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7
꽤 넓고 큼직한 방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문 하나가 열리며, 그 안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문을 건너와서는 주위에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들을 쓱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과 손에 잔뜩 묻은 피를 보며, 한 여인이 다가와 수건을 건네주었고, 그는 일상인듯 태연히 수건을 받아 들어 손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점괘가 바뀐 건 언제 안건대?"
얼굴에 묻는 피를 닦아내며 묻는 말에, 수건을 건네준 여인이 대답했다.
"이틀 전. 이런 급작스런 변화는, 오직 하나야. 큰 신의 개입이지."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건으로 피를 닦아내던 이가 발걸음을 옮기자, 작은 문 너머로 또 다른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역시 온 사방이 피투성이가 된 체 였다. 여인은 그에게도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 신이 뭔 신인 지는 알 수 있어?"
먼저 나와 피를 닦던 남자가 고급스러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와인 잔을 들어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묻는 말에, 여인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대답했다.
"아직 몰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알아낼 방법은 없을 거야. 소파에 앉지 마, 피 묻어."
그녀의 말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피 묻는다니까..."
여인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옆자리 소파에 앉았다.
"피야 닦으면 되는 거고. 우리 최의원께서는 뭘 하고 계시나?"
그가 목을 좌우로 꺽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여유롭게 묻자, 여인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했다.
"당내 의원들이랑 모임이 있는 것 같던데..."
"그 알량한 당내 의원들이 뭔 도움이 된다고, 허구한 날 그 놈들이랑 놀아나? 그러니까 여태 그 정도인 거지. 쯧쯧. 꼭두각시라고는 하지만, 너무 그릇이 작은 거 아냐?"
그의 불만스러운 타박에 여인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릇이 큰 인간은 꼭두각시로 적합하지 않아. 알면서 그래?"
그 사이 두 번째로 나온 남자가 피를 닦아내며 여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피... 소파에 다 묻네, 진짜."
여인이 짜증을 내자, 맞은편 남자가 대답 없이 웃어 보였다.
먼저 남자가 피 묻은 수건을 들어 보이자, 뒤쪽에 멀뚱멀뚱 서 있던 남자들중 하나가 부랴부랴 달려와 수건을 받아 들었다.
"강 비서한테서 연락 온 거 있어?"
수건을 던지듯 건네며 묻는 말에, 달려와 수건을 받은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따로... 연락받은 건 없습니다."
그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시신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지? 귀 따로, 눈 따로, 혓바닥 따로, 다 따로따로 모아놔야 된다?"
"예, 대표님."
대표라는 직함으로 불린 남자는 다시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희번덕한 눈빛으로 말했다.
"큰 신이건 뭐건, 이 김주환이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죄다 박살을 내버려야 돼. 미끼 좀 던져봐. 어떤 종류의 신인지 알아내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도 있어."
김주환의 말에, 옆에 있는 여인, 이선화가 대답했다.
"신을 상대로, 도발을 해보겠다는 거야? 어떤 신인 줄 알고?"
"신을 직접 모독할 필요는 없고, 분명 대리자가 있을 거 아냐. 큰 신을 모실 수 있는 대리자는 그렇게 많지 않아."
잠시 김주환을 응시하던 이선화가 느지막이 대답했다.
"무당들을... 뒤져봐라?"
"꼭 무당만 통하는 건 아니야. 대리자는 다양한 형태를 띠니까. 가능성 있는 놈들을 모조리 찾아."
"그래서?"
김주환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이선화를 응시했다.
"큰 신에게 제물로 받쳐야지."
이선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기가 세운 대리자를 제물로 받는 건 모욕이야."
"그건 같은 신일 때 얘기지."
이선화가 눈살을 찌푸리자, 김주환이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큰 신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다른 신의 대리자를 제물로 받는다? 이건, 굉장한 제물이야."
이선화가 씁쓸한 표정으로 혼잣말하듯 물었다.
"큰 신을, 큰 신으로 막겠다?"
