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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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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0.08분

40화 - #2


그녀는 달리고 있었다.

달리고 또 달리고 있는 그녀 앞으로 한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어 보이는 그 소년은 앞서 달리다가 어딘가에 멈춰서서 그녀를 돌아보며 웃었다.

"누이, 요 밑 장터에서 먹을 것을 그냥 준다 하니, 얼른 가보자."

소년은 말을 마치곤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연희는 소년의 뒤를 서둘러 쫓았다.

왠지 모르게 행복하고,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환한 햇빛이 온 세상에 반짝거리며 흩어지고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은 향긋한 꽃내음으로 가득했다.

"같이 가~"

연희가 다정한 목소리로 소년을 불렀다.

하지만 소년은 듣지 못한 듯, 사람들 사이로 재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같이 가~"

연희는 안타깝고 왠지모를 두려운 마음에 소년을 계속 불렀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소년을, 힘겹게 쫓아가던 연희는 결국 소년을 놓치고 말았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소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숨을 끌어모아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삼길아~~~~"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연희는 눈을 번쩍 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벽에 잠깐 기대었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었다.

순간 자신이 있는곳이 어딘지 바로 생각이 나지않아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자신이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삼.... 길이?"

연희는 삼길이란 이름을 되뇌이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삼길이?"

연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찾아야 한다. 자신 기억 속의 단서가 되는 아이. 바로 일전에 만난 적 있었던 거지 무리 속의 삼길이란 아이였다.

아직 새벽이 찾아오지 않은 어두운 밤이었지만, 왠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해 동궁전으로 향했다.

서둘러 이일을 세자에게 고해 삼길이란 아이를 찾아야겠단 생각만이 가득했다.

분명 거지 무리들 사이에서 만났던 그 아이가 틀림이 없었다.

잊힌 기억중 일부가 꿈속에 보인 것이리라.

삼길이란 아이가 자신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이내 그 심장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녀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어째서..."

연희는 망연자실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왜?

어째서 였을까?

자신은 기억을 잃어 삼길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해도, 삼길은 자신을 알아봤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연희는 가슴이 꽉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그 어떤 두려움이 저 밑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올라와 전신을 꽁꽁 휘감아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바로 코앞에, 진실이 있는데, 두려움에 차마 그 진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진실은.... 제발 아니기를.



***



좌상 최준경의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한양 외곽에 있는 어느 허름한 집을 향해 가고있었고, 그 뒤로 주동환과 그의 수하 몇몇이 뒤따르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도착한 집 마당에 천태호가 태연히 앉아서 짚신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천태호는 좌상이 나타나자 헐레벌떡 일어나 인사하였고, 그런 천태호를 보며 최준경이 입술을 삐뚜름이 올리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네놈 짓이렸다?"

"예?"

"내 모를 줄 알았더냐? 네놈이 사술로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어, 써주었더니 천지 분간 못하고 날뛰는구나. 역시 천것은 천것인 모양이구나. 네놈도 별수 없는 것 보니..."

천태호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준경이 고개를 돌려 주동환을 바라보자, 주동환이 성큼성큼 다가와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서슬 퍼런 그 칼날이 천태호의 목 앞으로 다가와 그를 압박했다.

"이실직고하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병판도 네놈이 움직인 것이냐?"

좌상의 질문에 돌연 천태호가 낄낄 거리며 웃었다.

"아~ 하여튼, 이 늙은 여우... 눈치 하나는 겁나게 빠르구만."

천태호의 돌변한 태도에 최준경 역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구만. 병판, 이판, 거기에 이제는 대사헌까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술수가 사뭇 다르던데..."

천태호가 빙그레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바로 맞쳤수다. 그들에게 건 술수는 기생령(寄生靈)과는 좀 다르지. 기생령은 들킬 위험이 있다 보니, 내가 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낼 수 있도록 극히 일부의 의지를 심는 술수를 새로 만들어 냈거든. 놀랍지 않나?"

최준경이 싸늘한 표정으로 천태호를 노려보았다.

"그 술수를 풀어라. 다시 내뜻대로 움직이게 한다면, 네놈 재주를 아껴, 목숨만은 살려주마."

천태호가 괴이한 웃음을 지으며 낄낄거렸다.

"아, 미치겠네. 이 여우 새끼가, 다른 건 눈치가 칼인데, 이런 건 또 쑥맥이네."

최준경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더니, 이어 그의 눈이 주동환을 향했다.

주동환은 최준경이 자신을 바라보자, 천천히 칼끝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칼끝은 느릿느릿 최준경에게 향하더니 최준경의 목 앞에서 멈췄다.

