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12
책상 위에 올려진 붉은색 나무 막대기를 본 세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그 나무 막대기를 한참동안 응시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 집으려 했다구요?"
"분명히 그래 보였어."
세희가 고개를 들어 재현을 보았다.
"시신의 상태는 요?"
"머리가 없었어. 머리 살점이 군데군데 튀긴 했지만, 정확하게는 머리가 사라졌다고 봐야겠지."
"다른 곳은 상한 데가 없구요?"
"마치 앉아있는 그대로 머리가 잘려나간 것 같았어. 상태를 봐서는 머리가 잘려나간 게 찰나였을 꺼야. 이게 뭔지... 설명해 줄 수 있겠어?"
재현의 물음에 세희는 먼저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야 이내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건 용안목(龍眼木)이라고 하는 벽조목(霹棗木) 종류 중 하나예요. 대추나무는 양기가 많은 나무로 여겨지는데, 벼락을 맞아 양기가 더해진다 해서,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데 써왔어요. 용안목은 그중에서도 그을린 부위가 흡사 용의 눈과 같다고 해서, 좀 더 값진 물건으로 인식되죠."
재현이 가만히 듣더니 되물었다.
"귀한 물건이라는 거지?"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길한 물건이죠. 시중에서 파는 것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 이렇게 강한 기운을 가지지 못해요. 이건 제대로 만든 용안목이에요. 이 용안목은 삿된 것들을 내쫓는 힘이 막강하니,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면, 결코 평범한 무당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이 손도 못써보고 죽었다는 건가?"
세희는 대답 없이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재현이 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고심하는 재현을 보며 수호도 덩달아 걱정스런 마음에 목소리가 낮아졌다.
"왜 갑자기 달라진 거죠?"
재현은 수호를 향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뭐가?"
"방법이요."
"방법?"
"네. 지금까지... 무당들의 죽음은 사고를 당한 것처럼 보이게 위장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대놓고 죽이고 다닌다는 건, 뭔가 의도가 달라졌다는 거 아닐까요?"
재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나도 그 점이 궁금했어. 여태 사고사로 위장해놓고, 왜 갑자기 떡하니 살인사건을 저질렀을까?"
그러면서도 차이점을 발견한 수호의 얼굴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세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서두르는 거죠."
"서둘러?"
"예. 뭔가... 계획이 틀어져서... 서두르고 있는 거예요."
수호는 근심어린 시선으로 세희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는 건, 조만간에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거겠네?"
"아마도요."
"뭐야? 내가 개죽음당하기 전에 알려주러 왔다더니, 정작 네가 더 문제였잖아?"
퉁명스러운 수호의 말에 세희는 수호를 흘겨보았다.
"이게 다 신의 뜻이었다구요. 날 지키라는 계시 기억 안 나요?"
세희가 삐진 듯이 새초롬하게 말하자, 수호는 무슨 말을 하려다 도로 삼켜버렸다.
"그럼... 너희가 그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거니?"
재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걱정스레 묻는 말에, 세희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재현을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어요. 짐작되는 바가 없어서..."
세희의 시선이 놓여있는 용안목으로 향하더니 이내 집어 들며 물었다.
"이것 좀... 써도 돼요?"
재현은 그 나무막대기를 노려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사람 목숨이 먼저니까... 그런데 그 괴물은... 처치하고 나면 시신이 남나?"
"저도 모르겠어요. 요괴 라면...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요괴?"
"원령이나 기타 영적 존재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겠죠."
"순식간에 사람의 머리를 잘라버리는 녀석이라면, 너희들도 위험할 수 있어."
"삼촌 힘을 빌리려면, 잠깐이라도 시간이 필요한데..."
수호도 걱정되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희가 그런 수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삼촌의 힘은 물리력인데... 혹시 쓸만한 다른 사람의 능력은 없어요?"
세희의 물음에 수호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는 타로카드를 꺼내 내려다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꼬리를 늘였다.
"있긴 한데..."
"어떤 능력이에요?"
세희가 궁금한 듯 재촉하는 말에, 수호가 세희를 쳐다보았다.
"그게... 뭐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삼촌 때문에 만난 사람이 있거든."
"삼촌 때문에 만난 사람?"
