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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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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8.65분

76화 - #1


"움직이면서 저것들을 밀어낼 수 있겠느냐?"

홀로 사랑채 안으로 들어간 연희를 이대로 두고만 볼 수 없는 세자는 괴인들과 사투를 벌이며 소연을 향해 다급히 물었다.

세자의 물음에 소연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오나, 저하... 제가 이 수인을 풀게 되면, 결계가 깨어져 위험하게 되옵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있다. 결계 주위를 둘러싼 녀석들의 발목을 모두 벨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잠시 틈이 생길 것이니, 너는 움직일 수 있는 주술로 바꾸거라."

"저하.. 물론 인을 바꿔 그리할 수는 있겠으나, 이 결계만큼 안전하지 않사옵니다."

세자는 결계안으로 들어와 재빠르게 옷자락을 찢어 혹시라도 검을 손에서 놓칠까 손과 검의 손잡이 부분을 꽁꽁 싸매며 결연하게 말했다.

"괜찮다. 위험을 마주 보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준비되었느냐?"

소연이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저하."

"그럼... 간다."

말과 동시에 세자는 결계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괴인들의 발목과 허벅지를 빠르게 돌며 베었다.

그것들은 고통은 느낄 수 없다 해도, 이전 왜장처럼 발목과 허벅지가 베이자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지금이다."

세자의 말과 동시에 소연이 수인을 풀고, 다른 주문을 외우는 순간, 결계가 깨어졌다.

그러자 결계 바로 앞에 있던 괴인들은 앞쪽에서 막아주던 막이 사라지니, 더 이상 서있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세자는 뒤이어 넘어오는 괴인들도 소연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발목을 베어 쓰러뜨렸다.

두 번째 괴인들까지 첫 번째 괴인들 위로 넘어져 쌓이니, 그 뒤로는 괴인들이 쉬이 넘어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되었습니다."

소연이 수인을 바꿔 한 걸음씩 사랑채 쪽으로 향하자, 세자가 옆에서 경계하며 따랐다.

소연이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답답했는지, 세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초조하게 말했다.

"서두르거라."

"서두르고 있사옵니다. 저하."

소연은 식은땀을 흘려가며 쓰러진 괴인들 위를 조심스럽게 밟고 지나갔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괴인들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에워싸기만 할 뿐 두 사람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어찌나 길게만 느껴지던지, 세자는 앞쪽에서 방해되는 괴인들을 칼로 베어 쓰러뜨리며 적당히 소연의 앞길을 터주고 있었고, 소연은 최대한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다.

비로소 사랑채 앞에 다다르자, 세자가 소연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저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겠느냐?"

소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자는 진중한 눈빛으로 고맙다는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사랑채 문을 걷어차듯 박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연희와, 연희 앞에 신검을 든 천태호의 모습이었다.

"이놈!"

세자가 소리치며 천태호를 향해 달려 나갔다.

놀란 천태호가 뒤로 주춤 물러나며 손을 들어 막았다.

세자의 검과 천태호의 신검이 마주하며, 청명하고 맑은 금속성 소리가 사랑채 안에 울려 퍼졌다.

"세에자아!!!"

천태호는 아슬아슬하게 세자의 검이 자신의 코앞에 멈춰 서자, 분노한 일갈을 터뜨리며 다른 손으로 부적을 꺼내 들어 날렸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세자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 그 부적은 흡사 폭탄처럼 펑하는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다.

"윽!"

세자가 짧은 단말마의 신음과 함께 뒤쪽으로 튕겨 나가떨어지자, 연희가 놀란 눈으로 세자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저하!"

그리고 물러섰던 천태호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뒷 춤에서 한 움큼의 부적을 꺼내 쥐어 들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네놈의 육신이고 뭐고!"

천태호의 손에 있던 부적들이, 천태호가 허공에 던지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풀거리며 날아 천태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세자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천태호의 기괴한 술수를 응시하며 검을 앞으로 뻗었다.

세자의 눈에 천태호의 앞에 쓰러져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연희가 들어왔다.

"고작 그깟 검 한 자루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천태호가 말을 하며 왼손을 살짝 튕기자, 부적하나가 화살처럼 세자에게 쏘아지듯 날아갔다.

