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1
복면인 하나가 머리에 화살이 박힌 체 죽어 있고, 두 명의 복면인이 모용연을 잡아 무릎 꿇린 상태였다.
서화는 죽어있는 복면인을 보며 혀를 끌끌거리듯 차며 말했다.
"활 쏘는 재주가 신궁에 가깝다 하더니... 보통내기가 아니네."
모용연의 손에는 두 동강 난 활이 쥐어져 있었고, 얼굴 왼쪽 뺨에는 붉게 상처가 난 상태였다.
그녀는 앙칼진 눈으로 서화를 쏘아보고 있는 중이었고, 두 복면인의 칼이 그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반반한 게 그냥 죽이긴 아까운데, 어쩔 수 없지. 다음 생에는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고."
그 순간,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내가 할 소린데?"
놀란 서화가 돌아서니, 그곳에 라마가 서 있었다.
"넌....?"
서화가 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라마의 오른쪽 푸른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변하더니,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 순간, 서화의 등 뒤에 서 있던 두 복면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놀란 서화가 돌아서 보니, 두 복면인의 몸에서 붉은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빠져나온 붉은 기운은 라마의 손아귀 위로 뭉쳐지고 있었고, 두 복면인은 흡사 피를 다 빨려버린 듯 뼈와 가죽만 남은 체 털썩 쓰러져 버렸다.
"이 무슨..."
하얗게 질린 표정이 되어버린 서화가 다시 라마를 보니, 라마의 손 위로 붉은 기운 두 개가 각각 뭉치기 시작해, 두 개의 혈구가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살 수 있는 기회를 줄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 거야."
라마의 말에 서화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춤하니, 순간 라마의 손바닥 위에 두 혈구가 날아들었다.
'퍽'하는 파공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두 혈구는 서화의 허벅지를 관통하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소름 돋게 울려 퍼졌다.
"으악!"
처참한 비명을 내뱉으며 서화가 바닥에 쓰러졌다.
두 다리를 붙잡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토해내는 그를 보며 라마가 다가서니, 어느새 돌아온 혈구 두 개가 여전히 라마의 손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다음은 두 팔이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할 거야."
라마의 말에 서화가 애원하듯 말했다.
"말, 말하겠습니다. 뭐든 말하겠습니다."
"무림맹에서 왔다면서? 진짜 무림맹에서 온 거 맞아?"
"맞습니다. 맞습니다. 무림맹에 있습니다."
"그럼 저들은 뭐야?"
라마가 쓰러진 복면인을 바라보자, 서화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면서 대답했다.
'으... 그들은 명교인입니다. 저 역시 3년 전부터 명교에 입교하여, 은밀히 무림맹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몇이나 있지?"
"많습니다. 무림맹, 의천맹할 거 없이 상당수의 명교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때 옆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모용연이 나서 물었다.
"왜 날 죽이려 한 거지?"
서화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가며 대답했다.
"그저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지난번 분파 섬멸 때 살아남은 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명이 내려왔을 뿐입니다."
모용연이 재차 물었다.
"그때 우리를 공격한 건.... 의천맹이 아닌 마교의 짓인가?"
서화는 이제 고통이 극에 달했는지, 대답하지 못한 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만히 지켜보던 라마가 다시 물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던 것인가? 내게 독을 탄 차를 준 것은 어찌 준비되어 있었던 거지?"
"...으으... 하, 항시 준비하고 다닙니다. 워낙에 고수들이 많은 무림이라...."
힘겹게 대답하는 서화를 보면서, 라마가 손을 내뻗자, 그의 손위에서 맴돌던 혈구가 기다랗게 변화하며 서화의 몸을 휘감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놈을 어디다 둘까요?"
라마가 모용연을 보고 물으니, 모용연이 아미를 찌푸리며 라마의 얼굴을 살폈다.
"소....협?"
"아... 용모가 좀 바뀌었죠? 저 라마 맞습니다."
"눈동자 색이 서로 다릅니다."
"예.... 그게 좀.... 그렇게 됐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놈을 어찌할까요?"
"일단 문중 옥사에 가두어 놔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송이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가씨... 아가씨 괜찮으신 겝니까?"
송이개가 묻는 말에, 모용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사들을 불러오세요. 이자를 옥사에 가두어야겠습니다."
라마의 말에 송이개가 잠시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잠깐... 근데 여기 혼자 오셨어요? 그 사람은 어쩌구요?"
라마가 묻는 말에, 송이개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아...그것이... 그냥 떠나라 했습니다."
"무사들이 점혈 되어 있을 텐데?"
