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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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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0.3분

58화 - #27


"현준이는 찾았나요?"

기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왕을 보며, 나래는 주먹을 힘주어 말아 쥐었다.

목소리가 선뜻 나오지 않아 마른침을 삼키며 주저주저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현준씨는... 다른 곳에 계세요."

"어디요? 어디 아파요? 괜찮은 건가요?"

여왕이 걱정스레 묻는 모습에 나래는 괜스레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게... 현준씨가..."

대답하지 못하는 나래를 보며 여왕의 얼굴에서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많이... 아파요?"

나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삭히고는 긴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심호흡을 한 나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 많이 아팠데요."

여왕의 표정이 서글퍼졌다.

"어디가 아프데요? 의사는 뭐래요?"

나래의 다문 입술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후..."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삼키고 힘겹게 말을 했다.

"지금... 현준씨는...죽어서...."

마지막 말이 기어들어갈 듯 작아지자, 여왕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네? 뭐라구요? 뭐라고 이야기한 거죠?"

나래가 여왕을 응시하자, 여왕의 눈빛이 불안과 불신으로 뒤덮여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떨리고 있었다.

"죽었어요."

나래가 간신히 내뱉은 한마디 말에, 여왕의 몸이 순간 허물어지듯 휘청 거렸고, 백하도령이 재빨리 날아와 그런 여왕을 부축했다.

"말도 안돼... 현준이가 그렇게 건강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벌써 죽었을 리가... 사, 사인이 뭐래요?"

나래는 참을 수 없는 눈물을 기어코 뚝뚝 떨어뜨리며,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자살이요."

간신히 나온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감추려 손으로 입을 가려야 했다.

여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충격으로 아무말도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잘못들은 건 아닌지 확인하려 나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흘리지 못하고 고여있던 눈물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자살? 왜....? 현준이가 왜 자살을 해요? 그 애가 얼마나 밝은 앤 데, 자살을 해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서찬이... 서찬이가 아직 돌도 안됐는데, 토끼 같은 자식이랑 마누라 놔두고, 애가 왜 자살을 해요?"

나래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며 말했다.

"서찬이가... 죽었어요.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어서 정말 죄송해요."

여왕의 표정은 이제 질리다 못해 창백해져 버렸다.

"서... 서찬이가요? 서찬이가 왜.... 그 어린 게 왜 벌써?"

나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체 울고만 있었다.

"이게... 이게 대체... 아니 그럴 리 없어요. 뭘 잘못 아신 거겠죠. 저기 며느리 있죠? 제가 가서 물어볼게요. 꿈이든 뭐든 물어볼게요."

나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시면 안 돼요."

"왜요?"

나래가 말을 못 하고 있자 여왕이 답답한 듯 되물었다.

"왜요? 왜 물으면 안되냐구요? 애가 죽었다면서요? 왜 묻지도 못하냐고?"

여왕의 절규에도 나래가 여전히 대답을 못하자, 곁에 서 있던 백하도령이 대신 답했다.

"서찬이는 세제를 다량 복용하여 음독 사망하였습니다. 세제를 먹인 건, 그 아이의 엄마입니다."

여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그게... 그럴 리가... 애 엄마가, 애를? 왜, 왜요?"

"그분은 자신의 아이가 바꿔치기 당하여, 다른 데 있고, 서찬이는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그게 말이 돼요? 그게 말이 되냐구요?"

"의부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남편을 타박하였고, 끝내 아이까지 죽였습니다. 자녀분이신 현준씨는 그 충격으로 아이가 죽고 이틀 뒤에 자살했습니다."

여왕은 선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걔가 왜...."

여왕의 시선이 현준 아내가 잠든 아파트 쪽으로 향했다.

"그럴 리 없어. 내가 직접 물어볼 거야."

여왕이 아파트 쪽으로 휙 하고 날아가 버리자, 나래가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안돼요!"

나래와 백하도령도 얼른 여왕의 뒤를 따라 현준 아내가 잠든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 먼저 도착한 여왕은 잠든 현준 아내를 불러 깨웠다.

"서찬 애미야, 서찬 애미야, 일어나 봐!"

여왕이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깬 현준 아내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상황인지 이해 못 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서찬이... 서찬이 어디 있어? 서찬이 어디 있어!"

여왕이 버럭 소리지르자, 현준 아내는 여왕을 올려다보며 눈을 껌뻑거리더니, 돌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어찌나 냉랭한지, 보고 있던 여왕은 물론 나래까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꿈이야, 뭐야? 돌아가시지 않으셨던가요? 이제 보니까 어머니 죽음도 꾸민 거였나 봐요? 현준 씨 어디 있어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 사기꾼 집안 같으니라고."

