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1
고요한 실내, 침통한 표정에 가주 제라드가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고, 그 앞으로 올렌을 포함한 가문의 장로들과 가신들이 서 있었다.
한쪽으로는 엘루인 가문에 이안을 비롯한 그의 부관들이 서 있고, 그 반대편에는 아름다운 외모에 한 중년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적막이 감돌고 있던 실내에 올렌의 목소리가 나즈막히 울려퍼졌고, 이어 제라드가 눈을 뜨고 올렌을 바라보았다.
"아니다. 느즈막히 얻은 줄리아를 너무 오냐오냐 기른 것이 문제였다. 어찌되었든 이미 벌어진 일, 이제는 어떻게 수습할 지를 정해야 겠지."
제라드의 말이 끝나자, 한쪽에서 나이 많은 노인이 나서 말했다.
"가주님..."
제라드가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씀하시죠, 지하린 장로..."
지하린 장로는 본가 최고 장로로, 현 가문내 장로회를 이끄는 장로들의 수장이었다.
"루나스 가문은 현존하는 가문중 최고라고 불리우는 단 네가문중에 하나이며, 전 대륙에 걸처 본가를 따르는 길드만 수천을 헤아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는 만큼, 이와 같은 불미스런 일을 공공연히 밝혔다가는 가문의 명예가 훼손될 수도 있습니다. 하여, 막내아가씨를 찾는 일은 가급적 조용히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지하린 장로의 말에 올렌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한걸음 나서 말했다.
"이번 일은 명예같은 것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바깥세상을 한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줄리압니다. 그런 아이가 출신도 불분명한 떠돌이 무사를 따라 나갔습니다. 어디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판국에, 명예라뇨? 당장 전 길드에 알려 란스 대륙 전체를 이잡듯 뒤지는 한이 있어도 시급히 줄리아를 찾아내야 합니다."
올렌의 말에 지하린이 노한 표정으로 올렌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올렌 총사관! 어찌 이 일에 사적인 감정을 담는 것이오? 이와 같은 일을 전 길드에 알려 수소문 했다가는 다른 가문이나 길드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오. 막내아가씨 한사람 일로 수십 수백년간 쌓아온 가문과 길드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단 말이오."
올렌도 지지않고 소리쳤다.
"어찌 사적인 감정을 접으라 말씀하십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이동생이고, 누가 뭐래도 우리 루나스 가문의 핏줄입니다. 당신들은 길드의 장로입니까? 가문의 장로입니까? 길드의 명예가 중요한 겁니까? 아니면 가족이 중요한 겁니까?"
지하린이 이번에는 가라앉은 묵직한 어조로 대답했다.
"수많은 사람이 가문과 길드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받쳤기에 지금의 가문과 길드가 있는 겁니다. 총사관이 책따위나 읽으며 뜻으로 익힌 명예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지켜온 명예란 말이오."
올렌은 지하린의 말에 울컥하며 소리쳤다.
"그 피는 그대들이 흘린 피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피덕에 살아남으셨으니 말입니다."
지하린이 노한 표정으로 올렌을 노려보는 순간 제라드의 일갈이 실내에 울려퍼졌다.
"그만!"
이어 제라드가 올렌을 노려보자 올렌이 고개를 숙였다.
"올렌, 가내 장로들을 기만하는 행위는 용납치 않겠다. 당장 사죄하거라."
올렌은 어쩔 수 없이 지하린 장로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보이며 말했다.
"성급한 말을 한 것, 사죄드립니다."
지하린은 헛기침을 하며 제라드의 눈치를 살피고 한걸음 물러났다.
상황을 지켜본 제라드가 말을 이었다.
"지하린 장로의 말에 일리가 있다. 서둘러 줄리아를 찾아야 겠으나, 그렇다고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는 없다. 이번 일은 최소한의 인원에게만 전달하여 줄리아를 찾는데 주력한다.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해 보라."
제라드의 말에 올렌이 다시 나서며 말했다.
