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14
백하도령을 따라 길을 걷던 나래는 뉘엿뉘엿 지는 해를 힐끔 보고는 걱정스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갈길이 먼데, 벌써 해가 지고 있네."
앞서 걷던 백하가 나래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길 한쪽으로 나있는 평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바깥에서 잠을 자야 할 것 같구나."
생각도 못한 백하의 말에 나래는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바깥에서 자는 잠이라니, 그럼 맨땅에 그냥 누워서 잔다는 건가?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떠올랐다.
나래는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더니, 바닥을 내리치며 외쳤다.
"텐트 나와라! 뚝딱!"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나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텐트가 뭐야? 뚝딱은 뭐고?"
아토가 다가와 퉁명스럽게 묻는 말에, 나래가 아토를 돌아보았다.
"아... 사람이 들어가서 잠을 잘 수 있는 걸 말해요. 근데 왜 안되죠?"
"그게 어디 있는데?"
"에? 글쎄요... 어딘가에 있겠죠?"
나래의 대답에 아토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물건을 어떻게 가져와?"
그러자 나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천진하게 물었다.
"어? 그냥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 나오는 거 아니었어요?"
"뚝딱은 뭐야? 주문이야?"
아토의 되물음에 나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 왠지... 뚝딱해야 할 거 같아서..."
"뚝딱?"
옆에 있던 초코도 따라 말했다.
"뚝딱"
아토가 나래를 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깨비방망이로 뭔가를 불러내려면, 그 물건이 어떤 물건이고, 어디 있는 물건인지를 알아야 불러와. 아무거나 부른다고 '뚝딱' 나오는 게 아냐."
"아~ 그래요?"
어렸을적 읽었던 전래동화 그림속에서 보았던 도깨비방망이랑은 다르단 걸 알고, 어쩐지 조금 실망스러웠다.
옆에서 가만히 있던 오공이 앞으로 나서며 으스댔다.
"이건 나한테 맡겨둬."
오공이 양손을 모아 합장하듯 하더니, 입술을 앞쪽으로 내밀며 후~ 하고 불자, 입안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바닥에 내리깔리면서 네모반듯한 형태가 되더니, 그 상태로 일렁일렁거리다가 솜이불 같은 형태가 되었다.
"우와?"
탄성을 내뱉은 나래는 그 위에 올라섰다. 침대처럼 푹신푹신한 것이 당장이라도 누워서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기해."
나래가 오공을 돌아보며 눈을 빛내자, 오공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신이 난 나래가 그 위에서 폴짝폴짝 뛰자, 솔이도 얼른 올라서서 같이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아하하, 재밌네."
마치 트램펄린에서 뛰는 것처럼 방방 뛰는 것이 재밌게 느껴졌다.
너무 재밌게 뛰었던 걸까? 그만 품 안에 있던 새끼 여우털이 툭 하고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어?"
나래가 놀라 얼른 집어 들려는데, 오공이 먼저 여우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너 새끼 여우가 아니네?"
오공은 갑자기 나래 면전에 코를 들이밀어 '킁킁' 거리더니,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사람 이잖아? 사람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나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오공 손에 있는 새끼 여우털을 빼앗으려 했다.
"이리 내놔!"
하지만 오공이 재빨리 손을 빼며 말했다.
"뭐하러 새끼 여우 행세를 하는 거야? 사람인 상태가 낫다고."
나래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니, 오공이 말을 이었다.
"도깨비들은 태생적으로 사람을 좋아해. 나 같은 요괴들이야 사람을 싫어하는 놈들이 있다지만, 도깨비들은 달라. 모두가 사람을 동경하지. 그들은 모두 사람의 손길에서 태어났어.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서 도깨비가 된다고. 그냥 이대로 사람으로 있어. 그게 훨씬 수월할 테니까."
나래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연히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솔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솔이는 말없이 고개를 슬쩍 끄덕여 보였다.
"알았으니까, 돌려줘. 솔이더러 가지고 있으라 할 거야."
나래가 말을 하며 오공의 손에 있던 새끼 여우털을 빼앗아가자, 오공이 이번에는 순순히 내어주었다.
"자, 솔아."
나래가 솔이에게 내밀자, 솔이가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예, 아씨. 제가 잘 가지고 있을게요."
