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13
마주 선 그녀의 얼굴에서 서서히 잔인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역시나 사람이 아닌 그것은 기괴하게도 입술 끝이 귀밑까지 찢어지며, 흡사 상어의 이빨같은 촘촘한 송곳니들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던 수호의 몸에서 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그녀가 그 기괴한 입으로 킬킬거렸다.
"너희 머리를 가져가면, 대장이 좋아할지도..."
그 순간, 그녀의 머리가 움직였다.
흡사 채찍이 날아들듯 빠른 속도였지만, 수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오라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예상치 못했던 그녀는 목을 뱀처럼 길게 늘어뜨린 체, 뒤로 두어 걸음을 주춤 물러섰다.
"코레와 난? (이게 뭐야?)"
당황해하며 그녀를 향해, 재현이 가지고 있던 총을 뽑아 들고 겨눴다.
"안돼요. 총은 쓰지 마세요."
다급히 외치는 수호의 목소리에 재현이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의 머리가 이번엔 재현에게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수호의 오라가 좀 더 빨랐다.
오라는 순식간에 재현과 세희까지 감싸며 그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뭐냐? 대체 그 힘은?"
이번엔 수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자, 한줄기 오라가 기괴한 그녀를 휘감았다.
당황한 그녀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며 다가오는 오라를 공격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호가 내뻗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자, 오라는 마치 밧줄처럼 그녀를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마치 유리를 긁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들려와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그녀의 몸이 먼지처럼 바스러지며 머리 부분과 함께 길쭉한 몸체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인간의 몸에서 허물을 벗어던진 듯한 그녀의 형체는, 흡사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가 달린 듯했다.
"이타이! (아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는 그녀의 몸짓에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건... 일본 요괴인, 누레온나(濡女)예요."
누레온나가 입을 쩍 벌리고 세희를 노리며 날아들자, 수호의 오라가 누레온나를 막아섰다.
누레온나는 오라를 뚫고 들어오려는 듯,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어 보지만, 쇠창살을 물어뜯으려는 개처럼 소용이 없었다.
"물가에서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비천한 요괴 따위가, 세상을 어지럽히는구나!"
평소답지 않게 호통을 치듯 외친 세희가 양손을 모아 수인을 맺었다.
그녀의 손에서 환한 금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불쑥 일어났다.
"용왕들을 다스리는 남방신 증장천(增長天)의 호통이 파도가 되어 휘몰아친다. 증장호령(增長號令)!"
세희 등 뒤의 커다란 그림자로부터 뻗어나간 흡사 검은 파도 같은 것이 휘몰아치며 허공 위에서 오라를 물어뜯는 누레온나를 덮쳤다.
"키에..."
누레온나의 비명소리는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리며 오라 너머의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 모습을 본 수호가 재빨리 달려 나가 오라를 집중시켜 바닥에 떨어진 누레온나를 짓눌렀다.
"크으으으으..."
누레온나는 괴성을 지르며 오라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재현과 세희가 수호를 따라 옆으로 다가와섰다. 발버둥 치는 누레온나의 모습이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수호가 힘으로 누르며 묻는 말에 세희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살려두면 인간을 해할 요괴예요."
단호한 걸음으로 발버둥 치는 요괴의 머리 쪽으로 걸어갔다.
"하나세에! (놔라!)"
누레온나가 긴 고함을 내지르자, 세희가 몇 번의 수인을 고쳐 잡더니, 누레온나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물에서 온 자, 땅의 힘으로 제압한다. 지천(地天)의 부름, 귀칙소령(鬼勅召令)!"
세희의 외침과 동시에 누레온나 이마를 짚은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누레온나가 찢어지는 괴이한 비명을 내질렀다.
"끼아아아악!"
그리고 그 비명소리가 서서히 잦아듬과 동시에, 누레온나는 부스스 바스러지며 먼지처럼 공중으로 흩어졌다.
누레온나가 사라지고 나자, 세희는 비로소 한숨을 내쉬며 긴장의 끈을 내려놓았다.