"어느 쪽이 더 큰 신이냐가 중요해지겠지. 대리자를 찾는 과정에서 그 신이 가진 힘이 어떤 종류의 힘인지 알게 되지 않겠어?"
"그럴지도."
"준비하던 거나 마저 해놔. 만에 하나라도 계획이 틀어지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아직 선거까지 1년 남았어."
보채지 말라는 이선화의 대답에 김주환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인간들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존재인지 몰라서 그래? 황 회장이나 최의원이나 확실하게 잡아두지 않으면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족속들이야. 검찰 쪽은?"
김주환의 시선이 이선화 맞은 편의 남자에게로 향하자, 그가 대답했다.
"저그당한 이누물을.... 찾았스므니다."
그의 한국어는 약간 어눌하게 들렸다.
"서두르자. 검찰 쪽을 움직이려면 한두 달 투자로는 안돼.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쪽이야."
왼쪽 편에 앉은 남자, 키스케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였다. 돌연 작은 문 방 안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문이 벌컥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는 여유롭게 와인을 마시고 있는 김주환과 일행들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다른 쪽으로 달려갔고, 뒤쫓아 작은 문을 열고 정장 차림의 사내 두어 명이 따라 나왔다.
"아따~ 거 살아있는 놈이 있었어?"
김주환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란 듯 태평하게 그들을 눈으로 쫓았다., 도망치는 남자를 따라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소리를 치며 달려갔다.
"살려줘!!"
피투성이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방 끝에 있는 창문을 열고 나가려 버둥거렸지만, 정장 차림의 사내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살려줘, 살려줘!"
그는 연신 살려달라며 두손 모아 애원했다. 사내 둘은 그를 붙잡고 끌고 가려 안간힘을 썼다.
살고자 필사적으로 뿌리치는 남자의 저항이 가볍지 않은 듯, 사내 둘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키스케."
김주환이 무심한 듯 퉁명스럽게 부르자, 키스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성큼성큼 제법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둥거리는 남자의 오른쪽 발목을 밟아 버렸다.
'우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동시에, 남자 얼굴 위의 모든 신경이 최대로 커졌다.
"끄아악!"
남자에게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며 몸이 허물어지자, 그제야 두 사내가 그 남자의 양팔을 나누어 제대로 붙잡을 수 있었다.
"우르사이잔....(시끄럽잖아.)"
키스케가 뒷 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는가 싶더니, 신속한 동작으로 남자의 목을 가로질렀다.
피는 한 템포 늦게 터져 나왔고, 키스케의 손에는 별 모양의 표창이 들려져 있었다.
"모오.... 시즈카다네. (이제 조용하네)"
남자는 그대로 고꾸라지며 절명했고, 정장 차림의 사내 둘은 서둘러 남자를 끌고 작은 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끌려가는 남자의 목에서 연신 피가 흘러나오며 바닥을 적시자, 이를 본 이선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진짜... 여기도 피, 저기도 피... 청소하기 힘들다니까."
이선화의 투덜거림에, 키스케가 자리로 돌아오면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초토 미테. (좀 봐줘)"
이선화는 답답한 표정으로 자신 앞에 놓인 유리잔의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 와중에도 태연하기 짝이 없는 김주환이 큰소리로 외쳤다.
"중요 부위 안 다치게 조심해라. 제물이 상하면, 신이 노하신다."
김주환의 말에 남자의 시신을 끌고 가던 정장 사내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예!"
두 사내가 작은 방 너머로 시신을 끌고 사라지자, 김주환은 와인잔의 와인을 마저 비워 내려놓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이선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뭔 신이 개입했는지, 미끼를 던지든 뭘 하든 알아내. 대리자 찾아내고."
"나 혼자서 어떻게 해?"
"필요한 사람 얼마든지 끌어 써. 돈이 얼마가 들든."
이선화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김주환을 흘겨보았다.
"웬일이야?"
"웬일은... 돈도 쓸 땐 써야 하는 법이야. 지금은 돈 아낄 때 아냐."
