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1
하늘이 맑고 구름은 드문 드문 그림처럼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고, 바람도 잔잔한 것이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덜거덕, 삐그덕 거리며 소리를 내는 허름한 짐마차 일지 몰라도, 라마와 송이개는 편하게 그 위에 드러누워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랴~"
라마가 기다랗고 가느다란, 흡사 대나무 같은 것을 휘둘렀다.
놀라운 것은 그 짐마차를 끄는 존재가 말이 아닌 사람이란 점이었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절로 "아!" 하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울먹거리듯 말하는 유림의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너 힘 안주고 농땡이 부리는 게 여기서도 보인다."
라마의 말에, 같이 짐마차를 끄는 사내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유림은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열심히 밀고 있습니다."
유림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사내들의 얼굴도 만만치 않게 망가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섭위장의 호위무사 15명을 단번에 제압할 정도로 실전을 거듭해온 라마였다.
근본도 찾아보기 힘든 시덥지 않은 강도 무리 따위에게 당할 수준은 이미 넘어선 지 오래였다.
지금 그들은, 다 같이 라마의 짐마차를 끌고 있었다.
도대체 인적 없는 길가에 어떤 개..., 아니 사람이 이 낡디 낡은 마차를 버려두고 간 것이었을까?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며 힘겹게 라마와 송이개가 탄 짐마차를 끌고 있었다.
옆에서 송이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 이럴 때 이거 이거, 술 한잔이 딱 걸쳐줘야 제맛인데 말 입죠."
라마는 마치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하! 그렇군요. 바로 이럴 때 술이 필요한 거군요."
"그럼요, 그럼요."
마치 놀리는 듯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으니, 앞에서 마차를 끄는 이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너... 이... 시벌것, 넌 저놈들 가고 나면 아주 내손에 뒤질 줄 알아라."
강도 무리의 두목이었던 자가,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들었어도, 사납게 눈을 부라리며 유림을 노려보니, 유림은 그 눈길을 피하기 급급할 따름이었다.
"아따 형님 말도 마쇼. 이 개쉐이는... 아주 제가 잘근잘근 씹어 먹을라니까."
앞쪽에서 끌고 있던 다른 사내가 분을 삭이며 말하니, 유림은 더더욱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힘 팍팍 안주냐? 그 힘줄 다 끊어 버리기 전에."
두목의 말에 유림은 더욱 힘을 주어 밀며 말했다.
"힘주고 있습니다."
"더 주라고 이..."
그 순간 '딱'하는 소리와 함께 두목의 머리에 나무 채찍(?)이 떨어졌다.
"아!"
뒤이어 라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
두목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홱 고개를 돌려 라마를 노려보았다가, 돌연 실실 웃는 얼굴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큰형님."
"큰형님은... 확 그냥... 니가 몇 살인데 나한테 형님이야?"
"나이가 중요하겠습니까?"
"시끄러."
그렇게 얼마를 가고 있었을까,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병장기 소리가 들려와 마차의 동작이 절로 멈춰 섰다.
"뭐야?"
누워있던 라마가 상체를 일으키니, 앞쪽에 있던 강도 두목이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앞쪽에서 어떤 무리가 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뒤로 물러났다가 가시지요."
라마는 궁금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에서 내려섰다.
"소협, 무림에서는 남의 일에 함부로 관여해서는 안됩니다."
송이개가 걱정스러운 듯 건네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걱정 마세요."
이어 강도 두목을 보며 말했다.
"이제 됐다. 내 알아서 갈 테니까, 가봐. 한 번만 더 강도짓하다가 내 눈에 띄면... 그땐 싹 다 죽여 버릴라니까. 착하게 살아라잉?"
"예, 예, 감사합니다, 큰형님."
이어 다른 사내들도 일제히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큰형님."
"큰형님은...확 그냥... 얼른 가!"
사내들이 가려다가 유림이 따라오지 않자,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뭐하시나? 얼른 안 가고? 큰형님 얘기 못 들었어?"
그러자 유림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큰형님 가시는 길이 불편할 듯하여, 이 아우가 살펴주려 합니다."
그러자 사내들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런 유림을 보며 라마가 물었다.
"뭔 소리야? 필요 없어. 얼른 가."
그런 라마를 보며 유림이 절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이 일대 지리는 제가 훤하고, 사람들도 익숙하니...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송이개가 유림을 보며 퉁명스레 얘기했다.
"내가 천지에 길이란 길을 다 아는데 뭔 시덥잖은 소리야? 얼른 안 꺼져?"
