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 #3
산길을 따라 올라가던 세자의 눈에,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이들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세자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가파른 길에 서서 올라오는 세자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어깨에 한 여인을 걸치고 있었다.
그 여인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세자는 그녀가 바로 연희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연희야!"
그녀를 보고 외치는 세자의 소리에도, 그녀에게서 응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않고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연희를 부르는 세자의 애타는 소리에 그들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어딘가로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멈춰라!"
세자가 일갈하며 쫓아가니, 수하들이 뒤따르며 말했다.
"저하, 조심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세자의 눈엔 이미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불같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지치지도 않고 저 괴한들을 쫓아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다행히 산길이 그리 험한 것은 아니었으나, 길 옆은 가파른 낭떠러지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뒤쫓아 갔을까, 거의 쫓아왔다고 생각할 무렵, 어딘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계곡 물이 흐르는 곳 같았다.
"연희야!"
세자는 다시금 연희를 부르며 뒤쫓았고, 어깨에 들려져 있던 연희는 아득함 속에서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이내 세자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놔주십시오! 저하!"
연희의 반항하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세자의 귀에 가 닿았다.
세자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연희야!"
"저하! 오지..."
연희가 말을 하려 했으나 갑자기 누군가 연희의 입에 헝겊 같은 것을 밀어 넣으며, 입을 막았다.
"닥치고 있지 않으면 당장 목을 베어 주마."
옆에 있던 괴한의 협박에도, 연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입에서 헝겊을 뱉어내려 애썼다.
그 사이 그들은 제법 큰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에 다다랐다.
"다 왔다."
그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바로 뒤로 세자의 일행이 당도했다.
"뭐하는 짓들이냐? 어서 그녀를 놔주거라!"
세자가 일갈하며 소리치자, 괴한들은 웃으며 세자를 돌아보았다.
"치워라!"
괴한 중 한 명이 소리치자, 갑자기 어둠 속에서 다른 괴한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함정이다!"
수하중 한 명이 소리치자, 일제히 칼을 뽑아 들며 괴한들의 공격에 맞섰고, 세자 역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연희 옆에 있던 괴한 한 명이 천천히 칼을 뽑아들며, 세자에게 다가왔다.
"흐흐흐... 화려한 궁궐에서 책이나 읽던 샌님께서, 그 거친 칼을 어찌 다루실고?"
그는 희희낙락 거리며, 칼끝으로 세자를 겨누며 다가섰다.
"네 이놈! 나는 이 나라의 국본이다!"
세자가 호통치듯 말하였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 잘난 국본이 뭐? 내 네놈에게 세상의 험악함을 가르쳐 주마."
그가 비웃으며 다가서자, 세자는 칼자루를 꽉 쥐고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한편, 사교도 무리를 쫓는 우포청 병사들 쪽으로 향한 수현은 한참을 달려, 드디어 우포청 병사들의 뒤를 따라잡았다.
얼추 무리의 앞에 이르렀을 때, 수현이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소리쳐 물었다.
"나는 도총부 부총관이자, 어영위장인 임수현이라 한다. 그대가 이곳의 수장인가?"
무리를 이끌던 이가 말을 멈춰 세우고 예를 갖추어 인사하니, 수현의 일행도 멈춰 섰다.
"예, 우포청 종사관 한영우라 합니다. 도망간 사교도 무리의 뒤를 쫓았으나, 아무래도 놓친 듯합니다."
"무리의 수는 어느 정도였는가?"
"처음 저희가 발견했을 때는 대략 백여 명 안팎이었으나, 기습공격을 받고 도주한 무리는 불과 십여 명 안팎입니다. 대부분 기습공격 때 죽거나 잡혔습니다."
"혹시, 붙잡히거나 죽은 이들 중에 젊은 여인도 있었는가?"
"아닙니다. 모두 건장한 사내들 뿐이었습니다."