"알았어."
이어 키스케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검찰 쪽, 슬슬 움직여 보자."
키스케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김주환이 빙그레 잔혹한 웃음을 흘렸다.
"운메에와 와레와레노 미카타다. (운명은 우리 편이야.)"
김주환의 말에 키스케는 씨익 웃어 보였지만, 이선화는 아무말 없이 커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어딘지 좀 께름직한 표정을 짓고있는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
책상에 앉아 상념에 젖어 있는 수호의 손에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찍은 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자상한 미소를 짓고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수호는 생각에 잠겨 멍한 표정이었다.
그의 명상을 깨뜨리는 노크소리가 들려오자, 수호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문이 빼꼼히 열리고 세희가 고개를 내밀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네~ 하고 대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뜸 왜? 라니?"
수호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왜애~?"
세희는 그러거나 말거나 해맑게 웃으며 들어와 방문을 닫았다.
"아, 왜 들어와? 용건만 말하지?"
수호가 귀찮다는 듯 손짓 하자, 세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니~~ 요즘 TV에서 하는 것들이 다~ 뭐~ 재미가 있어야지."
"지금 TV 보다가 심심해서 들어왔단 거야? 나가!"
쌀쌀맞은 수호의 대답에 새침하게 노려보던 세희는 이내 곰살맞게 웃으며 다가갔다.
저 또라이.. 또. 뭔 말을 하려고...저런 요상망칙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들어오는거야... 무섭게..으으.. 몸을 부르르 떨며 수호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세희를 째려봤다.
"실은... 제가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내일..."
"어, 그래. 놀다 와."
더 들을것도 없다는 듯이 책상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수호를 보며, 세희는 잠깐 화를 참으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한번 깊게 감았다 떴다.
"아~니~ 내가 뭐 발이 없어서 못 돌아다닌다는 건 아닌데... 그냥 다니자니... 날도 덥고... 대중교통도 뭐... 그리 편한 것 같지는 않고..."
세희가 옆으로 다가오며 애살스럽게 말하자, 수호가 퉁명스럽게 받았다.
"야, 서울 대중교통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데, 그런 소릴해? 다녀봐. 전 세계를 통틀어서 서울만큼 잘되어 있는 도시가 없어요."
세희는 보이지 않게 다시금 입술을 삐죽거렸다가, 눈웃음을 그리며 수호 옆으로 한층 바짝 다가섰다.
옆으로 다가선 세희를 경계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보는 수호를 향해 다시금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는 것도 많다는데... 부랴부랴 올라와서, 사실 돈도 없기도 하고..."
수호가 인상을 팍 쓰며 쳐다보자, 그녀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럼 일해. 알바를 하든지."
수호는 무심한 한마디 툭 던져놓고는 책상 위에서 두툼한 책을 끌어당기더니 펼쳐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세희는 소리없이 입모양으로 재수탱이라고 궁시렁거리다가 , 다시금 포기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 당장 뭐 어디서 알바를 구하겠..."
세희가 체 말을 다하기도 전에, 수호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에?"
세희가 의아해 하자, 수호가 세희를 보며 말했다.
"핸드폰 줘봐. 알바 진짜 매칭 잘해주는 앱이 하나 있거든. 내가 설치해 줄게."
세희가 수호를 흘겨보며 입술을 삐죽거리자, 수호가 손을 내리며 충고하기 시작했다.
"빌붙어 먹을 생각하지 말고, 자주적으로 살아. 자주적으로."
"아, 네네. 자주적이신 수호 오라버니를 못 알아봤네요. 의존적인 이 세희는 오늘내일 주야장천 걸어서 서울 구경하렵니다. 배고파서 디질 것 같으면 구걸이라도 합죠. 네네~"
세희가 투덜거리며 방 밖으로 나가버리자, 책을 보던 수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닫힌 문을 바라봤다.
"아 진짜..."