유림이 더더욱 간절한 표정으로 사내들과 라마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 그래도 보셨지 않습니까? 딱 보면 제가 녹림인지 사파인지, 정파인지 다 안다니깐요. 저가 보는 눈이 정확해서, 어지간하면 사기당할 일도 없습니다. 이 무림이 보기엔 이래도 이게이게 만만치가 않거든요."
라마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금 유림이 얼마나 절실한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따라오든가."
라마의 말에 유림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예예, 그럼요, 그럼요."
이어 사내들에게 꾸뻑 인사를 하였다.
"살펴들 가십시오."
그들은 분한 마음에 선뜻 발을 떼지 못하다가, 마지못해 가면서도 몇 번을 돌아보며 유림을 노려보았다.
유림은 그런 그들을 못 본 척 외면하고는 얼른 라마를 따라갔다.
라마가 향한 곳은 싸움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일련의 싸움이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가운데는 기다란 짐마차 행렬이 있었으며, 다친 사람을 살피는 사람부터 마지막 저항자를 해치우는 사람까지 일련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웬 놈이냐?"
조금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푸른 옷에 검은 끈을 묶고 있는 사내가 칼을 들고 라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고, 눈은 충혈된 것이 심신이 꽤나 지쳐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냥 지나던 길에 소리가 들려, 와봤습니다."
라마는 태연하게 대답하고 있었고, 가로막아 선 사내 등 뒤로 콧수염에 체격이 장대한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경계하고 선 사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됐다. 행인이니 물러서라."
"예, 대장."
그는 젊은 사내 대신 사과하듯 인사하며 말했다.
"송구하오. 방금 전에 강도 무리와 싸운 터라, 다들 흥분해 있어서 그런 것이오."
그의 사과에 라마는 고개만 살짝 끄덕여 보였고, 중년 남자는 돌아가서 다른 이들과 함께 주위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라마 곁으로 유림이 다가와 말했다.
"풍진표국(風進鏢局) 사람들입니다. 호송 중에 강도 무리와 싸운 듯하군요."
그러자 라마가 의아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뭐, 표국 사람들은 모두 녹림인지 뭐시긴지랑 계약을 했다면서?"
그러자 유림이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라마를 보며 대답했다.
"대체로 그런다는 것이지, 어찌 또 죄다 그런다 했다 하십니까? 강도들이라고 죄다 녹림도 아니거니와, 표국이라고 죄다 녹림과 한패인 건 아닙죠.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바로 저 풍진표국입니다."
"그래? 왜 다른 거야?"
유림이 수습하는 풍진표국 사람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 풍진표국의 주인이 아주 유명한 명장 출신 입죠. 관직에서 물러나고 표국을 차렸는데, 자기가 한때는 천하를 호령했던 장군이다 이거죠. 그런 유명한 장군이 어찌 강도, 도적 집단인 녹림 따위와 손을 잡겠느냐 하는 거죠."
라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틀린 말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아주 고지식하기가 이를 데 없는 양반입니다.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위인이죠. 뭐든 원칙대로 한다는 것 때문에 표국사람들이 남아나질 않습니다. 아주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난 표국입니다. 또 이렇게 죽어나갔으니... 사람 모으기 더 힘들게 생겼네요."
라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딱히 잘못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원칙대로 한다는 게 왜 나쁘지?"
유림이 라마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이고... 소협께서도 현실을 잘 모르시는군요. 아 무공이 강해지고 싶은 거야 누구나 그러고 싶죠. 단순히 무공이 강해지기만 바랄 것 같으면 문파에 들어가지 누가 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표국은 대충 내가 좀 할 줄 아는데, 그걸 미천으로 돈 좀 벌어볼까 하는 인간들이죠. 그런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표국 일이라면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그냥 안전하게 돈 많이 버는 게 장땡이죠."
"그래서 사람 모으기가 힘들다?"
"예. 딴엔 그래도 한때 장군 출신이라고, 어서 표국 일은 잘 물어오는 모양인데, 그때마다 죽어나가는 인간들이 많아서 버는 돈에 비해 손실이 막대하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되려 줄 돈이 줄어드니, 손해 볼 건 없는 거 아닌가?"
"어허... 이 소협께서 모르시는 게 너무 많네. 저런 위험한 일을 어떤 사람이 할 것 같습니까? 목숨을 걸고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가족이 있는 이들입니다. 죽더라도 가족에게 막대한 배상을 하는 조건으로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란 거죠."
