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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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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2.37분

71화 - #2


좌상의 집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든 대소신료들 앞으로, 좌상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들 그를 바라보았다.

"좌상대감, 무슨 일입니까?"

우상이 먼저 나서 의아한 듯 물어보았으나, 좌상은 그를 한번 흘낏 보고는 들은 체 만 체 하며, 병판을 향해 말했다.

"병판,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병사 500을 준비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시오?"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병판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500 정도라면야, 금위영 병사만으로도 충분하니 당장이라도 대령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당장 준비해 주시겠소?"

"무슨... 일 때문에 그러하시는지..."

의문이 가득한 대신들의 얼굴을 두루 쳐다본 좌상이 입을 열었다.

"오늘, 어찌하여 주상전하께서 모두를 불러들인 것 같소이까?"

그의 난데없는 질문에 다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한 눈빛을 나누었다.

다시금 우상이 나서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저희 역시 예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여, 말씀하신 대로 세자를 판의금부사로 명한 것에 대해 따져 물었고..."

그러나 우상이 체 말을 다하기도 전에 좌상이 말을 잘랐다.

"오늘 주상전하께서 우리 모두를 불러들인 연유는, 바로 우리 모두를 추포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좌상의 말에 모두가 아연실색 해졌다.

"아, 아니 그게 무슨...."

"주상전하께서 어찌 그러하신단 말입니까?"

다들 놀라 다그쳐 물으니, 좌상이 대신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 만약 이 사람까지 입궐하였다면, 지금쯤 모두 목이 달아났을 겝니다. 허나, 제가 입궐치 않음으로써, 이렇게 다들 목이 붙어 계신 겝니다."

그의 말에 다들 입맛을 다시면서도,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좌상은 그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뒷짐 쥔 손을 슬그머니 펴자, 그의 손안에 있던 희끄무레한 것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것들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허공 위를 빙글 거리며 날아다녔으나,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내 대신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한 사람당 두어 개씩, 혹은 세 개씩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들어가는 순간 그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주상이 우리를 죽이려 했어요!"

좌상이 다시 소리 높여 외치자, 다들 살기 등등한 눈빛으로 좌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임금이란 자가 어찌 신료들을 죽이려 한단 말인가, 파렴치하기 짝이 없구나."

"맞소. 이대로 개죽음 당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들이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좌상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병판은 당장 금위영의 병사들을 궁궐 앞에 대기시켜 주세요."

좌상의 말에 병판이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흥분하며 말했다.

"500 가지고 되겠습니까? 도성 안에 병사들을 싹 다 불러 모으면 당장이라도 족히 3만은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좌상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불필요한 출혈입니다. 이 사람이 알아서 할터이니, 500이면 족합니다. 오늘 밤, 거사가 있을 것입니다. 경들은 오늘 밤 궁궐에서 소란이 벌어져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세요."

다들 결연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일 아침이면 모든 일이 끝나 있을 것입니다.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새로운 왕을 준비하십시다."

좌상의 여유로운 말에 다들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습니다."

"좌상만 믿겠습니다."

좌상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광기 어린 눈빛을 번득거렸다.



***



분한 표정을 갈무리하지 못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던 세자는 문득 멈춰 섰다.

고개를 돌리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희가 눈에 들어왔다.

세자는 발걸음을 돌려 연희에게 다가서며 한결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 여기 나와 있는 것이냐?"

걱정스레 물어보는 세자의 얼굴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연희는 짧은 한숨을 지어 보였다.

"저하가 걱정돼서 그렇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옵니까?"

세자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역시나 좌상대감 답더구나. 모두 불러 모아 일거에 제압할 생각이었으나, 좌상이 병환을 핑계로 입궐치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 우리 쪽 행동을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아서, 서두르는 길이다."

그렇게 말하는 세자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 힘 빠진 사람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연희는 이내 씩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지금은 더 중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연희의 말에 세자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래. 이 일도 너와 무관치 않으니, 내 반드시 모든 것을 바로잡도록 하마."

그때 수현이 저멀리서 마침내 찾았다는듯 서둘러 달려와, 세자와 연희에게 인사를 올린 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하, 주상전하께옵서 찾아계십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안 그래도 가던 길이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말을 마친 세자가 연희에게 안심하라는듯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서둘러 강녕전으로 향하자, 그 뒤를 수현이 뒤따랐다.

잠시 망설이던 연희는 이내 결심한듯 후다닥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강녕전 앞에 이르러 세자가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대기하고있는 수현의 옆으로 다가선 연희가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상황이 위중한 것입니까?"

연희가 걱정되는 목소리로 궁금한 듯 물으니, 수현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저들이 우리의 수를 본 듯 하니, 이제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구나."

"무슨 짓이라... 하심은..."

"역모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역모라는 말에 연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오면... 저하 께옵서도 위험하신 것이옵니까?"

"그래, 주상 전하는 물론이고, 저하께서도 안전하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가진 병력이라고 해봐야 궁궐 안팎을 지키는 천여 명의 병사가 고작이다. 도성을 둘러싼 수만의 병사가 모두 저들 손에 있으니, 저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왕을 옹립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수현의 말에 연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세자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속이 탔다.

한편 안으로 들어선 세자는 임금과 마주 앉았다.

"이제 저들이 어찌할 것 같으냐?"

수심이 깊은 임금의 물음에 세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제 저들은 칼을 뽑아 들것입니다."

"달리... 방도가 없겠느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하지 않습니까? 어찌 방도가 없겠습니까?"

"무엇이냐? 어서 말해 보거라."

