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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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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9.92분

35화 - #3


오늘도 연희는 세자를 따라 좌포청으로 향했다.

눈에 담듯 바라보고있는 세자의 듬직한 뒷모습과 조심스럽게 잡고 있는 세자의 옷깃이 어쩐지 아득해 보이기까지 했다.

닿았지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세자를,

담고 싶지만, 담을 수 없기에,

그저 이렇게 바라볼 수도 없는것인가, 싶은 생각에, 어쩐지 쓸쓸해지는 것만 같았다.

좌포청은 그리 멀지 않아 금세 도착하였다.

말에서 뛰어 내리면서, 평소보다 유난히 차분한 연희의 모습에, 세자는 살짝 아리송함을 느꼈다.

이제 말 타는 것이 제법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며 흘려보내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 느껴지는 왠지 모를 미묘한 감정은, 그에게 어떤 경고를 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행여나 많이 뒤쳐져 있지는 않을까, 앞서 걸으면서도 수차례 뒤따라오는 연희의 발걸음을 돌아보았다.

자신을 마중 나온 여학수와 인사를 나누고, 그에게서 보고를 받는 와중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서 있는 연희가, 내내 눈에 밟혔다.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여학수의 물음에, 세자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움찔했다.

"음? 무엇을 말인가?"

"아, 그래도 이미 형이 집행된 사람이니 더는 조사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 아아... 그, 그래... 누구라고 그랬지?"

"김문익이라고, 지난번에 역모죄로 참수형에 처해진 전 금천현 현감이옵니다."

세자는 뒤늦게 눈에 빛을 내며 되물었다.

"그자를 왜 다시 조사한다고 했는지, 내 제대로 듣지 못했으니, 다시 한번 설명해 주겠는가?"

"아, 예 저하, 저희는 사교도 무리와 천무방의 관계를 추적하던 와중에, 금천현에서 활동하는 율교(律敎)라는 집단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 율교에 속한 자들이 얼마전 의금부에서 처벌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토벌되기까지, 마음대로 활동하게 해 준 인물이 바로 금천현의 현감이옵고, 이 금천현 현감이 숱한 사람을 죽이다가, 역모를 꾀하였다 고변하는 바람에 그 아비인 김승호 대감은 물론, 김승호 대감과 함께 했던 과거 황인걸 대감의 당여들이 모두 역모죄로 엄벌에 처해졌었습니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사건이라면 나 역시 알고 있네.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내 듣기로는 김문익이란 자가 그러한 성격이 아니라 들었는데, 어찌 그리 변하였는지,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들었네."

"예, 그는 이미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형벌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 죽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가족이 없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인 연부인이, 역모죄에 따른 연좌로 노비가 되었다 들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확인해 봐야 하나, 굳이 찾을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세자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일을 다시 묻는 것은 잔인한 일이겠지. 알았네. 그래서, 그 일을 다시 수사하겠다는 것인가?"

"그 사건에 분명 어떤 단서가 있을 것으로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다만, 워낙 큰 사건이고, 역모 사건인지라, 쉬이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네. 하지만, 이는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니, 은밀히 조사를 해보게."

"예, 저하."

그때였다. 밖에서 누군가 황급히 들어와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저하, 주상전하께서 찾아계시옵니다."

찾아온 내관의 말에 세자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어쩔 수 없군. 오늘은 내 이만하고 돌아감세."

"예, 저하."

여학수의 인사를 받으며, 밖으로 나오던 세자는 서둘러 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말에 올라타기 전, 어쩐지 가고 싶지 않은듯 발걸음을 좀처럼 떼지 않으며 느지막하게 따라오고있는 연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무슨일이 있는것이냐? 다른때와 다르게 말도 없고 조용하구나?"

세자의 물음에 연희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기억을 찾고자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니....,먼저 가시옵소서. 이곳에서 필요한 것들을 좀 더 살펴보고, 종사관 나리를 도운 이후에 들어가겠사옵니다."

세자는 찜찜한듯 눈썹을 찌푸리며 복잡한 눈으로 연희의 얼굴을 바라보다 주상전하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이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상에 올랐다.

호위 무사들이 뒤따라 말위에 오르고, 그들이 모두 궁궐을 향해 달려가자, 연희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서 있었다.

"딱히 도울 일이 없을 터인데... 함께 들어가지 그러냐?"

여학수가 다가와 건네는 말에, 연희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는 천천히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정녕, 제가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아직은 없을 것 같구나. 우리도 이제 시작하는 중이니, 앞으로 천천히 도우면 될 것이다."

"예, 나리."

여학수도 돌아가고 연희는 터벅터벅 궁궐 쪽을 향해 걸었다.

