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TokTok v0.1 beta
챕터 배너

하객의 목적

author
· 운검휘필
· 최초 등록: 2025.10.26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3.9분

2화 - #1


처음엔 그냥 단순한 거지인 줄 알았다.

생긴 건 비루하게 생긴 데다가 지저분한 머리 사이로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섞여있는 것이 나이도 좀 있는 것 같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들이밀면서 구걸을 하면 뭐 한두 푼 쥐어줬을까 싶었을 텐데, 이건 뭐 것도 아니고.

마치 돈을 맡겨 놓은 사람인양, 돈 달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돈 없수."

라마는 귀찮은 듯 퉁명스럽게 말하고 그를 스쳐 지나갔다.

"이런 싸가지 밥 말아 처먹은 쉐끼를 봤나."

욕하는 게 꽤나 맛깔스럽다.

발음이 제대로 된 본토(?) 발음이랄까?

상대방 기분을 한 번에 확 조져놓는 어휘력을 가졌다.

한두 번 시비 걸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너 주머니 뒤져서 돈 나오면 어쩔래?"

어이없는 제안에 라마가 그를 돌아보았다.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무섭다기보다 흉측했다.

치아도 듬성듬성한 데다가, 그나마도 썩었는지 군데군데 시커멓다.

"거지인 줄 알았더니, 강도였나?"

여전히 퉁명스러운 라마의 말에, 거지가 실소를 짓는다.

"아놔, 이 자연의 풍광 속에 삶을 내던진 지 30년 만에 이런 무미건조한 쉐끼는 또 처음이네. 너는 마, 이 길 위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한 중생의 바램을 사정없이 걷어차 버린 것이여? 알아 쳐 먹었으면, 돈이든 먹을 것이든 좀 내놓든가."

라마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젊은 남자를 상대로 이렇게 시비를 거는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든가, 아님 내가 호구로 보이든가.

라마는 후자에 꽤나 익숙하다.

왜소한 체격, 살집과 근육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의 신체적 구조 덕도 있었지만,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들었기에, 마법학교를 다니는 내내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근데... 이 세계로 넘어온 이후로 신체적 조건이 꽤나 개선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호구는 호구인 건가.

무슨 불멸의 호구도 아니고, 이 세계 넘어와서 까지 호구 취급인지...

"내가 돈이 있을 것이란 그 믿음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요?"

라마는 진짜 궁금해서 물은 것이었다.

근데 그 거지는 꽤나 어이가 없었나 보다.

"이 짝 방향으로 적어도 삼십 리, 이 짝으로는 적어도 이십 리 안에 사람 사는 곳이 없어. 사방 어디로 가든지 가까운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매의 눈으로 보더라도 찾기가 힘들다 이소리지. 근데 그런 이 길을 지나가는 네놈이 먹을 것도 먹을 것을 사 먹을 돈도 없으면.... 그건 거지새끼란 소린데..."

이어 거지가 라마의 위아래 행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거지 행색은 아니고. 그럼? 돈이나 돈 될만한 것을 가지고 있거나. 이게 내 결론이지."

"하, 그 결론 참 단순해서 좋네. 근데 어쩌나? 돈도 없고, 돈 될만한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거지가 턱으로 라마의 허리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이라도 내놓든가. 팔면 밥 한 끼는 먹게 생겼구만."

정말 이렇게 얼굴이 두꺼운 인간이 있을 줄이야.

라마는 어이없는 와중에 기꺼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이 검집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특유의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지며, 검신에 햇살이 다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 검을 그냥 쓰면 될 것 같은데?"

의외다. 거지는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럼 써 보시든가."

라마는 순간 긴장했다. 검 앞에서도 저렇게 태연한 걸 보면 꽤나 고수임이 분명했다.

뭐 어때, 어차피 죽으면 다시 시작인데.

귀찮으니까 죽으면 아예 다른 길로 가야겠다.

거지새끼가 성질도 고약한 게, 냄새도 장난 아니다.

라마는 일단 상대가 어느 정도 민첩한 지 알아보기 위해 다리부터 재빨리 공격했다.

"아!"

거지가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아주 살짝 허벅지 부분을 찔렀을 뿐이다.

피도 살짝 나긴 했지만, 상처가 크지 않았다.

"아야야.... 아이고..."

뒤로 넘어져서 허벅지를 붙잡고 아파하는 거지를 보고 있자니, 절로 실소가 나왔다.

"뭐야? 대체 뭐 믿고 덤빈 거야?"

"뭐긴 이새꺄, 이거지."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 날아와 라마의 목에 내리 꽂혔다.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진 라마의 눈에 비친 것은 자신의 피가 뿜어져 나와 묻은 화살이었다.

'혼자가 아니구나.'

그걸 끝으로 라마는 절명해 버렸다.



***



눈을 뜬 라마가 벌떡 일어나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 개자식..."

