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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운명

author
· 로슬린
· 최초 등록: 2025.10.03 · 최근 연재: 2025-10-05
읽기 시간 예측: 약 10.48분

4화 - #4


현관문 비밀번호가 풀리며, 휘영이 집안에 들어섰다.

검은색 일색인 옷을 현관문 바로 옆에 있는 방문으로 들어가 벗어놓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는 그의 주변에는, 대체로 비슷한 검은색 계열의 옷만이 걸려 있었다.

작은 방이지만, 그 작은 방이 휑해 보일 정도로 뭔가 있는 게 없는 옷방이었고, 그 방을 나와 어두컴컴한 거실에 두터운 암막 커튼을 걷자, 은은한 햇살이 집안에 들어섰다.

햇살에 밝혀진 집안은 옷방 못지않게 휑했다.

그 흔한 거실장, TV, 소파 같은 게 보이지 않는 텅 빈 거실이 펼쳐져 있었다.

그나마 주방에 있는 커다란 냉장고와 식탁이, 이곳이 주방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싱크대에 일체형으로 달려 있는 정수기에 물을 컵에 따른 뒤, 다른 방으로 들어서니 그 방은 서재처럼 책상과 책장이 있고, 특이하게도 벽에 두 자루의 검이 전시되어 있었다.

두자루 모두 일반적인 검에 비해 길이가 조금 짧아 보이는, 성인 어른 팔 길이 정도였는데, 차가운 검신 위에 금빛으로 글자가 새겨진 검과, 은빛 바탕에 특이한 문양이 그려진 검이었다.

책상 위에는 담배 몇 보루가 놓여있고, 해체된 담배 몇 개가 하얀 종이 위에 놓여 있었다.

"그놈에 역한 담배냄새는 언제쯤 맡지 않게 되는 거지?"

홀로 있는 그 방에, 어쩐지 무겁고 스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휘영은 익숙한 듯 괘념치 않고 책상 의자에 앉았고, 그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일렁거리며 일어나더니 흡사 사람과 비슷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어제도 늦었어... 그 인간... 오늘 숨졌다."

그것은 마치 사람인양, 눈과 입모양 같인 것이 생겨나며 중얼거리듯 말하지만, 휘영은 무시하듯 해체된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살려도 산 게 아니었어. 죽는 게 나을지도."

허스키한 휘영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깔리고, 그것은 그런 휘영의 대답에 낄낄 거리며 웃어댔다.

"그래... 누굴 살리는 일 따윈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죽이는 쪽이 훨씬 어울리지."

그러더니 휘영에게 다가와 그의 얼굴 옆으로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소곤거리듯 물었다.

"그래서... 피맛은 언제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너무 오랜 시간, 날 굶주리게 하지 마."

휘영은 여전히 무심한 듯 해체된 담배를 재조립하며 대답했다.

"예전하고 달라. 이제 그런 일은 점점 하기 힘들어질 거야."

그것의 눈이 두배 이상 커지며 휘영을 응시했다.

"뭘 두려워하는 거지? 경찰들이 너를 잡을까 봐 두려운 건가? 어차피 너는 존재하지도 않고, 죽지도 않잖아? 너에 대한 그 어떤 증거도 남을 수 없어. 네 제물이 될만한 인간은 오히려 과거보다 넘쳐난다고."

휘영은 어느새 담배 하나를 완전히 조립하더니, 그걸 입에 물었다.

담배를 입에 물자, 그것은 흠칫 놀라 해 하더니 뒤로 훌쩍 물러나 버렸다.

휘영은 피식 웃더니, 의자를 돌려 그것을 돌아보았다.

"뭘 그렇게 쫄아? 무서워?"

그것은 마치 맹수가 으르렁 거리듯 검은 이빨을 드러내며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었다.

휘영이 책상 위에 있던 지포 라이터를 집어 들고 손가락을 튕겨내자, '팅'하는 소리와 함께 지포 라이터의 뚜껑이 열리자, 으르렁 거리던 그것이 이빨을 감추며 한걸음 더 물러섰다.

"잊지 마... 네놈 그림자 속에서 숨어서 널 지켜볼 거야. 네놈이 약해지는 그 순간, 어둠에 잠식되어 영혼마저 희미해지는 그 순간이 되면, 내가 네놈의 목을 물어뜯어줄 테니까..."

그 말을 남기고 그것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사라지고 나자 휘영은 다시 지포 라이터의 뚜껑을 덮었다.

지포 라이터를 책상 위에 다시 올려놓고, 입에 물었던 담배 개비를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은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그 담배 개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퍼지고,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초점이 돌아온 휘영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받았다.

"네, 신부님."

상대는 오신부였고, 수화기 너머로 오신부의 쉰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휘영씨. 어제는 수고 많았어. 그런데, 다른 일을 좀 부탁할 게 있어서... 의뢰인을 같이 좀 만나줄 수 있겠나?

의외였다. 항상 신부를 통해서만 일을 했지, 초기부터 의뢰인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무슨 일이신데 그러시죠?"

- 그게... 말로 설명하기 좀 그런데... 이건 뭐 내가 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 것 같아. 자네 아니면 맡기 힘든 일일 것 같아서...

"일을 처음부터 맡으면 단가가 비쌀 텐데요."

- 그건 걱정하지만, 의뢰인 쪽에서 비용을 100% 부담한다고 했어.

잠시 고민하던 휘영이 이내 예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시죠."

- 어, 오늘 바로 나와줄 수 있어? 저쪽에서 좀 급하거든.

굳이 이 일이 아니라도, 대게 휘영에게 들어오는 의뢰는 한시를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알겠습니다."

- 그래, 나올 장소는 문자로 찍어줄게. 이따 보자고.