그녀가 털썩 주저앉아 이마의 땀을 훔치는 사이, 수호의 오라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어리둥절하는 사이, 수호의 손목에 차인 스마트 워치에서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현도 상황이 마무리된 것 같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긴장한 상황이었던가?
망연히 서있던 수호도 뒤따라 두사람 옆으로 주저앉았다. 세 사람 모두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다리가 후들거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으랏차!"
돌연 수호가 기합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세희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뭐라도 마시러 가자."
세희는 기운이 다 빠져나간 기분으로 멍하니 앉아있다가, 수호가 손을 내밀어 보이자 어쩐지 오기가 발동했다.
"필요 없거든요?"
세희는 쌀쌀맞게 대답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다가,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자, 수호가 얼른 세희를 붙잡아 주었다.
"어어? 그러다 넘어진다?"
걱정스런 수호의 목소리에,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뭐해요?"
"그럼 넘어지는데 보고만 있어?"
"안 넘어지거든요?"
"넘어질 뻔하는 거 다 봤거든?"
수호는 도와주고도 좋은소리를 못듣자,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연애는 나중에하고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선 재현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툭 던지고는 차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움찔한 세희가 팔꿈치로 수호를 툭 치며 수호에게서 떨어졌다.
"와~ 고맙다는 말은 못 할 망정..."
수호가 서운하다는 듯이 말하자, 세희는 눈을 흘기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갑자기 앞서 걷던 재현이 우뚝 멈춰 섰다. 의아한 세희와 수호도 뒤따라 멈췄다.
세 사람 앞에 누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여 미터 정도를 사이에 두고,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무언가 불길한 기분에 휩싸인 재현은, 재킷안의 총을 만지작거리며 거칠게 물었다.
"넌 뭐야?"
재현의 질문에, 그 남자는 한걸음 앞으로 다가오며 달빛 아래에 얼굴을 드러내 보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또렷한 발음과 자연스러운 한국말이지만, 그 억양의 독특함은 그가 한국사람이 아니란 걸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신 누구야?"
재차 묻는 재현을 향해 웃음짓는 그의 얼굴은 , 맑은 피부와 작은 눈 때문에 웃을 때 눈이 하나의 선으로 보이는 특징이 있었다.
"기가쿠라고 합니다."
"일본인인가?"
"그렇습니다."
"일본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저 요괴는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
기가쿠는 한번 더 크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누레온나를 알아보고 단박에 제압한 건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 사람... 쉽게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뒤에 서 있는 수호는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힐끔 확인했다.
아직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긴장감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놀랍군요. 저 정도의 큰 그릇이 어째 명단에서 누락되어 있었는지... 알길 없으나, 명단에서 누락된 이상 크게 관심 없습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을 칭찬할 뿐입니다."
기가쿠가 갑자기 박수를 치자, 재현이 싸늘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저 괴물은... 네놈이 부린 건가?"
기가쿠는 관심 없다는 듯 세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뛰어난 영력입니다. 그와 같은 술법들은 밀교의 술수 같은데... 어찌 무당이 밀교의 술수를 아는 거죠?"
세희가 재현의 눈치를 살피자, 재현이 돌연 총을 꺼내 들어 기가쿠를 겨눴다.
"네놈은 인간이렸다? 사건 조사차 체포하는 것쯤은 일도 아냐."
바로 그 순간, 뭔가가 재현의 손을 쳤고, 재현은 통증을 느끼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내려다본 손에는 불그스름하게 상처가 나 있었고, 무언가 치는 바람에 놓친 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재현이 다시 앞을 응시하자, 아까와 비슷한 느낌의 기괴한 괴물이 기가쿠와 재현 사이에 서 있었다.
큼지막한 창을 하나 들고 있는 그것은, 온몸이 붉었으며 누르스름한 머리털이 꼬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을 보니 평소 그닥 겁이 없는 그라도 덜컥 겁이 날 정도였다.
"다이조오부, 젠와 라베오니 (괜찮아, 젠도키)"
기가쿠의 달래는 듯한 음성에 붉은 요괴는 창을 아래로 내려뜨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기가쿠의 왼쪽 편에는 푸른빛의 요괴가 이상한 호리병을 들고 서 있었고, 이를 본 세희는 뭔가를 생각하다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젠도키(善童鬼)와 묘도키(妙童鬼)... 어떻게 당신이?"
