 다가온 이는 재현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동기, 문태식 팀장이었다.
"에이씨, 밥 먹기 글렀어. 살인 사건이야."
"살인 사건?"
"그래. 어찌나 참혹한지... 어우..."
문 팀장이 너더리를 내며 손사레를 치자 재현의 시선이 사무실 안쪽 방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리며 움직이고, 냄새가 풍겨오는 방향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저 방안에 시신이 있을 것이다.
발걸음을 옮기려는 재현을 문 팀장이 가로막았다.
"보지 마. 아우, 며칠 동안 잊지 못할 거 같아."
"익숙해."
재현은 별일 아니란 듯, 문 팀장을 지나 그 방으로 들어섰다.
재현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엔틱한 책상 너머로 목위로 머리가 없는 사람의 시신이 의자에 앉은 체 죽어 있었다.
잘려나간 목 부위는 흡사 물어뜯긴 듯 불규칙적으로 훼손되어 있었고, 뜯긴 살점에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재현이 놀란 눈으로 쳐다만 보고있자, 문 팀장이 뒤로 다가서며 말했다.
"머리가 없어서... 찾아보고 있긴 한데, 못 찾았어."
재현은 사망한 시신의 주위를 눈여겨 쳐다보았다.
사방팔방 피가 잔뜩 묻어있는 모습과 그 형태를 보면서, 어떻게 혈흔이 저렇게 남을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가며 방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서고는 몸을 바짝 낮추어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문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재현의 뒷모습을 의아한 눈길로 쳐다봤다. 자리에서 일어난 재현이 벽에 묻는 피로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고는 문 팀장을 돌아보았다.
"여 있네. 머리."
"뭐?"
"머리가 여기 있다고."
"무슨 소리야?"
문 팀장이 뭔가 싶어 다가가 벽에 묻은 혈흔을 보았다.
가만히 보니 혈흔만 있는 게 아니라 뜯겨 나간 것 같은 살점도 같이 보였다.
"머리가 분쇄된 거야."
재현의 말에 문 팀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분쇄? 박살 났다고?"
"그래.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얼마 안 남아있네."
"그래... 분쇄됐으면... 뼈라도 남아야지. 아니면 저런 살점이 머리 크기만큼 있던가."
"머리는 뇌수로 차 있어. 갈면 얼마 안 나와."
문 팀장이 "으..." 하며 기겁을 했다.
"그런 소리를 잘도 하네."
재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문 팀장을 돌아봤다.
"동네 안전이나 지키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허구한 날 보다 보면 별거 아냐."
"잘났어. 광수대에서 가져가. 난 이런 사건 질색이야."
재현은 예의 피식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두눈은 놓치는게 없는지 연신 현장을 두리번거렸다.
"목격자나 CCTV는 확보된 거 있어?"
"하고 있어. 신원은 확인된 거 같던데..."
"신원정보나 줘봐. 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좀 볼게."
그러다가 시신 뒤에 있는 병풍을 흘끗 보고는 고개를 돌려 문 팀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박수무당인가?"
"맞아. 어떻게 알았어?"
재현은 혹시 뭐라도 있을까 병풍을 자세히 보기 위해 책상 옆으로 다가섰다가, 턱끝으로 시신을 가리켰다.
"옷."
재현의 위치에서 시신의 아래쪽까지 확인할 수 있었기에, 남자들이 입는 개량 한복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병풍에서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한 재현이 시신 곁으로 바짝 다가가자, 문 팀장이 걱정되는 듯 만류했다.
"야야, 조심해라. 이상한 흔적 남기지 말고. 감식반에서 난리 난다."
재현은 못 들은 척, 몸을 숙여 시신의 오른쪽을 보았다.
오른쪽은 보조책상으로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신의 왼쪽 편으로 돌아서 들어와야 했다.
그 오른쪽 보조책상 서랍이 열려 있고, 거기에는 붉은빛이 감도는 나무 막대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시신의 손끝이 향한 곳이 그곳임을 눈여겨본 재현은, 이 사람이 죽기 직전 이 물건을 잡으려 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재현이 주머니에서 비닐장갑 하나를 꺼내어 손에 씌우더니, 시신이 잡으려 했던 그 나무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길이는 한 척 정도 되는 자그마한 막대기였고, 마치 나무줄기를 그대로 떼어다가 코팅만 한 것 같이 번들 거렸다.
"치위용안목(治危龍眼木)이라..."
재현이 막대기에 새겨진 글귀를 읽으며 다시 조심스레 바깥으로 나오자, 문 팀장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게 뭔데?"
"글세. 나도 모르지."
재현은 그막대기를 감식반이 가져다 놓은 물건들 사이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들어 그 안에 담았다.
뒤이어 그걸 품 안에 갈무리하자, 문 팀장이 미쳤어?라며 눈으로 말하고 입으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그걸 왜 챙겨?"
"좀 알아보고 제 자리에 다시 갔다 놓을게. 도와달라며?"
"야, 그래도 그렇지. 증거를 가져가면 어떻게?"
"무슨 증거? 감식반 애들 조사 끝낸 거 아냐?"
"그... 그렇긴 하지만..."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던 물건이야. 그러니까 그냥 놔둔 거 아냐? 내가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그래. 알아보고 고스란히 갔다 놓든지, 너한테 갔다 주든지 할 테니까, 못 본 척 해."