수현은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혹 도주한 일행 중에는 사내 말고 다른 이들이 있던가?"
"없었습니다. 모두 젊은 사내들 뿐이었습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네. 먼저 돌아가겠네."
"예, 나리."
수현이 수하들을 이끌고 다시 세자가 있는 곳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그렇게 달리다, 수하중 하나가 걱정스러운 듯 수현에게 물었다.
"나리, 헌데 세자마마를 그리 보내도 되는 것입니까? 혹여... 적들과 마주하기라도 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수현이 그 물음에 피식한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저하를 만났을 때만 해도,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저하가 나와 비무(比武)를 한다고 했을 때,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그렇게 봐주고 봐주면서 겨루기를 3년, 이제는 더 이상 봐주고 겨룰 수 있는 분이 아니게 되었다."
수현의 말에 수하가 놀라 되물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더 이상 봐주고 겨룰 수 없다뇨?"
"말 그대로다. 무반제일검이라는 이 나도, 전력을 다해 상대하지 않으면 겨루기 힘든 실력. 그게 저하의 실력이다."
***
연희를 데리고 있는 두 괴한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괴한의 수는 대략 십여 명, 더군다나 이들은 율교 내에서도 고수로 꼽히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다.
세자의 칼은 빠르고 정확했다.
기세 등등하게 세자 앞으로 다가갔던 괴한은 몇 수 겨뤄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고, 세자를 따라온 수하들도 하나같이 강맹하여, 어느 누구 하나 다치거나 죽은 이가 없었다.
괴한 둘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후... 그냥 이리 와."
세자가 마치 타이르듯 손짓을 하며 말하였으나, 괴한 둘은 대답 없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냥 그녀만 조심스럽게 건네주고 가. 안 죽일게."
세자는 마치 귀찮다는 듯이, 다시 한번 타일르며 말했다.
괴한 중 하나가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 제법이구나. 궁궐안에서 보살핌만 받으며 살아 유약하게만 생각했는데 이리도 강할 줄이야... 하지만, 결국 너는 아무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괴한이 그 말을 마치고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어깨 위의 연희를 계곡 쪽으로 던져버렸다.
"안돼!"
연희가 던져지는 모습이, 아주 천천히 세자의 눈에 들어왔다.
세자는 그녀를 향해 있는 힘껏 내달렸고, 뒤이어 수하들도 따라 달렸다.
찰나의 순간은 마치 아주 긴 영속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연희를 쫓는 세자와, 그런 세자를 붙잡으려는 수하, 그리고 괴한들을 칼로 베는 수하들까지,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세자는 떨어지는 연희를 쫓았다.
세자의 행동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고, 티끌만큼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런 세자를 붙잡으려 했던 수하의 손끝은 세자에게 닿지 못했고, 그저 계곡 아래로 몸을 던지는 세자를 망연자실 바라볼 뿐이었다.
제법 커다란 계곡물이 흐르는 그 낭떠러지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물이 모여 있었다.
먼저 연희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습을 감추고 난 뒤, 곧바로 세자가 그 뒤를 따라 사라져 버렸다.
"저하!"
수하들이 일갈하며 외쳐보지만, 대답도, 세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내려간다!"
수하들은 죽어 쓰러져 있는 괴한들을 지나치며, 서둘러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물속으로 뛰어든 세자는, 수면에 부딪히는 충격에 순간 아찔하였으나, 금세 기를 모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묵직한 물의 무게를 느끼며 허우적거려 보지만, 생각대로 몸이 쉬이 움직여지지 않았고, 강한 급류에 의지와 상관없이 휩쓸려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연희를 찾으려 눈을 부릅뜨고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연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속이라 외쳐 부를 수도 없었고, 숨은 점점 막혀 왔다.
당황한 세자가 허우적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누군가의 손이 세자의 손에 닿았다.
세자가 놀라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연희가 세자의 손을 잡고는 미소를 지었다가, 갑자기 세자의 손을 확 잡아끌었다.
