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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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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1.41분

15화 - #15


"누구....세요?"

아마 그렇게 물어보며, 스스로도 그 질문을 던진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으리라.

그녀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세희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기가쿠가 얘기한 큰 그릇이 너구나? 딱 봐도 알겠어."

세희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결계를 친 것이 무의미해져 버린 것이니, 어찌 속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 마, 다른 놈들한테는 비밀로 할게. 딱, 나만 알고 있을게."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인지, 그녀는 세희를 보며 윙크까지 날렸다.

"왜?"

세희가 굳은 표정으로 묻자,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재밌잖아. 비밀~ 아, 참. 내가 누군지 물었나? 만나서 반가워, 난 송기영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니?"

세희가 가만히 기영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윤세희."

"아~ 세희. 좋은 이름이네. 난 이름이 좀 마음에 안 들어. 기영이 뭐야, 기영이. 남자 이름도 아니고."

궁시렁 거리는 기영을 보며, 세희가 싸늘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도... 그 열두 명 중에 한 명이야?"

"나? 응. 각자 새롭게 부여된 이름이 있지. 난 레아. 이 이름은 마음에 들어. 기왕이면 레아라고 불러주면 더 좋고."

긴장감을 느낀 세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왜 굳이 비밀로 한다는 거야? 얼른 날 죽이지 못해 안달일 거 같은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진한 척 기영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난 별루. 다들 그저 돈돈돈, 돈이 뭐라고. 난 그보다 재미를 추구하지. 기왕 사는 거, 재밌게 살아야지?"

"그래서, 나랑 재밌게 놀기라고 하겠다는 건가?"

세희의 되물음에 기영이 눈을 번뜩였다.

"응. 그러다 재미 없어지면 그때 죽일게."

"허!"

세희는 기가 차서,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마치 언제든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그러자 기영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왜? 못할 거 같아? 나 보기보다 센데?"

"과연... 내가 모시는 신보다 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 큰 신을 모신다고 했지? 근데 나... 너처럼 큰 신 모시는 사람도 죽여 봤어. 그래 봤자 사람이고, 대리자일 뿐이잖아? 신이 아니거든."

세희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뭐, 당장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 그때까지는 그냥 재밌게 지내자."

마치 친구라도 되겠다는 듯 말하는 기영을 보며, 세희는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버렸다.

"넌 능력이 뭔데?"

세희의 물음에 기영이 또다시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벌써 말해주면 재미없잖아. 알아내 봐. 내 능력이 뭔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도와줄게."

"뭘?"

"여기 숨어있는다고 언제까지 안 들킬 것 같아? 내가 도와주면, 좀 더 오래 숨어 있을 수 있어."

"왜 도와주는 건데?"

"말했잖아. 재미. 마치 숨바꼭질하는 거 같아서, 너무 재밌어."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는 기영을 보며, 세희는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너희들은 누구야? 왜 날 죽이려 하는 거야?"

"우리는 킬러야.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지. 너를 죽여달라는 사람이 있어. 그게 다야."

"다른 무당들은 왜 죽인 거야?"

"큰 그릇을 가진 재목들을 모두 죽이라고 했거든. 너는 그 명단에 없었지. 이제 너를 알게 되었으니, 모두가 너를 찾으려 들 거야."

그때였다. 세희 등 뒤로 수호가 다가서며 물었다.

"누구야?"

수호의 등장에도, 기영은 태연히 그를 바라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빠. 세희 친구예요."

세희는 기영을 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세희 친구?"

수호가 세희 옆으로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며 되묻는 말에, 세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친구 아냐. 그 열두 명 중에 한 명이야."

세희의 말에 수호가 놀란 표정으로 홱하고 고개를 돌려 기영을 향해 경계어린 눈빛을 보내자, 기영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안심하라는 기영의 말에 도리어 수호의 얼굴이 짙어진 긴장감으로 더 딱딱해졌다. 기영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한자리 너무 오래 있으면, 다른 놈들의 의심을 사요.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네가 말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어떻게 믿지?"

수호의 날선 물음에 기영이 수호를 보며 방긋이 웃어 보였다.

"믿어봐요. 난 재밌는 걸 좋아하니까."

그 말을 남기고 기영은 어딘가로 홀연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결계 안쪽에서 사라져 가는 기영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널따란 길을 분명 혼자 걸어가는 기영이었지만, 달빛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 주위로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기괴한 형상의 그림자들이 수도 없이 줄지어 쫓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이튿날 아침, 반쯤 설치고 잠에서 깨어난 수호는 아침 일찍 외출 준비를 했다.

준비를 거의 마칠 무렵, 집을 나서려는 수호를 발견한 세희가 졸린 눈을 비비며 물어왔다.

"어디가?"

"외삼촌 만나러. 일 때문에 미팅도 있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한 거 아냐?"

"내가 위험할 이유 있어? 너나 조심해야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신발을 신고 막 나가려던 수호가 다시 세희를 돌아보았다.

"은근히 말 놓는다?"

"네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비아냥대는 세희를 한번 흘끗 쳐다본 수호가 피식 웃고는 집을 나섰다.

차를 운전하는 동안 수호는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김주환이라는 원수를 코앞에 두고도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던 것은, 엄마나 아빠가 복수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원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원수를 코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겁쟁이 같은 자신을 향한 변명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정지신호에 차를 잠시 세우고, 횡단보도로 건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톡톡' 소리를 내며 누군가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익숙한 얼굴의 여자아이가 차도로 나와 수호의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수호가 창문을 내리자, 그녀가 방긋이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같이 가요."