"참나... 뻔뻔하기도 해라. 뭐 짚이는 게 있는 거야?"
"조금.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
재현이 현장을 벗어나 바깥쪽으로 향하자 뒤에서 문 팀장이 소리쳤다.
"야, 언제 밥이나 먹자."
재현은 대답 없이 손만 흔들어 보이고는 홀연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
"꺄하하하하"
세희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안방 문이 열리고 수호가 밖으로 나왔다.
꽤나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느릿느릿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 물을 컵에 따라 마신 수호의 눈에 TV 앞에서 깔깔 거리며 웃고 있는 세희가 보였다.
그녀 앞에 아까 사준 치킨이 반쯤은 없어진 체였고, 손에는 여전히 치킨이 들려져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연신 깔깔 거리는 세희의 모습에 궁금증이 일어 앞으로 슬며시 다가가 보니, TV에서는 어느 예능 프로가 한참 우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이없는 실소를 지은 수호가 세희를 보며 물었다.
"열두 사도인지 뭔지 죽이러 온다는데, 세상 이리 태평할 수도 있구나?"
왜 또 저래? 세희는 웃다 말고, 굳어진 얼굴로 수호의 의중을 짐작하고자 눈을 가늘게 뜨며 돌아보았다.
"갑자기 왜 또 시비를 걸고 그러실까아?"
세희의 물음에 수호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꼈다.
"지금 이게 내가 시비 거는 걸로 보여? 걱정하는 걸로 보이는 게 아니라?"
세희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은요~? 그런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데?"
"하~참~"
어이없다는듯 수호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세희를 돌아보았다.
"그 열두 사도 이야기는 혹시 지어낸 거세요?"
비아냥 거리는 수호의 질문에 세희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죽이러 온다고, 올 때까지 벌벌 떨면서 삽니까?"
"아니, 뭐 그건 아니라도..."
"나도 기감(氣感)이란게 있어서, 위험이 다가오면 얼추 알아채거든요?"
"오~? 그래? 어유~ 야~ 기특하네."
수호가 장난스럽게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자, 세희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게 뭐 하는 거죠?"
"왜? 기특해서 머리 좀 쓰다듬어 준 건데?"
가만히 수호를 노려보던 세희가 갑자기 수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 뭐야?"
놀라는 수호의 뒷 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 세희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이봐, 이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수호는 망했다..라는 얼굴로 세희 손에 들린 물건을 아쉽게 쳐다보았다.
그것은 바로 수호가 뒤춤에 한 장 꽃아 둔 타로카드였다.
"내 거 하나 만들려고?"
세희가 기세 등등하게 타로카드를 흔들며 쏘아붙이자, 수호는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혹시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세희가 카드를 힐끔 보더니 수호에게 내보이며 물었다.
"이거... 무슨 의미죠?"
그 카드는 첫 번째, 광대 카드였다.
"그, 그거? 광대. 광대야 광대..."
세희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
"내가 모를 줄 알고? 내가 딴 건 몰라도, 눈치는 좀 있는 편이라서... 광대 말고 다른 의미도 있죠?"
"무, 무슨 의미?"
"나중에 내가 따로 알아봐서 알게 되면... 뒷감당 가능하겠어요? 그땐... 야차 하나로는 안 끝날 텐데?"
수호가 되려 기가찬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 야~ 너~ 지금 협박하는 거야?"
"네,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지금. 완전."
수호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이내 활짝 웃는 얼굴로 능청스럽게 굴었다.
"에이~ 장난이야, 장난... 무슨 의미가 있어? 그냥 장난치려고 그랬던 거지."
수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다가와 타로카드를 잡으려 했으나, 세희가 얼른 팔을 굽혀 수호의 손길을 피했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 뭐 이런 얘기 못 들어 보셨나?"
"어, 못 들어 봤어. 얼른 내놔!"
수호가 살짝 짜증을 내자, 세희가 마지못한 듯 카드를 뺏기며 말했다.
"진짜, 다른 의미 없지~요?"
수호가 카드를 품 안에 넣으며 대답했다.
"있어. 어릿광대, 바보, 뭐 그런 의미들이 있지."
세희가 부리부리하게 눈을 치켜뜨자, 수호가 고개를 저으며 방어하듯 양손을 들어올렸다.
"별거 아냐. 원래 의미란게..."
그러나 체 말을 다하지 못했다.
별안간 세희가 수호의 머리카락을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아~! 야, 너 뭐해?"
수호가 당황하여 외치는 순간, 세희가 성질을 내며 소리쳤다.
"뭐어~? 바보오~?"
"야야야, 아아, 야, 잠깐만, 잠깐만..."
그러다 수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은 세희의 손을 덥석 움켜잡더니 고개를 숙였다.
수호의 동작에 세희는 손목이 꺾이는 것을 느껴 어쩔 수 없이 놓아주고 뒤로 물러서려는 그 순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세희가 그만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 했다.
"어?"
세희가 놀란 표정으로 수호의 소매를 붙잡는 찰나, 수호가 세희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붙잡았다.
그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이 얼어붙듯 서로를 붙잡은 체 서 있는데, 방금 전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온 재현이 두 사람을 보고는 멈칫 굳어져버렸다.
"니네 뭐하냐?"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로를 쳐다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재현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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