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2
굳어진 표정 위로 싸늘한 눈빛이 번득거리는 얼굴이었다.
거칠고 험악한 인상과 단단해 보이는 체격은 강인함을 드러내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모습에서 그가 고수 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왜 내가 그래야 하지?"
그의 물음에, 그의 맞은 편에 서 있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거야, 천하의 화군이라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고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테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의 대답에 화군은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고수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은둔 고수가 많다는 것은 소인도 알고 있으나, 그 고수가 능히 흑사십위와 견주어 볼만 하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겠지요."
화군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고, 그의 말에 장내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인가? 그대가 그처럼 당당하게 흑사십위에 견주는 인물이?"
"우리도 누구인지 알수 없고, 다만 지금 그가 모용세가 쪽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지요."
"모용세가? 무림맹의 인물인가?"
"딱히 소속되어있는 곳은 없으나, 현재는 그쪽에 의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림맹의 인물들까지 포함한다면, 구룡도 있을 터, 굳이 십위에 비견하여 날 찾아올 것은 뭐란 말인가?"
"그런 고수가 완전한 무림맹 사람이 되어 버리고 나면, 의천맹 입장에서 좋을 것이 없지요."
"우리는 한두명의 고수가 새롭게 나타났다고 해서 휘청거릴 만큼 나약한 조직이 아니야."
"그는 능히 십위나 구룡에 비할 만큼 강력한 인물입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그 전체에 비견될 인물이죠."
화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내 앞에서 그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이 화군의 명성도 많이 죽은 모양이구나."
상대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무림의 예의를 잘 몰라 저지른 실수입니다. 용서하십시오."
"구태여 황궁에서 나서 그자에 대해 캐묻는 이유가 무언가? 황궁이 어째서 무림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
"그자가 근래에 황궁에 왔었고, 황궁 사람들과 만났었지요."
그의 대답에 화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누구를 왜 만났는지... 그가 우리의 적인지, 아닌지... 우린 그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그가 황궁을 들락거렸다는 말만으로, 어찌 그가 고수라 생각하는 것인가?"
"승상께서 이르시길,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나타날 수 있는 자라 하였으니, 어찌 고수가 아니겠습니까?"
"단지 그것만 가지고 십위나 구룡을 운운하는 것인가?"
"그런 알량한 생각으로 왔다면, 저는 제 발로 죽으러 온 것이겠죠."
"잘 알고 있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려우나, 나름 저희가 가진 정보통을 통해 그가 능히 십위나 구룡에 견줄 고수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어째서?"
"저희는 무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판단은 그러하나, 무림인의 관점은 또 다를 터, 그러니... 직접 보고 확인해 주시길 간청드리는 것입니다."
"호기심만 가지고 움직일 만한 십위가 나뿐이라 이건가?"
"그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십위중 가장 호기심이 강하신 분이라, 저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네놈들 정보통이 과히 나쁘진 않구나."
화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모용세가로 가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 예상합니다."
***
문이 열리고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온화한 미소를 띄운 체 들어서자, 일어나 있던 은사월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였다.
"오랜만이네, 은방주."
그는 생긴 것만큼이나 꽤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이었고, 은사월의 인사에 화답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와 놓인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고, 은사월 역시 웃는 얼굴로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정정하신 도장로님을 뵈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아직까지 연명하고 있는 것이 때때로 부끄럽게 느껴지는 나이일세."
"아직 정정하시니, 괜한 말씀 마시지요."
정감 있는 은사월의 언행에 도장로란 노인은 흡족한 듯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내 자네 얼굴을 오랜만에 볼 생각에 기꺼이 오긴 했네만, 실은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온 것이네."
"무슨 부탁이십니까?"
"이제는 흑사십위의 한사람으로 의천맹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고, 또 아버지의 대를 이어 철무방을 이끄는 방주가 되었으니...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무리인줄 알면서도 이리 찾아왔으니... 내 미리 양해를 구하겠네."
"아닙니다. 어찌 그러십니까? 도장로님의 청이라면 제가 꼭 들어드릴 터이니, 편히 말씀하시지요."
도장로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며칠 전... 무림맹의 분파가 괴멸되었고, 그 범인으로 우리 의천맹을 지목한 것을 알고 있나?"
