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 #1
라마는 좀처럼 자신의 기술이 통하지 않는 은사월을 두고, 어찌 상대할지 고심에 빠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계약 맺은 신들의 힘을 끌어온다면 쉬이 상대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신들의 힘을 노출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고, 자신의 힘만으로 제압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었던 그였기에, 쉽사리 제압되지 않은 은사월의 실력은 내심 큰 충격이었다.
반면 은사월 역시 라마의 실력에 꽤나 놀라고 있었다.
설마 지금껏 한번 보지못한 이런 고수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것도 있겠지만, 그가 사용하는 술법은 그가 알고 있는 상식을 완전히 뒤집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몇 가지 이해되지 않는 의문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니, 은사월도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고 라마를 경계한 체 서 있을 뿐이었다.
"뭐 할만큼 했으면 이제 그쯤 하지?"
난데없이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일순 모두의 시선이 그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민소매에 거무튀튀하고 허름한 옷을 입은 한 사내가 입에는 풀같은 것을 물고, 한껏 지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두꺼운 팔근육 하며, 장대한 체격이 힘 꽤나 쓸것처럼 보였고, 표정이나 허름한 행색이나, 모로 봐도 시정잡배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서늘한 것이 예삿 눈빛이 아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은사월이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누군가 하였더니, 화군(火君)이셨구려. 소인이 간만에 유쾌한 놀이를 하던 중이라, 미처 오는지 몰랐습니다."
은사월의 말에 라마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어쭈?'
그 사이 화군이라 불린 사내가 성큼 성큼 다가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말했다.
"난 하후평, 사람들이 화군이라 부르는 놈이외다. 보잘것 없긴 해도, 저기 은방주와 함께 흑사십위라 불리고 있지."
흑사십위란 말에 송이개와 모용연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내 평생 귀하같은 무공을 쓰는 이를 본적이 없소. 귀하가 누군지 여쭈어도 되겠소?"
예의가 있는 듯 하면서도 뭔가 무례하고, 무례한 듯 하면서도 뭔가 정중한 그의 태도와 언행에 라마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체 대답했다.
"라마."
"라마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묘한 무공을 쓰더이다. 때때로 중원무림 최고라고 불리는 은방주보다도 더 빠른 것 같다가도, 어떨 땐 무공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외모도... 좀 낯설고..."
현재 라마는 마치 혼혈인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그 모습이 이국적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양눈의 색이 다르니 더욱 그렇게 느낄만 한 것이다.
하후평이 그런 라마의 눈을 살피니, 라마가 퉁명스레 말했다.
"같은 편이라 이건가? 까짓거 둘 다 상대해 주지."
라마가 코웃음을 치며 하는 말에 하후평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껄껄 거리며 웃었다.
"그 호기 하나는 인정해 주지. 하지만 그쯤 하시게나, 자꾸 그렇게 우리를 도발하면, 우리도 체면이 있어서 물러날 수가 없게되니. 정녕 우리와 싸우는 것이 그대가 바라는 바인가?"
그의 질문에 라마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은사월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발을 한건 그쪽 수하들이 먼저 아니었던가?"
라마의 물음에 은사월이 수하들을 돌아보자, 수하들이 기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은사월은 다시 라마를 바라보며 밝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수하들의 잘못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정중한 은사월의 태도에, 라마도 더이상 시비를 걸 수는 없었다.
마지못한 듯 마주 인사를 하니, 그런 라마 곁으로 송이개와 모용연이 후다닥 달려와 뒤에 섰다.
그런 라마를 보며 하후평이 말했다.
"내 평생 두명의 십위를 앞에 두고 함께 덤비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 상상도 못하였소. 언제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된 비무를 겨루고 술이나 한잔 거하게 마셨으면 좋겠소만."
하후평이 호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오니, 라마도 과히 싫지 않았다.
"안그래도, 황궁의 부탁으로 의천맹주를 만나러 가봐야 하는 참인데, 기회가 된다면 그때 같이 뵙죠."
라마의 말에 하후평과 은사월이 동시에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전맹주를 만난 단 말입니까?"
은사월이 되묻는 말에 라마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이번엔 하후평이 물었다.