"가주님, 대원들의 말에 따르면 줄리아는 라니아로 향하는 배를 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제라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라니아? 커리나를 벗어났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줄리아가 따라갔다는 레나드란 무사에 대해 함께 길을 갔던 하인들에게 물으니 라니아로 간다고 했답니다. 라니아에 들어설 수 있는 항구는 총 14개로 그 중 어제 소크테리아에서 출항한 배들이 도착할 항구는 약 3개 항구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올렌이 주위를 한번 살펴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쿠란테 항구와 오르도 항구, 그리고... 하라긴 항구입니다."
그 말을 들은 장로들은 물론 제라드도 놀라 되물었다.
"하라긴? 아직도 하라긴으로 가는 배가 있는가?"
올렌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아주 드물게 하라긴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하는데, 통상적으로 약초채집꾼들이 타는 배라고 합니다. 물론 꼭 그 배를 탔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악의 경우 하라긴으로 갔을 것도 염두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제라드는 물론 가내 모든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 졌다.
이 모습을 이안이 살짝 고개를 돌력 갈릭 부관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라긴이라면, 하라시안 길목에 있다는 그 항구 말인가?"
갈릭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가끔 약초를 구하거나, 탐험가들이 하라긴을 통해 하라시안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다시 앞쪽을 바라보았다.
이어 지하린 장로가 나서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하라긴은 하라시안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항구입니다. 하라시안은 저주받은 죽음에 땅. 그곳을 찾는 이들은 약초가 필요한 약초쟁이들이나, 아니면 목숨아까운지 모르는 하루살이들, 그리고 거친 도적떼들 뿐입니다. 그곳은 오직 죽음만이 있는 죽음에 땅...그런 곳으로 향했을리가 없습니다."
올렌 역시 수긍하듯 말했다.
"저 역시 그곳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력한 장소는 오르도 항구입니다. 오르도 항구는 옛부터 무인들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라니아의 바라스 사원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또한 쿠란테 항구 또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쿠란테 항구는 라니아 국가내 각 길드사무소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소본 길드 도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올렌의 보고를 들은 제라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좋다. 결정을 내린다. 금번 줄리아 수색은 3개조로 구성하여 수색조를 제외한 다른 길드에는 기밀로 붙인다. 수색 총괄은 올렌이 맡는다."
제라드의 말에 올렌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올렌,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어 다시 제라드가 말했다.
"수색 1조 조장은 카누야가 맡는다."
올렌 옆에 서 있던 카누야가 한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카누야,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색 2조 조장은 리사가 맡는다."
카누야 옆에 서 있던 리사가 한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리사,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색 3조 조장은 워렌이 맡는다."
리사 옆에 서있던 상당한 거구의 한 남자가 한걸음 나서며, 역시나 그 체격에 어울리는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워렌,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각조당 인원은 20명으로 정하며, 조는 본가 골든헌터즈에서 차출한다."
그 말에 깜짝 놀란 지하린 장로가 한걸음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가주님?! 골든헌터즈라뇨? 본가 수호를 위해 특별히 구성된 대원들입니다. 이들을 가문 밖으로 내보내면 본가는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 이는 불가합니다."
제라드가 호통치듯 소리치며 말했다.
"지하린 장로는 물러나시오. 본가의 군사권은 가주인 나에게 있소. 지금까지 본가를 수호하는데 있어 골든헌터즈가 나서야 했던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소. 실버헌터즈와 가병들만으로도 충분히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색조 60명을 차출한다 해도, 골든헌터즈의 대원은 100명 이상 본가에 남을 것이니, 걱정 마시오."
제라드의 호통에 지하린 장로가 헛기침을 하며 마지못해 뒤로 물러났다.
"다시 명한다. 금번 수색조는 골든헌터즈에서 차출한다. 최소의 인원을 동원하는 만큼 최고의 대원을 차출한다."
올렌이 나서 예를 갖추어 대답했다.
"총사관 올렌, 가주님의 명을 받들어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올렌의 대답과 함께 상황이 정리된 듯 하자, 조심스레 이안이 나서 말했다.
"가주님, 저희 역시 이번 일을 돕겠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제라드가 잠시 이안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좋소. 하지만 이안 경 역시 금번 일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 줄 것을 당부드리겠소."