"예? 아 예... 그러고보니..."
순간 라마가 사라지자, 모용연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소협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 사이, 아까의 현장으로 돌아온 라마는 바닥에 널브러진 체 피를 흘리는 무사들에게 다가갔다.
그들 모두 목에 검흔이 깊게 베어 있었으며, 이미 절명한 듯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그 하인을 당장 쫓을 수도 있었으나, 라마는 그러지 않았다.
번쩍 하는 순간, 다시 송이개와 모용연 앞에 나타난 라마는 잠시 송이개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고, 송이개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라마의 시선을 피했다.
"옥사가 어디 있죠?"
차분한 어조로 묻는 말에, 멋쩍어하는 송이개를 바라보던 모용연이 대답했다.
"제가 안내할게요."
라마가 다시 오른손을 들자, 서화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모용연과 라마가 서화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송이개는 어쩐지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곳에 선 체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
야심한 밤이었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허름하고 작은 술상 하나를 앞에 놓고, 술병 하나 덩그러니 놓은 체 송이개가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술병 채로 술 한 모금 마시고는, 안주 대신 무거운 한숨을 내려놓았다.
순간, 번쩍 하는가 싶더니 그 옆으로 라마가 나타났다.
송이개는 나타난 라마를 술 취한 듯, 붉은 표정으로 무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먼 산 바라보듯 시선을 돌렸다.
"가주한테 다녀오는 길이에요. 지금 돌아오고 있습니다."
"예... 다행입니다."
라마의 말에도 영혼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송이개를 보며, 라마가 그 옆에 걸터앉았다.
"왜 그러셨어요?"
의미심장하게 묻는 라마의 질문에, 송이개는 먼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제가 못난 놈이라 그렇지요."
송이개가 술병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습관처럼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저더러, 그놈들을 쳐 죽이라 하더군요. 평소 그놈들이 저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멸시했지요."
라마는 문득 지난번 식사 때, 홀로 푸대접을 받던 송이개의 모습을 떠올렸다.
"차마 죽이지 못했습니다. 무림에 살면서 숱하게 사람 죽는 걸 봐왔는데, 막상 제 손에 피를 묻히려니... 어렵더이다."
라마는 그런 송이개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래 놓고 원망하지 않는다 했죠. 그랬더니 제게 그럽디다.... 거지인 줄 알았더니... 보살이라고. 거짓말인데..."
송이개가 다시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취기 오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죽이고 싶은데 죽일 수가 없어서.... 그대로 두고 가면 그 종놈이 다 죽일 거란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자리를 비웠습니다. 차도살인이라고 하죠. 내손에 피 안 묻히고 사람 죽이는 거죠. 제가 그런 놈입니다."
라마는 왠지 그런 송이개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주거리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금방 가져올 수 있는데..."
"아뇨... 술도 이제 다 마셨습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죽을 만한 놈들이었으니..."
"그럽니까? 비난하고 조롱했으니... 죽어 마땅한 놈들입니까?"
그의 질문에 라마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명교라고 그럽디다."
"들었어요. 자신들을 명교라고...."
"비루먹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런 종놈도 거기 들어가서 세상을 바꾸려 한다니...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송이개의 말에 라마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왜요? 거기 들어가시게요?"
"이 못난 놈이 어디 가서 환대받겠냐마는... 세상을 좋게 바꿀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아! 그럼 소협과 척을 지게 되는 것입니까?"
장난기 어린 송이개의 물음에, 라마가 웃음 지었다.
"아뇨. 설마요. 아저씨가 정파든 사파든, 마교... 아니 명교든. 이제 아저씨는 제 친구니까요."
라마가 호칭을 친근하게 아저씨로 바꿔 부르자, 송이개가 고개를 들어 올려, 서 있는 라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소협. 이 못난 놈을 친구라 불러주시고."
라마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너무 과음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예, 그리합죠."
돌아오던 라마는 중간에 문득 고개를 돌려 송이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씩씩하고 활달해서 몰랐던 걸까? 어쩐지 푹 수그러든 그의 뒷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라마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림에 오기 전 자신이 딱 그러했으니.
지금은... 과연 달라진 걸까?
***
새벽 무렵, 황급히 돌아온 모용세가의 사람들로,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소란스러웠다.
라마의 이야기를 듣고 모용무훈은 물론 차기 가주인 모용성훈까지 달려왔다.
"소협, 가문의 위기를 구해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훈과 무훈의 감사 인사에 라마는 살짝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응당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라마의 말에 성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라마가 말을 이었다.