"푸하!"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숨을 몰아쉰 세자는 다른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 냈다.
연희가 잡아끄는 손길을 따라, 물가 쪽으로 향하니, 어느새 발이 땅바닥에 닿았다.
"연희야?"
세자는 그 와중에도 연희를 먼저 살폈다.
연희가 멀쩡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녀를 확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연희야! 연희야, 괜찮은 것이냐?"
자신을 품에 안고 묻는 세자에게서, 연희는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수영도 잘 못하시면서 어찌 그리 뛰어든 것입니까?"
"뭐? 왜긴... 내 너를...."
세자가 연희를 품에서 놓으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너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 그런데... "
연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생각 같지 않으시죠? 계곡 물은 바닷물과는 달라 몸이 잘 뜨지 않습니다."
세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렇더구나. 그런데, 너는 어찌 그리 잘아는 것이냐?"
연희가 고개를 설레 설레 내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는 꽤 익숙했습니다."
연희의 대답에 세자가 너털웃음을 지었고, 그런 세자를 보며 연희도 웃음 지었다.
"됐다. 그럼 되었어."
세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연희는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한줌의 망설임도 없이 위험한 낭떠러지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든 세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고,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세자의 어깨너머로 막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희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중 맨 앞에 있는 이는, 일전에 연희도 본 적이 있는 천태호였다.
"저기 있다."
천태호가 연희와 세자를 보고 손을 들어 가리키자, 세자 역시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가자!"
세자는 재빨리 연희의 손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고, 천태호의 수하들 역시 뒤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옷이 물에 젖어 달리는 것이 쉽지 않았고, 뒤에서 괴한들이 쫓아오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손을 잡고 달리는 세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오던 어영위 병사들은 세자가 다른 괴한들에게 쫓기자, 그 괴한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서로 쫓고 쫓기는 양상이 된 상황에서, 천태호만이 가만히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렵게 됐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수풀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은 마치 세자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가파른 길에 서서 올라오는 세자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어깨에 한 여인을 걸치고 있었다.
그 여인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세자는 그녀가 바로 연희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연희야!"
그녀를 보고 외치는 세자의 소리에도, 그녀에게서 응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않고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연희를 부르는 세자의 애타는 소리에 그들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어딘가로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멈춰라!"
세자가 일갈하며 쫓아가니, 수하들이 뒤따르며 말했다.
"저하, 조심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세자의 눈엔 이미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불같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지치지도 않고 저 괴한들을 쫓아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다행히 산길이 그리 험한 것은 아니었으나, 길 옆은 가파른 낭떠러지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뒤쫓아 갔을까, 거의 쫓아왔다고 생각할 무렵, 어딘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계곡 물이 흐르는 곳 같았다.
"연희야!"
세자는 다시금 연희를 부르며 뒤쫓았고, 어깨에 들려져 있던 연희는 아득함 속에서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이내 세자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놔주십시오! 저하!"
연희의 반항하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세자의 귀에 가 닿았다.
세자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연희야!"
"저하! 오지..."
연희가 말을 하려 했으나 갑자기 누군가 연희의 입에 헝겊 같은 것을 밀어 넣으며, 입을 막았다.
"닥치고 있지 않으면 당장 목을 베어 주마."
옆에 있던 괴한의 협박에도, 연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입에서 헝겊을 뱉어내려 애썼다.
그 사이 그들은 제법 큰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에 다다랐다.
"다 왔다."
그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바로 뒤로 세자의 일행이 당도했다.
"뭐하는 짓들이냐? 어서 그녀를 놔주거라!"
세자가 일갈하며 소리치자, 괴한들은 웃으며 세자를 돌아보았다.
"치워라!"
괴한 중 한 명이 소리치자, 갑자기 어둠 속에서 다른 괴한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함정이다!"