그제야 라마가 이해가 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사이 표국 일이 수습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강도 무리의 시신은 길 한쪽으로 모아 불을 지폈고, 표국 사람들의 시신은 짐마차에 실은 상태였다.
"출발!"
아까 본 중년 남자의 큰 목소리에 다시금 표국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와 행선지가 같은 것 같으니, 따라가 볼까?"
라마가 말하며 발걸음을 옮기니, 유림이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소, 소협...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응? 왜?"
"아 답답하시네. 표국 짐을 노리는 강도가 어디 한둘인 줄 아십니까? 또다시 강도들의 습격을 받으면 우리도 같이 모가지가 날아갈 수 있단 말입니다. 표국과는 거리를 두시는 게 좋습니다."
라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아니 도대체 강도가 왜 이렇게 많아? 내가 만난 강도만 해도.... 아, 됐고. 어쨌든 뭔 놈에 강도가 이렇게 많은 거야?"
"그거야... 뭐... 먹고살게 없으니까 강도가 되는 거죠."
"먹고살게 없다고 강도를 해?"
"그나마 강도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인 거죠. 그나마도 못해서 굶어 죽는 인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라마는 차마 더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고는 다시 표국 일행의 뒤를 쫓으며 말했다.
"난 이 사람들 따라갈 거야.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아님 돌아가든가."
유림의 표정이 굳어졌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니, 어딘가에 자신을 노리는 그 강도 무리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진퇴양난이 따로 있을까? 유림은 표정을 구기며 궁시렁궁시렁 거리더니, 얼른 라마의 옆에 붙어 섰다.
"왜? 따라가기 싫다더니?"
라마가 퉁명스레 묻자, 유림이 급히 웃는 얼굴이 되었다.
"제가 어찌 소협과의 의리를 져버리고 홀로 살길을 찾겠습니까?"
그 모습을 본 송이개가 비아냥 거렸다.
"지랄을 떤다. 되로 돌아갔다가 아까 그놈들 만날까 봐 그런 거지."
유림이 송이개를 흘겨보고는 얼른 라마 옆으로 바짝 붙었다.
"소협...께서는, 어떤 적이 나타나도 상대할 자신이 있으신 게지요?"
"글세... 나도 몇번 죽었는데."
"예?"
유림이 되묻는 말에 라마는 대답하지 않았고, 유림은 자기가 잘못 들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덜거덕, 삐그덕 거리며 소리를 내는 허름한 짐마차 일지 몰라도, 라마와 송이개는 편하게 그 위에 드러누워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랴~"
라마가 기다랗고 가느다란, 흡사 대나무 같은 것을 휘둘렀다.
놀라운 것은 그 짐마차를 끄는 존재가 말이 아닌 사람이란 점이었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절로 "아!" 하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울먹거리듯 말하는 유림의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너 힘 안주고 농땡이 부리는 게 여기서도 보인다."
라마의 말에, 같이 짐마차를 끄는 사내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유림은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열심히 밀고 있습니다."
유림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사내들의 얼굴도 만만치 않게 망가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섭위장의 호위무사 15명을 단번에 제압할 정도로 실전을 거듭해온 라마였다.
근본도 찾아보기 힘든 시덥지 않은 강도 무리 따위에게 당할 수준은 이미 넘어선 지 오래였다.
지금 그들은, 다 같이 라마의 짐마차를 끌고 있었다.
도대체 인적 없는 길가에 어떤 개..., 아니 사람이 이 낡디 낡은 마차를 버려두고 간 것이었을까?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며 힘겹게 라마와 송이개가 탄 짐마차를 끌고 있었다.
옆에서 송이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 이럴 때 이거 이거, 술 한잔이 딱 걸쳐줘야 제맛인데 말 입죠."
라마는 마치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하! 그렇군요. 바로 이럴 때 술이 필요한 거군요."
"그럼요, 그럼요."
마치 놀리는 듯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으니, 앞에서 마차를 끄는 이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너... 이... 시벌것, 넌 저놈들 가고 나면 아주 내손에 뒤질 줄 알아라."
강도 무리의 두목이었던 자가,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들었어도, 사납게 눈을 부라리며 유림을 노려보니, 유림은 그 눈길을 피하기 급급할 따름이었다.
"아따 형님 말도 마쇼. 이 개쉐이는... 아주 제가 잘근잘근 씹어 먹을라니까."
앞쪽에서 끌고 있던 다른 사내가 분을 삭이며 말하니, 유림은 더더욱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힘 팍팍 안주냐? 그 힘줄 다 끊어 버리기 전에."