"아니 황궁에서 어찌 전맹주를 찾는 것이오?"
"그만 찾는 것이 아니오. 의천맹주와 무림맹주를 각각 만나보라는 청이 있었소. 나는 먼저 무림맹주를 찾아갈 것인데, 가능하다면, 두분께서 의천맹주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비무가 됐든 술이 됐든, 그 자리에서 다 해결하면 될 것같은데?"
라마의 말에 은사월과 하후평이 서로를 돌아보았고, 이내 하후평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거 좋소. 내 기꺼이 전맹주와의 만남을 주선하겠소. 그대같은 고수라면, 전맹주도 호기심이 동할 것이니, 반드시 만남에 응할 것이오."
"좋습니다. 허면 무림맹주를 찾아뵌 후에 내 두분을 찾아뵙죠."
"어찌 찾아온 다는 것이요? 내가 어디있는 줄 알고?"
하후평이 되묻는 말에 라마가 씨익 웃어보였다.
"내 이리 얼굴을 보아두었으니, 화군이 어디있든, 항상 내 눈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그럼 이만."
라마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니, 모용연과 송이개가 눈치를 보며 그 뒤를 졸졸 따라갔고, 하후평과 은사월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떠나가는 라마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놀랍군요. 무림에는 정말 기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은사월의 말에 화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처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소만.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더이다."
그의 말에 은사월은 라마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태껏 나를 능가하는 빠름을 보지 못한 것도 둘째 치고라도, 내 안력이 따라잡지 못하는 움직임이라니,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헌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빠른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다른 공간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건 나도 느꼈소. 흡사 그는 축지법 같은 것을 쓰는 것만 같았소. 마치 무공이 아니라 주술을 부리는 것만 같았으나, 은방주를 따라다니던 섬광은 그 무엇으로도 해석되지 않았소."
두 사람은 심오한 표정으로 멀리 떠나가는 라마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한편 뚜벅 뚜벅 걸어가는 라마 옆으로 송이개와 모용연이 따라 서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것이옵니까?"
모용연의 물음에 라마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모르오. 그저 저 인간들 안보이는 곳으로 가고 있을 뿐이니."
대답을 듣고 송이개나 나서 말했다.
"허면 일단 문중으로 돌아가 말을 챙겨 나오시지요."
"말은 다른 곳에서 구해야 겠어요. 유림이 집을 잘 구해놨을라나 모르겠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라마가 송이개와 모용연의 양 손을 잡았다.
모용연이 놀라해 하는 것도 잠시, 순간 주변 풍경이 확하고 바뀌어 버리니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림!"
라마의 부름에, 뒷짐 쥐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 유림이 고개를 돌려 라마를 보았다.
"앗! 소협!"
유림은 라마를 알아보고 후다닥 달려와 인사를 했다.
"언제 오셨습니까?"
라마는, 유림의 인사는 본체 만체하며, 현재 자신이 들어와 있는 집의 마당과 집 구조들을 살펴보았다.
"이집인가?"
라마의 물음에, 유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예, 이집으로 계약을 하였습니다. 보수할 곳들이 몇몇 있기에, 마침 사람을 불러 손을 볼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유림의 시선이 모용연에게로 향했다.
묘령의 여인이 서 있으니, 유림의 표정이 헤벌쭉 해지며 물었다.
"여기 소저께서는...."
그런 유림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며 송이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모시는 모용세가의 아가씨이니, 경거망동 하지 말게."
엄중한 송이개의 말에 유림은 그를 살짝 흘겨보았다가 이내 정중한 태도로 모용연에게 인사했다.
"소인, 라소협을 모시고 있는 서유림이라 합니다."
라마를 모시고 있단 말에 모용연이 밝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만나서 반가워요. 모용연이라고 합니다."
그 사이 대충 집을 둘러보던 라마가, 돌연 사라져 버렸다.
"응? 그새 어디 가셨지?"
모용연과 유림, 송이개가 어리둥절 하는 사이, 라마는 틈의 세계에 와 있었다.
그는 기괴한 기류가 흐르는 세계 한가운데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중얼 거리자, 이내 그의 눈앞에 커다란 마법진이 하나 그려졌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라마의 표정에 의아함이 그려질 무렵, 마법진 위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참 귀찮게 구네..."
