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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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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15분

17화 - #17


자그마한 키에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한 옷차림의 남자가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양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체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남자의 옆에는 허름한 티셔츠에 회색 카고 바지를 입은 마른 체격에 키 큰 남자가 싸늘한 표정으로 함께 걷고 있었다.

문득 작은 키의 남자가 코를 킁킁 거리며 자리에 멈춰 서더니, 몸을 낮춰 쭈그리고 앉았다.

"여기서 뭔가를 했네."

키 큰 남자가 무심한 눈으로 응시하며 물었다.

"뭘?"

키 작은 남자가 눈을 감고 코로 숨을 쑤욱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더니, 이내 눈을 뜨며 대답했다.

"주술을 부렸는데? 부적을 가지고 있어."

"무당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들었는데..."

"무당도 부적으로 주술을 부리나?"

"뭐... 부적은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보아하니, 일종에 소환술 같은 걸 부린 모양인데.... 이건 밀교(密敎)의 술수인데?"

키 큰 남자는 여전히 무심하게 답했다.

"관심 없어. 죽으면 똑같은 시체일 뿐."

키 작은 남자가 피식 웃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무턱대고 죽이기부터 하지 마. 물어볼게 많아."

키 큰 남자는 자신에게 짜증내는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명령하듯 말하지 마. 난 죽이란 명령 외엔 들은 바 없어."

"딱딱하기는. 동료애를 좀 발휘해봐. 내가 부탁하는 거잖아."

"싫어."

"하여간..."

키 작은 남자의 시선이 먼발치에 보이는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서둘러 시선을 다른 쪽으로 옮겼다.

"여기서부터는 느낌이 흐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키 작은 남자가 바닥에 앉아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자, 키 큰 남자가 예의 무심한 어조로 툭 내뱉었다.

"상관없어."

"아냐, 오래 걸려. 오늘 저녁에 잘만한 숙소나 좀 찾아봐줘."

키 작은 남자의 말에 키 큰 남자가 그를 지긋이 응시하자, 키 작은 남자가 그를 올려다보며 화를 냈다.

"뭐해? 설마 그것조차 안 한다는 건 아니겠지? 나 지금 최선을 다해 일하는 거 안 보여? 내가 찾아?"

키 큰 남자가 말없이 한참을 응시하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 몰래 혼자 독차지하려고 했다가는, 후회할 일 생긴다."

키 작은 남자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알았어. 알았어. 모가지는 네 몫으로 놔둘게. 됐지?"

키 큰 남자는 그제야 마지못한 듯 몸을 돌려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키 작은 남자는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완전이 사라지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융통성 없는 놈... 적당히 요령껏 좀 하지. 누가 오케아노스 아니랄까 봐 아주 차갑다 차가워."

키 작은 남자, 히페리온이란 이름을 부여받은 그의 시선이 다시 아파트 쪽으로 향했다.

"저기서 뭘 했냐~ 어디 한번 가볼까~"

히페리온의 가벼운 발걸음이 아파트를 향해 종종이 옮겨갔다.

***

책상 위로 몇 장의 사진이 주르륵 펼쳐졌다.

"지금까지 우리가 파악한 십이 사도는 총 4명이에요."

민선이 책상 위에 펼쳐놓은 사진을 눈으로 훓으며 수호는 한 장씩 유심히 살폈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제일 처음 마주했던 크로노스 기가쿠였다.

"일본의 전설적인 인물인 엔노 오즈누를 모시는 가문인 기가쿠 가문의 사람이에요. 이름은 코마. 코마 기가쿠. 기가쿠는 실존하는 성은 아니에요. 재능 있는 사람을 모아 수련을 시킨 뒤, 능력이 각성하게 되면 부여되는, 일종에 가명 같은 거죠."

수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제일 처음 만났었어요. 이상한 괴물을 부리는 것 같던데..."

"맞아요. 젠도키와 묘도키라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요괴를 부려요. 그 요괴로 다른 요괴를 제압한 뒤, 그 요괴를 또다시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죠. 이런 이들을 흔히 요마사(妖魔使)라 부르곤 하죠."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건, 이상한 행동을 일삼았던 송기영의 사진이었다.

"이름 송기영, 22살. 레아라는 이름을 써요. 선인술(仙人術)이란 걸 쓰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술과 같은 개념이죠. 그중에서도 특화된 능력이 하나 있는데..."

민선이 말끝을 흐리자, 수호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수호와 눈이 마주친 민선이 말을 다시 이었다.

"백귀야행(百鬼夜行)이라고 들어봤어요?"

"백귀야행이요?"

"네. 무수히 많고 다양한 종류의 귀신들이 한데 뭉쳐 있는 걸 의미하는데,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지만, 주술적으로는 엄청난 수의 귀물들을 부리는 술수를 이야기하죠. 바로 그 술법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요괴나 귀신이 백 마리란 건가요?"

"백자는 상징적인 글자예요. 그보다 훨씬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어요. 많다는 의미죠."

수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 수호의 시선이 키 작은 남자의 사진으로 향하자, 민선이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에밋. 독일계 한국인이에요. 엄마가 한국인이죠. 부여받은 이름은 히페리온. 저와 같은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예요. 물론 형태는 좀 다르긴 하지만..."