"예, 그들이 또 죄없는 의천맹에 죄를 덮어씌우려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 우리는 분개할 수밖에 없었지. 허나... 그것이 실제로 의천맹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면 어찌하겠는가?"
그의 말에 은사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입니까?"
"아닐세. 그냥 가정일 뿐이네."
도장로의 대답에 은사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흑사십위로 있는 한 결코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악당이 아닙니다. 썩어빠진 무림맹 대신 무림을 바로잡기 위해 뭉친 것입니다. 우리는 도적이나 강도가 아닙니다. 그런 야비한 짓은 소속을 떠나 무림인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그게 보통의 태도겠지. 적어도 무림인이라면 말이야."
"예?"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일들에,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불쾌할 것이네."
"누군가 기뻐한다면... 그들이 바로 범인이 아니겠습니까?"
"범인일 수도 있겠지. 문제는 누가 기뻐하는지, 누가 불쾌해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
"...."
은사월은 어쩐지 도장로가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의천맹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지. 무림맹처럼 그 문파와 가문의 역사가 길고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신진 세력들의 규합이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맹점이 있어. 그러니... 어떤 의도로 의천맹에 소속되어있는지 또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
"그것은 오래된 무림맹이라 한들 다르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그들의 속내는 시커먼 야수와 같습니다."
"일단 무림맹은 차지해 두세. 의천맹이든 무림맹이든, 소속을 떠나, 누군가 무림맹의 분파를 파쇄시켰고, 그들은 범인으로 우리를 지목하고 있네."
"예."
"그리고 의천맹 내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야욕을 가진 이들이 많아, 서로를 믿기가 어렵네."
"그래서 제게 오신 겁니까?"
"그래. 내 그나마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자네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네. 그래도 한때나마 자네 부친과 함께 했던 나를... 자네가 기만할 거라 생각하지 않네."
"물론입니다."
"이번 일을... 자네가 직접 조사해 주게.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고... 어느 누구도 믿지 말고..."
"흑사십위도 모두 마찬가지입니까?"
"흑사십위라면.... 적어도 의천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럴리는 없겠지만... 딱히 내가 부탁할만한 사람은 없더군."
"흑사십위와 이 문제를 논의해 보겠습니다."
"몇몇 인물은 조심하게, 입이 가벼우니."
"예. 발설하지 않을 만한 사람에게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헌데... 맹주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맹주의 부탁으로 온 것이네."
"아...."
은사월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이어 은사월이 도장로를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허면, 제일 먼저 무엇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용세가로 가시게. 무림맹의 분파가 파쇄되던 날, 유일한 생존자가 모용세가에 있네."
"하지만 모용세가는... 무림맹에 소속된 가문입니다. 제가 모용세가로 가면, 자칫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천하제일의 경공술을 지닌 자네가 아닌가? 가서 살펴보고만 오시게. 자네라면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능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믿네."
은사월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고맙네."
도장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은사월이 서둘러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차라도 한잔 드시고 가시지 그러십니까?"
"아닐세. 내 부탁하러 오는 마당에 뭐라도 내어 줄라면 내가 내어줘야 겠지만, 시간도 야심하고, 갑작스럽게 오는 통에 준비한 것이 없으니 자네가 이해하게."
"아닙니다."
도장로가 돌아서서 다시 문쪽으로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렸다.
바깥에는 도열해 있는 병사들이 모두 그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잠시 멈춰 선 도장로가 뒤돌아 은사월을 보며 말했다.
"되도록... 은밀히 행동해 주시게."
"예, 장로님."
도장로가 다시 발걸음을 옮겨 마련된 가마에 올라탔다.
이어 호위하는 병사들도 일제히 말위에 오르고, 그중에 유독히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도장로 가까이서 호위하며 다른 모든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은사월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해보이자, 은사월도 가벼운 답례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철무방을 나선 행렬이 제법 멀어져 갈 무렵, 지휘하던 이가 도장로 가까이로 붙으며 물었다.
"은방주가 흔쾌히 승락을 한 것입니까?"
"알다시피 내 청을 거절하긴 힘들겠지."
이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섭비, 자네도 가보게. 서화 놈이 그곳에 잡혀 있다고 하니, 아무말이나 못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오게."
온화한 눈빛은 온데간데 없이, 어느새 서슬퍼런 그의 눈빛에 섭비는 고개를 숙여보였다.
"예."