"명심하겠습니다. 현재 저를 따르는 수하들 외에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제라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사하오."
이어 올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올렌은 1조와 함께 가장 유력한 오르도 항구로 향한다. 2조는 쿠란테 항구로, 3조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 하라긴 항구로 향한다. 이안 경은 올렌과 함께 1조에 합류해 주시오."
올렌과 이안이 함께 대답했다.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어 제라드가 3조장인 워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워렌, 3조와 함께 하라긴 항구에서 수색을 할 때, 각별히 주의토록 하라."
워렌이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맡겨주십시오. 최대한 신중히, 허나 본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제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조는 준비되는대로 바로 출발한다. 회의를 끝낸다."
바닷물을 가르는 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선실안에 울려퍼지고, 푸르스름한 달빛이 어둠을 뚫고 나즈막한 한줌의 빛이 되어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소리에,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뜬 줄리아는 귀를 후벼파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사람 말소리인줄 알았지만, 사람 말소리라고 하기엔 그 울림이 독특했다.
마치 동굴안에서 이야기하는 듯 나즈막히 울려퍼지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마치 어린 여자애들이 깔깔거리는 듯한 소리였다.
줄리아는 순간 가슴이 철렁해지는 듯한 느낌과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눈을 부릅뜨고 헐레벌떡 일어나는데, 갑작스레 줄리아의 입을 누군가 확 덮쳐왔다.
놀란 줄리아가 발버둥 치려하자, 그런 그녀의 팔까지 붙잡은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쉿, 조용히해..."
그는 바로 레나드였다. 레나드는 매우 신중한 표정으로 작은 원형의 선창을 통해 밖을 살피고 있었다.
"바다의 속삭임, 시리어들이다. 소란 피우지 마라."
줄리아는 자신의 손과 입을 가로막은 레나드의 손에 당황하고 있었지만, 레나드는 그녀가 무엇때문에 당황하는지도 모른체 조심스레 손을 거두었다.
줄리아는 눈살을 찌푸린 체 레나드를 째려보다가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몸이 굳어졌다.
물로 만들어진 여인의 형상이 창밖에서 창안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그 웃는 모습이 소름끼칠 정도로 서늘한 모습이었다.
창밖을 자세히 보니 물의 형상을 한 여인들이 따라오는데 그 행렬이 마치 배를 따라오는 돌고래와 같았고, 배쪽을 향해 웃는 입 사이로 보이는 이빨은 상어를 연상케 하는 이빨이었다.
"시리어들은 독특한 음색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물에 뛰어들게 만들지. 정신 바짝 차려라."
줄리아가 놀라해 하며 물었다.
"아니...왜 저런 것들이 있죠?"
레나드가 줄리아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하라긴으로 다가갈 수록 이런 것들은 점점 많아진다. 본래 시리어는 시어니크가 만든 물의 정령인 시리케들이었지만 하라시안에 내려진 저주가 인근 시리케들을 변질시켰다고 하지."
줄리아가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레나드에게 물었다.
"하...하라시안이요? 하라시안으로 가나요?"
레나드가 씨익 웃어보였다.
"누가 하라시안으로 간데? 하라긴 항구로 간다고해서 다 그리가는건 아냐. 하라시안 인근 지역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 약초가 풍부하지. 그래서 약초를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이 배에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초쟁이들이지."
줄리아가 침을 꿀꺽 삼키자, 레나드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약초가 제법 돈이 된다지만, 그렇다고 약초를 캐러 가는건 아냐. 만날 사람이 있지. 하라긴에 도착하면 그 사람을 만나고 나서 다시 리베니아로 넘어갈 거니까, 그때까지만 짐들어. 그러고 나면 가고싶은 곳으로 가도 좋아."
말을 마친 레나드가 다시 선창 밖을 살폈다.
"오늘 따라 달빛이 어둡고, 시리어들이 많군. 아마도 불청객들이 올 모양이야."
줄리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부, 불청객이라뇨? 뭐가 온다는거죠?"
