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5
휘영은 눈살을 찌푸린 체 커피숍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밝은 대낮에, 그것도 사람 많은 번화가 커피숍이라니...
휘영은 이런 장소, 이 시간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짧은 한숨을 뒤로하고, 휘영은 커피숍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제나 저제나 언제 오는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오신부가, 혹여나 그런 마음 못 알아줄까,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했다.
"이쪽일세."
밝게 웃는 오신부 옆으로 표정이 굳은 체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그 남자는 꽤나 심각한 고민이 있어 보였고, 그 남자의 눈가 주름, 입가 주름, 그리고 마주 잡고 있는 손등을 순간적으로 살펴보고는, 오신부에게 인사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휘영이 그들 앞에 마주 섰을 때, 그 남자가 손에 들고 만지작 거리고 있는 묵주와 낡긴 했어도 단정한 옷차림, 희끗한 흰머리에 조금 부스스해 보이긴 했어도 빗질로 손질한 머릿결이 눈에 들어왔다.
"이쪽은 윤신부님이셔. 저기 대전 쪽에 계시다가, 내 소개받고 오셨어."
오신부의 소개에 윤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말을 건네 왔다.
"윤태성이라고 합니다."
"이휘영 입니다."
휘영도 마주 인사를 하였고, 그러고 나자 오신부가 부산하게 말했다.
"자자, 일단 앉읍시다. 자네도 커피?"
"네."
휘영이 짧게 대답하자, 오신부가 부랴부랴 계산대 쪽으로 향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쪽 일 해결하시는 전문이시라구요."
윤신부의 목소리는 약간 낮고 쉰듯한 목소리였다.
아마도 피곤한 듯, 자기 목소리는 아닐 것 같았다.
"네, 뭐..."
휘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만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저희도 도움 요청을 받고 나섰다가 꽤나 곤욕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실은..."
윤신부가 말을 하려다 말고 다가오는 오신부를 보며 말을 끊었다.
"자자, 커피 드시면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오신부가 휘영 앞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려놓자, 휘영은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신부가 자리에 앉으며 휘영을 보고 말했다.
"이번엔 원귀나 뭐 이런 거하고는 차원이 다른 일이라..."
오신부의 말에 휘영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하자, 윤신부가 나서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저희 쪽으로 도움을 요청한 무당이 있었습니다."
무당이란 말에 휘영이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당이요? 무당이 신부님한테 도움을 요청했단 말입니까?"
"예. 저희도 처음엔 좀 놀랐습니다. 무당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윤신부는 그때를 회상하듯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이어 말했다.
"저주에 걸렸더군요. 아마도 우리 쪽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우리에게 찾아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희도 난감하긴 했지만, 도와주지 않을 이유 또한 없었죠.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기엔, 버거운 저주란 겁니다."
"어떤 저주죠?"
휘영의 물음에, 윤신부와 오신부가 서로 마주 보더니, 이번엔 오신부가 나서 말했다.
"그게... 직접 보는 게 좋을 듯하네. 자네만 괜찮다면, 커피 마시고 나서 바로 같이 가는 게 어떻겠나?"
"여기... 와 있어요?"
이번엔 윤신부가 나서 말했다.
"예... 그 저주의 특성상... 밤에 만나는 것이 위험해서... 굳이 이 시간에 뵙자고 했습니다."
다시 오신부가 웃음기 가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자네마저 해결을 못하면... 어쩌면 그 무당을 죽여야 할지도 모르네."
휘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저를 부르신 거군요?"
휘영의 물음에, 오신부는 헛기침만 할 뿐,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수긍하고 있음을, 휘영은 익숙히 알고 있었다.
휘영은 커피잔을 들어 벌컥벌컥 한 번에 반쯤 마셔버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가시죠. 지체할 것 없이."
윤신부와 오신부가 다시 한번 서로를 마주 보더니, 서둘러 휘영을 따라 일어났다.
커피숍 밖으로 나온 오신부는 뒤따라오는 윤신부와 휘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차를 가져올 테니까, 잠시 기다리세요."