기가쿠의 표정이 놀랍다는 듯이 변했다.
"굉장하군요. 스승님을 아십니까?"
"오즈누는 천년 전 사람이야. 그 사람의 제자가 여태 살아있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러자 기가쿠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기가쿠 가문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술법과 수호신들입니다. 누레온나는 언젠가 제가 붙잡게 되어 적당한 때 써먹으려고 가지고 있었지요. 몇 번 써보지 못했는데... 수법이 잔혹하여, 고민하고 있긴 했습니다."
이어 수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 또한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누군가처럼... 그 사람은 꽤나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수호는 기가쿠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당신들은 명단에 없으니깐요. 하지만 조만간에 다시 뵙게 될 것이라 예상됩니다. 의뢰인이 당신들의 존재를 알게 되면, 분명 입장이 달라질 겁니다."
"그때 가서 우리를 죽이러 오겠다는 건가?"
수호의 물음에 그는 해사한 얼굴로 방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입금이 되면, 해야 할 일을 해야죠. 입금 전까지 우리는... 적이 아닙니다."
어느새 그의 곁에 있던 젠도키와 묘도키가 사라지고, 그는 태연히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당신 말고 나머지는? 모두 열두명인가?"
수호가 뒤에서 소리치듯 묻는 소리에, 걸어가던 기가쿠가 멈춰 섰다.
몸을 돌린 그는 꽤나 살벌한 눈빛으로 한동안 수호를 응시했다.
"제법이군요. 그런 것들을 알고 계시다니? 다시 인사드리죠. 십이사도에서 부여받은 이름은, 크로노스 입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더니,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한번 올리고는 다시 자신의 갈길을 갔다.
재현이 이대로 저 남자를 그냥 보낼 수 없어 달려 나가려다, 자신을 붙잡는 손길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뒤에 서 있던 수호는 자신을 돌아보는 재현을 향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세 사람의 긴장된 시선은, 기가쿠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의 등 뒤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시나 사람이 아닌 그것은 기괴하게도 입술 끝이 귀밑까지 찢어지며, 흡사 상어의 이빨같은 촘촘한 송곳니들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던 수호의 몸에서 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그녀가 그 기괴한 입으로 킬킬거렸다.
"너희 머리를 가져가면, 대장이 좋아할지도..."
그 순간, 그녀의 머리가 움직였다.
흡사 채찍이 날아들듯 빠른 속도였지만, 수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오라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예상치 못했던 그녀는 목을 뱀처럼 길게 늘어뜨린 체, 뒤로 두어 걸음을 주춤 물러섰다.
"코레와 난? (이게 뭐야?)"
당황해하며 그녀를 향해, 재현이 가지고 있던 총을 뽑아 들고 겨눴다.
"안돼요. 총은 쓰지 마세요."
다급히 외치는 수호의 목소리에 재현이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의 머리가 이번엔 재현에게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수호의 오라가 좀 더 빨랐다.
오라는 순식간에 재현과 세희까지 감싸며 그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뭐냐? 대체 그 힘은?"
이번엔 수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자, 한줄기 오라가 기괴한 그녀를 휘감았다.
당황한 그녀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며 다가오는 오라를 공격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호가 내뻗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자, 오라는 마치 밧줄처럼 그녀를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마치 유리를 긁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들려와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그녀의 몸이 먼지처럼 바스러지며 머리 부분과 함께 길쭉한 몸체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인간의 몸에서 허물을 벗어던진 듯한 그녀의 형체는, 흡사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가 달린 듯했다.
"이타이! (아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는 그녀의 몸짓에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건... 일본 요괴인, 누레온나(濡女)예요."
누레온나가 입을 쩍 벌리고 세희를 노리며 날아들자, 수호의 오라가 누레온나를 막아섰다.
누레온나는 오라를 뚫고 들어오려는 듯,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어 보지만, 쇠창살을 물어뜯으려는 개처럼 소용이 없었다.
"물가에서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비천한 요괴 따위가, 세상을 어지럽히는구나!"