레나드가 다시 줄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의 불청객에 대해 못들어 봤나? 검은 물의 악마, 다크시리어들에 대해서 말야..."
한쪽으로는 엘루인 가문에 이안을 비롯한 그의 부관들이 서 있고, 그 반대편에는 아름다운 외모에 한 중년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적막이 감돌고 있던 실내에 올렌의 목소리가 나즈막히 울려퍼졌고, 이어 제라드가 눈을 뜨고 올렌을 바라보았다.
"아니다. 느즈막히 얻은 줄리아를 너무 오냐오냐 기른 것이 문제였다. 어찌되었든 이미 벌어진 일, 이제는 어떻게 수습할 지를 정해야 겠지."
제라드의 말이 끝나자, 한쪽에서 나이 많은 노인이 나서 말했다.
"가주님..."
제라드가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씀하시죠, 지하린 장로..."
지하린 장로는 본가 최고 장로로, 현 가문내 장로회를 이끄는 장로들의 수장이었다.
"루나스 가문은 현존하는 가문중 최고라고 불리우는 단 네가문중에 하나이며, 전 대륙에 걸처 본가를 따르는 길드만 수천을 헤아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는 만큼, 이와 같은 불미스런 일을 공공연히 밝혔다가는 가문의 명예가 훼손될 수도 있습니다. 하여, 막내아가씨를 찾는 일은 가급적 조용히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지하린 장로의 말에 올렌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한걸음 나서 말했다.
"이번 일은 명예같은 것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바깥세상을 한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줄리압니다. 그런 아이가 출신도 불분명한 떠돌이 무사를 따라 나갔습니다. 어디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판국에, 명예라뇨? 당장 전 길드에 알려 란스 대륙 전체를 이잡듯 뒤지는 한이 있어도 시급히 줄리아를 찾아내야 합니다."
올렌의 말에 지하린이 노한 표정으로 올렌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올렌 총사관! 어찌 이 일에 사적인 감정을 담는 것이오? 이와 같은 일을 전 길드에 알려 수소문 했다가는 다른 가문이나 길드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오. 막내아가씨 한사람 일로 수십 수백년간 쌓아온 가문과 길드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단 말이오."
올렌도 지지않고 소리쳤다.
"어찌 사적인 감정을 접으라 말씀하십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이동생이고, 누가 뭐래도 우리 루나스 가문의 핏줄입니다. 당신들은 길드의 장로입니까? 가문의 장로입니까? 길드의 명예가 중요한 겁니까? 아니면 가족이 중요한 겁니까?"
지하린이 이번에는 가라앉은 묵직한 어조로 대답했다.
"수많은 사람이 가문과 길드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받쳤기에 지금의 가문과 길드가 있는 겁니다. 총사관이 책따위나 읽으며 뜻으로 익힌 명예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지켜온 명예란 말이오."
올렌은 지하린의 말에 울컥하며 소리쳤다.
"그 피는 그대들이 흘린 피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피덕에 살아남으셨으니 말입니다."
지하린이 노한 표정으로 올렌을 노려보는 순간 제라드의 일갈이 실내에 울려퍼졌다.
"그만!"
이어 제라드가 올렌을 노려보자 올렌이 고개를 숙였다.
"올렌, 가내 장로들을 기만하는 행위는 용납치 않겠다. 당장 사죄하거라."
올렌은 어쩔 수 없이 지하린 장로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보이며 말했다.
"성급한 말을 한 것, 사죄드립니다."
지하린은 헛기침을 하며 제라드의 눈치를 살피고 한걸음 물러났다.
상황을 지켜본 제라드가 말을 이었다.
"지하린 장로의 말에 일리가 있다. 서둘러 줄리아를 찾아야 겠으나, 그렇다고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는 없다. 이번 일은 최소한의 인원에게만 전달하여 줄리아를 찾는데 주력한다.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해 보라."
제라드의 말에 올렌이 다시 나서며 말했다.