그러고는 조금 떨어져 있는 다른 건물 주차장으로 부랴부랴 달려갔고, 휘영은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입에 담배 하나를 물었다.
휘영이 담배에 막 불을 붙였을 때, 4차선 도로 너머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고, 시현이 택시에서 내려섰다.
그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눈살을 찌푸린 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자, 얼른 물었다.
"사거리에서 내렸어. 어디로 오라고?"
- 잠시만 서 계세요. 금방 갈게요.
"알았어."
시현은 전화를 끊고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다가, 문득 길 건너편에서 담배를 피우는 휘영을 보았다.
그때 휘영 앞으로 차가 한대 멈춰 서고, 휘영은 담뱃불을 끄고 차에 올라타는데, 올라타는 휘영의 모습을 본 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응시했다.
"어?"
그러다 금세 차에 올라타버려서 제대로 보지 못한 시현은 고개를 숙여 차 안을 보려 애썼지만, 차는 그대로 출발해 버렸다.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것 같은 상대의 외모에, 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떠나간 차의 번호를 확인하려 했지만, 쉴 새 없이 큰 차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다시 한번 갸웃거리며 긴가민가 하고 있는 사이, 뒤쪽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과장님."
그새 휘영이 탄 차는, 커피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주차장에서 내려 뒷문 쪽으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세 사람은 성당의 지하실로 향할 수 있었다.
창문이 있어 지하실로 가는 길목은 밝은 편이었지만, 그 끝에 있는 방에 다다랐을 땐, 창문이 모두 꼭꼭 닫혀 있고 천장에 달린 전등 불빛이 약해 어두워보였다.
두꺼운 철문에 달린 자물쇠를 열쇠를 푼 윤신부가, 긴장된 표정으로 살짝 열린 문틈으로 말했다.
"윤신부네. 지금 들어가도 괜찮겠나?"
안쪽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는 윤신부의 목소리는 꽤나 긴장되어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뜻밖에도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윤신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고 들어섰고, 오신부와 휘영이 그 뒤를 쫓아 들어갔다.
안쪽은 작은 방이었고, 허름한 침대 하나가 놓여있었으며, 그 침대에는 한 여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순간, 휘영은 두 눈을 부릅떴다.
창백한 피부, 축 처진 손과 발과는 달리 눈빛은 생생했으나, 마치 짐승의 눈처럼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어둠 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갈증이 나는군.... 이 냄새.... 피를 갈망하는 냄새야...
산의 목소리였다. 평소 산은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종종 말을 걸어오곤 했다.
"흡혈귀군요."
휘영의 말에, 윤신부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아셨소?"
윤신부는 휘영이 그녀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본 것에 놀라 해하고 있었다.
휘영은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서... 성당을 찾아왔군요. 무당이 흡혈귀가 돼버렸으니... 자기가 모시던 신에게도 버림받고..."
그녀의 눈빛이 꿈틀거렸다.
단번에 자신에 대해 알아낸 것에 놀랐는지,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녀가 일어나자 윤신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지, 진정하시게."
윤신부가 그녀를 향해 겁먹은 목소리로 말하자, 휘영이 그런 윤신부를 향해 말했다.
"걱정 마세요. 여차하면 그냥 죽여버릴 테니까."
잔인한 말임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은 체 휘영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당신... 당신도 사람이 아니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선량한 기운이 감도는 온화한 목소리였다.
휘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품 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내뿜은 그가,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시던 신에게 버림받은 건... 흡혈귀가 되었기 때문인가?"
휘영의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요. 제가 흡혈귀가 되자, 신은 제 곁을 떠났어요."
"그럴 만도 하지. 괴물이 되는 저주에 걸렸는데, 어느 신인들 좋아할까?"
괴물이란 말에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휘영은 차가운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아니."
단호한 그의 한마디에 그녀의 시선이 휘영 뒤에 있는 윤신부에게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심경을 읽기라도 한 듯, 휘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치료해 달라고 날 부른 것 같지는 않네."