"응. 언젠가 어떤 외국 여자가 삼촌을 찾아온 적 있어. 그 여자는 우리말이 꽤 유창했어. 복수심에 물든 삼촌을 설득하려 했고, 삼촌은 자기를 설득하려는 여자를 김주환과 같은 패거리라고 오해했지. 그래서 그 여자를 공격했는데.... 놀랍게도 여자는 전혀 다른 종류의 힘으로 삼촌의 공격을 막아냈어."
"전혀 다른 종류라뇨? 어떤 힘이죠?"
"글세, 나도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몸안에서 하얗고 약간 보랏빛을 띠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달까? 그게 삼촌의 공격을 막아내고, 심지어는 흥분한 삼촌을 진정시켜주었어."
"하얗고, 보랏빛이었다고요?"
"응. 내가 그때 그 여자에게 물어봤어. 그 힘이 뭐냐고, 그랬더니 오라(Aura)라고 하던데."
"오라?"
"내가 그 능력이 탐나서 이름을 물어봤더니, 알려 주었어. 그러면서 기꺼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주었지. 마치,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흔쾌히 수락하는 것만 같았어."
그러고는 수호가 타로카드 중 여사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언젠가... 귀신을 만나면 써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까지는 딱히 쓸 일이 없었지..."
"그 사람이 살아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세희의 목소리에 조바심이 묻어났다. 수호는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몰라. 그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빌려오는 거."
"한번 미리 빌려보는 게 어때요? 그래야 필요할 때 빌려 쓰죠."
"그런데 사람 머리를 잘라버리는 행위를 했다는 건, 상대가 물리력을 행사하는 존재라는 거고, 그렇다면 영적 존재는 아니란 거 아닐까? 삼촌의 능력이 더 필요할 수 도 있어."
"어느 쪽이든, 일단 빌릴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는 알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수호는 카드를 만지작 거리다가 결심한 듯 두사람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럼 일단 확인해볼까?"
세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수호는 카드를 응시했고, 이내 그의 두 눈에서 초록빛과 푸른빛이 오가며 번득거렸다.
순간, 방안 가득히 보랏빛이 은은하게 섞여 있는 하얀 기운이 넘실넘실 거렸다.
세희와 재현은 놀라운 현상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내 그 기운이 수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게 오라예요?"
경탄섞인 세희의 물음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세희는 수호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온몸전체의 피부에서 은은한 백광(白光)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주 강력한 영적 기운이 느껴져요."
세희의 말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맞아. 뭔가 마음도 편안해지고... 두려움이란 걸 전혀 느끼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야."
그러다가 문득 수호가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방의 한쪽 벽을 응시하자, 이내 수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오라가 단박에 사라져 버렸다.
놀란 세희와 재현이 수호를 쳐다보았다. 수호는 여전히 오라가 사라진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쪽에 뭐가 있어."
세희와 재현은 수호의 시선을 따라 벽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기감이 있는 세희조차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뭐가 있다는 거죠?"
세희는 수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오라는 사라졌어도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백광은 더욱 뚜렷해졌다.
"모르겠어. 아주 이질적인 거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한... 4km 정도?"
그 말에 세희가 놀라 물었다.
"4km? 지금 4km 밖에 있는 존재를 느끼고 있다는 건가요?"
"어, 움직이고 있어. 기괴한 기운이야. 어디로 가는 거지?"
수호가 움직이려 하자, 그런 수호를 재현이 붙잡았다.
"타이머."
"예?"
"1시간 타이머 맞추라고."
재현의 말에 수호는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 왓치의 타이머를 설정했다.
"1시간 안에... 해결 안 될 경우, 바로 다시 빌릴 수 있는 거지?"
재현은 만일을 위해 확인을 했다. 수호가 굳은 표정으로 재현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바로는 안돼요. 10분. 다시 힘을 빌릴 수 있기까지 10분 정도 쉬어야 돼요."
"그럼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건데... 그래도 갈 거야?"
"분명 뭔가 있어요. 우리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죽을지도 모르죠."
"그럼 가자."
재현과 수호, 세희는 서둘러 집을 나섰고, 재현의 차를 타고 수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힘을 빌렸을때 시간을 확인한 터라 따로 타이머를 맞추지 않은 세희는 핸드폰 시간을 계속 확인하며 초초해 했다.