"네, 그리고 그 친구..."

잠시 말끝을 흐린 휘영이 말했다.

"아닙니다."

- 아, 어제 그 친구? 안타깝게 됐지. 장기 손상이 심해서... 자네가 어쩔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너무 신경 쓰지 마.

"네."

- 그럼 이따 봅시다.

통화가 끝나고, 휘영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무겁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휘영이 책장에서 어떤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펼치니, 그것은 책이 아니고 일종에 보관함이었다.

거기에는 부적이 수북이 담겨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를 골라 꺼내 들고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꽃아 두었다.

그는 방 중앙으로 걸어가는데, 바닥에는 붉은색 원 두 개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그려져 있었고, 그 간격 사이에는 범어로 된 붉은색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휘영은 그 중앙에 서서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거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부적을 꾸기며 손에 움켜쥐었다.

뒤이어 손을 펼치자, 마치 자연 발화하듯 부적이 순식간에 타서 사라지며 잿가루에 허공에 날렸다.

심호흡을 한 휘영이 돌아서서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하니, 그의 그림자 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지듯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 그따위 것도 수륙재(水陸齋)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고작 부적한장 따위로, 죽은 영혼을 달래려 하다니...

휘영은 무심한 얼굴로 방문을 열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러워, 산...."

밖으로 나온 휘영은 들어올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다시 입기 시작했다.

겉옷 안주머니에 달려있는 단검 한 자루를 잠시 꺼내서 생각하던 휘영은 다시 품 안에 갈무리하고는 돌아서서 옷방을 나섰다.

***

전화벨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수사과 안쪽 사무실, 그곳에서도 제일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던 한 중년 남자가 벌써 십여분째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한 사람의 인상착의가 그려진 그림이 띄워져 있었는데, 딱 봐도 옛날 자료인 듯 보였다.

"또 그거 보세요?"

누군가 지나가다가 건네는 말에, 그는 얼른 화면에 띄워진 인상착의를 꺼버렸다.

"미련이 남아서..."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그를 향해, 말을 건네 온 젊은 남자가 해죽 웃어 보였다.

"저도 얘기 많이 들었어요. 소문 무성한 연쇄살인범. 피해자 대부분이 내놓라 하는 조직폭력배였다면서요? 야쿠자도 있었다고..."

의자에 앉아 있던 그가 피식 코웃음을 친다.

"과장님, 그 사람도 이제 나이 들어서 용모가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 인상착의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정말 그 사람 혼자 벌인 일일까요? 혼자라니... 믿어지지가 않네요. 한자리에서만 30명 이상 죽었다고 하던데..."

그 남자의 말에 과장이라 불린 남자가 피식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30년 전이다. 그동안 그런 생각은 수도 없이 해봤어. 뭐이제 어쩌랴, 나는 이제 다 잊으련다."

"참, 과장님 보직변경 신청하셨죠?"

"그래, 나는 이제 시골에 가서 한가하게 살란다."

"부럽습니다."

여전히 해죽하게 웃는 젊은 남자를 향해, 과장도 싫지만은 않은 듯 따라 웃으며 말했다.

"부럽긴..."

과장은 바깥쪽으로 걸어가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고,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그에게 경례를 해 보였다.

"아, 거참... 사무실 안에서 담배 물지 말라니까..."

얼추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한 남자가 과장 곁으로 따라붙으며 궁시렁 거리듯 말하자, 과장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아직 불 안 붙였다."

"어쨌든, 담배를 입에 물고 있지 말아 달라~ 이 말 아닙니까?"

"야, 불도 안 붙였는데 뭐가 문제야? 사탕 물고 있는 거랑 뭐가 달라?"

"보는 시선이 다르잖아요, 시선이..."

"시선은 개뿔..."

두 사람은 경찰서 밖 흡연공간 쪽으로 향했고, 걸어가며 따라붙은 남자가 손에 든 서류철을 흘겨보며 말했다.

"꼭 이런 시기에 그렇게 가셔야겠어요? 바빠 죽겠는데?"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투덜거리는 그에게 보란 듯이 담배에 불을 붙인 과장이, 한 모금 깊게 들이마쉬며 말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뭘 하겠어? 기력 딸려서 젊은 애들처럼 뛰어다니지도 못해, 이제는..."

"경험이 있잖아요, 경험이... 우리가 같이 일한 게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어요. 척하면 척! 어?"

"척하면 척은... 애들이랑 해, 젊은 애들이랑..."

"애들은...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하지... 성과가 없어요, 성과가..."

"우리도 그랬어, 임마. 현장 수사관이 별거 있냐? 발로 졸라 뛰는 거지."

과장의 말에 그는 피식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느새 두 사람이 흡연구역에 도착했지만, 이미 과장이 물고 있는 담배는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 봐요. 진짜 시골 촌동네 가서 살 거유? 재미없을 텐데?"

"재미가 없는 게 재미다."

과장의 대답에 그는 또다시 어이없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때 젊은 남자 한 명이 후다닥 뛰어와서 그를 찾으며 말했다.

"정과장님. 지금 처장님 전화 왔습니다."

정과장이라 불린 남자가 과장을 보며 말했다.

"선배, 내려가기 전에 저녁이나 먹어요. 저녁."

과장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정과장은 부랴부랴 젊은 남자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갔다.

과장은 품에서 새로 담배 하나를 꺼내다가 그만 같이 있던 신분증을 떨어뜨렸다.

조금 색이 바랜 그의 신분증에는 '송시현'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는 신분증을 집어 들고 탁탁 털고는 다시 주머니에 넣은 뒤,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인생무상, 이제 세월아 네월아 하며 살란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많은 것들이 변한 경찰서 풍경을 돌아보며, 그의 주름진 눈가에는 애틋함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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