하! 헛웃음을 터뜨린 수호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싸늘하게 노려봤다.

"우리가 그럴 사이는 아니지 않아요?"

수호가 정색을 하며 건네는 말에, 그녀, 기영이 재밌다는 듯이 깔깔 거리며 웃었다.

"당장 싸울 거 아니면, 일단 좀 태워줘요. 가면서 얘기하게."

한숨을 한번 쉬고는 체념한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수호는 찝찝한 표정으로 잠금장치를 풀었다. 수호의 마음이 바뀔새라 기영은 철컥 소리가 나자 얼른 차에 올라탔다.

때마침 신호가 바뀌어 수호가 차를 출발시키고, 기영이 안전벨트를 매며 조잘거렸다.

"혹시나 안태워주면 어쩌나 걱정했잖아요."

투정 부리듯 말하는 그녀를 힐끔 보며 수호가 말했다.

"안 그래도 지금 왜 태워줬나 후회하는 중입니다."

"아하하, 이 오빠 말하는 거봐. 오빠 마음에 든다."

"그쪽 오빠 될 생각 없고. 지금 우리는 서로 적 아닌가요?"

"일단 나는 중립이라고 치죠."

"중립으로 볼 생각 없는데?"

기영은 못 들은 척하며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일단, 세희라고 했죠? 걔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결계에 숨어서 당장은 발견 못해도, 결국 언젠가는 발견하게 되겠죠."

"협박하는 겁니까?"

"사실을 얘기하는 거죠. 특히 우리들 중에 추적술에 능한 인물이 있어요. 일단 그놈이 찾아내는 것부터 막는 게 좋을 걸요."

수호가 기영을 다시 힐끔 쳐다보자, 기영이 그런 수호를 돌아보며 단호하게 외쳤다.

"운전에 집중!"

수호는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물었다..

"왜 그런 소릴 하는 거죠?"

"말했잖아요. 난 중립. 도와주고 싶다니깐요."

"그 추적술을 쓴다는 사람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히페리온, 진짜 이름은 나도 몰라요. 사이코메트리라고 불리는 능력을 쓸 수 있어요."

"사이코메트리?"

"네. 어떤 사물이나 장소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해내는 능력이죠. 세희가 지나온 흔적을 좇아 결국은 찾아내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누구보다 먼저 히페리온을 잡아야 돼요."

"그를 어떻게 잡으란 거죠?"

"히페리온은 우리 중에서 전투능력이 가장 떨어져요. 두 사람이 합심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걸요?"

"그 사람만 있으리란 보장이 어딨어요?"

"당연히 그렇죠. 혼자 있게 만들어야죠. 이 정도 도왔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수호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어요?"

"세희를 쫓고 있으니까, 세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수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어요. 그래서, 그쪽은, 이제 어쩔 거죠?"

기영이 예의 방긋한 웃음을 지었다.

"일단 두고 보려고요. 히페리온을 어떻게 잡나 봐서, 재밌으면 좀 더 기다려 보고... 재미없으면, 뭐... 게임오버?"

"게임?"

"나한테는 그래요. 게임. 목숨을 건 게임, 그쯤 돼야 재밌죠."

"살벌하구먼."

수호의 탄식에 기영이 다시금 깔깔 거리며 웃었다.

"오빠는 아직 주목받고 있지 않지만, 히페리온이 쫓다 보면 오빠의 존재도 알게 될걸요. 기가쿠가 오빠에 대해서는 말 안 했어요. 하지만 결국 말하게 되겠죠?"

차가 또다시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멈춰 서자, 기영이 안전벨트를 풀고 차문을 열고 수호를 양해 주먹을 꽉 쥐고 흔들어 보였다.

"그럼, 잘해봐요. 화이팅~"

마치 자신은 진심이라는 듯 눈에 힘을 팍주고 응원하더니 , 차에서 내려섰다.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쳐다보던 수호는 저 구역의 또라이는 쟨가보네.. 라고 중얼거리며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신호가 바뀌어 차를 출발시켰다.

"히페리온? 사이코메트리라고..."

수호는 한층 더 심난해진 표정으로 재현이 있는 경찰서로 향했다.

차를 경찰서 앞 주차장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려 할때, 때마침 안에서 재현이 걸어 나왔다.

"외삼촌."

수호가 부르는 소리에, 재현이 그를 발견하고는 수중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일찍 왔네?"

"예, 일어나자마자 왔어요."

담배를 입에 가져가는 재현의 뒤로 젊은 청년이 한 명 따라 나오고 있었다.

젊은 청년이 재현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재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인사해. 김우식 형사야."

수호는 재현의 소개에 우식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재현이 수호를 고개짓으로 가리켰다.

"내 조카야."

"아, 말씀하셨던... 예, 안녕하세요."

반듯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 오는 것이, 꽤나 호감 가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만한 친구야. 상황은 대충 이야기해놨어. 최의원 쪽 조사하는데 도움을 줄 거야."

재현의 말에 수호는 "아..." 하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식이 수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팀에서도 최의원은 오래전부터 주목해 왔어요. 다만... 최의원 쪽을 조사하다가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어요."

"의아한 부분이요?"

"네. 혹시 최정희 씨라고 알고 계시죠?"

그의 말에 수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우식은 예상했었다는 듯이 살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의아했어요. 주변 사람들 조사하다가 수호 씨가 나와서요."

"아.... 네..."

"혹시 정희 씨와 관련해서, 인터뷰에 응해주실 수 있을까요? 뭐... 간단한 참고인 조사 정도로 여기시면 될 것 같은데..."

수호가 재현의 눈치를 살피자, 재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뭐....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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