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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린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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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0.28분

61화 - #30


오열하다가 쓰러진 현화를 내려다보며, 나래는 슬픈 표정으로 백하도령을 돌아보았다.

"어쩌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래의 말을 들으며 백하도령이 강림차사를 바라보자, 강림차사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대별왕 전하께옵서 두 안건에 대해서 각각 중재안을 전해오셨습니다."

나래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중재안이요?"

"그렇습니다. 먼저..."

말을 하다 말고 강림차사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머? 저승사자도 스마트폰 써요?"

나래의 물음에, 강림차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래를 바라보았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자, 일단 대별왕 전하께서 보내신 문자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디 보자..."

그가 스마트폰에 작은 글자들을 읽으려 눈을 가늘게 뜨며 웅얼거리듯 읽더니 말했다.

"먼저 서현화 씨의 죄악과 죽은 윤서찬 군의 사망에 대해, 그 죄와 죽음이 명백하니 원칙대로 행하는 것이 옳겠으나, 백양군의 청도 있고 하니, 예외적으로 여생치환(餘生置换)을 허락한다 하십니다."

나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생치환이요?"

"그렇습니다. 서현화 씨의 남은 생을, 죽은 윤서찬 군에게 넘겨주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은 당사자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강림차사와 나래가 고개를 내려 앉아있는 현화를 바라보자, 현화는 멍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강림차사에게 물었다.

"서... 서찬이가 다시 살 수 있다구요? 제 남은 삶을 준다구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80넘어서까지 장수할 팔자이니, 비록 그리 긴 시간은 아닐지 몰라도, 나름대로 50넘어서까지는 살 수 있을 것이라 보입니다. 또 염라대왕님의 특별한 혜택으로, 10년의 시간을 추가적으로 보상받아 무리 없이 환갑을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당신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요."

"네네... 네 그럴게요. 그러겠습니다."

그러자 돌연 강림차사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그는 시퍼렇게 변한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으로, 당장이라도 서현화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 말은 당신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옥불에서 영원히 벌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의 경고에 현화는 무서운 듯 몸을 웅크리고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여전히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말했다.

"네네네네, 서찬이만... 서찬이만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화가 흐느껴 울며 대답하자, 강림차사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동의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이거..."

강림차사가 뭔가 두툼한 문서뭉치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이건 생의 치환에 대한 이용약관이구요, 내용 간단히 살펴보시고, 마지막 장에 지장 찍으시면 됩니다."

난데없는 약관에 현화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현화를 대신해 나래가 그걸 받아서 대충 살펴보더니 마지막 장을 펼쳐 내밀었다.

"여기 찍으면 돼요."

나래의 말에 현화는 쭈뼛거리다가, 엄지손가락을 찍었다.

인주도 없었지만, 현화의 엄지손가락 지문이 붉은빛으로 선명하게 찍혔다.

"네, 감사합니다."

강림차사가 문서를 얼른 회수하여 품 안에 갈무리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당신은 죽었습니다."

강림차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현화의 몸이 반쯤 불투명해졌다.

현화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지만, 이내 체념한 표정으로 강림차사를 올려다보았다.

"서찬이는요?"

"이제 이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윤서찬군은 다시 살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들어 내용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바로 두 번째 안건에 대해서 안내드리겠습니다. 윤현준 씨와 서현화 양의 사망과 관련하여... 대별왕 전하께옵서 두 가지 선택권을 드린다 하십니다. 첫째는 원칙대로 저승에 와서 그 죄의 경중을 따져 벌을 받는 것이고..."

강림차사가 말끝을 흐리며 백하도령과 나래를 번갈아 보더니, 헛기침을 한번 하고 이어 말했다.

"두 번째는 다시 살게 된 윤서찬군의 수호령이 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서찬군의 남은 생만큼을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기에, 그 임무의 길이 또한 서찬군의 생과 같습니다."

나래의 표정이 환해졌다.

"정말요?"

비단 환해진 건 나래뿐만이 아니었다.

현화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정말요? 정말로 그게 가능한가요? 그럴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화가 고개를 돌려보니, 자기처럼 반쯤 불투명해진 윤현준이 서 있었다.

"현준 씨!"

현화가 반가움에 달려가 현준의 품에 와락 안기자, 현준이 부드럽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죽어서라도... 부족하나마 서찬이를 지켜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현준이 말을 하며 강림차사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자, 강림차사가 마주 인사하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대별왕 전하께서 결정하신 일일 뿐입니다. 여기 계신 백양군께서 많이 힘써주셨으니, 이분께 감사드리시지요."