"장하기 맹주님을 만나 뵙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장맹주를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다른 건 아니고, 황궁의 청을 받았습니다. 맹주께서 무고하신 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해 달라시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그런 일이라면 응당 도와드려야지요. 저희가 서첩을 하나 적어드릴 테니 가지고 가시면, 능히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모쪼록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예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성훈과 무훈이 물러가고, 잠시 뒤에 배를 문지르며 송이개가 들어섰다.
전날의 취기가 체 가시지 않았는지, 얼굴이 벌겋고 불편한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괜찮아요?"
라마가 건네는 말에, 송이개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보였다.
"죽겠습니다."
"그러니까 웬 술을 그렇게 드셨어요..."
물어보듯 건네려던 말 끝을 흐렸다. 그가 왜 마셨는지 새삼스레 물어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송이개가 한쪽 의자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을 무렵, 또다시 누군가 들어섰다.
살짝 인사를 하고 들어오는 그녀는 바로 모용연이었다.
그녀는 가벼운 목례를 해보인 뒤, 바로 송이개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괜찮아요?"
그녀는 송이개의 상태를 살피며 친근하게 다가섰고, 송이개는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유, 물론이죠. 아가씨. 이 정도로는 끄떡없습니다."
"에이, 땀도 흘리시는데....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적당한 식사를 준비해 놨어요."
"아닙니다, 아가씨. 괜찮습니다."
"얼른 오세요."
모용연이 송이개의 팔을 잡아끌어 데리고 나가며, 라마에게 살짝 수줍은 듯 말했다.
"소협도... 같이 식사하시죠?"
"아, 예. 그리하죠."
라마가 선뜻 나서서 따라가니, 송이개도 더 마다 못하고 말했다.
"가겠습니다. 그리니 이 손 놓으셔도 됩니다."
자신을 잡아끄는 모용연에게 말해보지만, 모용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이개를 잡아끌듯이 식사가 준비된 정자로 데리고 갔다.
뜨근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이 놓여 있고, 하녀 두 명이 그 옆에 서 있었다.
"자, 소협께서도 얼른 드시지요."
모용연의 말에 라마는 살짝 웃어 보인 뒤 자리에 앉았고, 그 옆으로 송이개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머쓱해하는 송이개가 편할 수 있도록, 라마가 먼저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고, 송이개는 눈치를 살피다가 따라서 먹기 시작했다.
서화는 죽어있는 복면인을 보며 혀를 끌끌거리듯 차며 말했다.
"활 쏘는 재주가 신궁에 가깝다 하더니... 보통내기가 아니네."
모용연의 손에는 두 동강 난 활이 쥐어져 있었고, 얼굴 왼쪽 뺨에는 붉게 상처가 난 상태였다.
그녀는 앙칼진 눈으로 서화를 쏘아보고 있는 중이었고, 두 복면인의 칼이 그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반반한 게 그냥 죽이긴 아까운데, 어쩔 수 없지. 다음 생에는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고."
그 순간,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내가 할 소린데?"
놀란 서화가 돌아서니, 그곳에 라마가 서 있었다.
"넌....?"
서화가 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라마의 오른쪽 푸른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변하더니,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 순간, 서화의 등 뒤에 서 있던 두 복면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놀란 서화가 돌아서 보니, 두 복면인의 몸에서 붉은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빠져나온 붉은 기운은 라마의 손아귀 위로 뭉쳐지고 있었고, 두 복면인은 흡사 피를 다 빨려버린 듯 뼈와 가죽만 남은 체 털썩 쓰러져 버렸다.
"이 무슨..."
하얗게 질린 표정이 되어버린 서화가 다시 라마를 보니, 라마의 손 위로 붉은 기운 두 개가 각각 뭉치기 시작해, 두 개의 혈구가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살 수 있는 기회를 줄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 거야."
라마의 말에 서화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춤하니, 순간 라마의 손바닥 위에 두 혈구가 날아들었다.
'퍽'하는 파공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두 혈구는 서화의 허벅지를 관통하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소름 돋게 울려 퍼졌다.
"으악!"
처참한 비명을 내뱉으며 서화가 바닥에 쓰러졌다.
두 다리를 붙잡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토해내는 그를 보며 라마가 다가서니, 어느새 돌아온 혈구 두 개가 여전히 라마의 손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다음은 두 팔이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할 거야."
라마의 말에 서화가 애원하듯 말했다.
"말, 말하겠습니다. 뭐든 말하겠습니다."
"무림맹에서 왔다면서? 진짜 무림맹에서 온 거 맞아?"