말과 함께 왼손에 담배를 들고, 오른손으로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단검을 본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마치 사나운 늑대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늑대 같은 소리를 내니, 윤신부와 오신부는 더욱 기겁한 표정으로 문 앞에 바짝 물러섰다.
"순순히 뒤지는 게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내가 좀 거친 방법을 써야 하거든."
휘영은 마치 익숙한 듯, 태연한 표정으로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휘영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요."
"착각하나 본데... 넌 이미 죽었어. 흡혈귀가 되는 순간, 이미 죽은 거야. 지금 니 심장이 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휘영의 말에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심장의 두근거림, 그녀는 지금 그것을 느껴보려 애썼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오만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듯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맺혀 뚝뚝 떨어졌다.
슬퍼하는 그녀는 휘영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난 뭐죠? 난 여전히 말하고, 울고, 느끼고 있는데..."
그녀의 말에 휘영은 문득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똑같았다. 지난날 자신이 스스로에게 했던 원망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살았으나 살아있지 않은, 죽었어야 했으나 죽지 못한, 자신과 똑같은 운명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뭘 망설여? 단칼에 제거해 버려. 어렵지 않잖아? 너한테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
또다시 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그녀에게서 네 자신이 보이는 건가? 이제와 측은지심이라도 보이는 건가? 웃기는군. 그동안 네놈 손에 죽은 인간과 소멸된 원혼들도 다 저마다 사연이 있었는데 말이야.
단검을 쥔 휘영의 손에 핏줄이 두드러질 만큼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결심한 듯, 휘영 앞에 서서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양주먹을 꽉 쥔 체, 죽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결심과 달리 휘영은 망설이고 있었다.
휘영은 알고 있었다. 이미 흡혈귀가 되어버린 그녀를 다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죽여야 한다. 소멸시켜야 한다. 그것이 그의 일이고, 마땅히 그리 해야 하는 일이다.
"으아아!"
휘영이 일갈하며 오른손에 든 단검을 치켜들었다.
오신부와 윤신부는 차마 보지 못한 체 그 순간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휘영의 단검이 그녀를 베어 버렸다.
이렇게 밝은 대낮에, 그것도 사람 많은 번화가 커피숍이라니...
휘영은 이런 장소, 이 시간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짧은 한숨을 뒤로하고, 휘영은 커피숍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제나 저제나 언제 오는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오신부가, 혹여나 그런 마음 못 알아줄까,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했다.
"이쪽일세."
밝게 웃는 오신부 옆으로 표정이 굳은 체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그 남자는 꽤나 심각한 고민이 있어 보였고, 그 남자의 눈가 주름, 입가 주름, 그리고 마주 잡고 있는 손등을 순간적으로 살펴보고는, 오신부에게 인사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휘영이 그들 앞에 마주 섰을 때, 그 남자가 손에 들고 만지작 거리고 있는 묵주와 낡긴 했어도 단정한 옷차림, 희끗한 흰머리에 조금 부스스해 보이긴 했어도 빗질로 손질한 머릿결이 눈에 들어왔다.
"이쪽은 윤신부님이셔. 저기 대전 쪽에 계시다가, 내 소개받고 오셨어."
오신부의 소개에 윤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말을 건네 왔다.
"윤태성이라고 합니다."
"이휘영 입니다."
휘영도 마주 인사를 하였고, 그러고 나자 오신부가 부산하게 말했다.
"자자, 일단 앉읍시다. 자네도 커피?"
"네."
휘영이 짧게 대답하자, 오신부가 부랴부랴 계산대 쪽으로 향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쪽 일 해결하시는 전문이시라구요."
윤신부의 목소리는 약간 낮고 쉰듯한 목소리였다.
아마도 피곤한 듯, 자기 목소리는 아닐 것 같았다.
"네, 뭐..."
휘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만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저희도 도움 요청을 받고 나섰다가 꽤나 곤욕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실은..."
윤신부가 말을 하려다 말고 다가오는 오신부를 보며 말을 끊었다.
"자자, 커피 드시면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오신부가 휘영 앞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려놓자, 휘영은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신부가 자리에 앉으며 휘영을 보고 말했다.