문득 수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멈췄어요."
"어디?"
"바로 저쪽이에요."
수호가 가리킨 방향으로 재현이 차를 몰아가자, 수호가 말했다.
"차 세우세요."
"왜?"
"우릴 기다리고 있어요."
그 말에 재현이 바로 차를 세웠다.
한산해 보이는 공원 인근으로 널찍한 도로에 차라고는 재현의 차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요."
수호가 차에서 내려서자, 재현과 세희도 따라 내렸다.
"사람들 시선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죠."
수호가 그렇게 말하고는 공원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재현과 세희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세 사람은 공원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섰다. 도심속 공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두컴컴했다.
가로등이 정전으로 인해 불이 나갔는지, 대부분 꺼져 있고, 군데군데 한두 개만 약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정전으로 전원이 나갔다면 모두 꺼져야 정상일 텐데, 왜 일부만 켜져 있는지 정전이 아닌 고장인건지 알길 없었으나, 그나마 달빛이 환해서 사물을 식별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수호가 한곳을 뚫어져라 응시하자, 그곳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길게 깔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빨간 구두를 신고,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천천히 수호와 세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등지고 있는 가로등 불빛에, 처음에는 길게 늘어졌던 그림자가 점점 작아지면서,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곧이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수호와 세희는 의아스러웠다.
그녀를 얼핏 봐서는 그냥 평범한 중년의 여성이었다.
과한 화장으로 피부는 하얗게 보였고, 새빨간 립스틱이 도드라져 보이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 보이는 그런 여성이었다.
하지만 세희는 여자를 보며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사람이 아니군요."
여자의 시선이 세희에게로 향했다.
그러고는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리며 물었다.
"신기하네. 이렇게 큰 그릇이.... 왜 명단에 없었지?"
그녀의 말에 수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명단? 무슨 명단?"
그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수호에게로 향했다.
"너 뭐지?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네?"
"너야 말로 뭐야? 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거야? 명단은 또 뭐고?"
수호의 질문에 그녀는 재밌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다가 수호를 향해 요기 가득한 어조를 실어보냈다.
"쿄오미가, 아루...(흥미있어)"
그녀는 그 나무 막대기를 한참동안 응시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 집으려 했다구요?"
"분명히 그래 보였어."
세희가 고개를 들어 재현을 보았다.
"시신의 상태는 요?"
"머리가 없었어. 머리 살점이 군데군데 튀긴 했지만, 정확하게는 머리가 사라졌다고 봐야겠지."
"다른 곳은 상한 데가 없구요?"
"마치 앉아있는 그대로 머리가 잘려나간 것 같았어. 상태를 봐서는 머리가 잘려나간 게 찰나였을 꺼야. 이게 뭔지... 설명해 줄 수 있겠어?"
재현의 물음에 세희는 먼저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야 이내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건 용안목(龍眼木)이라고 하는 벽조목(霹棗木) 종류 중 하나예요. 대추나무는 양기가 많은 나무로 여겨지는데, 벼락을 맞아 양기가 더해진다 해서,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데 써왔어요. 용안목은 그중에서도 그을린 부위가 흡사 용의 눈과 같다고 해서, 좀 더 값진 물건으로 인식되죠."
재현이 가만히 듣더니 되물었다.
"귀한 물건이라는 거지?"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길한 물건이죠. 시중에서 파는 것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 이렇게 강한 기운을 가지지 못해요. 이건 제대로 만든 용안목이에요. 이 용안목은 삿된 것들을 내쫓는 힘이 막강하니,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면, 결코 평범한 무당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이 손도 못써보고 죽었다는 건가?"
세희는 대답 없이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재현이 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고심하는 재현을 보며 수호도 덩달아 걱정스런 마음에 목소리가 낮아졌다.
"왜 갑자기 달라진 거죠?"
재현은 수호를 향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뭐가?"
"방법이요."
"방법?"
"네. 지금까지... 무당들의 죽음은 사고를 당한 것처럼 보이게 위장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대놓고 죽이고 다닌다는 건, 뭔가 의도가 달라졌다는 거 아닐까요?"
재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나도 그 점이 궁금했어. 여태 사고사로 위장해놓고, 왜 갑자기 떡하니 살인사건을 저질렀을까?"