"가주님, 대원들의 말에 따르면 줄리아는 라니아로 향하는 배를 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제라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라니아? 커리나를 벗어났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줄리아가 따라갔다는 레나드란 무사에 대해 함께 길을 갔던 하인들에게 물으니 라니아로 간다고 했답니다. 라니아에 들어설 수 있는 항구는 총 14개로 그 중 어제 소크테리아에서 출항한 배들이 도착할 항구는 약 3개 항구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올렌이 주위를 한번 살펴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쿠란테 항구와 오르도 항구, 그리고... 하라긴 항구입니다."
그 말을 들은 장로들은 물론 제라드도 놀라 되물었다.
"하라긴? 아직도 하라긴으로 가는 배가 있는가?"
올렌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아주 드물게 하라긴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하는데, 통상적으로 약초채집꾼들이 타는 배라고 합니다. 물론 꼭 그 배를 탔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악의 경우 하라긴으로 갔을 것도 염두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제라드는 물론 가내 모든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 졌다.
이 모습을 이안이 살짝 고개를 돌력 갈릭 부관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라긴이라면, 하라시안 길목에 있다는 그 항구 말인가?"
갈릭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가끔 약초를 구하거나, 탐험가들이 하라긴을 통해 하라시안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다시 앞쪽을 바라보았다.
이어 지하린 장로가 나서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하라긴은 하라시안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항구입니다. 하라시안은 저주받은 죽음에 땅. 그곳을 찾는 이들은 약초가 필요한 약초쟁이들이나, 아니면 목숨아까운지 모르는 하루살이들, 그리고 거친 도적떼들 뿐입니다. 그곳은 오직 죽음만이 있는 죽음에 땅...그런 곳으로 향했을리가 없습니다."
올렌 역시 수긍하듯 말했다.
"저 역시 그곳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력한 장소는 오르도 항구입니다. 오르도 항구는 옛부터 무인들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라니아의 바라스 사원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또한 쿠란테 항구 또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쿠란테 항구는 라니아 국가내 각 길드사무소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소본 길드 도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올렌의 보고를 들은 제라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좋다. 결정을 내린다. 금번 줄리아 수색은 3개조로 구성하여 수색조를 제외한 다른 길드에는 기밀로 붙인다. 수색 총괄은 올렌이 맡는다."
제라드의 말에 올렌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올렌,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어 다시 제라드가 말했다.
"수색 1조 조장은 카누야가 맡는다."
올렌 옆에 서 있던 카누야가 한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카누야,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색 2조 조장은 리사가 맡는다."
카누야 옆에 서 있던 리사가 한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리사,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색 3조 조장은 워렌이 맡는다."
리사 옆에 서있던 상당한 거구의 한 남자가 한걸음 나서며, 역시나 그 체격에 어울리는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워렌,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각조당 인원은 20명으로 정하며, 조는 본가 골든헌터즈에서 차출한다."
그 말에 깜짝 놀란 지하린 장로가 한걸음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가주님?! 골든헌터즈라뇨? 본가 수호를 위해 특별히 구성된 대원들입니다. 이들을 가문 밖으로 내보내면 본가는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 이는 불가합니다."
제라드가 호통치듯 소리치며 말했다.
"지하린 장로는 물러나시오. 본가의 군사권은 가주인 나에게 있소. 지금까지 본가를 수호하는데 있어 골든헌터즈가 나서야 했던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소. 실버헌터즈와 가병들만으로도 충분히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색조 60명을 차출한다 해도, 골든헌터즈의 대원은 100명 이상 본가에 남을 것이니, 걱정 마시오."
제라드의 호통에 지하린 장로가 헛기침을 하며 마지못해 뒤로 물러났다.
"다시 명한다. 금번 수색조는 골든헌터즈에서 차출한다. 최소의 인원을 동원하는 만큼 최고의 대원을 차출한다."
올렌이 나서 예를 갖추어 대답했다.
"총사관 올렌, 가주님의 명을 받들어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올렌의 대답과 함께 상황이 정리된 듯 하자, 조심스레 이안이 나서 말했다.
"가주님, 저희 역시 이번 일을 돕겠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제라드가 잠시 이안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좋소. 하지만 이안 경 역시 금번 일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 줄 것을 당부드리겠소."