"이번엔 원귀나 뭐 이런 거하고는 차원이 다른 일이라..."
오신부의 말에 휘영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하자, 윤신부가 나서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저희 쪽으로 도움을 요청한 무당이 있었습니다."
무당이란 말에 휘영이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당이요? 무당이 신부님한테 도움을 요청했단 말입니까?"
"예. 저희도 처음엔 좀 놀랐습니다. 무당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윤신부는 그때를 회상하듯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이어 말했다.
"저주에 걸렸더군요. 아마도 우리 쪽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우리에게 찾아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희도 난감하긴 했지만, 도와주지 않을 이유 또한 없었죠.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기엔, 버거운 저주란 겁니다."
"어떤 저주죠?"
휘영의 물음에, 윤신부와 오신부가 서로 마주 보더니, 이번엔 오신부가 나서 말했다.
"그게... 직접 보는 게 좋을 듯하네. 자네만 괜찮다면, 커피 마시고 나서 바로 같이 가는 게 어떻겠나?"
"여기... 와 있어요?"
이번엔 윤신부가 나서 말했다.
"예... 그 저주의 특성상... 밤에 만나는 것이 위험해서... 굳이 이 시간에 뵙자고 했습니다."
다시 오신부가 웃음기 가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자네마저 해결을 못하면... 어쩌면 그 무당을 죽여야 할지도 모르네."
휘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저를 부르신 거군요?"
휘영의 물음에, 오신부는 헛기침만 할 뿐,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수긍하고 있음을, 휘영은 익숙히 알고 있었다.
휘영은 커피잔을 들어 벌컥벌컥 한 번에 반쯤 마셔버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가시죠. 지체할 것 없이."
윤신부와 오신부가 다시 한번 서로를 마주 보더니, 서둘러 휘영을 따라 일어났다.
커피숍 밖으로 나온 오신부는 뒤따라오는 윤신부와 휘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차를 가져올 테니까, 잠시 기다리세요."
그러고는 조금 떨어져 있는 다른 건물 주차장으로 부랴부랴 달려갔고, 휘영은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입에 담배 하나를 물었다.
휘영이 담배에 막 불을 붙였을 때, 4차선 도로 너머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고, 시현이 택시에서 내려섰다.
그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눈살을 찌푸린 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자, 얼른 물었다.
"사거리에서 내렸어. 어디로 오라고?"
- 잠시만 서 계세요. 금방 갈게요.
"알았어."
시현은 전화를 끊고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다가, 문득 길 건너편에서 담배를 피우는 휘영을 보았다.
그때 휘영 앞으로 차가 한대 멈춰 서고, 휘영은 담뱃불을 끄고 차에 올라타는데, 올라타는 휘영의 모습을 본 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응시했다.
"어?"
그러다 금세 차에 올라타버려서 제대로 보지 못한 시현은 고개를 숙여 차 안을 보려 애썼지만, 차는 그대로 출발해 버렸다.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것 같은 상대의 외모에, 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떠나간 차의 번호를 확인하려 했지만, 쉴 새 없이 큰 차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다시 한번 갸웃거리며 긴가민가 하고 있는 사이, 뒤쪽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과장님."
그새 휘영이 탄 차는, 커피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주차장에서 내려 뒷문 쪽으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세 사람은 성당의 지하실로 향할 수 있었다.
창문이 있어 지하실로 가는 길목은 밝은 편이었지만, 그 끝에 있는 방에 다다랐을 땐, 창문이 모두 꼭꼭 닫혀 있고 천장에 달린 전등 불빛이 약해 어두워보였다.
두꺼운 철문에 달린 자물쇠를 열쇠를 푼 윤신부가, 긴장된 표정으로 살짝 열린 문틈으로 말했다.
"윤신부네. 지금 들어가도 괜찮겠나?"
안쪽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는 윤신부의 목소리는 꽤나 긴장되어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뜻밖에도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윤신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고 들어섰고, 오신부와 휘영이 그 뒤를 쫓아 들어갔다.