솔이가 받아 든 새끼 여우털을 품 안에 갈무리하자, 수풀 너머에서 스스슥하는 인기척이 들렸다.
나래는 인기척이 들린 쪽을 바라보았지만, 별달리 보이는 것 없이 바람만 스쳐 지나갔다.
"나쁘지는 않으나, 새벽이슬에 혹 고뿔이 들지도 모르니, 내가 집을 짓는 것이 좋을 듯 하구나."
나래가 수풀 쪽을 살피는 사이, 백하가 오공을 보며 하는 말에, 오공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공이 양손으로 '짝'소리가 나게 합장을 하자, 바닥에 깔려있던 하얀 솜이불 같은 것이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금방 되니, 잠시 물러나 쉬고들 있거라."
백하의 말을 흘려들으며 나래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인기척이 들렸던 수풀 쪽으로 걸어갔다.
솔이가 부르며 뒤쫓으려는 찰나, 백하가 양손을 모아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뒤, 양손을 바닥에 대었다.
그러자 땅에서 나무줄기 같은 것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광경에 오공은 물론, 따라가려던 솔이와 아토, 초코까지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나래만이 수풀 너머로 발걸음을 옮기며 묘하게 아른거리는 무언가를 쫓아 발걸음을 옮겼다.
'뭐지?'
나래가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며 앞을 주시하자, 갑자기 앞에서 반짝거리는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나래가 놀라는 것도 잠시, 모습을 드러낸 빛무리는 빠른 속도로 나래를 둘러싸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빛무리 들은 나래의 손보다도 더 작았고, 하얀 털에 동글동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얀 털에서는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구슬같이 동그랗고 까만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으며, 가느다란 꼬리 끝에 달린 앙증맞은 흰털 뭉치 역시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강아지처럼 나래를 보며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래는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고, 나래가 양손을 모아 앞으로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 중 일부가 나래의 손위에 올라와서는 더욱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 댔다.
"아~ 너무 귀여워... 어떡해!"
나래는 그것들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며 손가락을 움찔댔다.
나머지 것들은 나래 주위를 에워싸고 둥실둥실 날아다니며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 대는 모습이 말 그대로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뭐야? 너희들은 누구야?"
나래의 물음에 그것들은 일제히 "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부~"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며, 뭔가 의사 전달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비? 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것들은 여전히 비슷한 소리를 내며 허공 위를 날아다니기도 하고 땅바닥을 구르기도 했다.
"부~"
어떤 것들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흡사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흉내 내는 것만 같았다.
"뭐야? 비행기야?"
다른 녀석은 자기 몸을 바짝 눌러서 납작하고 둥근 원 모양을 만들었고, 그 위에로 다른 녀석들이 얌전히 올라가서는 또 "비~"하는 소리를 냈다.
"접시에 음식을 담은 건가?
형태를 보고 유추하며, 나래는 그것들이 뭔가 흉내를 내며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래가 그렇게 그것들의 묘기 아닌 묘기를 보고 있는 사이, 뒤쪽에서 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씨, 여기 계세요?"
그 목소리와 동시에 그것들은 일제히 빛을 잃고는 우수수 떨어졌다.
나래가 놀란 표정으로 그것들을 다시 보니, 모두가 돌멩이들이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행기 흉내를 내던 녀석들은, 보아하니 모두가 세모진 삼각형 모양을 한 돌멩이였다.
접시 흉내를 내던 녀석은 정말로 둥글고 납작한 돌멩이였고, 그 위로 작은 조약돌들이 올려져 있었다.
"여기서 뭐하셨어요?"
솔이의 물음에, 나래는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들을 매만졌다.
어쩐지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 돌멩이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싫지 않았다.
나래가 어린 시절, 그녀의 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의 집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것이 장난감이지만, 그 시절 없는 장난감을 대신해서 가지고 놀았던 것이 산자락 돌멩이들이었다.
접시모양의 돌멩이에 잡초와 꽃, 조약돌을 올려놓고 엄마의 상차림을 흉내 내었고, 남자아이들은 비행기 모양 돌멩이로 비행기 흉내를 내며 놀았었다.