현준이 백하도령을 돌아보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준의 인사에 백하도령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서로를 안고 있는 현준과 현화 곁으로 여왕이 다가왔다.

그녀는 이제 현화를 용서하는 듯, 말없이 다가와 그녀를 안아주었고, 현화는 흐느껴 울며 용서를 빌었다.

"죄송해요, 어머니..."

"됐다. 다 지난 일인데... 이제라도 서찬이를 잘 지켜줘."

"네... 그럴게요, 꼭 그럴게요."

나래가 궁금한 표정으로 강림차사를 돌아보았다.

"그럼... 뭐가 어떻게 되는 거죠?"

나래가 묻는 말에 강림차사는 예의 통통 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날이 밝으면 지나간 시간이 바뀌어 있을 겁니다. 윤현준 씨와 서현화 씨는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고, 그 사고에서 윤서찬 군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은 이후에 일들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될 것인데..."

강림차사가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더니 말을 이었다.

"보니까, 형제로 등록되어 계신 분 중에 윤현우란 분이 계시군요."

현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둘째 형이요."

"네. 서찬군은 그분께서 입양하셨네요. 윤소리란 아이의 동생이 되었는데, 이 소리란 아이가 자기 동생을 끔찍이 이뻐하는 모양입니다. 운명을 헤아려 보니, 소리란 아이 덕에 아주 씩씩하게 잘 자랄 것입니다."

강림차사의 말에 현준과 현화는 거듭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아, 제가 정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 하하... "

그때였다. 여왕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죠?"

강림차사가 여왕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세계에서 오셨는지 모르겠으나,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기에, 죽음 또한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강림차사의 말에 여왕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예? 제가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러자 이번엔 백하도령이 나서 말했다.

"이미 나린왕국에서 있었던 시간 동안, 여왕의 존재가 이미 그 세계에 동화된 것입니다. 이제는 엄연히 나린왕국 사람이 되신 것이죠."

여왕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지만, 그다지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래는 그런 여왕의 마음을 헤아리듯 말했다.

"곧 크리스마스잖아요. 올해 크리스마스는 강아지 썰매를 탄 산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이쁜 꿈을 선물해 주러 가느라 바쁘겠어요."

나래의 말에 여왕이 그녀를 보더니, 이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야겠네요. 이제 해마다 아이들 찾아가서 이쁜 꿈을 선물해 줘야겠어요."

그러자 현준이 얼른 나서 말했다.

"서찬이 만나러 오실 때 저희 뵙고 가세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 드릴게요."

현준의 말에 여왕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기대할게. 너희들 만나러 꼭 갈게."

이번에는 현준이 여왕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죄송해요, 엄마. 죄송해요."

"아냐, 아냐 내 새끼... 엄마는 괜찮아."

여왕은 현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현준은 그런 여왕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강림차사는 그들의 마지막 인사를 확인하고는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것이 첫 번째 박수입니다. 제가 세 번째 박수를 치면, 바뀐 내용대로 세상이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가 두 번째 박수를 쳤다.

백하도령이 나래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우린 이제, 여왕을 모시고 돌아가자. 달창을 넘어 나린으로 가야 한다."

나래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강림차사의 세 번째 박수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

달창 너머로 무수히 많은 개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린 왕국의 하늘 위로 신나게 달리는 개들 사이에는 백하도령과 나래, 그리고 여왕이 손을 맞잡고 함께 날아들고 있었다.

"나래야~"

저 밑에서 한울과 이든이 손을 흔들고, 여왕을 기다리고 있던 누비가 꼬리를 흔들었다.

그들 앞으로 내려서자, 여왕이 기다렸다는 듯이 백하도령에게 물었다.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전... 사실 여왕도 아닌데..."

그러자 백하도령이 방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계속 여왕이셔도 될 듯합니다."

"네?"

여왕이 의아한 듯 되묻는 말에, 백하도령이 말했다.

"이곳에서 개들을 이만큼 잘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더 이상 토끼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토끼들도 마다하지 않을 듯 합니다."

백하도령이 말을 하며 이든을 바라보자, 이든이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여왕님이 여왕으로써 계셔야, 저 개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보다 꿈배달도 훨씬 잘하고 있고, 인간들 곁에서 살다와서 그들이 꾸고 싶은 꿈이 무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세상을 다시 엿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왕은 조금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러자 나래가 그런 여왕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괜찮아요. 누구나 잘못은 해요. 중요한 건,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해요. 과오를 딛고 일어나세요. 잘하실 수 있어요."

나래의 응원에 여왕이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나래가 백하도령을 돌아보며 윙크를 해 보였다.

백하도령은 그런 나래를 보며 활짝 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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