"맞습니다. 맞습니다. 무림맹에 있습니다."
"그럼 저들은 뭐야?"
라마가 쓰러진 복면인을 바라보자, 서화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면서 대답했다.
'으... 그들은 명교인입니다. 저 역시 3년 전부터 명교에 입교하여, 은밀히 무림맹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몇이나 있지?"
"많습니다. 무림맹, 의천맹할 거 없이 상당수의 명교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때 옆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모용연이 나서 물었다.
"왜 날 죽이려 한 거지?"
서화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가며 대답했다.
"그저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지난번 분파 섬멸 때 살아남은 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명이 내려왔을 뿐입니다."
모용연이 재차 물었다.
"그때 우리를 공격한 건.... 의천맹이 아닌 마교의 짓인가?"
서화는 이제 고통이 극에 달했는지, 대답하지 못한 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만히 지켜보던 라마가 다시 물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던 것인가? 내게 독을 탄 차를 준 것은 어찌 준비되어 있었던 거지?"
"...으으... 하, 항시 준비하고 다닙니다. 워낙에 고수들이 많은 무림이라...."
힘겹게 대답하는 서화를 보면서, 라마가 손을 내뻗자, 그의 손위에서 맴돌던 혈구가 기다랗게 변화하며 서화의 몸을 휘감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놈을 어디다 둘까요?"
라마가 모용연을 보고 물으니, 모용연이 아미를 찌푸리며 라마의 얼굴을 살폈다.
"소....협?"
"아... 용모가 좀 바뀌었죠? 저 라마 맞습니다."
"눈동자 색이 서로 다릅니다."
"예.... 그게 좀.... 그렇게 됐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놈을 어찌할까요?"
"일단 문중 옥사에 가두어 놔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송이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가씨... 아가씨 괜찮으신 겝니까?"
송이개가 묻는 말에, 모용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사들을 불러오세요. 이자를 옥사에 가두어야겠습니다."
라마의 말에 송이개가 잠시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잠깐... 근데 여기 혼자 오셨어요? 그 사람은 어쩌구요?"
라마가 묻는 말에, 송이개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아...그것이... 그냥 떠나라 했습니다."
"무사들이 점혈 되어 있을 텐데?"
"예? 아 예... 그러고보니..."
순간 라마가 사라지자, 모용연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소협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 사이, 아까의 현장으로 돌아온 라마는 바닥에 널브러진 체 피를 흘리는 무사들에게 다가갔다.
그들 모두 목에 검흔이 깊게 베어 있었으며, 이미 절명한 듯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그 하인을 당장 쫓을 수도 있었으나, 라마는 그러지 않았다.
번쩍 하는 순간, 다시 송이개와 모용연 앞에 나타난 라마는 잠시 송이개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고, 송이개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라마의 시선을 피했다.
"옥사가 어디 있죠?"
차분한 어조로 묻는 말에, 멋쩍어하는 송이개를 바라보던 모용연이 대답했다.
"제가 안내할게요."
라마가 다시 오른손을 들자, 서화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모용연과 라마가 서화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송이개는 어쩐지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곳에 선 체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
야심한 밤이었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허름하고 작은 술상 하나를 앞에 놓고, 술병 하나 덩그러니 놓은 체 송이개가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술병 채로 술 한 모금 마시고는, 안주 대신 무거운 한숨을 내려놓았다.
순간, 번쩍 하는가 싶더니 그 옆으로 라마가 나타났다.
송이개는 나타난 라마를 술 취한 듯, 붉은 표정으로 무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먼 산 바라보듯 시선을 돌렸다.
"가주한테 다녀오는 길이에요. 지금 돌아오고 있습니다."
"예... 다행입니다."
라마의 말에도 영혼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송이개를 보며, 라마가 그 옆에 걸터앉았다.
"왜 그러셨어요?"
의미심장하게 묻는 라마의 질문에, 송이개는 먼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제가 못난 놈이라 그렇지요."
송이개가 술병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습관처럼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저더러, 그놈들을 쳐 죽이라 하더군요. 평소 그놈들이 저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멸시했지요."
라마는 문득 지난번 식사 때, 홀로 푸대접을 받던 송이개의 모습을 떠올렸다.
"차마 죽이지 못했습니다. 무림에 살면서 숱하게 사람 죽는 걸 봐왔는데, 막상 제 손에 피를 묻히려니... 어렵더이다."
라마는 그런 송이개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래 놓고 원망하지 않는다 했죠. 그랬더니 제게 그럽디다.... 거지인 줄 알았더니... 보살이라고. 거짓말인데..."
