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TokTok v0.1 beta
챕터 배너

나린왕국

author
·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0.69분

56화 - #25


백하도령이 거대한 문지기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자, 나래는 걱정되는 마음에 백하도령 뒤에 바짝 붙어 섰다.

행여라도 백하도령이 문지기에게 맞기라도 하면, 얼른 이 모든 걸 부정할 생각이었다.

"오셨습니까요."

이게 웬일인가? 문지기가 백하도령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더니 순순히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뭐야?"

나래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백하도령이 문을 지나치고 있었다.

나래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지나는 와중에 계속 문지기를 노려보았지만, 문지기는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참나... 와... 이렇게나 친절하신 줄 몰랐네요."

나래는 뒤따르면서도 연신 궁시렁 궁시렁 거렸다. 또다시 백하도령은 거침없이 다음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열개의 지옥문을 모두 순조롭게 통화하고 난 후 백하도령이 뒤를 돌아보자, 나래는 뭔가 불만이 있는지 입술이 뾰루퉁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무슨 일이냐?"

백하도령이 걱정되어 묻는 말에, 나래가 궁시렁 거리듯 대답했다.

"좋으시겠어요? 아주 그냥 문지기들이 넙죽넙죽 인사하면서 환영해 주니... 그 험악하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 세상 그렇게 친절할 수 가 없네요. 처음 알았어요, 저분들이 저렇게 친절하고 자상하신 분들 인줄. 도령님 아니었으면 죽어서도 모를 뻔했네요."

영문을 모르는 백하도령은 나래의 투덜거림에, 그저 실소만 머금을 뿐이었다.

백하도령은 나래가 만났던 대별왕이 있는 큼지막한 원형의 광장 너머가 아닌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얼마의 길을 걸어가고 나자, 흡사 회사의 회의실 같은 현대식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나래가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백하도령은 누군가의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코밑에 수염을 꽤나 세련되게 키우고 있었고, 붉은빛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은 현대에도 볼 수 있는 정장 차림이었다.

붉은색 정장 자체는 어색할지 몰라도, 그 옷을 입고 있는 그는 왠지 그 색과 옷이 잘 어울려 보였다.

"이게 누구신가?"

그는 대뜸 백하도령을 보고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잘 계셨습니까?"

백하도령이 묻는 안부에, 그는 백하도령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천계의 대신장(大神將)인 백양군(白亮君)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인 행차신가?"

장난스러운 인사에 백하도령은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강림차사께 청이 있어 왔습니다."

강림차사란 말에 나래는 눈을 껌뻑 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강림차사라면, 저승사자가 아닌가?

"백양군의 부탁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드리지요. 무슨 청이실까요?"

여전히 장난스러운 강림차사의 물음에, 백하도령이 대답했다.

"죽은 이를 찾고 있습니다. 그 혼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으면 합니다."

강림차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차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죽은 사람이라... 언제, 어떻게 죽은 사람인가?"

"시간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하고, 건물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죽었습니다."

강림차사가 "크..."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자살을 했단 말인가? 쯧쯧... 자살은 큰 죄일세. 백양군도 잘 알겠지만... 자살한 자들은 이곳에서 특별한 취급을 받게 되지."

가만히 듣고 있던 나래가 궁금한 듯 백하도령에게 물었다.

"특별취급이라뇨?"

그제야 뒤에 서 있는 나래를 본 강림차사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저 처자는 어찌 되시는 처자신가? 보아하니... 인간은 아닌 것 같고."

백하도령이 나래를 힐끔 돌아보고는 예의 미소가 담긴 표정으로 대답했다.

"신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아하... 새롭게 신이 되신 분이셨구만."

신이란 말에 강림차사는 다시 자리에서 나와 나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림이라고 합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니, 나래는 쭈뼛거리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인간이셨군요. 인간의 태기(兌氣)가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보니..."

"아... 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특별취급이란 게 무언지... 그게 궁금하신가요?"

강림차사의 물음에 나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대체 어떤 특별 취급을 받는 거죠?"

"지옥에 대해서 아십니까? 저승이 어떤 곳인지...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되돌아온 질문에 나래는 백하도령을 힐끔 거리며 머뭇거리듯 대답했다.

"그건... 사실 잘 몰라요..."

"아하, 잘 모르신다. 앞으로 잘 알아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설명드리죠. 이곳 저승에는 여덟 개의 지옥, 즉 팔열지옥(八熱地獄)이 있습니다.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 온갖 고통을 받게 되지요. 들어보셨나요?"

"네.. 뭐...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서... 묘사하는 걸 본 것 같아요."

"네, 맞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고통입니다. 살가죽을 벗겨내서 불수레 묶어 놓고 달리기도 하고, 달구어진 쇠창으로 입과 코를 꿰어서..."

강림차사가 손짓 발짓을 해가며 잔혹한 지옥을 묘사하자, 나래는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웅크려 뒤로 물러섰다.

"심지어는 쇠덩어리 매가 와서 눈을 파먹는데, 다 파먹고 나면 또 눈이 다시 생겨나고, 또 파먹고, 또 생겨나고..."

강림차사가 괴로워하는 나래를 보며 계속 짓궂은 이야기를 이어 나가자, 백하도령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옥에 대한 설명은 그 정도면 충분한 듯합니다."