안쪽은 작은 방이었고, 허름한 침대 하나가 놓여있었으며, 그 침대에는 한 여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순간, 휘영은 두 눈을 부릅떴다.
창백한 피부, 축 처진 손과 발과는 달리 눈빛은 생생했으나, 마치 짐승의 눈처럼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어둠 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갈증이 나는군.... 이 냄새.... 피를 갈망하는 냄새야...
산의 목소리였다. 평소 산은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종종 말을 걸어오곤 했다.
"흡혈귀군요."
휘영의 말에, 윤신부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아셨소?"
윤신부는 휘영이 그녀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본 것에 놀라 해하고 있었다.
휘영은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서... 성당을 찾아왔군요. 무당이 흡혈귀가 돼버렸으니... 자기가 모시던 신에게도 버림받고..."
그녀의 눈빛이 꿈틀거렸다.
단번에 자신에 대해 알아낸 것에 놀랐는지,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녀가 일어나자 윤신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지, 진정하시게."
윤신부가 그녀를 향해 겁먹은 목소리로 말하자, 휘영이 그런 윤신부를 향해 말했다.
"걱정 마세요. 여차하면 그냥 죽여버릴 테니까."
잔인한 말임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은 체 휘영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당신... 당신도 사람이 아니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선량한 기운이 감도는 온화한 목소리였다.
휘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품 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내뿜은 그가,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시던 신에게 버림받은 건... 흡혈귀가 되었기 때문인가?"
휘영의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요. 제가 흡혈귀가 되자, 신은 제 곁을 떠났어요."
"그럴 만도 하지. 괴물이 되는 저주에 걸렸는데, 어느 신인들 좋아할까?"
괴물이란 말에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휘영은 차가운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아니."
단호한 그의 한마디에 그녀의 시선이 휘영 뒤에 있는 윤신부에게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심경을 읽기라도 한 듯, 휘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치료해 달라고 날 부른 것 같지는 않네."
말과 함께 왼손에 담배를 들고, 오른손으로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단검을 본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마치 사나운 늑대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늑대 같은 소리를 내니, 윤신부와 오신부는 더욱 기겁한 표정으로 문 앞에 바짝 물러섰다.
"순순히 뒤지는 게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내가 좀 거친 방법을 써야 하거든."
휘영은 마치 익숙한 듯, 태연한 표정으로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휘영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요."
"착각하나 본데... 넌 이미 죽었어. 흡혈귀가 되는 순간, 이미 죽은 거야. 지금 니 심장이 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휘영의 말에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심장의 두근거림, 그녀는 지금 그것을 느껴보려 애썼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오만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듯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맺혀 뚝뚝 떨어졌다.
슬퍼하는 그녀는 휘영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난 뭐죠? 난 여전히 말하고, 울고, 느끼고 있는데..."
그녀의 말에 휘영은 문득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똑같았다. 지난날 자신이 스스로에게 했던 원망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살았으나 살아있지 않은, 죽었어야 했으나 죽지 못한, 자신과 똑같은 운명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뭘 망설여? 단칼에 제거해 버려. 어렵지 않잖아? 너한테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
또다시 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그녀에게서 네 자신이 보이는 건가? 이제와 측은지심이라도 보이는 건가? 웃기는군. 그동안 네놈 손에 죽은 인간과 소멸된 원혼들도 다 저마다 사연이 있었는데 말이야.
단검을 쥔 휘영의 손에 핏줄이 두드러질 만큼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결심한 듯, 휘영 앞에 서서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양주먹을 꽉 쥔 체, 죽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결심과 달리 휘영은 망설이고 있었다.
휘영은 알고 있었다. 이미 흡혈귀가 되어버린 그녀를 다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죽여야 한다. 소멸시켜야 한다. 그것이 그의 일이고, 마땅히 그리 해야 하는 일이다.
"으아아!"
휘영이 일갈하며 오른손에 든 단검을 치켜들었다.
오신부와 윤신부는 차마 보지 못한 체 그 순간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휘영의 단검이 그녀를 베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