퉁명스런 말투의 그 여인은 바로 네메시스였다.
그녀를 바라보며 라마가 빙그레 웃어보이자, 네메시스가 다시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왜 불러? 거절할까 하다가... 어차피 거절하면 강제로 소환할 거 같아서 온 거야."
"네메시스님의 힘을 좀 빌려보고 싶어서요. 율법의 신이시니..."
"막 갔다 붙인다? 나를 상징하는 율법의 의미나 제대로 알고 있는 거야?"
"뭐... 사실 어느 신을 부르든 마찬가지 일거 같긴 한데... 제가 집을 한채 마련했습니다."
"집?"
"예. 그 집을, 좀 안전하게 이용하고 싶어서요."
네메시스가 알겠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결계를 쳐 달라는 거구만?"
"그렇죠."
"하고 많은 신중에 왜 하필 나한테 그래?"
"제가 원하는 건 누군가 침입했을 때 타죽거나 방황하는게 아니라, 그냥 집에 못들어 오는 걸 원하거든요."
"허락된 자만 들어올 수 있는 집이란 거지? 근데 좀 조건이 까다로운데?"
"그건 알아서 해주십시오. 전 그저 제 집에서 편히 쉬길 원하니깐요."
"정히 그렇게 편히 쉬길 원한다면, 그냥 이곳에서 쉬면 되잖아? 넌 이곳에 신이고, 이곳에 있는 한 어느 누구도 널 해칠 수 없는데?"
"단순히 머물기만 하는 집은 아니라서요."
"머물기만 하는 집이 아니다?"
"예. 앞으로 그 집을 통해서, 서로 다른 세계를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네메시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말없이 라마를 바라보던 네메시스가 물었다.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돼?"
"아뇨."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도 못하면서 일을 벌이겠다고?"
"그래서 네메시스님을 부른 겁니다. 누구보다도 신중하시고, 강력한 율법의 힘을 가지고 계시니깐요."
"또 막갔다 붙인다?"
"부탁드려요."
네메시스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라마를 바라보다가 이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차피 계약해서 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잖아?"
라마가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래도 예의상...."
"꺼저."
당장이라도 계약 맺은 신들의 힘을 끌어온다면 쉬이 상대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신들의 힘을 노출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고, 자신의 힘만으로 제압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었던 그였기에, 쉽사리 제압되지 않은 은사월의 실력은 내심 큰 충격이었다.
반면 은사월 역시 라마의 실력에 꽤나 놀라고 있었다.
설마 지금껏 한번 보지못한 이런 고수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것도 있겠지만, 그가 사용하는 술법은 그가 알고 있는 상식을 완전히 뒤집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몇 가지 이해되지 않는 의문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니, 은사월도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고 라마를 경계한 체 서 있을 뿐이었다.
"뭐 할만큼 했으면 이제 그쯤 하지?"
난데없이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일순 모두의 시선이 그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민소매에 거무튀튀하고 허름한 옷을 입은 한 사내가 입에는 풀같은 것을 물고, 한껏 지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두꺼운 팔근육 하며, 장대한 체격이 힘 꽤나 쓸것처럼 보였고, 표정이나 허름한 행색이나, 모로 봐도 시정잡배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서늘한 것이 예삿 눈빛이 아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은사월이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누군가 하였더니, 화군(火君)이셨구려. 소인이 간만에 유쾌한 놀이를 하던 중이라, 미처 오는지 몰랐습니다."
은사월의 말에 라마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어쭈?'
그 사이 화군이라 불린 사내가 성큼 성큼 다가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말했다.
"난 하후평, 사람들이 화군이라 부르는 놈이외다. 보잘것 없긴 해도, 저기 은방주와 함께 흑사십위라 불리고 있지."
흑사십위란 말에 송이개와 모용연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내 평생 귀하같은 무공을 쓰는 이를 본적이 없소. 귀하가 누군지 여쭈어도 되겠소?"
예의가 있는 듯 하면서도 뭔가 무례하고, 무례한 듯 하면서도 뭔가 정중한 그의 태도와 언행에 라마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체 대답했다.
"라마."