"형태가 다르다뇨?"

"사이코메트리란 능력이 사물의 기억을 읽는 능력인데... 저는 그 능력을 단련시키면서 상대의 내적 능력을 파악할 수 있게 됐죠. 이 사람은..."

민선의 손가락이 사진 속 에밋을 가리켰다.

"후각을 이용한 능력에 탁월해요."

"후각이요?"

"기본적으로 사이코메트리라는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접촉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러한 접촉은 때때로 위험요소가 되기도 하죠. 접촉할 수 없는 경우에 읽을 수 없으니깐요. 그는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후각을 이용하는 훈련을 한 거죠. 접촉하지 않아도 냄새만으로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발현할 수 있게 되니깐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수호는 민선의 어조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밋이란 사람이... 한수 위란 뜻인가요?"

민선은 속내를 들켰다는 눈빛으로 수호를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런 셈이죠."

수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어깨를 작게 으쓱해 보였다.

그다음에는 깡마른 체격에 키가 크고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의 사진이었다.

"박준. 35살, 오케아노스란 이름을 부여받았죠. 지금까지 대부분의 주술적 살인사건에 가장 많이 연루된 인물이고, 열두 사도 중에 가장 전면에 나선 인물이에요."

"어떤 능력을 지닌 거죠?"

"지금까지 파악된 바에 의하면...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으로 파악하고 있어요."

"물이요?"

"네."

"파악하고 있다는 건... 확신이 없다는 건가요?"

민선이 입술 끝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정말 냉혈한이 따로 없을 정도로 모두 죽이는 것에만 집착해서... 관련된 정황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다만, 그가 있었던 곳, 그가 연루된 사건마다 현장에는 물이 흥건했어요. 그걸로 미루어 그의 능력이 분명 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는 거죠."

"시신의 훼손 형태가 어떠했는데요? 익사인가요?"

"아뇨. 자상이에요. 예리한 칼로 베인 듯한..."

수호는 생각도 못한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칼로 베인 듯한... 물을 칼처럼 쓴다는 건가...."

"아직 알기 힘들어요. 워낙 순식간이라 사물에 남겨진 기억이나 관념도 거의 없다시피 해요."

수호는 책상위에 펼쳐진 사진 들을 번갈아 보다가 그중 한 장을 들어올렸다.

들어올린 한 장의 사진을 민선에게 내밀자, 민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받아 들었다.

"일단... 이 사람부터 찾아야 해요."

수호가 내민 사진 속 인물은 히페리온, 에밋이었다.

"에밋?"

"네. 지금 저들은 세희를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어요. 결계안에 숨어 있지만, 에밋은 그 능력을 이용해서 세희를 찾아내게 될 겁니다. 세희를 찾기 전에 에밋을 잡아야 해요."

수호의 말에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우식이 한걸음 다가와 물었다.

"그 얘기... 좀 더 구체적으로 해줄 수 있나? 세희라고?"

수호가 우식을 돌아보았다.

"예. 큰 신을 모시는 무당이에요. 일종의... 계시를 받았어요. 열두 사도가 찾아올 테니... 세희를 지키라고요."

"누가? 자네가?"

"네. 우연히... 어쨌든... 저 에밋이란 사람부터 막아야 해요."

우식의 시선이 민선에게로 향하고,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하며, 말없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이어 우식이 수호를 보며 말했다.

"유 팀장님도, 우리를 안지 불과 3년밖에 안됐어. 사실 아직도 정확하게... 우리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할 수 없지. 팀장님에게 너에 대해서 듣긴 했는데... 알다시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양반이지. 네게 남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고, 그 능력과 같은 능력을... 김주환이란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

"맞아요."

민선이 나서 물었다.

"영환사. 맞죠?"

"네. 맞아요."

다시금 우식과 민선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우식이 다시 수호를 보며 말했다.

"좋아. 이렇게 하지. 우리가 세희란 아이를 지키는 일을 돕지. 단, 조건이 있어."

수호가 궁금증 가득한 시선으로 우식을 쳐다보자, 우식이 말을 이었다.

"우리 팀에 합류해. 정식 멤버는 아니지만, 임시로 합류하고, 이후에 상황을 봐가면서, 정식 대원으로 합류하도록 하지."

"아... 뭐, 일종에 계약직인 건가요?"

수호의 말에 민선과 우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맞아. 계약직."

"저 계약직 좋아합니다. 정규직은 피곤해서..."

수호의 너스레에 우식은 만난이후 처음으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좋아. 그럼 수락한 걸로 알지. 세희란 친구가 어디 있는지부터 말해줄까?"

"경찰에서 사용하는 안전가옥에 있어요."

"어딘지 알 것 같네. 일단 그쪽으로 가서 세희란 친구부터 만나봅시다."

수호가 고개를 끄덕거리자마자 우식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로 수호와 민선이 뒤를 따랐다.

"저도 갈까요?"

체격이 좋은 황태기 경사가 묵직한 어조로 동행의 의사를 밝혔다. 우식이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하던 일 해. 그냥 가서 만나고만 올 거야."

"예, 다녀오세요."

우식을 따라 밖으로 나온 수호는 처음 올 때와 마찬가지로 우식의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수호는 복잡한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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