수하중 한 명이 소리치자, 일제히 칼을 뽑아 들며 괴한들의 공격에 맞섰고, 세자 역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연희 옆에 있던 괴한 한 명이 천천히 칼을 뽑아들며, 세자에게 다가왔다.
"흐흐흐... 화려한 궁궐에서 책이나 읽던 샌님께서, 그 거친 칼을 어찌 다루실고?"
그는 희희낙락 거리며, 칼끝으로 세자를 겨누며 다가섰다.
"네 이놈! 나는 이 나라의 국본이다!"
세자가 호통치듯 말하였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 잘난 국본이 뭐? 내 네놈에게 세상의 험악함을 가르쳐 주마."
그가 비웃으며 다가서자, 세자는 칼자루를 꽉 쥐고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한편, 사교도 무리를 쫓는 우포청 병사들 쪽으로 향한 수현은 한참을 달려, 드디어 우포청 병사들의 뒤를 따라잡았다.
얼추 무리의 앞에 이르렀을 때, 수현이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소리쳐 물었다.
"나는 도총부 부총관이자, 어영위장인 임수현이라 한다. 그대가 이곳의 수장인가?"
무리를 이끌던 이가 말을 멈춰 세우고 예를 갖추어 인사하니, 수현의 일행도 멈춰 섰다.
"예, 우포청 종사관 한영우라 합니다. 도망간 사교도 무리의 뒤를 쫓았으나, 아무래도 놓친 듯합니다."
"무리의 수는 어느 정도였는가?"
"처음 저희가 발견했을 때는 대략 백여 명 안팎이었으나, 기습공격을 받고 도주한 무리는 불과 십여 명 안팎입니다. 대부분 기습공격 때 죽거나 잡혔습니다."
"혹시, 붙잡히거나 죽은 이들 중에 젊은 여인도 있었는가?"
"아닙니다. 모두 건장한 사내들 뿐이었습니다."
수현은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혹 도주한 일행 중에는 사내 말고 다른 이들이 있던가?"
"없었습니다. 모두 젊은 사내들 뿐이었습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네. 먼저 돌아가겠네."
"예, 나리."
수현이 수하들을 이끌고 다시 세자가 있는 곳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그렇게 달리다, 수하중 하나가 걱정스러운 듯 수현에게 물었다.
"나리, 헌데 세자마마를 그리 보내도 되는 것입니까? 혹여... 적들과 마주하기라도 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수현이 그 물음에 피식한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저하를 만났을 때만 해도,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저하가 나와 비무(比武)를 한다고 했을 때,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그렇게 봐주고 봐주면서 겨루기를 3년, 이제는 더 이상 봐주고 겨룰 수 있는 분이 아니게 되었다."
수현의 말에 수하가 놀라 되물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더 이상 봐주고 겨룰 수 없다뇨?"
"말 그대로다. 무반제일검이라는 이 나도, 전력을 다해 상대하지 않으면 겨루기 힘든 실력. 그게 저하의 실력이다."
***
연희를 데리고 있는 두 괴한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괴한의 수는 대략 십여 명, 더군다나 이들은 율교 내에서도 고수로 꼽히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다.
세자의 칼은 빠르고 정확했다.
기세 등등하게 세자 앞으로 다가갔던 괴한은 몇 수 겨뤄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고, 세자를 따라온 수하들도 하나같이 강맹하여, 어느 누구 하나 다치거나 죽은 이가 없었다.
괴한 둘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후... 그냥 이리 와."
세자가 마치 타이르듯 손짓을 하며 말하였으나, 괴한 둘은 대답 없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냥 그녀만 조심스럽게 건네주고 가. 안 죽일게."
세자는 마치 귀찮다는 듯이, 다시 한번 타일르며 말했다.
괴한 중 하나가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 제법이구나. 궁궐안에서 보살핌만 받으며 살아 유약하게만 생각했는데 이리도 강할 줄이야... 하지만, 결국 너는 아무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괴한이 그 말을 마치고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어깨 위의 연희를 계곡 쪽으로 던져버렸다.