"라마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묘한 무공을 쓰더이다. 때때로 중원무림 최고라고 불리는 은방주보다도 더 빠른 것 같다가도, 어떨 땐 무공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외모도... 좀 낯설고..."
현재 라마는 마치 혼혈인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그 모습이 이국적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양눈의 색이 다르니 더욱 그렇게 느낄만 한 것이다.
하후평이 그런 라마의 눈을 살피니, 라마가 퉁명스레 말했다.
"같은 편이라 이건가? 까짓거 둘 다 상대해 주지."
라마가 코웃음을 치며 하는 말에 하후평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껄껄 거리며 웃었다.
"그 호기 하나는 인정해 주지. 하지만 그쯤 하시게나, 자꾸 그렇게 우리를 도발하면, 우리도 체면이 있어서 물러날 수가 없게되니. 정녕 우리와 싸우는 것이 그대가 바라는 바인가?"
그의 질문에 라마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은사월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발을 한건 그쪽 수하들이 먼저 아니었던가?"
라마의 물음에 은사월이 수하들을 돌아보자, 수하들이 기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은사월은 다시 라마를 바라보며 밝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수하들의 잘못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정중한 은사월의 태도에, 라마도 더이상 시비를 걸 수는 없었다.
마지못한 듯 마주 인사를 하니, 그런 라마 곁으로 송이개와 모용연이 후다닥 달려와 뒤에 섰다.
그런 라마를 보며 하후평이 말했다.
"내 평생 두명의 십위를 앞에 두고 함께 덤비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 상상도 못하였소. 언제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된 비무를 겨루고 술이나 한잔 거하게 마셨으면 좋겠소만."
하후평이 호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오니, 라마도 과히 싫지 않았다.
"안그래도, 황궁의 부탁으로 의천맹주를 만나러 가봐야 하는 참인데, 기회가 된다면 그때 같이 뵙죠."
라마의 말에 하후평과 은사월이 동시에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전맹주를 만난 단 말입니까?"
은사월이 되묻는 말에 라마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이번엔 하후평이 물었다.
"아니 황궁에서 어찌 전맹주를 찾는 것이오?"
"그만 찾는 것이 아니오. 의천맹주와 무림맹주를 각각 만나보라는 청이 있었소. 나는 먼저 무림맹주를 찾아갈 것인데, 가능하다면, 두분께서 의천맹주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비무가 됐든 술이 됐든, 그 자리에서 다 해결하면 될 것같은데?"
라마의 말에 은사월과 하후평이 서로를 돌아보았고, 이내 하후평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거 좋소. 내 기꺼이 전맹주와의 만남을 주선하겠소. 그대같은 고수라면, 전맹주도 호기심이 동할 것이니, 반드시 만남에 응할 것이오."
"좋습니다. 허면 무림맹주를 찾아뵌 후에 내 두분을 찾아뵙죠."
"어찌 찾아온 다는 것이요? 내가 어디있는 줄 알고?"
하후평이 되묻는 말에 라마가 씨익 웃어보였다.
"내 이리 얼굴을 보아두었으니, 화군이 어디있든, 항상 내 눈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그럼 이만."
라마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니, 모용연과 송이개가 눈치를 보며 그 뒤를 졸졸 따라갔고, 하후평과 은사월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떠나가는 라마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놀랍군요. 무림에는 정말 기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은사월의 말에 화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처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소만.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더이다."
그의 말에 은사월은 라마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태껏 나를 능가하는 빠름을 보지 못한 것도 둘째 치고라도, 내 안력이 따라잡지 못하는 움직임이라니,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헌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빠른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다른 공간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건 나도 느꼈소. 흡사 그는 축지법 같은 것을 쓰는 것만 같았소. 마치 무공이 아니라 주술을 부리는 것만 같았으나, 은방주를 따라다니던 섬광은 그 무엇으로도 해석되지 않았소."
두 사람은 심오한 표정으로 멀리 떠나가는 라마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한편 뚜벅 뚜벅 걸어가는 라마 옆으로 송이개와 모용연이 따라 서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것이옵니까?"
모용연의 물음에 라마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모르오. 그저 저 인간들 안보이는 곳으로 가고 있을 뿐이니."
대답을 듣고 송이개나 나서 말했다.