그러면서도 차이점을 발견한 수호의 얼굴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세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서두르는 거죠."
"서둘러?"
"예. 뭔가... 계획이 틀어져서... 서두르고 있는 거예요."
수호는 근심어린 시선으로 세희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는 건, 조만간에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거겠네?"
"아마도요."
"뭐야? 내가 개죽음당하기 전에 알려주러 왔다더니, 정작 네가 더 문제였잖아?"
퉁명스러운 수호의 말에 세희는 수호를 흘겨보았다.
"이게 다 신의 뜻이었다구요. 날 지키라는 계시 기억 안 나요?"
세희가 삐진 듯이 새초롬하게 말하자, 수호는 무슨 말을 하려다 도로 삼켜버렸다.
"그럼... 너희가 그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거니?"
재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걱정스레 묻는 말에, 세희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재현을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어요. 짐작되는 바가 없어서..."
세희의 시선이 놓여있는 용안목으로 향하더니 이내 집어 들며 물었다.
"이것 좀... 써도 돼요?"
재현은 그 나무막대기를 노려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사람 목숨이 먼저니까... 그런데 그 괴물은... 처치하고 나면 시신이 남나?"
"저도 모르겠어요. 요괴 라면...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요괴?"
"원령이나 기타 영적 존재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겠죠."
"순식간에 사람의 머리를 잘라버리는 녀석이라면, 너희들도 위험할 수 있어."
"삼촌 힘을 빌리려면, 잠깐이라도 시간이 필요한데..."
수호도 걱정되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희가 그런 수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삼촌의 힘은 물리력인데... 혹시 쓸만한 다른 사람의 능력은 없어요?"
세희의 물음에 수호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는 타로카드를 꺼내 내려다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꼬리를 늘였다.
"있긴 한데..."
"어떤 능력이에요?"
세희가 궁금한 듯 재촉하는 말에, 수호가 세희를 쳐다보았다.
"그게... 뭐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삼촌 때문에 만난 사람이 있거든."
"삼촌 때문에 만난 사람?"
"응. 언젠가 어떤 외국 여자가 삼촌을 찾아온 적 있어. 그 여자는 우리말이 꽤 유창했어. 복수심에 물든 삼촌을 설득하려 했고, 삼촌은 자기를 설득하려는 여자를 김주환과 같은 패거리라고 오해했지. 그래서 그 여자를 공격했는데.... 놀랍게도 여자는 전혀 다른 종류의 힘으로 삼촌의 공격을 막아냈어."
"전혀 다른 종류라뇨? 어떤 힘이죠?"
"글세, 나도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몸안에서 하얗고 약간 보랏빛을 띠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달까? 그게 삼촌의 공격을 막아내고, 심지어는 흥분한 삼촌을 진정시켜주었어."
"하얗고, 보랏빛이었다고요?"
"응. 내가 그때 그 여자에게 물어봤어. 그 힘이 뭐냐고, 그랬더니 오라(Aura)라고 하던데."
"오라?"
"내가 그 능력이 탐나서 이름을 물어봤더니, 알려 주었어. 그러면서 기꺼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주었지. 마치,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흔쾌히 수락하는 것만 같았어."
그러고는 수호가 타로카드 중 여사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언젠가... 귀신을 만나면 써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까지는 딱히 쓸 일이 없었지..."
"그 사람이 살아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세희의 목소리에 조바심이 묻어났다. 수호는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몰라. 그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빌려오는 거."
"한번 미리 빌려보는 게 어때요? 그래야 필요할 때 빌려 쓰죠."
"그런데 사람 머리를 잘라버리는 행위를 했다는 건, 상대가 물리력을 행사하는 존재라는 거고, 그렇다면 영적 존재는 아니란 거 아닐까? 삼촌의 능력이 더 필요할 수 도 있어."
"어느 쪽이든, 일단 빌릴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는 알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수호는 카드를 만지작 거리다가 결심한 듯 두사람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럼 일단 확인해볼까?"
세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수호는 카드를 응시했고, 이내 그의 두 눈에서 초록빛과 푸른빛이 오가며 번득거렸다.
순간, 방안 가득히 보랏빛이 은은하게 섞여 있는 하얀 기운이 넘실넘실 거렸다.