언제부터 잊고 살았는지 몰랐을 기억이, 돌멩이를 통해 되살아나니 저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뭔지 모를 묘하고도 몽글몽글한 감정이 가슴속을 가득히 채우며, 지난 시간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솔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래 뒤에 서 있는 사이, 돌멩이들은 다시금 은은한 빛을 내며 앙증맞은 모습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아~ 수피아구나."
솔이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박수치며 말하자, 나래가 나지막하게 따라서 중얼거렸다.
"수피아..."
그러자 자기들을 알아본 것이 기뻤는지, 수피아들이 또다시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며, 마치 놀듯이 움직였고, 어떤 것들은 나래의 어깨에, 또 어떤 것들은 나래의 머리 위에서 뒹굴거렸다.
"아하하, 간지러워"
몇몇이 나래의 뺨에 다가와 부비적거리니, 그 간지러움에 나래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얘들이 내가 좋은가 봐."
나래가 웃으며 하는 말에, 솔이가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사람이 시잖아요."
솔이의 대답에 나래가 솔이를 돌아보았다.
"단지 사람이라서?"
"네. 얘들도 일종의 도깨비여요. 도깨비는 모두 사람을 동경하거든요."
"그래? 신기하네? 사람의 손길에서 태어났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그때, 솔이의 뒤에서 백하도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손길에서 태어났다는 말보다는..."
백하도령이 나타나 하는 말에, 나래의 시선이 백하도령에게로 향했다.
"사람들이 두고 간, 기억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구나."
나래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두고 간 기억이라니.
돌이켜보면 회사와 집을 오가며 매일 똑같은 일상에 매몰된 하루를 살면서, 지나온 삶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잊은 체 살아온 것만 같았다.
당장 코앞에 직면한 내일에 대한 걱정에, 어제를 어떻게 살았는지 매일같이 잊고 살지 않았던가.
그렇게 잊힌, 아니 그 시간에 두고 온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은 체, 이렇게 아리아가 되어 또 다른 세상에서 여전히 그때 그 시절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 한켠이 짠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래가 수피아중에 하나의 털을 가만히 쓰다듬자, 그것이 기분이 좋은지 찌르르 온몸을 떨며 "부~"하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나래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
내일의 걱정도, 돌아갈 걱정도 모두 잊어버린 체, 그저 지금 이 순간 떠올리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며, 순수하게 웃음 지었다.
"아직도 갈길이 먼데, 벌써 해가 지고 있네."
앞서 걷던 백하가 나래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길 한쪽으로 나있는 평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바깥에서 잠을 자야 할 것 같구나."
생각도 못한 백하의 말에 나래는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바깥에서 자는 잠이라니, 그럼 맨땅에 그냥 누워서 잔다는 건가?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떠올랐다.
나래는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더니, 바닥을 내리치며 외쳤다.
"텐트 나와라! 뚝딱!"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나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텐트가 뭐야? 뚝딱은 뭐고?"
아토가 다가와 퉁명스럽게 묻는 말에, 나래가 아토를 돌아보았다.
"아... 사람이 들어가서 잠을 잘 수 있는 걸 말해요. 근데 왜 안되죠?"
"그게 어디 있는데?"
"에? 글쎄요... 어딘가에 있겠죠?"
나래의 대답에 아토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물건을 어떻게 가져와?"
그러자 나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천진하게 물었다.
"어? 그냥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 나오는 거 아니었어요?"
"뚝딱은 뭐야? 주문이야?"
아토의 되물음에 나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 왠지... 뚝딱해야 할 거 같아서..."
"뚝딱?"
옆에 있던 초코도 따라 말했다.
"뚝딱"
아토가 나래를 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깨비방망이로 뭔가를 불러내려면, 그 물건이 어떤 물건이고, 어디 있는 물건인지를 알아야 불러와. 아무거나 부른다고 '뚝딱' 나오는 게 아냐."
"아~ 그래요?"
어렸을적 읽었던 전래동화 그림속에서 보았던 도깨비방망이랑은 다르단 걸 알고, 어쩐지 조금 실망스러웠다.
옆에서 가만히 있던 오공이 앞으로 나서며 으스댔다.
"이건 나한테 맡겨둬."
오공이 양손을 모아 합장하듯 하더니, 입술을 앞쪽으로 내밀며 후~ 하고 불자, 입안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바닥에 내리깔리면서 네모반듯한 형태가 되더니, 그 상태로 일렁일렁거리다가 솜이불 같은 형태가 되었다.