잠시 망설이던 세자는 결심한 듯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를 폐세자 시키십시오."

세자의 말에 임금의 눈이 휘둥그레 지더니, 이어 분노한 가득한 얼굴로 진노했다.

"너는 과인을, 이 아비를, 고작 그 정도 위인으로밖에 보지 않았더냐? 내가 살기 위해 너를 팔라는 말이냐?"

"그것이 전하와 제가 둘 다 사는 길입니다. 이번 일에 책임을 물어 저를 폐세자 시키신다면, 저들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바,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진정 책임을 묻는다면, 폐세자 정도로 물러날 위인들이 아니다."

"알고 있사옵니다. 폐세자와 함께 가장 가까운 곳으로 위배를 보내십시오. 그곳에서 기회를 살피겠나이다."

"정녕 그 길밖에 없는 것이냐?"

이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세자가 임금을 보면서 말했다.

"물론, 폐세자를 시키는 과정은 모든 신료들이 보는 앞에서 진행될 것이옵니다."

뭔가 의미심장한 세자의 말에 임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세자의 말뜻을 이해한 듯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문을 벌컥 열고 나온 좌상이 기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라? 폐세자?"

그러자 소식을 전하러 온 예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좌상. 우리가 이겼습니다. 하하, 세자의 막중한 책임을 묻기 위해 대소 신료들의 의견을 물어 유배지를 결정한다 합니다. 속히 입궐할 채비를 하시지요."

그 옆에 서 있던 주동환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좌상을 보며 말했다.

"이것 또한 세자의 계책일 것입니다. 자신들의 계획이 실패했으니, 스스로 폐세자를 청하여, 목숨을 보존할 계책이겠지요."

얼굴빛이 환해진 좌상은 큰 소리로 웃어댔다.

"으하하, 그럼 그렇지. 그래, 하하하."

성큼성큼 밖으로 나선 좌상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예판과 주동환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그럼 서둘러 채비를 하십시다. 저 기고만장하던 세자가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꼬락서니를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으하하하"

좌상은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 기쁜 표정으로 웃다가 다시 돌아서 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내 서둘러 의복을 갖출 터이니, 함께 입궐하십시다."

좌상의 말에 예판이 웃으며 대답했다.

"예예,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십시오. 이미 다 끝난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

하지만 주동환의 표정을 밝지 않았다.

이 결과로 인해 상심하고 있을 연희 때문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이제 어떻게 하면 연희를 자연스럽게 궁궐에서 빼내 올 것인가 하는 것에 골몰해 있었다.

좌상, 아니 천태호의 말마따나 아예 육신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도 있었다.

그럴 거라면 되도록 부드럽게, 연희가 충격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 방법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좌상이 의복을 갖춰 입고 나왔다.

"자자 가십시다."

좌상이 예판에게 대문을 향해 손짓하며 발길을 재촉하자, 그 뒤를 주동환이 뒤따랐다.

몇 걸음 옮기던 좌상이 고개를 돌려 주동환을 향해 말했다.

"너는 가서 천무방 사람들을 살피거라. 그간 거기 갇혀 있느라 갑갑했을 터이니, 어디 가서 회포라도 풀라 하고."

"예, 대감"

이어 좌상은 다시 예판을 재촉해 함께 궁궐로 향했고, 주동환은 천무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좌상과 예판이 탄 가마가 궁궐 앞에 당도했을 때, 꽤 많은 대소 신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좌상이 보이자 인사를 건네기 급급했으며, 저마다 그에게 잘 보이려는 듯 서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좌상은 그들을 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누가 보아도 기분이 꽤나 좋아 보이는 좌상이었다.

그들이 들어서자 품계가 낮은 신하들이 다가와 근정전 앞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근정전 앞에 모여든 사람들, 그 한가운데 백색 면포의 저고리와 바지만 입고 손이 묶인 체 앉아 있는 세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좌상은 기쁜 마음으로 그런 세자를 쳐다보며 성큼성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좌상의 좌우로 대소신료들이 모두 모여들며 대오를 갖추며 섰고, 그들 맨 끝으로는 궁궐 병사들이 경계를 섰다.

얼마 후 큰 소리로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상전하 납시오."

근정전의 문이 열리고, 임금이 차분하게 걸어 나와 근정전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좌상을 포함한 대소신료들이 모두 임금을 보며 예를 갖추자, 임금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 왜구들의 토벌때 세자의 과오에 대해 결론짓지 않은 바가 있어,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였도다. 그대들의 의견을 서슴없이 말하라."

임금이 말을 마치자, 좌상이 먼저 한걸음 나서 말했다.

"전하, 세자마마의 잘못은 너무도 명명백백하옵니다. 그는 충신인 홍여립 장군의...."

순간 좌상이 말을 멈추었다.

그는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에 긴장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눈살을 찌푸렸고, 이내 자신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대소신료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들이 의아함에 당황스런 표정으로 서로 눈치만 보고있는, 그 사이 근정전으로 들어서는 문이 '끼이익'하는 마찰음을 내며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굳게 닫히고, 그 문 앞에 서 있는 한 여인이 좌상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좌상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좌상은 그녀를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좌상은 마치 귀신을 본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때 문 앞에 선 여인, 소연이 양손으로 수인을 맺기 시작하자 좌상이 얼굴을 굳히며 세자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어느새 포승줄을 풀고 일어난 세자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좌상을 바라보자, 좌상이 격분을 참지못해 일그러진 얼굴로 포효하듯 외쳤다.

"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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