두목의 말에 유림은 더욱 힘을 주어 밀며 말했다.
"힘주고 있습니다."
"더 주라고 이..."
그 순간 '딱'하는 소리와 함께 두목의 머리에 나무 채찍(?)이 떨어졌다.
"아!"
뒤이어 라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
두목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홱 고개를 돌려 라마를 노려보았다가, 돌연 실실 웃는 얼굴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큰형님."
"큰형님은... 확 그냥... 니가 몇 살인데 나한테 형님이야?"
"나이가 중요하겠습니까?"
"시끄러."
그렇게 얼마를 가고 있었을까,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병장기 소리가 들려와 마차의 동작이 절로 멈춰 섰다.
"뭐야?"
누워있던 라마가 상체를 일으키니, 앞쪽에 있던 강도 두목이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앞쪽에서 어떤 무리가 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뒤로 물러났다가 가시지요."
라마는 궁금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에서 내려섰다.
"소협, 무림에서는 남의 일에 함부로 관여해서는 안됩니다."
송이개가 걱정스러운 듯 건네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걱정 마세요."
이어 강도 두목을 보며 말했다.
"이제 됐다. 내 알아서 갈 테니까, 가봐. 한 번만 더 강도짓하다가 내 눈에 띄면... 그땐 싹 다 죽여 버릴라니까. 착하게 살아라잉?"
"예, 예, 감사합니다, 큰형님."
이어 다른 사내들도 일제히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큰형님."
"큰형님은...확 그냥... 얼른 가!"
사내들이 가려다가 유림이 따라오지 않자,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뭐하시나? 얼른 안 가고? 큰형님 얘기 못 들었어?"
그러자 유림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큰형님 가시는 길이 불편할 듯하여, 이 아우가 살펴주려 합니다."
그러자 사내들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런 유림을 보며 라마가 물었다.
"뭔 소리야? 필요 없어. 얼른 가."
그런 라마를 보며 유림이 절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이 일대 지리는 제가 훤하고, 사람들도 익숙하니...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송이개가 유림을 보며 퉁명스레 얘기했다.
"내가 천지에 길이란 길을 다 아는데 뭔 시덥잖은 소리야? 얼른 안 꺼져?"
유림이 더더욱 간절한 표정으로 사내들과 라마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 그래도 보셨지 않습니까? 딱 보면 제가 녹림인지 사파인지, 정파인지 다 안다니깐요. 저가 보는 눈이 정확해서, 어지간하면 사기당할 일도 없습니다. 이 무림이 보기엔 이래도 이게이게 만만치가 않거든요."
라마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금 유림이 얼마나 절실한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따라오든가."
라마의 말에 유림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예예, 그럼요, 그럼요."
이어 사내들에게 꾸뻑 인사를 하였다.
"살펴들 가십시오."
그들은 분한 마음에 선뜻 발을 떼지 못하다가, 마지못해 가면서도 몇 번을 돌아보며 유림을 노려보았다.
유림은 그런 그들을 못 본 척 외면하고는 얼른 라마를 따라갔다.
라마가 향한 곳은 싸움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일련의 싸움이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가운데는 기다란 짐마차 행렬이 있었으며, 다친 사람을 살피는 사람부터 마지막 저항자를 해치우는 사람까지 일련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웬 놈이냐?"
조금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푸른 옷에 검은 끈을 묶고 있는 사내가 칼을 들고 라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고, 눈은 충혈된 것이 심신이 꽤나 지쳐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냥 지나던 길에 소리가 들려, 와봤습니다."
라마는 태연하게 대답하고 있었고, 가로막아 선 사내 등 뒤로 콧수염에 체격이 장대한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경계하고 선 사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됐다. 행인이니 물러서라."
"예, 대장."
그는 젊은 사내 대신 사과하듯 인사하며 말했다.
"송구하오. 방금 전에 강도 무리와 싸운 터라, 다들 흥분해 있어서 그런 것이오."
그의 사과에 라마는 고개만 살짝 끄덕여 보였고, 중년 남자는 돌아가서 다른 이들과 함께 주위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라마 곁으로 유림이 다가와 말했다.
"풍진표국(風進鏢局) 사람들입니다. 호송 중에 강도 무리와 싸운 듯하군요."
그러자 라마가 의아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뭐, 표국 사람들은 모두 녹림인지 뭐시긴지랑 계약을 했다면서?"
그러자 유림이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라마를 보며 대답했다.