하... 동료가 있었을 줄이야.

괘씸한데 몇 번 죽더라도 그놈들을 혼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됐다. 인생이 불쌍해서 봐준다."

인적을 찾지 못해 수풀가에서 잠들었던 라마는 몸에 묻은 것들을 털어내며 수풀 속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눈앞에 보이는 길을 한식경 정도 따라 걸어가면 그 거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귀찮다. 동료가 몇 명이나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 세계로 넘어와서 두 번째로 만나는 강도다.

화웅산 뭐시기는 대뜸 지가 산의 주인인양 행세하더니, 이젠 강도 같은 거지떼까지 등장이라니, 이 세계는 대체 뭐하는 세계인지 모를 지경이다.

실제로도 돈이고 먹을 것이고 아무것도 없이, 이 세계에 떨어져서 꽤 곤란한 와중이다.

신기한 건 지금 3일째 아무것도 못 먹고 있는데, 그다지 피곤하거나 배고프지 않았다.

내공이란 게 이런 면에서는 마법보다 쓸만한 것 같았다.

그 얼마 안 되는 마법력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물이나 생명체의 형태를 살짝 바꿔놓는 게 고작이었다.

해봐야 그와 비슷한 수준의 마법만 겨우 할 수 있었고, 몸을 데울 따듯한 불 하나도 지피지 못했다.

헌데 치환된 능력인 이 내공은 생각보다 적지 않았고, 이런 야생(?)의 생존에 꽤나 적합했다.

특히나 방구석에 처박혀서 수련하는 게 딱 어울리는 마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적인 능력은 되려 퇴보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했지만, 내공이란 건 하면 할수록 신체가 가벼워지고 강인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 몸에 잔근육들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었다.

뭐 물론 그래 봤자, 이 정도 가지고는 이 무림이란 곳에서 하수 중에 하수 정도 수준일 테지만.

죽으면 다시 시작한다는 이 놀라운 시공간의 능력은 그 어떤 내공이나 마법력보다도 그를 강인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수없이 반복하여 체득한 운기조식의 수법은 여느 사람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수없는 죽음을 마주하며 체득한 것이니, 그 효율성은 탁월하기 그지없었다.

터벅터벅 처음과는 다른 길로 걸어가고 있던 그는 대략 한식경쯤 지났을 무렵, 원치 않은 만남을 가져야 했다.

눈살을 찌푸린 체 수풀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거지를 보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 젠장."

그 거지는 라마가 자신을 보자마자 인상을 쓰며 한숨을 쉬자,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뭐여? 지금 나보고 그딴 표정 짓는 것인가? 이런 샹느므 시끼를 봤나?"

뭐 두 번째니까 아직 레퍼토리를 파악한 건 아니라도, 대충 어떤 식으로 이야기할지는 가늠이 되었다.

문제는 저 거지가 아니다.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활시위를 당기고 있을 그의 동료가 문제다.

어딜까?

라마는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갈대가 허리 높이 이상 올라온 갈대숲이 지천에 널려있다.

마음먹고 몸을 숨기면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이쯤에서 자리 잡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골라 노략질을 일삼는 것이 이 일당의 수법일 것이다.

가장 적당한 장소를 골랐을 터이니 쉽게 찾을 리는 만무했고, 방향 자체를 틀지 않는 이상 이들과 마주하는 것을 피할 길도 없을 것 같았다.

몇 명일까? 어떤 자유분방한 얼굴을 가진 작자들일까?

저 거지를 본 바, 아주 창의적인 얼굴을 했으리라.

아니면 저 거지를 모방했던지.

좋다. 까짓 거 붙어보자. 죽어봐야 다시 시작할 뿐.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면서 자세를 낮춘 라마는 갈대숲을 살피며, 미루어 짐작되는 방향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어? 야! 너 뭐해?"

당황한 거지가 소리를 치던 말던, 갈대 수풀 속으로 뛰어든 라마는 검으로 갈대를 마구 쳐내며 활든 자를 찾고 있었다.

순간 '핑-'하는 파공음이 라마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화살!'

라마는 화살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곧바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갈대를 마구 쳐내며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사이, 갈대 수풀 사이로 다시금 파공음이 들려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라마의 목에 내리 꽂혔다.

"컥!"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라마가 쓰러졌다.

라마가 고통스럽게 피를 흘리며 뒤척거리는 것을, 수풀 속에서 누군가 나오며 이야기했다.

"어떻게 알았지?"

아직은 약간 앳된 듯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



다시 눈을 뜬 라마는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여자애였어? 아... 쒸.... 거기 숨었다 이거지."

라마는 다시금 수풀 속에서 몸을 털며 일어났다.

"그래, 이 새끼들, 두고 보자. 이번엔 그냥 안 넘어간다."

라마가 씩씩 거리듯 투지를 불태우며, 다시금 이전과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일단 거지새끼부터 손봐주는 게 좋겠네."