대답하는 섭비의 눈빛이 묘하게 번득거리고 있었다.
거칠고 험악한 인상과 단단해 보이는 체격은 강인함을 드러내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모습에서 그가 고수 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왜 내가 그래야 하지?"
그의 물음에, 그의 맞은 편에 서 있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거야, 천하의 화군이라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고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테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의 대답에 화군은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고수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은둔 고수가 많다는 것은 소인도 알고 있으나, 그 고수가 능히 흑사십위와 견주어 볼만 하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겠지요."
화군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고, 그의 말에 장내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인가? 그대가 그처럼 당당하게 흑사십위에 견주는 인물이?"
"우리도 누구인지 알수 없고, 다만 지금 그가 모용세가 쪽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지요."
"모용세가? 무림맹의 인물인가?"
"딱히 소속되어있는 곳은 없으나, 현재는 그쪽에 의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림맹의 인물들까지 포함한다면, 구룡도 있을 터, 굳이 십위에 비견하여 날 찾아올 것은 뭐란 말인가?"
"그런 고수가 완전한 무림맹 사람이 되어 버리고 나면, 의천맹 입장에서 좋을 것이 없지요."
"우리는 한두명의 고수가 새롭게 나타났다고 해서 휘청거릴 만큼 나약한 조직이 아니야."
"그는 능히 십위나 구룡에 비할 만큼 강력한 인물입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그 전체에 비견될 인물이죠."
화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내 앞에서 그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이 화군의 명성도 많이 죽은 모양이구나."
상대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무림의 예의를 잘 몰라 저지른 실수입니다. 용서하십시오."
"구태여 황궁에서 나서 그자에 대해 캐묻는 이유가 무언가? 황궁이 어째서 무림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
"그자가 근래에 황궁에 왔었고, 황궁 사람들과 만났었지요."
그의 대답에 화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누구를 왜 만났는지... 그가 우리의 적인지, 아닌지... 우린 그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그가 황궁을 들락거렸다는 말만으로, 어찌 그가 고수라 생각하는 것인가?"
"승상께서 이르시길,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나타날 수 있는 자라 하였으니, 어찌 고수가 아니겠습니까?"
"단지 그것만 가지고 십위나 구룡을 운운하는 것인가?"
"그런 알량한 생각으로 왔다면, 저는 제 발로 죽으러 온 것이겠죠."
"잘 알고 있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려우나, 나름 저희가 가진 정보통을 통해 그가 능히 십위나 구룡에 견줄 고수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어째서?"
"저희는 무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판단은 그러하나, 무림인의 관점은 또 다를 터, 그러니... 직접 보고 확인해 주시길 간청드리는 것입니다."
"호기심만 가지고 움직일 만한 십위가 나뿐이라 이건가?"
"그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십위중 가장 호기심이 강하신 분이라, 저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네놈들 정보통이 과히 나쁘진 않구나."
화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모용세가로 가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 예상합니다."
***
문이 열리고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온화한 미소를 띄운 체 들어서자, 일어나 있던 은사월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였다.
"오랜만이네, 은방주."
그는 생긴 것만큼이나 꽤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이었고, 은사월의 인사에 화답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와 놓인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고, 은사월 역시 웃는 얼굴로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정정하신 도장로님을 뵈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아직까지 연명하고 있는 것이 때때로 부끄럽게 느껴지는 나이일세."
"아직 정정하시니, 괜한 말씀 마시지요."
정감 있는 은사월의 언행에 도장로란 노인은 흡족한 듯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내 자네 얼굴을 오랜만에 볼 생각에 기꺼이 오긴 했네만, 실은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온 것이네."
"무슨 부탁이십니까?"
"이제는 흑사십위의 한사람으로 의천맹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고, 또 아버지의 대를 이어 철무방을 이끄는 방주가 되었으니...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무리인줄 알면서도 이리 찾아왔으니... 내 미리 양해를 구하겠네."
"아닙니다. 어찌 그러십니까? 도장로님의 청이라면 제가 꼭 들어드릴 터이니, 편히 말씀하시지요."
도장로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며칠 전... 무림맹의 분파가 괴멸되었고, 그 범인으로 우리 의천맹을 지목한 것을 알고 있나?"
"예, 그들이 또 죄없는 의천맹에 죄를 덮어씌우려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 우리는 분개할 수밖에 없었지. 허나... 그것이 실제로 의천맹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면 어찌하겠는가?"