"우와?"
탄성을 내뱉은 나래는 그 위에 올라섰다. 침대처럼 푹신푹신한 것이 당장이라도 누워서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기해."
나래가 오공을 돌아보며 눈을 빛내자, 오공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신이 난 나래가 그 위에서 폴짝폴짝 뛰자, 솔이도 얼른 올라서서 같이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아하하, 재밌네."
마치 트램펄린에서 뛰는 것처럼 방방 뛰는 것이 재밌게 느껴졌다.
너무 재밌게 뛰었던 걸까? 그만 품 안에 있던 새끼 여우털이 툭 하고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어?"
나래가 놀라 얼른 집어 들려는데, 오공이 먼저 여우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너 새끼 여우가 아니네?"
오공은 갑자기 나래 면전에 코를 들이밀어 '킁킁' 거리더니,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사람 이잖아? 사람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나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오공 손에 있는 새끼 여우털을 빼앗으려 했다.
"이리 내놔!"
하지만 오공이 재빨리 손을 빼며 말했다.
"뭐하러 새끼 여우 행세를 하는 거야? 사람인 상태가 낫다고."
나래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니, 오공이 말을 이었다.
"도깨비들은 태생적으로 사람을 좋아해. 나 같은 요괴들이야 사람을 싫어하는 놈들이 있다지만, 도깨비들은 달라. 모두가 사람을 동경하지. 그들은 모두 사람의 손길에서 태어났어.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서 도깨비가 된다고. 그냥 이대로 사람으로 있어. 그게 훨씬 수월할 테니까."
나래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연히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솔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솔이는 말없이 고개를 슬쩍 끄덕여 보였다.
"알았으니까, 돌려줘. 솔이더러 가지고 있으라 할 거야."
나래가 말을 하며 오공의 손에 있던 새끼 여우털을 빼앗아가자, 오공이 이번에는 순순히 내어주었다.
"자, 솔아."
나래가 솔이에게 내밀자, 솔이가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예, 아씨. 제가 잘 가지고 있을게요."
솔이가 받아 든 새끼 여우털을 품 안에 갈무리하자, 수풀 너머에서 스스슥하는 인기척이 들렸다.
나래는 인기척이 들린 쪽을 바라보았지만, 별달리 보이는 것 없이 바람만 스쳐 지나갔다.
"나쁘지는 않으나, 새벽이슬에 혹 고뿔이 들지도 모르니, 내가 집을 짓는 것이 좋을 듯 하구나."
나래가 수풀 쪽을 살피는 사이, 백하가 오공을 보며 하는 말에, 오공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공이 양손으로 '짝'소리가 나게 합장을 하자, 바닥에 깔려있던 하얀 솜이불 같은 것이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금방 되니, 잠시 물러나 쉬고들 있거라."
백하의 말을 흘려들으며 나래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인기척이 들렸던 수풀 쪽으로 걸어갔다.
솔이가 부르며 뒤쫓으려는 찰나, 백하가 양손을 모아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뒤, 양손을 바닥에 대었다.
그러자 땅에서 나무줄기 같은 것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광경에 오공은 물론, 따라가려던 솔이와 아토, 초코까지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나래만이 수풀 너머로 발걸음을 옮기며 묘하게 아른거리는 무언가를 쫓아 발걸음을 옮겼다.
'뭐지?'
나래가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며 앞을 주시하자, 갑자기 앞에서 반짝거리는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나래가 놀라는 것도 잠시, 모습을 드러낸 빛무리는 빠른 속도로 나래를 둘러싸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빛무리 들은 나래의 손보다도 더 작았고, 하얀 털에 동글동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얀 털에서는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구슬같이 동그랗고 까만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으며, 가느다란 꼬리 끝에 달린 앙증맞은 흰털 뭉치 역시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강아지처럼 나래를 보며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래는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고, 나래가 양손을 모아 앞으로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 중 일부가 나래의 손위에 올라와서는 더욱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 댔다.
"아~ 너무 귀여워... 어떡해!"
나래는 그것들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며 손가락을 움찔댔다.
나머지 것들은 나래 주위를 에워싸고 둥실둥실 날아다니며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 대는 모습이 말 그대로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뭐야? 너희들은 누구야?"