평소답지 않게 호통을 치듯 외친 세희가 양손을 모아 수인을 맺었다.
그녀의 손에서 환한 금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불쑥 일어났다.
"용왕들을 다스리는 남방신 증장천(增長天)의 호통이 파도가 되어 휘몰아친다. 증장호령(增長號令)!"
세희 등 뒤의 커다란 그림자로부터 뻗어나간 흡사 검은 파도 같은 것이 휘몰아치며 허공 위에서 오라를 물어뜯는 누레온나를 덮쳤다.
"키에..."
누레온나의 비명소리는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리며 오라 너머의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 모습을 본 수호가 재빨리 달려 나가 오라를 집중시켜 바닥에 떨어진 누레온나를 짓눌렀다.
"크으으으으..."
누레온나는 괴성을 지르며 오라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재현과 세희가 수호를 따라 옆으로 다가와섰다. 발버둥 치는 누레온나의 모습이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수호가 힘으로 누르며 묻는 말에 세희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살려두면 인간을 해할 요괴예요."
단호한 걸음으로 발버둥 치는 요괴의 머리 쪽으로 걸어갔다.
"하나세에! (놔라!)"
누레온나가 긴 고함을 내지르자, 세희가 몇 번의 수인을 고쳐 잡더니, 누레온나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물에서 온 자, 땅의 힘으로 제압한다. 지천(地天)의 부름, 귀칙소령(鬼勅召令)!"
세희의 외침과 동시에 누레온나 이마를 짚은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누레온나가 찢어지는 괴이한 비명을 내질렀다.
"끼아아아악!"
그리고 그 비명소리가 서서히 잦아듬과 동시에, 누레온나는 부스스 바스러지며 먼지처럼 공중으로 흩어졌다.
누레온나가 사라지고 나자, 세희는 비로소 한숨을 내쉬며 긴장의 끈을 내려놓았다.
그녀가 털썩 주저앉아 이마의 땀을 훔치는 사이, 수호의 오라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어리둥절하는 사이, 수호의 손목에 차인 스마트 워치에서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현도 상황이 마무리된 것 같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긴장한 상황이었던가?
망연히 서있던 수호도 뒤따라 두사람 옆으로 주저앉았다. 세 사람 모두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다리가 후들거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으랏차!"
돌연 수호가 기합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세희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뭐라도 마시러 가자."
세희는 기운이 다 빠져나간 기분으로 멍하니 앉아있다가, 수호가 손을 내밀어 보이자 어쩐지 오기가 발동했다.
"필요 없거든요?"
세희는 쌀쌀맞게 대답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다가,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자, 수호가 얼른 세희를 붙잡아 주었다.
"어어? 그러다 넘어진다?"
걱정스런 수호의 목소리에,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뭐해요?"
"그럼 넘어지는데 보고만 있어?"
"안 넘어지거든요?"
"넘어질 뻔하는 거 다 봤거든?"
수호는 도와주고도 좋은소리를 못듣자,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연애는 나중에하고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선 재현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툭 던지고는 차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움찔한 세희가 팔꿈치로 수호를 툭 치며 수호에게서 떨어졌다.
"와~ 고맙다는 말은 못 할 망정..."
수호가 서운하다는 듯이 말하자, 세희는 눈을 흘기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갑자기 앞서 걷던 재현이 우뚝 멈춰 섰다. 의아한 세희와 수호도 뒤따라 멈췄다.
세 사람 앞에 누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여 미터 정도를 사이에 두고,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무언가 불길한 기분에 휩싸인 재현은, 재킷안의 총을 만지작거리며 거칠게 물었다.
"넌 뭐야?"
재현의 질문에, 그 남자는 한걸음 앞으로 다가오며 달빛 아래에 얼굴을 드러내 보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또렷한 발음과 자연스러운 한국말이지만, 그 억양의 독특함은 그가 한국사람이 아니란 걸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신 누구야?"
재차 묻는 재현을 향해 웃음짓는 그의 얼굴은 , 맑은 피부와 작은 눈 때문에 웃을 때 눈이 하나의 선으로 보이는 특징이 있었다.