하지만 세자는 차분하게 검으로 날아오는 부적을 베어버렸고, 부적은 허공에서 펑하는 짧은 폭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천태호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세자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작 그 검 한 자루에 내 모든 것을 걸어보마."

천태호는 당장이라도 부적을 일시에 내보내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양손을 사용해야 했다.

오른손에 쥐어진 파사신검때문에 왼손밖에 이용할 수 없던 천태호는 세자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다시금 뒤로 주춤 물러서며 왼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결에 따라 부적이 한 장씩 세자에게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갔지만, 세자는 차분하게 날아드는 부적을 검으로 베어 무력화시켰다.

"치잇!"

천태호가 어금니를 깨물며 신검을 허리춤에 대충 끼워 넣고 양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안돼!"

세자의 외침 소리에 천태호의 시선이 세자에게로 향하는 순간, 아래쪽에서 연희가 온몸에 체중을 실어 천태호를 덮쳤다.

"헉!"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천태호의 수인이 풀리며 연희와 함께 뒤로 넘어져 버렸다.

뒷머리를 세게 부딪힌 천태호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잠시 초점 잃은 눈을 깜빡거렸다.

이어 뿌연 시야사이로 세자가 달려와 연희를 부축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태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 하는 순간, 몸 아래쪽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고, 고개를 내려보니, 자신의 배에 파사신검이 꽂혀 있었다.

"커헉!"

그 순간, 천태호의 입에서 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네... 네년이..."

연희는 천태호가 신검을 허리춤에 찔러 넣는 것을 본 순간, 온 체중을 실어 천태호를 덮쳤고, 넘어지면서 허리춤에 있던 신검을 뽑아 천태호를 그대로 찌른 것이었다.

천태호는 점점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잡으려 바둥거려 보았지만, 이내 그대로 쓰러져 생명이 꺼져가기 시작했다.

"연희야?"

걱정스러움에 세자가 연희를 부축하며 연희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은 것이냐? 연희야?"

세자의 연이은 물음에, 어딘지 모르게 힘이 빠져버린 연희는 맥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하..."

그리고 그때 문 밖에 있던 소연이 들어서며 말했다.

"괴인들이... 모두 쓰러졌습니다. 혹..."

이어 소연의 눈에 쓰러진 연희를 부축하고있는 세자와 천태호의 배에 꽂혀 있는 신검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연희 역시 의식이 아득해져 가고있음을 느꼈다.

"어떻게 되는 것이냐? 어떻게 되는 것이야?"

세자가 소연을 향해 버럭 소리치자, 소연이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이제... 이제 곧... 천태호의 모든 주술이 풀릴 것입니다."

"연희는? 연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어서 말해 보거라."

"그... 그것이... 그것이... 아마도... 다시 혼령이 될 것입니다."

"혼령이 된다니? 죽는 단 말이냐?"

그때였다. 세자는 자신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꼈다.

세자의 시선이 자연히 연희에게로 다시 향하자, 연희는 여느 때보다도 온화한 미소로 세자를 바라보았다.

"이리 만지면... 아니 되는 것입니까?"

연희가 장난스럽게 물어오니, 세자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억지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어찌하옵니까... 기억이 가물거려, 다시 예법을 다 잊은 모양입니다."

연희의 말에 세자가 연이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괜찮다. 다 몰라도 괜찮으니, 내 곁에만 머물거라."

연희는 슬퍼하는 세자의 뺨을 계속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잃어버린 제 삶에, 그 삶에 대한 기억의 자리에, 저하와의 기억이 대신한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세자 역시 연희의 뺨을 소중히 어루만지며 말했다.

"계속 그리 하거라. 이제야 진정으로 너를 지켜줄 수 있으니..."

세자가 소연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연희를... 연희를 지킬 수 없겠느냐?"

소연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송구하옵니다. 저하...."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연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한단 말이다."

간곡하게 애원하는 세자의 뺨을 어루만지며, 연희는 자신의 의식과 촉감이 점점 더 둔해지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을 직감했다.

힘겹게 숨을 몰아 쉬며, 연희는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제 삶은... 비록... 우물에 비친 달처럼... 진짜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저하께옵서 찾으시는.... 그런... 달이었기에... 너무나... 행복.... 했습니다..."

그것이 끝이었다.

연희는 그대로 눈을 감고 의식을 잃었고, 세자는 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비통하게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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