"허면 일단 문중으로 돌아가 말을 챙겨 나오시지요."
"말은 다른 곳에서 구해야 겠어요. 유림이 집을 잘 구해놨을라나 모르겠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라마가 송이개와 모용연의 양 손을 잡았다.
모용연이 놀라해 하는 것도 잠시, 순간 주변 풍경이 확하고 바뀌어 버리니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림!"
라마의 부름에, 뒷짐 쥐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 유림이 고개를 돌려 라마를 보았다.
"앗! 소협!"
유림은 라마를 알아보고 후다닥 달려와 인사를 했다.
"언제 오셨습니까?"
라마는, 유림의 인사는 본체 만체하며, 현재 자신이 들어와 있는 집의 마당과 집 구조들을 살펴보았다.
"이집인가?"
라마의 물음에, 유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예, 이집으로 계약을 하였습니다. 보수할 곳들이 몇몇 있기에, 마침 사람을 불러 손을 볼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유림의 시선이 모용연에게로 향했다.
묘령의 여인이 서 있으니, 유림의 표정이 헤벌쭉 해지며 물었다.
"여기 소저께서는...."
그런 유림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며 송이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모시는 모용세가의 아가씨이니, 경거망동 하지 말게."
엄중한 송이개의 말에 유림은 그를 살짝 흘겨보았다가 이내 정중한 태도로 모용연에게 인사했다.
"소인, 라소협을 모시고 있는 서유림이라 합니다."
라마를 모시고 있단 말에 모용연이 밝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만나서 반가워요. 모용연이라고 합니다."
그 사이 대충 집을 둘러보던 라마가, 돌연 사라져 버렸다.
"응? 그새 어디 가셨지?"
모용연과 유림, 송이개가 어리둥절 하는 사이, 라마는 틈의 세계에 와 있었다.
그는 기괴한 기류가 흐르는 세계 한가운데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중얼 거리자, 이내 그의 눈앞에 커다란 마법진이 하나 그려졌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라마의 표정에 의아함이 그려질 무렵, 마법진 위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참 귀찮게 구네..."
퉁명스런 말투의 그 여인은 바로 네메시스였다.
그녀를 바라보며 라마가 빙그레 웃어보이자, 네메시스가 다시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왜 불러? 거절할까 하다가... 어차피 거절하면 강제로 소환할 거 같아서 온 거야."
"네메시스님의 힘을 좀 빌려보고 싶어서요. 율법의 신이시니..."
"막 갔다 붙인다? 나를 상징하는 율법의 의미나 제대로 알고 있는 거야?"
"뭐... 사실 어느 신을 부르든 마찬가지 일거 같긴 한데... 제가 집을 한채 마련했습니다."
"집?"
"예. 그 집을, 좀 안전하게 이용하고 싶어서요."
네메시스가 알겠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결계를 쳐 달라는 거구만?"
"그렇죠."
"하고 많은 신중에 왜 하필 나한테 그래?"
"제가 원하는 건 누군가 침입했을 때 타죽거나 방황하는게 아니라, 그냥 집에 못들어 오는 걸 원하거든요."
"허락된 자만 들어올 수 있는 집이란 거지? 근데 좀 조건이 까다로운데?"
"그건 알아서 해주십시오. 전 그저 제 집에서 편히 쉬길 원하니깐요."
"정히 그렇게 편히 쉬길 원한다면, 그냥 이곳에서 쉬면 되잖아? 넌 이곳에 신이고, 이곳에 있는 한 어느 누구도 널 해칠 수 없는데?"
"단순히 머물기만 하는 집은 아니라서요."
"머물기만 하는 집이 아니다?"
"예. 앞으로 그 집을 통해서, 서로 다른 세계를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네메시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말없이 라마를 바라보던 네메시스가 물었다.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돼?"
"아뇨."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도 못하면서 일을 벌이겠다고?"
"그래서 네메시스님을 부른 겁니다. 누구보다도 신중하시고, 강력한 율법의 힘을 가지고 계시니깐요."
"또 막갔다 붙인다?"
"부탁드려요."
네메시스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라마를 바라보다가 이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차피 계약해서 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잖아?"
라마가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래도 예의상...."
"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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