어쩐지, 세자와 함께 말을 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먼저 가라고 한 것인데, 왠지 모르게 섭섭하기도 하고, 홀가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문득 인기척에 고개를 든 연희는 이내 놀란 표정으로 굳어졌다.

그녀 앞에 주동환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연희를 응시하고 있자, 연희는 애써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마치 모르는 사람인양, 그의 곁을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아픈 것이냐?"

등뒤에서 주동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희는 돌아보지 않은 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대답했다.

"아프지 않습니다."

"네 눈빛, 네 표정, 네 발걸음이 아프다 말하는데, 네 입술은 아프지 않다 말하는구나."

연희는 차마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세자는 너만의 사람이 될 수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여인들 중에 한명일뿐이다. 어쩌다 예쁘장한 외모에 끌려, 호기심에 건드려 보는 여인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것이 네가 바라는 것이냐?"

"제가 어찌 살든, 무슨 상관이십니까?"

연희가 앙칼진 목소리로 묻는 말에, 주동환은 씁쓸하게 대답했다.

"상관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관하지 마십시오. 저는 나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나리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를 더이상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 저 역시 나리를 마음에 두지 않을 것입니다."

주동환이 몸을 돌려 연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연희는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보지 않았다.

"너는...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것이 네 마음대로 되는 것이더냐?"

연희는 아미를 찌푸리며, 가슴속에서부터 울컥 치받쳐 오르는 슬픔을 애써 누르며 참았다.

"기다릴 것이다. 그 기다림에 끝이 없을 지라도. 허니, 네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가거라. 언제고 네가 돌아올 곳이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연희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한걸음 한걸음 있는 힘을 다해 내딛었다.

세자가 넘볼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딱히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허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세자가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이후, 더 이상 그의 존재는 연희의 마음대로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주동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



방안으로 의금부 감찰 복장의 한 사람이 들어서서는 안쪽에 앉은 윤일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윤일호는 그를 보자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그는 윤일호 앞으로 다가와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좌상대감이 보내신 것이옵니다."

윤일호가 알겠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감찰은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밖으로 나갔다.

윤일호는 조심스럽게 서찰을 꺼내 그 안에 내용을 확인하였다.

그러고는 이내 경악한 얼굴을 하며 떨리는 손으로 서찰을 내려놓았다.

"맙소사.... 어째서..."

그 서찰에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병조판서 김승수

- 이조판서 고숭렴

- 예조판서 홍소찬

이내 그는 서찰을 챙겨 품 안에 갈무리하였다.

이런 서찰이 다른 사람 눈에 함부로 띄어서는 안 될 것이기에,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어딘가로 서둘러 가는 윤일호의 뒷모습을, 서찰을 전했던 감찰이 어둠 속에 숨어 지켜보았다.

그는 윤일호가 간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궁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산기슭이었다.

그곳에는 미리부터 와 있던 천태호가 풀잎을 입에 물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돌무더기에 걸터앉아 있었다.

"왔어?"

천태호는 감찰을 보자, 퉁명스럽게 물었고, 감찰은 마치 상전을 대하듯 공손히 인사하였다.

"좌상대감이 대사헌에게 서찰을 전하였습니다."

천태호가 그 얘기를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 씨부리던?"

"서찰에 내용은 없고, 세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었습니다."

"이름? 누구?"

"병판대감과 이판대감, 그리고 예판대감이었습니다."

천태호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 늙은 여우가, 끝끝내 선을 넘는 구만. 병판과 이판을 쳐내겠다? 지금 상황에서 그리하면 쓰나... 대사헌은 지금 어디 있나?"

"누군가를 만나려는듯, 서둘러 나갔습니다."

"병판과 이판은 대상이니, 차마 논의하지 못할 것이고... 예판이야 딸자식 그리되고 허깨비 된 지 오래고, 좌상 하고는 의논할 수 없을 터이니...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우상뿐인가?"

"누가 되었든, 그는 대사헌입니다. 의금부를 움직여 그들을 쳐내려 한다면, 굳이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이도 아닌 좌상이 그러고자 마음먹었다면, 분명 그리되겠지요."

돌연 천태호가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그래, 그만큼 키워줬더니, 권력 놀음이나 하시겠다? 하여간 양반이란 것들은 다 똑같아. 제놈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때가 되었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쩌긴... 대사헌을 움직여야지. 병판, 이판에 이어 대사헌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린 것을 알면, 좌상 표정이 볼만 하겠구만."

천태호는 낄낄 거리듯 웃고는 이야기했다.

"알았으니까 돌아가 봐. 들키지않게 조심하고."

"예, 율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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