나래의 물음에 그것들은 일제히 "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부~"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며, 뭔가 의사 전달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비? 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것들은 여전히 비슷한 소리를 내며 허공 위를 날아다니기도 하고 땅바닥을 구르기도 했다.
"부~"
어떤 것들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흡사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흉내 내는 것만 같았다.
"뭐야? 비행기야?"
다른 녀석은 자기 몸을 바짝 눌러서 납작하고 둥근 원 모양을 만들었고, 그 위에로 다른 녀석들이 얌전히 올라가서는 또 "비~"하는 소리를 냈다.
"접시에 음식을 담은 건가?
형태를 보고 유추하며, 나래는 그것들이 뭔가 흉내를 내며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래가 그렇게 그것들의 묘기 아닌 묘기를 보고 있는 사이, 뒤쪽에서 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씨, 여기 계세요?"
그 목소리와 동시에 그것들은 일제히 빛을 잃고는 우수수 떨어졌다.
나래가 놀란 표정으로 그것들을 다시 보니, 모두가 돌멩이들이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행기 흉내를 내던 녀석들은, 보아하니 모두가 세모진 삼각형 모양을 한 돌멩이였다.
접시 흉내를 내던 녀석은 정말로 둥글고 납작한 돌멩이였고, 그 위로 작은 조약돌들이 올려져 있었다.
"여기서 뭐하셨어요?"
솔이의 물음에, 나래는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들을 매만졌다.
어쩐지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 돌멩이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싫지 않았다.
나래가 어린 시절, 그녀의 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의 집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것이 장난감이지만, 그 시절 없는 장난감을 대신해서 가지고 놀았던 것이 산자락 돌멩이들이었다.
접시모양의 돌멩이에 잡초와 꽃, 조약돌을 올려놓고 엄마의 상차림을 흉내 내었고, 남자아이들은 비행기 모양 돌멩이로 비행기 흉내를 내며 놀았었다.
언제부터 잊고 살았는지 몰랐을 기억이, 돌멩이를 통해 되살아나니 저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뭔지 모를 묘하고도 몽글몽글한 감정이 가슴속을 가득히 채우며, 지난 시간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솔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래 뒤에 서 있는 사이, 돌멩이들은 다시금 은은한 빛을 내며 앙증맞은 모습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아~ 수피아구나."
솔이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박수치며 말하자, 나래가 나지막하게 따라서 중얼거렸다.
"수피아..."
그러자 자기들을 알아본 것이 기뻤는지, 수피아들이 또다시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며, 마치 놀듯이 움직였고, 어떤 것들은 나래의 어깨에, 또 어떤 것들은 나래의 머리 위에서 뒹굴거렸다.
"아하하, 간지러워"
몇몇이 나래의 뺨에 다가와 부비적거리니, 그 간지러움에 나래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얘들이 내가 좋은가 봐."
나래가 웃으며 하는 말에, 솔이가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사람이 시잖아요."
솔이의 대답에 나래가 솔이를 돌아보았다.
"단지 사람이라서?"
"네. 얘들도 일종의 도깨비여요. 도깨비는 모두 사람을 동경하거든요."
"그래? 신기하네? 사람의 손길에서 태어났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그때, 솔이의 뒤에서 백하도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손길에서 태어났다는 말보다는..."
백하도령이 나타나 하는 말에, 나래의 시선이 백하도령에게로 향했다.
"사람들이 두고 간, 기억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구나."
나래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두고 간 기억이라니.
돌이켜보면 회사와 집을 오가며 매일 똑같은 일상에 매몰된 하루를 살면서, 지나온 삶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잊은 체 살아온 것만 같았다.
당장 코앞에 직면한 내일에 대한 걱정에, 어제를 어떻게 살았는지 매일같이 잊고 살지 않았던가.
그렇게 잊힌, 아니 그 시간에 두고 온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은 체, 이렇게 아리아가 되어 또 다른 세상에서 여전히 그때 그 시절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 한켠이 짠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래가 수피아중에 하나의 털을 가만히 쓰다듬자, 그것이 기분이 좋은지 찌르르 온몸을 떨며 "부~"하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나래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
내일의 걱정도, 돌아갈 걱정도 모두 잊어버린 체, 그저 지금 이 순간 떠올리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며, 순수하게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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