송이개가 다시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취기 오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죽이고 싶은데 죽일 수가 없어서.... 그대로 두고 가면 그 종놈이 다 죽일 거란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자리를 비웠습니다. 차도살인이라고 하죠. 내손에 피 안 묻히고 사람 죽이는 거죠. 제가 그런 놈입니다."
라마는 왠지 그런 송이개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주거리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금방 가져올 수 있는데..."
"아뇨... 술도 이제 다 마셨습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죽을 만한 놈들이었으니..."
"그럽니까? 비난하고 조롱했으니... 죽어 마땅한 놈들입니까?"
그의 질문에 라마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명교라고 그럽디다."
"들었어요. 자신들을 명교라고...."
"비루먹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런 종놈도 거기 들어가서 세상을 바꾸려 한다니...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송이개의 말에 라마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왜요? 거기 들어가시게요?"
"이 못난 놈이 어디 가서 환대받겠냐마는... 세상을 좋게 바꿀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아! 그럼 소협과 척을 지게 되는 것입니까?"
장난기 어린 송이개의 물음에, 라마가 웃음 지었다.
"아뇨. 설마요. 아저씨가 정파든 사파든, 마교... 아니 명교든. 이제 아저씨는 제 친구니까요."
라마가 호칭을 친근하게 아저씨로 바꿔 부르자, 송이개가 고개를 들어 올려, 서 있는 라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소협. 이 못난 놈을 친구라 불러주시고."
라마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너무 과음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예, 그리합죠."
돌아오던 라마는 중간에 문득 고개를 돌려 송이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씩씩하고 활달해서 몰랐던 걸까? 어쩐지 푹 수그러든 그의 뒷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라마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림에 오기 전 자신이 딱 그러했으니.
지금은... 과연 달라진 걸까?
***
새벽 무렵, 황급히 돌아온 모용세가의 사람들로,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소란스러웠다.
라마의 이야기를 듣고 모용무훈은 물론 차기 가주인 모용성훈까지 달려왔다.
"소협, 가문의 위기를 구해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훈과 무훈의 감사 인사에 라마는 살짝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응당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라마의 말에 성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라마가 말을 이었다.
"장하기 맹주님을 만나 뵙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장맹주를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다른 건 아니고, 황궁의 청을 받았습니다. 맹주께서 무고하신 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해 달라시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그런 일이라면 응당 도와드려야지요. 저희가 서첩을 하나 적어드릴 테니 가지고 가시면, 능히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모쪼록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예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성훈과 무훈이 물러가고, 잠시 뒤에 배를 문지르며 송이개가 들어섰다.
전날의 취기가 체 가시지 않았는지, 얼굴이 벌겋고 불편한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괜찮아요?"
라마가 건네는 말에, 송이개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보였다.
"죽겠습니다."
"그러니까 웬 술을 그렇게 드셨어요..."
물어보듯 건네려던 말 끝을 흐렸다. 그가 왜 마셨는지 새삼스레 물어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송이개가 한쪽 의자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을 무렵, 또다시 누군가 들어섰다.
살짝 인사를 하고 들어오는 그녀는 바로 모용연이었다.
그녀는 가벼운 목례를 해보인 뒤, 바로 송이개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괜찮아요?"
그녀는 송이개의 상태를 살피며 친근하게 다가섰고, 송이개는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유, 물론이죠. 아가씨. 이 정도로는 끄떡없습니다."
"에이, 땀도 흘리시는데....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적당한 식사를 준비해 놨어요."
"아닙니다, 아가씨. 괜찮습니다."
"얼른 오세요."
모용연이 송이개의 팔을 잡아끌어 데리고 나가며, 라마에게 살짝 수줍은 듯 말했다.
"소협도... 같이 식사하시죠?"
"아, 예. 그리하죠."
라마가 선뜻 나서서 따라가니, 송이개도 더 마다 못하고 말했다.
"가겠습니다. 그리니 이 손 놓으셔도 됩니다."
자신을 잡아끄는 모용연에게 말해보지만, 모용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이개를 잡아끌듯이 식사가 준비된 정자로 데리고 갔다.
뜨근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이 놓여 있고, 하녀 두 명이 그 옆에 서 있었다.
"자, 소협께서도 얼른 드시지요."
모용연의 말에 라마는 살짝 웃어 보인 뒤 자리에 앉았고, 그 옆으로 송이개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머쓱해하는 송이개가 편할 수 있도록, 라마가 먼저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고, 송이개는 눈치를 살피다가 따라서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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