수호는 금방이라도 욕을 내뱉을 것처럼 인상을 썼다가 쯧하고 혀를 찼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문을 건너와서는 주위에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들을 쓱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과 손에 잔뜩 묻은 피를 보며, 한 여인이 다가와 수건을 건네주었고, 그는 일상인듯 태연히 수건을 받아 들어 손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점괘가 바뀐 건 언제 안건대?"
얼굴에 묻는 피를 닦아내며 묻는 말에, 수건을 건네준 여인이 대답했다.
"이틀 전. 이런 급작스런 변화는, 오직 하나야. 큰 신의 개입이지."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건으로 피를 닦아내던 이가 발걸음을 옮기자, 작은 문 너머로 또 다른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역시 온 사방이 피투성이가 된 체 였다. 여인은 그에게도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 신이 뭔 신인 지는 알 수 있어?"
먼저 나와 피를 닦던 남자가 고급스러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와인 잔을 들어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묻는 말에, 여인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대답했다.
"아직 몰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알아낼 방법은 없을 거야. 소파에 앉지 마, 피 묻어."
그녀의 말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피 묻는다니까..."
여인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옆자리 소파에 앉았다.
"피야 닦으면 되는 거고. 우리 최의원께서는 뭘 하고 계시나?"
그가 목을 좌우로 꺽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여유롭게 묻자, 여인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했다.
"당내 의원들이랑 모임이 있는 것 같던데..."
"그 알량한 당내 의원들이 뭔 도움이 된다고, 허구한 날 그 놈들이랑 놀아나? 그러니까 여태 그 정도인 거지. 쯧쯧. 꼭두각시라고는 하지만, 너무 그릇이 작은 거 아냐?"
그의 불만스러운 타박에 여인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릇이 큰 인간은 꼭두각시로 적합하지 않아. 알면서 그래?"
그 사이 두 번째로 나온 남자가 피를 닦아내며 여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피... 소파에 다 묻네, 진짜."
여인이 짜증을 내자, 맞은편 남자가 대답 없이 웃어 보였다.
먼저 남자가 피 묻은 수건을 들어 보이자, 뒤쪽에 멀뚱멀뚱 서 있던 남자들중 하나가 부랴부랴 달려와 수건을 받아 들었다.
"강 비서한테서 연락 온 거 있어?"
수건을 던지듯 건네며 묻는 말에, 달려와 수건을 받은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따로... 연락받은 건 없습니다."
그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시신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지? 귀 따로, 눈 따로, 혓바닥 따로, 다 따로따로 모아놔야 된다?"
"예, 대표님."
대표라는 직함으로 불린 남자는 다시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희번덕한 눈빛으로 말했다.
"큰 신이건 뭐건, 이 김주환이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죄다 박살을 내버려야 돼. 미끼 좀 던져봐. 어떤 종류의 신인지 알아내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도 있어."
김주환의 말에, 옆에 있는 여인, 이선화가 대답했다.
"신을 상대로, 도발을 해보겠다는 거야? 어떤 신인 줄 알고?"
"신을 직접 모독할 필요는 없고, 분명 대리자가 있을 거 아냐. 큰 신을 모실 수 있는 대리자는 그렇게 많지 않아."
잠시 김주환을 응시하던 이선화가 느지막이 대답했다.
"무당들을... 뒤져봐라?"
"꼭 무당만 통하는 건 아니야. 대리자는 다양한 형태를 띠니까. 가능성 있는 놈들을 모조리 찾아."
"그래서?"
김주환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이선화를 응시했다.
"큰 신에게 제물로 받쳐야지."
이선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기가 세운 대리자를 제물로 받는 건 모욕이야."
"그건 같은 신일 때 얘기지."
이선화가 눈살을 찌푸리자, 김주환이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큰 신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다른 신의 대리자를 제물로 받는다? 이건, 굉장한 제물이야."
이선화가 씁쓸한 표정으로 혼잣말하듯 물었다.
"큰 신을, 큰 신으로 막겠다?"