현준 아내의 비난을 듣고 있던 여왕이 버럭 소리 질렀다.

"서찬이 어디 있냐고!"

그러자 현준 아내도 지지 않으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버럭 소리 지르며 대들었다.

"내가 죽였다, 왜?! 니 자식만 귀해? 내 애 어딨어? 내가 낳은 애 어딨냐고!"

현준 아내가 실성한 사람처럼 버럭버럭 소리지르자, 여왕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어져 버렸다.

씩씩 거리는 현준 아내의 모습에 투명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보았던 의심이 나래와 백하도령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현준 아내를 집어삼킬 듯 온몸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어쩌다... 그래서, 현준이도 죽였어? 현준이도 죽게 만들었냐고?"

"거짓말쟁이들아! 죽긴 누가 죽어? 사고로 위장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이제 소리 지르는 현준 아내의 모습은 흡사 괴물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이... 이 미친..."

여왕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양손으로 현준 아내의 목을 움켜 잡자, 나래와 백하도령이 놀라 달려가 그녀를 붙잡았다.

목이 붙잡힌 와중에도 현준 아내는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비아냥 거렸다.

"그래, 죽여. 다 죽여. 다 죽이라고! 죽여!!"

여왕이 현준 아내의 목을 조르려 하자, 백하도령이 이를 만류하고, 나래가 여왕을 타일렀다.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 제발요."

나래의 간곡한 부탁에, 여왕은 넋을 놓은 표정으로 손에서 힘을 빼며 물러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준아내가 여왕에게 달려들었다.

"내 아이 내놔! 내 아이!"

현준아내가 여왕의 목을 조르자, 놀란 백하도령이 이를 만류하려 하였고, 나래는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을 주며 소리 질렀다.

"그마안!!!"

그 순간, 백하도령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 질렀다.

"안돼, 나래야..."

하지만 그의 말이 체 다 들리기도 전에, 나래의 온몸에서 한줄기 강렬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빛처럼 사방으로 퍼지는 나래의 힘에, 현준 아내를 휘감고 있던 검은 의심 덩어리는 산산이 조각나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꾸에에엑~'

괴이한 비명을 내지르며 의심 덩어리가 소멸하고 나자, 현준 아내는 힘을 잃은 듯 털썩 주저앉았다.

의심이 걷히고 난 후, 나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백하도령을 바라보았다.

"어찌 그러세요?"

나래는 백하도령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는 나래를 응시한 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너는..."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꽤나 망설였다.

백하도령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듯했다.

그는 어렵게 다음 말을 다시 이어 나갔다.

"네가 가진 힘을 잘못 사용했을 때, 어찌 되는지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잘못... 사용했을 때요?"

나래가 의아해 하자, 백하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네 힘은 너무도 강하니, 그 힘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어찌 되는지... 그로 인한 모든 것은 네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신이 된 자의 사명이니."

나래는 백하도령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큭!"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래가 고개를 돌려보니, 바닥에 주저앉은 현준 아내가 양손을 꽉 쥔 체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내 그녀의 목에서 참고 참은듯 억눌린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울음이라기보다, 비명에 더 가까웠다.

"아아아악! 아아악~~"

그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왜...."

나래가 어리둥절해하자, 뒤에 서있던 백하도령이 알려주었다.

"네가... 그녀가 가진 의심을 지워버리지 않았더냐."

이해가 안된 나래는 백하도령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요?"

백하도령이 그런 나래를 보며 말했다.

"의심이 없어졌으니... 그녀에게 무엇이 남을 것 같으냐?"

나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기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부모요, 남편을 자살하게 만든 아내라는 사실만이 남았구나."

백하도령의 말에 나래는 창백해진 표정으로 현준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아아악~"

현준 아내는 실성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나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냐... 아냐... 아아아아악!! 아냐아~~~~~"

현준 아내의 기나긴 절규가 울려 퍼지고, 이를 지켜보는 여왕은 넋을 잃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아냐아.... 아니야... 서찬아... 서찬아...."

고통스러워하는 현준 아내를 보면서, 나래 역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게... 이게 아닌데..."

백하도령이 다가와 주저앉은 나래를 다독이며 말했다.

"힘이란 그런 것이다. 강한 힘일수록, 그만큼 커다란 책임이 뒤따르는 법. 힘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상처가 될 것이다."

나래가 눈물을 흘리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백하도령을 바라보자, 백하도령이 예의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또한 잘못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실수나 잘못을 한 이후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과오에 매몰되지 말거라. 꿋꿋이 그 과오를 딛고 일어나거라. 그리고,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거라. 그리하면 되는 것이다."

백하도령의 위로에 나래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현준 아내와 여왕, 그리고 나래까지 모두가 슬피 우는 그 밤은 짙은 어둠이 더욱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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