세희와 재현은 놀라운 현상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내 그 기운이 수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게 오라예요?"
경탄섞인 세희의 물음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세희는 수호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온몸전체의 피부에서 은은한 백광(白光)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주 강력한 영적 기운이 느껴져요."
세희의 말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맞아. 뭔가 마음도 편안해지고... 두려움이란 걸 전혀 느끼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야."
그러다가 문득 수호가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방의 한쪽 벽을 응시하자, 이내 수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오라가 단박에 사라져 버렸다.
놀란 세희와 재현이 수호를 쳐다보았다. 수호는 여전히 오라가 사라진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쪽에 뭐가 있어."
세희와 재현은 수호의 시선을 따라 벽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기감이 있는 세희조차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뭐가 있다는 거죠?"
세희는 수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오라는 사라졌어도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백광은 더욱 뚜렷해졌다.
"모르겠어. 아주 이질적인 거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한... 4km 정도?"
그 말에 세희가 놀라 물었다.
"4km? 지금 4km 밖에 있는 존재를 느끼고 있다는 건가요?"
"어, 움직이고 있어. 기괴한 기운이야. 어디로 가는 거지?"
수호가 움직이려 하자, 그런 수호를 재현이 붙잡았다.
"타이머."
"예?"
"1시간 타이머 맞추라고."
재현의 말에 수호는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 왓치의 타이머를 설정했다.
"1시간 안에... 해결 안 될 경우, 바로 다시 빌릴 수 있는 거지?"
재현은 만일을 위해 확인을 했다. 수호가 굳은 표정으로 재현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바로는 안돼요. 10분. 다시 힘을 빌릴 수 있기까지 10분 정도 쉬어야 돼요."
"그럼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건데... 그래도 갈 거야?"
"분명 뭔가 있어요. 우리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죽을지도 모르죠."
"그럼 가자."
재현과 수호, 세희는 서둘러 집을 나섰고, 재현의 차를 타고 수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힘을 빌렸을때 시간을 확인한 터라 따로 타이머를 맞추지 않은 세희는 핸드폰 시간을 계속 확인하며 초초해 했다.
문득 수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멈췄어요."
"어디?"
"바로 저쪽이에요."
수호가 가리킨 방향으로 재현이 차를 몰아가자, 수호가 말했다.
"차 세우세요."
"왜?"
"우릴 기다리고 있어요."
그 말에 재현이 바로 차를 세웠다.
한산해 보이는 공원 인근으로 널찍한 도로에 차라고는 재현의 차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요."
수호가 차에서 내려서자, 재현과 세희도 따라 내렸다.
"사람들 시선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죠."
수호가 그렇게 말하고는 공원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재현과 세희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세 사람은 공원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섰다. 도심속 공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두컴컴했다.
가로등이 정전으로 인해 불이 나갔는지, 대부분 꺼져 있고, 군데군데 한두 개만 약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정전으로 전원이 나갔다면 모두 꺼져야 정상일 텐데, 왜 일부만 켜져 있는지 정전이 아닌 고장인건지 알길 없었으나, 그나마 달빛이 환해서 사물을 식별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수호가 한곳을 뚫어져라 응시하자, 그곳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길게 깔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빨간 구두를 신고,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천천히 수호와 세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등지고 있는 가로등 불빛에, 처음에는 길게 늘어졌던 그림자가 점점 작아지면서,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곧이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수호와 세희는 의아스러웠다.
그녀를 얼핏 봐서는 그냥 평범한 중년의 여성이었다.
과한 화장으로 피부는 하얗게 보였고, 새빨간 립스틱이 도드라져 보이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 보이는 그런 여성이었다.
하지만 세희는 여자를 보며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사람이 아니군요."
여자의 시선이 세희에게로 향했다.
그러고는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리며 물었다.
"신기하네. 이렇게 큰 그릇이.... 왜 명단에 없었지?"
그녀의 말에 수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명단? 무슨 명단?"
그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수호에게로 향했다.
"너 뭐지?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네?"
"너야 말로 뭐야? 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거야? 명단은 또 뭐고?"
수호의 질문에 그녀는 재밌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다가 수호를 향해 요기 가득한 어조를 실어보냈다.
"쿄오미가, 아루...(흥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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