"어느 쪽이 더 큰 신이냐가 중요해지겠지. 대리자를 찾는 과정에서 그 신이 가진 힘이 어떤 종류의 힘인지 알게 되지 않겠어?"
"그럴지도."
"준비하던 거나 마저 해놔. 만에 하나라도 계획이 틀어지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아직 선거까지 1년 남았어."
보채지 말라는 이선화의 대답에 김주환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인간들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존재인지 몰라서 그래? 황 회장이나 최의원이나 확실하게 잡아두지 않으면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족속들이야. 검찰 쪽은?"
김주환의 시선이 이선화 맞은 편의 남자에게로 향하자, 그가 대답했다.
"저그당한 이누물을.... 찾았스므니다."
그의 한국어는 약간 어눌하게 들렸다.
"서두르자. 검찰 쪽을 움직이려면 한두 달 투자로는 안돼.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쪽이야."
왼쪽 편에 앉은 남자, 키스케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였다. 돌연 작은 문 방 안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문이 벌컥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는 여유롭게 와인을 마시고 있는 김주환과 일행들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다른 쪽으로 달려갔고, 뒤쫓아 작은 문을 열고 정장 차림의 사내 두어 명이 따라 나왔다.
"아따~ 거 살아있는 놈이 있었어?"
김주환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란 듯 태평하게 그들을 눈으로 쫓았다., 도망치는 남자를 따라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소리를 치며 달려갔다.
"살려줘!!"
피투성이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방 끝에 있는 창문을 열고 나가려 버둥거렸지만, 정장 차림의 사내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살려줘, 살려줘!"
그는 연신 살려달라며 두손 모아 애원했다. 사내 둘은 그를 붙잡고 끌고 가려 안간힘을 썼다.
살고자 필사적으로 뿌리치는 남자의 저항이 가볍지 않은 듯, 사내 둘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키스케."
김주환이 무심한 듯 퉁명스럽게 부르자, 키스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성큼성큼 제법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둥거리는 남자의 오른쪽 발목을 밟아 버렸다.
'우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동시에, 남자 얼굴 위의 모든 신경이 최대로 커졌다.
"끄아악!"
남자에게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며 몸이 허물어지자, 그제야 두 사내가 그 남자의 양팔을 나누어 제대로 붙잡을 수 있었다.
"우르사이잔....(시끄럽잖아.)"
키스케가 뒷 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는가 싶더니, 신속한 동작으로 남자의 목을 가로질렀다.
피는 한 템포 늦게 터져 나왔고, 키스케의 손에는 별 모양의 표창이 들려져 있었다.
"모오.... 시즈카다네. (이제 조용하네)"
남자는 그대로 고꾸라지며 절명했고, 정장 차림의 사내 둘은 서둘러 남자를 끌고 작은 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끌려가는 남자의 목에서 연신 피가 흘러나오며 바닥을 적시자, 이를 본 이선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진짜... 여기도 피, 저기도 피... 청소하기 힘들다니까."
이선화의 투덜거림에, 키스케가 자리로 돌아오면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초토 미테. (좀 봐줘)"
이선화는 답답한 표정으로 자신 앞에 놓인 유리잔의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 와중에도 태연하기 짝이 없는 김주환이 큰소리로 외쳤다.
"중요 부위 안 다치게 조심해라. 제물이 상하면, 신이 노하신다."
김주환의 말에 남자의 시신을 끌고 가던 정장 사내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예!"
두 사내가 작은 방 너머로 시신을 끌고 사라지자, 김주환은 와인잔의 와인을 마저 비워 내려놓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이선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뭔 신이 개입했는지, 미끼를 던지든 뭘 하든 알아내. 대리자 찾아내고."
"나 혼자서 어떻게 해?"
"필요한 사람 얼마든지 끌어 써. 돈이 얼마가 들든."
이선화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김주환을 흘겨보았다.
"웬일이야?"
"웬일은... 돈도 쓸 땐 써야 하는 법이야. 지금은 돈 아낄 때 아냐."