"기가쿠라고 합니다."
"일본인인가?"
"그렇습니다."
"일본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저 요괴는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
기가쿠는 한번 더 크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누레온나를 알아보고 단박에 제압한 건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 사람... 쉽게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뒤에 서 있는 수호는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힐끔 확인했다.
아직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긴장감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놀랍군요. 저 정도의 큰 그릇이 어째 명단에서 누락되어 있었는지... 알길 없으나, 명단에서 누락된 이상 크게 관심 없습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을 칭찬할 뿐입니다."
기가쿠가 갑자기 박수를 치자, 재현이 싸늘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저 괴물은... 네놈이 부린 건가?"
기가쿠는 관심 없다는 듯 세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뛰어난 영력입니다. 그와 같은 술법들은 밀교의 술수 같은데... 어찌 무당이 밀교의 술수를 아는 거죠?"
세희가 재현의 눈치를 살피자, 재현이 돌연 총을 꺼내 들어 기가쿠를 겨눴다.
"네놈은 인간이렸다? 사건 조사차 체포하는 것쯤은 일도 아냐."
바로 그 순간, 뭔가가 재현의 손을 쳤고, 재현은 통증을 느끼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내려다본 손에는 불그스름하게 상처가 나 있었고, 무언가 치는 바람에 놓친 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재현이 다시 앞을 응시하자, 아까와 비슷한 느낌의 기괴한 괴물이 기가쿠와 재현 사이에 서 있었다.
큼지막한 창을 하나 들고 있는 그것은, 온몸이 붉었으며 누르스름한 머리털이 꼬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을 보니 평소 그닥 겁이 없는 그라도 덜컥 겁이 날 정도였다.
"다이조오부, 젠와 라베오니 (괜찮아, 젠도키)"
기가쿠의 달래는 듯한 음성에 붉은 요괴는 창을 아래로 내려뜨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기가쿠의 왼쪽 편에는 푸른빛의 요괴가 이상한 호리병을 들고 서 있었고, 이를 본 세희는 뭔가를 생각하다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젠도키(善童鬼)와 묘도키(妙童鬼)... 어떻게 당신이?"
기가쿠의 표정이 놀랍다는 듯이 변했다.
"굉장하군요. 스승님을 아십니까?"
"오즈누는 천년 전 사람이야. 그 사람의 제자가 여태 살아있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러자 기가쿠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기가쿠 가문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술법과 수호신들입니다. 누레온나는 언젠가 제가 붙잡게 되어 적당한 때 써먹으려고 가지고 있었지요. 몇 번 써보지 못했는데... 수법이 잔혹하여, 고민하고 있긴 했습니다."
이어 수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 또한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누군가처럼... 그 사람은 꽤나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수호는 기가쿠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당신들은 명단에 없으니깐요. 하지만 조만간에 다시 뵙게 될 것이라 예상됩니다. 의뢰인이 당신들의 존재를 알게 되면, 분명 입장이 달라질 겁니다."
"그때 가서 우리를 죽이러 오겠다는 건가?"
수호의 물음에 그는 해사한 얼굴로 방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입금이 되면, 해야 할 일을 해야죠. 입금 전까지 우리는... 적이 아닙니다."
어느새 그의 곁에 있던 젠도키와 묘도키가 사라지고, 그는 태연히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당신 말고 나머지는? 모두 열두명인가?"
수호가 뒤에서 소리치듯 묻는 소리에, 걸어가던 기가쿠가 멈춰 섰다.
몸을 돌린 그는 꽤나 살벌한 눈빛으로 한동안 수호를 응시했다.
"제법이군요. 그런 것들을 알고 계시다니? 다시 인사드리죠. 십이사도에서 부여받은 이름은, 크로노스 입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더니,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한번 올리고는 다시 자신의 갈길을 갔다.
재현이 이대로 저 남자를 그냥 보낼 수 없어 달려 나가려다, 자신을 붙잡는 손길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뒤에 서 있던 수호는 자신을 돌아보는 재현을 향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세 사람의 긴장된 시선은, 기가쿠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의 등 뒤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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