중얼거리는 라마는 거지를 만났던 그 장소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한식경 무렵에 다시금 수풀 속에서 나오는 거지를 볼 수 있었다.

거지는 인상을 구기며 시비를 걸러 나왔지만, 거지를 보는 순간, 라마는 지체 없이 거지 쪽으로 달려들었다.

"어? 뭐?"

거지가 놀라 당황해하는 사이, 라마는 사정없이 검을 뽑아 들고 거지의 허벅지를 가볍게 베었다.

"으악!"

거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려 하는 것을 라마가 멱살을 붙잡고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거지로 활의 겨냥을 피할 생각이었다.

그대로 거지를 밀어붙이자, 허벅지 부상에다가 갑작스럽게 밀어붙이니 그대로 밀려 버린 거지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뭐하는 짓이야?"

그러다가 일순 틈이 보였는지, 화살이 '핑-'하는 파공음을 내며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이다.'

그 순간 라마가 거지를 넘어뜨림과 동시에 갈대 수풀 쪽으로 달려들었다.

이번엔 갈대 속에 자신도 몸을 잔뜩 낮추고 달려드니, 상대는 황급히 활에 화살을 걸어 활시위를 당기려다 말고 라마와 마주하게 되었다.

라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휘둘렀고,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단번에 활을 두 동강 내버렸다.

활이 두 동강 나자 당황한 그 여인은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이게 어디서 화살을 자꾸..."

라마가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누며 험상궂게 이야기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동그란 눈에 둥그스름한 얼굴, 그리고 고운 피부까지 얼핏 봐서는 활시위를 당길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런 곱상한 여자아이가 왜 이런 길에서 강도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놀라 해 하는 라마 등 뒤로 허벅지에 부상 입은 거지가 기어 오며 소리쳤다.

"죄, 죄송합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애기씨, 저희 애기씨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라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너희 둘이 다야?"

라마의 물음에 그녀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서 왜 강도질을 하고 그래?"

그러자 그녀가 아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흥, 네놈들이야 말로 이 땅을 도적질하고 있지 않느냐? 어서 죽일 테면 죽여 보거라."

얼굴은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고서는 잘도 이런 소리를 한다.

어이가 없는 와중에 저 거지는 라마 바로 옆까지 기어 왔다.

"나리, 살려주십시오, 나리..."

'하... 진짜 이거 참,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네.'

라마는 난처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검을 거두어 검집에 도로 넣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이 땅을 도적질 한다는 거야?"

그러자 조금 진정이 된 여인이 몸을 일으키며 턱끝으로 라마의 옷을 가리켰다.

"너희 의천맹(義天盟)이 하는 짓이 바로 도적질이다."

"의천맹? 그게 뭔데?"

문득, 라마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라마가 이 세계에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은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완전히 헤져 있었다.

도저히 입고 있을 수가 없어서 헤매던 그는 길가에 죽어있는 무수한 시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 중 그나마 상태가 온전해 보이는 옷을 하나 훔쳐 입은 것이었다.

라마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오해를 불렀는가 싶은 생각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뭐, 자랑은 아니지만... 이건 길가에 죽어있던 자가 입고 있던 옷이요. 내 옷이 망가져서, 어쩔 수 없이..."

라마는 자신이 왜 굳이 변명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에이, 진짜. 몰라. 댁들도 모르고 이 옷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으니까, 걍 상관 말고 가쇼. 난 내 갈길 갈라니까. 또 시비 걸면 그땐 진짜 죽여버린다. 확 그냥..."

라마가 협박하듯 말하자 그녀는 다시 겁먹은 표정이 되었고, 거지를 얼른 양손을 모아 빌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나리. 감사합니다."

라마는 한숨을 내쉬고는 터벅터벅 걸어가려는데 뒤에서 여인이 톡 쏘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내가 숨어있는 것을! 어찌 알았지?"

라마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찌 알긴. 척 보면 알지."

"소협의... 이름을 알려주시오. 내 오늘의 빚을 갚겠소."

그녀의 말에 라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언젠가 나를 죽이러 오겠다, 뭐 그런 소린가?"

여인이 다시금 아미를 찌푸리는데, 진짜 이쁘게 생기긴 했다.

"살려준 은혜를 갚겠단 소리요. 나는 모용가의 모용연이라 하오."

"모용연....이라... 나? 나는..."

라마는 잠시 고민했다.

그의 이름은 라이텐 마샤크. 근데 여기서는 그 이름이 발음조차 하기 힘들었다.

"라마. 라마라고 해."

"라마. 특이한 이름이군요."

"좀... 그런가? 뭐 어쨌든."

라마가 손을 흔들며 갈길을 걸어가자, 모용연은 그런 라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현재 조회: 6
댓글
0

아직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저작권 보호: 무단전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