강림차사는 손짓을 하다 말고 백하도령을 돌아보며 "아, 그래요?" 하더니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이야기했다.

"이... 지옥의 깊이가 무려 사바세계 아래로 4만 유순(由旬)이나 된다는 걸 아십니까? 그 참혹한 지옥중 하나가 바로 무간지옥입니다. 무간(無間)이란 중간에 쉬는 것 없이 반복된다는 것으로 지옥의 형벌 중에 가장 극심한 고통이지요. 오역죄(五逆罪)라 하여 낳아주거나 길러준 부모를 해한 자, 승가를 깬 자 등등 이들의 죄를 오역죄라 하지요. 이 오역죄를 심판하는 과정을 거칠 때,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간혹 감형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강림차사가 갑자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어 나래 코앞으로 다가섰다.

"자살자들에겐 그마저도 없지요. 오역죄보다 더한 죄, 그것이 바로 자살입니다. 열 명의 저승왕들 가운데, 곧바로 마지막 왕인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의 심판을 받게 되지요. 변호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살한 사실만 확인하여, 곧바로 무간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야말로 영겁의 시간 동안 고통받게 되지요."

나래는 잔뜩 겁을 먹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그런 나래를 부리부리한 눈으로 바라보던 강림차사가 갑자기 뒤로 물러서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뀐 강림차사가 한톤 높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요즘... 무간지옥이 공사 중입니다. 이거 뭐, 자살자가 몇 명 안될 때나 그런 게 가능했죠. 요즘 너~~어~무 많아요. 툭하면 쏟아져 들어오니까... 무간지옥이 더 이상 감당이 안됩니다. 요즘 확장공사 때문에 시끌시끌해서, 다른 지옥에 잠깐 보내 놓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말이 나오자, 나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림차사를 쳐다봤다.

"화, 확장공사요?"

"네. 뭐, 보시다시피, 저승전 전체를 요즘 현대적으로 바꿔 보려고 보수 공사 중인데... 이게, 나무로 만든 기존 구조물들이 비교적 건축이 쉬웠던 반면에, 시멘트로 지을라니, 전문지식이 필요해서 말이죠. 망자 중에 건축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을 추려내고 있습니다."

어느새 일상적인 것 같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강림차사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백하도령과 강림차사를 번갈아 보았고, 강림차사는 태연히 자리에 앉아 서류 하나를 꺼내 들어 살피며 물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백하도령이 대답했다.

"윤현준, 정묘년(丁卯年:1987) 을사월(乙巳月:5) 갑자일(甲子日:15) 생 남자입니다."

강림차사는 서류를 넘기며 찾기 시작했다.

"정묘년이라... 을사월에.. 갑자일... 윤현준이라.... 아, 여기 있네요."

강림차사가 뭔가를 찾고는 반가운 기색으로 말했다.

"온 지 얼마 안 된 건 맞는데... 쯧쯧..."

강림차사가 혀를 차며 안타까워 하자, 궁금한 나래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나래가 묻는 말에 강림차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래를 바라보더니, 찝찝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 이게... 참... 안타깝습니다. 참척(慘慽)이군요. 참척이라면... 저승에서도 예외를 두긴 하죠."

"참척이요? 그게 뭐죠?"

그때 백하도령이 나래의 손을 꼭 잡았고, 나래는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은 백하도령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백하도령은 어딘지 씁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래의 손을 잡고 있었다. 마치 그녀에게 참척이 무언지 묻지 말라는 것만 같았다.

백하도령의 눈치를 보며 강림차사가 머뭇거리자, 나래가 백하도령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알고 싶어요. 말해줘요."

강림차사가 연신 백하도령의 눈치를 살피니, 백하도령이 마지못한 듯 나래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 모습을 본 강림차사가 나래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참척이란.... 하...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것을 이야기합니다. 가장 큰 비극이죠."

나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식을... 먼저 보냈다구요?"

강림차사가 펼쳐진 책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윤서찬...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였군요."

나래는 장소의 기억에서 보았던, 현준이 보살피던 아기가 떠올랐다.

"그, 그 아기가 왜요? 언제 죽은건가요?"

"네, 죽었네요. 현준이란 사람이 죽기 이틀 전에 죽었군요."

"사, 사인이 뭐죠?"

강림차사는 나래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렸다.

"차사님!"

나래가 다그치듯 부르자, 강림차사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대답했다.

"학대와 독살입니다. 그 어미로부터..."

나래의 온몸이 경악으로 떨려왔다. 가슴이 아려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 나래는 비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애 엄마가 왜요? 애 엄마가 왜 애를 죽여요?"

강림차사는 입맛이 쓴 표정으로 고래를 설래설래 저었다.

"의심이군요. 자기 자식이 아닐 거라는... 현준이란 사람에게 자기 자식 내놓으라며..., 엄마는 자신의 아기가 뒤바뀌었다고 믿었어요."

나래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요? 그래서 죽였다구요?"

"네... 아주 서서히, 아이에게 독극물... 정확히는 세탁 세제를 먹였군요."

나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흐르는 눈물은 막지 못했다.

"말도 안돼...."

나래가 충격받은 듯 뒤로 휘청거리며 물러나자, 백하도령이 얼른 나래를 부축해 주었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현재 조회: 38
댓글
0

아직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저작권 보호: 무단전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