"안돼!"
연희가 던져지는 모습이, 아주 천천히 세자의 눈에 들어왔다.
세자는 그녀를 향해 있는 힘껏 내달렸고, 뒤이어 수하들도 따라 달렸다.
찰나의 순간은 마치 아주 긴 영속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연희를 쫓는 세자와, 그런 세자를 붙잡으려는 수하, 그리고 괴한들을 칼로 베는 수하들까지,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세자는 떨어지는 연희를 쫓았다.
세자의 행동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고, 티끌만큼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런 세자를 붙잡으려 했던 수하의 손끝은 세자에게 닿지 못했고, 그저 계곡 아래로 몸을 던지는 세자를 망연자실 바라볼 뿐이었다.
제법 커다란 계곡물이 흐르는 그 낭떠러지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물이 모여 있었다.
먼저 연희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습을 감추고 난 뒤, 곧바로 세자가 그 뒤를 따라 사라져 버렸다.
"저하!"
수하들이 일갈하며 외쳐보지만, 대답도, 세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내려간다!"
수하들은 죽어 쓰러져 있는 괴한들을 지나치며, 서둘러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물속으로 뛰어든 세자는, 수면에 부딪히는 충격에 순간 아찔하였으나, 금세 기를 모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묵직한 물의 무게를 느끼며 허우적거려 보지만, 생각대로 몸이 쉬이 움직여지지 않았고, 강한 급류에 의지와 상관없이 휩쓸려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연희를 찾으려 눈을 부릅뜨고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연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속이라 외쳐 부를 수도 없었고, 숨은 점점 막혀 왔다.
당황한 세자가 허우적거리며 주위를 살피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누군가의 손이 세자의 손에 닿았다.
세자가 놀라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연희가 세자의 손을 잡고는 미소를 지었다가, 갑자기 세자의 손을 확 잡아끌었다.
"푸하!"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숨을 몰아쉰 세자는 다른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 냈다.
연희가 잡아끄는 손길을 따라, 물가 쪽으로 향하니, 어느새 발이 땅바닥에 닿았다.
"연희야?"
세자는 그 와중에도 연희를 먼저 살폈다.
연희가 멀쩡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녀를 확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연희야! 연희야, 괜찮은 것이냐?"
자신을 품에 안고 묻는 세자에게서, 연희는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수영도 잘 못하시면서 어찌 그리 뛰어든 것입니까?"
"뭐? 왜긴... 내 너를...."
세자가 연희를 품에서 놓으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너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 그런데... "
연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생각 같지 않으시죠? 계곡 물은 바닷물과는 달라 몸이 잘 뜨지 않습니다."
세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렇더구나. 그런데, 너는 어찌 그리 잘아는 것이냐?"
연희가 고개를 설레 설레 내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는 꽤 익숙했습니다."
연희의 대답에 세자가 너털웃음을 지었고, 그런 세자를 보며 연희도 웃음 지었다.
"됐다. 그럼 되었어."
세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연희는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한줌의 망설임도 없이 위험한 낭떠러지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든 세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고,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세자의 어깨너머로 막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희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중 맨 앞에 있는 이는, 일전에 연희도 본 적이 있는 천태호였다.
"저기 있다."
천태호가 연희와 세자를 보고 손을 들어 가리키자, 세자 역시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가자!"
세자는 재빨리 연희의 손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고, 천태호의 수하들 역시 뒤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옷이 물에 젖어 달리는 것이 쉽지 않았고, 뒤에서 괴한들이 쫓아오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손을 잡고 달리는 세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오던 어영위 병사들은 세자가 다른 괴한들에게 쫓기자, 그 괴한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서로 쫓고 쫓기는 양상이 된 상황에서, 천태호만이 가만히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렵게 됐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수풀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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