"명심하겠습니다. 현재 저를 따르는 수하들 외에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제라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사하오."
이어 올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올렌은 1조와 함께 가장 유력한 오르도 항구로 향한다. 2조는 쿠란테 항구로, 3조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 하라긴 항구로 향한다. 이안 경은 올렌과 함께 1조에 합류해 주시오."
올렌과 이안이 함께 대답했다.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어 제라드가 3조장인 워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워렌, 3조와 함께 하라긴 항구에서 수색을 할 때, 각별히 주의토록 하라."
워렌이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맡겨주십시오. 최대한 신중히, 허나 본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제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조는 준비되는대로 바로 출발한다. 회의를 끝낸다."
바닷물을 가르는 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선실안에 울려퍼지고, 푸르스름한 달빛이 어둠을 뚫고 나즈막한 한줌의 빛이 되어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소리에,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뜬 줄리아는 귀를 후벼파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사람 말소리인줄 알았지만, 사람 말소리라고 하기엔 그 울림이 독특했다.
마치 동굴안에서 이야기하는 듯 나즈막히 울려퍼지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마치 어린 여자애들이 깔깔거리는 듯한 소리였다.
줄리아는 순간 가슴이 철렁해지는 듯한 느낌과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눈을 부릅뜨고 헐레벌떡 일어나는데, 갑작스레 줄리아의 입을 누군가 확 덮쳐왔다.
놀란 줄리아가 발버둥 치려하자, 그런 그녀의 팔까지 붙잡은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쉿, 조용히해..."
그는 바로 레나드였다. 레나드는 매우 신중한 표정으로 작은 원형의 선창을 통해 밖을 살피고 있었다.
"바다의 속삭임, 시리어들이다. 소란 피우지 마라."
줄리아는 자신의 손과 입을 가로막은 레나드의 손에 당황하고 있었지만, 레나드는 그녀가 무엇때문에 당황하는지도 모른체 조심스레 손을 거두었다.
줄리아는 눈살을 찌푸린 체 레나드를 째려보다가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몸이 굳어졌다.
물로 만들어진 여인의 형상이 창밖에서 창안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그 웃는 모습이 소름끼칠 정도로 서늘한 모습이었다.
창밖을 자세히 보니 물의 형상을 한 여인들이 따라오는데 그 행렬이 마치 배를 따라오는 돌고래와 같았고, 배쪽을 향해 웃는 입 사이로 보이는 이빨은 상어를 연상케 하는 이빨이었다.
"시리어들은 독특한 음색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물에 뛰어들게 만들지. 정신 바짝 차려라."
줄리아가 놀라해 하며 물었다.
"아니...왜 저런 것들이 있죠?"
레나드가 줄리아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하라긴으로 다가갈 수록 이런 것들은 점점 많아진다. 본래 시리어는 시어니크가 만든 물의 정령인 시리케들이었지만 하라시안에 내려진 저주가 인근 시리케들을 변질시켰다고 하지."
줄리아가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레나드에게 물었다.
"하...하라시안이요? 하라시안으로 가나요?"
레나드가 씨익 웃어보였다.
"누가 하라시안으로 간데? 하라긴 항구로 간다고해서 다 그리가는건 아냐. 하라시안 인근 지역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 약초가 풍부하지. 그래서 약초를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이 배에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초쟁이들이지."
줄리아가 침을 꿀꺽 삼키자, 레나드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약초가 제법 돈이 된다지만, 그렇다고 약초를 캐러 가는건 아냐. 만날 사람이 있지. 하라긴에 도착하면 그 사람을 만나고 나서 다시 리베니아로 넘어갈 거니까, 그때까지만 짐들어. 그러고 나면 가고싶은 곳으로 가도 좋아."
말을 마친 레나드가 다시 선창 밖을 살폈다.
"오늘 따라 달빛이 어둡고, 시리어들이 많군. 아마도 불청객들이 올 모양이야."
줄리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부, 불청객이라뇨? 뭐가 온다는거죠?"
레나드가 다시 줄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의 불청객에 대해 못들어 봤나? 검은 물의 악마, 다크시리어들에 대해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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