"알았어."
이어 키스케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검찰 쪽, 슬슬 움직여 보자."
키스케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김주환이 빙그레 잔혹한 웃음을 흘렸다.
"운메에와 와레와레노 미카타다. (운명은 우리 편이야.)"
김주환의 말에 키스케는 씨익 웃어 보였지만, 이선화는 아무말 없이 커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어딘지 좀 께름직한 표정을 짓고있는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
책상에 앉아 상념에 젖어 있는 수호의 손에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찍은 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자상한 미소를 짓고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수호는 생각에 잠겨 멍한 표정이었다.
그의 명상을 깨뜨리는 노크소리가 들려오자, 수호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문이 빼꼼히 열리고 세희가 고개를 내밀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네~ 하고 대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뜸 왜? 라니?"
수호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왜애~?"
세희는 그러거나 말거나 해맑게 웃으며 들어와 방문을 닫았다.
"아, 왜 들어와? 용건만 말하지?"
수호가 귀찮다는 듯 손짓 하자, 세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니~~ 요즘 TV에서 하는 것들이 다~ 뭐~ 재미가 있어야지."
"지금 TV 보다가 심심해서 들어왔단 거야? 나가!"
쌀쌀맞은 수호의 대답에 새침하게 노려보던 세희는 이내 곰살맞게 웃으며 다가갔다.
저 또라이.. 또. 뭔 말을 하려고...저런 요상망칙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들어오는거야... 무섭게..으으.. 몸을 부르르 떨며 수호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세희를 째려봤다.
"실은... 제가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내일..."
"어, 그래. 놀다 와."
더 들을것도 없다는 듯이 책상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수호를 보며, 세희는 잠깐 화를 참으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한번 깊게 감았다 떴다.
"아~니~ 내가 뭐 발이 없어서 못 돌아다닌다는 건 아닌데... 그냥 다니자니... 날도 덥고... 대중교통도 뭐... 그리 편한 것 같지는 않고..."
세희가 옆으로 다가오며 애살스럽게 말하자, 수호가 퉁명스럽게 받았다.
"야, 서울 대중교통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데, 그런 소릴해? 다녀봐. 전 세계를 통틀어서 서울만큼 잘되어 있는 도시가 없어요."
세희는 보이지 않게 다시금 입술을 삐죽거렸다가, 눈웃음을 그리며 수호 옆으로 한층 바짝 다가섰다.
옆으로 다가선 세희를 경계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보는 수호를 향해 다시금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는 것도 많다는데... 부랴부랴 올라와서, 사실 돈도 없기도 하고..."
수호가 인상을 팍 쓰며 쳐다보자, 그녀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럼 일해. 알바를 하든지."
수호는 무심한 한마디 툭 던져놓고는 책상 위에서 두툼한 책을 끌어당기더니 펼쳐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세희는 소리없이 입모양으로 재수탱이라고 궁시렁거리다가 , 다시금 포기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 당장 뭐 어디서 알바를 구하겠..."
세희가 체 말을 다하기도 전에, 수호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에?"
세희가 의아해 하자, 수호가 세희를 보며 말했다.
"핸드폰 줘봐. 알바 진짜 매칭 잘해주는 앱이 하나 있거든. 내가 설치해 줄게."
세희가 수호를 흘겨보며 입술을 삐죽거리자, 수호가 손을 내리며 충고하기 시작했다.
"빌붙어 먹을 생각하지 말고, 자주적으로 살아. 자주적으로."
"아, 네네. 자주적이신 수호 오라버니를 못 알아봤네요. 의존적인 이 세희는 오늘내일 주야장천 걸어서 서울 구경하렵니다. 배고파서 디질 것 같으면 구걸이라도 합죠. 네네~"
세희가 투덜거리며 방 밖으로 나가버리자, 책을 보던 수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닫힌 문을 바라봤다.
"아 진짜..."
수호는 금방이라도 욕을 내뱉을 것처럼 인상을 썼다가 쯧하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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