"대체로 그런다는 것이지, 어찌 또 죄다 그런다 했다 하십니까? 강도들이라고 죄다 녹림도 아니거니와, 표국이라고 죄다 녹림과 한패인 건 아닙죠.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바로 저 풍진표국입니다."
"그래? 왜 다른 거야?"
유림이 수습하는 풍진표국 사람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 풍진표국의 주인이 아주 유명한 명장 출신 입죠. 관직에서 물러나고 표국을 차렸는데, 자기가 한때는 천하를 호령했던 장군이다 이거죠. 그런 유명한 장군이 어찌 강도, 도적 집단인 녹림 따위와 손을 잡겠느냐 하는 거죠."
라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틀린 말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아주 고지식하기가 이를 데 없는 양반입니다.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위인이죠. 뭐든 원칙대로 한다는 것 때문에 표국사람들이 남아나질 않습니다. 아주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난 표국입니다. 또 이렇게 죽어나갔으니... 사람 모으기 더 힘들게 생겼네요."
라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딱히 잘못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원칙대로 한다는 게 왜 나쁘지?"
유림이 라마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이고... 소협께서도 현실을 잘 모르시는군요. 아 무공이 강해지고 싶은 거야 누구나 그러고 싶죠. 단순히 무공이 강해지기만 바랄 것 같으면 문파에 들어가지 누가 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표국은 대충 내가 좀 할 줄 아는데, 그걸 미천으로 돈 좀 벌어볼까 하는 인간들이죠. 그런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표국 일이라면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그냥 안전하게 돈 많이 버는 게 장땡이죠."
"그래서 사람 모으기가 힘들다?"
"예. 딴엔 그래도 한때 장군 출신이라고, 어서 표국 일은 잘 물어오는 모양인데, 그때마다 죽어나가는 인간들이 많아서 버는 돈에 비해 손실이 막대하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되려 줄 돈이 줄어드니, 손해 볼 건 없는 거 아닌가?"
"어허... 이 소협께서 모르시는 게 너무 많네. 저런 위험한 일을 어떤 사람이 할 것 같습니까? 목숨을 걸고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가족이 있는 이들입니다. 죽더라도 가족에게 막대한 배상을 하는 조건으로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란 거죠."
그제야 라마가 이해가 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사이 표국 일이 수습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강도 무리의 시신은 길 한쪽으로 모아 불을 지폈고, 표국 사람들의 시신은 짐마차에 실은 상태였다.
"출발!"
아까 본 중년 남자의 큰 목소리에 다시금 표국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와 행선지가 같은 것 같으니, 따라가 볼까?"
라마가 말하며 발걸음을 옮기니, 유림이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소, 소협...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응? 왜?"
"아 답답하시네. 표국 짐을 노리는 강도가 어디 한둘인 줄 아십니까? 또다시 강도들의 습격을 받으면 우리도 같이 모가지가 날아갈 수 있단 말입니다. 표국과는 거리를 두시는 게 좋습니다."
라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아니 도대체 강도가 왜 이렇게 많아? 내가 만난 강도만 해도.... 아, 됐고. 어쨌든 뭔 놈에 강도가 이렇게 많은 거야?"
"그거야... 뭐... 먹고살게 없으니까 강도가 되는 거죠."
"먹고살게 없다고 강도를 해?"
"그나마 강도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인 거죠. 그나마도 못해서 굶어 죽는 인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라마는 차마 더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고는 다시 표국 일행의 뒤를 쫓으며 말했다.
"난 이 사람들 따라갈 거야.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아님 돌아가든가."
유림의 표정이 굳어졌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니, 어딘가에 자신을 노리는 그 강도 무리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진퇴양난이 따로 있을까? 유림은 표정을 구기며 궁시렁궁시렁 거리더니, 얼른 라마의 옆에 붙어 섰다.
"왜? 따라가기 싫다더니?"
라마가 퉁명스레 묻자, 유림이 급히 웃는 얼굴이 되었다.
"제가 어찌 소협과의 의리를 져버리고 홀로 살길을 찾겠습니까?"
그 모습을 본 송이개가 비아냥 거렸다.
"지랄을 떤다. 되로 돌아갔다가 아까 그놈들 만날까 봐 그런 거지."
유림이 송이개를 흘겨보고는 얼른 라마 옆으로 바짝 붙었다.
"소협...께서는, 어떤 적이 나타나도 상대할 자신이 있으신 게지요?"
"글세... 나도 몇번 죽었는데."
"예?"
유림이 되묻는 말에 라마는 대답하지 않았고, 유림은 자기가 잘못 들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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