그의 말에 은사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입니까?"
"아닐세. 그냥 가정일 뿐이네."
도장로의 대답에 은사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흑사십위로 있는 한 결코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악당이 아닙니다. 썩어빠진 무림맹 대신 무림을 바로잡기 위해 뭉친 것입니다. 우리는 도적이나 강도가 아닙니다. 그런 야비한 짓은 소속을 떠나 무림인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그게 보통의 태도겠지. 적어도 무림인이라면 말이야."
"예?"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일들에,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불쾌할 것이네."
"누군가 기뻐한다면... 그들이 바로 범인이 아니겠습니까?"
"범인일 수도 있겠지. 문제는 누가 기뻐하는지, 누가 불쾌해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
"...."
은사월은 어쩐지 도장로가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의천맹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지. 무림맹처럼 그 문파와 가문의 역사가 길고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신진 세력들의 규합이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맹점이 있어. 그러니... 어떤 의도로 의천맹에 소속되어있는지 또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
"그것은 오래된 무림맹이라 한들 다르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그들의 속내는 시커먼 야수와 같습니다."
"일단 무림맹은 차지해 두세. 의천맹이든 무림맹이든, 소속을 떠나, 누군가 무림맹의 분파를 파쇄시켰고, 그들은 범인으로 우리를 지목하고 있네."
"예."
"그리고 의천맹 내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야욕을 가진 이들이 많아, 서로를 믿기가 어렵네."
"그래서 제게 오신 겁니까?"
"그래. 내 그나마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자네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네. 그래도 한때나마 자네 부친과 함께 했던 나를... 자네가 기만할 거라 생각하지 않네."
"물론입니다."
"이번 일을... 자네가 직접 조사해 주게.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고... 어느 누구도 믿지 말고..."
"흑사십위도 모두 마찬가지입니까?"
"흑사십위라면.... 적어도 의천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럴리는 없겠지만... 딱히 내가 부탁할만한 사람은 없더군."
"흑사십위와 이 문제를 논의해 보겠습니다."
"몇몇 인물은 조심하게, 입이 가벼우니."
"예. 발설하지 않을 만한 사람에게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헌데... 맹주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맹주의 부탁으로 온 것이네."
"아...."
은사월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이어 은사월이 도장로를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허면, 제일 먼저 무엇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용세가로 가시게. 무림맹의 분파가 파쇄되던 날, 유일한 생존자가 모용세가에 있네."
"하지만 모용세가는... 무림맹에 소속된 가문입니다. 제가 모용세가로 가면, 자칫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천하제일의 경공술을 지닌 자네가 아닌가? 가서 살펴보고만 오시게. 자네라면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능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믿네."
은사월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고맙네."
도장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은사월이 서둘러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차라도 한잔 드시고 가시지 그러십니까?"
"아닐세. 내 부탁하러 오는 마당에 뭐라도 내어 줄라면 내가 내어줘야 겠지만, 시간도 야심하고, 갑작스럽게 오는 통에 준비한 것이 없으니 자네가 이해하게."
"아닙니다."
도장로가 돌아서서 다시 문쪽으로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렸다.
바깥에는 도열해 있는 병사들이 모두 그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잠시 멈춰 선 도장로가 뒤돌아 은사월을 보며 말했다.
"되도록... 은밀히 행동해 주시게."
"예, 장로님."
도장로가 다시 발걸음을 옮겨 마련된 가마에 올라탔다.
이어 호위하는 병사들도 일제히 말위에 오르고, 그중에 유독히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도장로 가까이서 호위하며 다른 모든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은사월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해보이자, 은사월도 가벼운 답례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철무방을 나선 행렬이 제법 멀어져 갈 무렵, 지휘하던 이가 도장로 가까이로 붙으며 물었다.
"은방주가 흔쾌히 승락을 한 것입니까?"
"알다시피 내 청을 거절하긴 힘들겠지."
이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섭비, 자네도 가보게. 서화 놈이 그곳에 잡혀 있다고 하니, 아무말이나 못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오게."
온화한 눈빛은 온데간데 없이, 어느새 서슬퍼런 그의 눈빛에 섭비는 고개를 숙여보였다.
"예."
대답하는 섭비의 눈빛이 묘하게 번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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