"네놈도...."

놀란 최준경의 표정이 사색이 되자, 천태호가 낄낄 거리며 말했다.

"이제 아셨수? 아~ 이 늙은 여우를 어찌해야 하나... 그냥 죽이자니 그간 들인 공이 너무 아까운데..."

천태호의 말에 최준경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감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그 순간, 천태호가 눈을 치켜뜨며 최준경의 면전에 얼굴을 들이밀며 빈정거렸다.

"시끄러워 이 빌어먹을 늙은이야!"

최준경은 경악으로 얼굴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사교도를 토벌한다고? 웃기지 마... 그들은 나에게 충성하는 충직한 백성들이야. 더욱이 죽어서까지 그 충심을 잊지 않는, 완벽한 내 수족이지. 다만, 무지하기 그지없다 보니 고만고만한 녀석들만 대체할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네놈 육신을 그냥 버리기엔 아깝지 않겠어?"

천태호가 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들었고, 그 부적을 알아본 최준경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네... 네놈이 감히!"

천태호는 다시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죽을 때까지 푹 잠들어 있으라고. 내 주술이 완성되면, 세자의 몸을 빼앗아 내가 왕이 될 거야. 그리고 넌 그 이후에 반역을 일으킬 거고, 이 내가 토벌하면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할 예정이거든. 그러니까 그때까지 잠자코 잠들어 있으면 돼. 알지? 이 주술의 끝은... 오직 참수(斬首)뿐이라는 걸? 흐흐"

최준경이 몸을 움직이려 하는 순간, 주동환의 수하들이 달려들어 그의 몸을 붙잡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네 이노옴~~!"

최준경이 격분해 소리를 질러 보지만 소용없었다.

천태호가 낄낄 거리듯 웃으며, 최준경의 이마에 자신의 부적을 가져다 대었다.



***



터벅터벅 맥없이 축 늘어질 것만 같은 걸음걸이로 걷고있었다.

멍한 듯 초점 없는 눈동자는 갈 곳을 잃어버렸고, 할 말을 잃은 입술은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문득, 눈 앞으로 우르르 지나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보니, 일전에 보았던 거지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연희를 알아보고, 그녀가 또다시 선의를 베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삼길이도 있었다.

연희는 애써 웃음 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뭣 좀 먹을래?"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에~~"

연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주막으로 향했다.

아이들 수에 맞춰 국밥을 주문하니, 주모가 국밥을 내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 연희는 삼길이 옆에 앉았다.

"삼길아."

"예, 애기씨."

연희는 빙그레 웃어 보이며 물었다.

"그... 죽었다는 누이는.... 이름이 어떻게 되니?"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쩐지 무서운 말을 들을 것만 같았다.

"아~, 누이 이름은 연희라했습니다. 송연희."

울컥하는 기분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꾹 눌러 참으며 웃어 보였다.

"그래? 그랬구나. 그럼 삼길이도, 송삼길이겠네?"

삼길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친누이는 아닙니다. 저는 허삼길입니다. 누이랑 같이 살던 마을에 역병이 돌아, 가족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누이와 저는 홀로 살아남아 둘이 함께 마을을 떠났습니다."

어쩐지 입에서 쓴맛이 나는 것 같았다.

참고 또 참느라 그랬던 것일까, 마음 같아서는 펑펑 울고만 싶었다.

"누이는.... 어떻게... 죽었니?"

그 물음에 삼길이는 어린아이 답지 않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에서 떠나올 때, 이미 역병이 옮았던 모양입니다. 며칠 기침하고, 힘들어하다가..."

그때가 생각나는지, 삼길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연희는 그런 삼길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해, 삼길아.... 미안해...'

연희는 속으로 그렇게 삼길이에게 미안한 마을을 전했다.

"혹... 누이는... 언제 죽었는지 기억하니?"

"예. 한 3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

"아, 그러고 보니 누이가 죽기 전에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에 점을 본다는 사람이..."

삼길이는 뭔가 생각난 듯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연희는 그 이야기를 더 듣지 못했다.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자꾸만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이 보일까싶어, 고개를 옆으로 돌려 품 안에서 수건을 꺼내 부랴부랴 눈물을 훔쳤다.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는 손수건은 고운 결이 손끝으로 전해지고 무척이 고급스러운 수가 놓여 있었다.

그 손수건의 주인은 다름 아닌 세자였다.

언젠가 세자가 건네주었던 그 손수건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다녔다.

그 손수건을 보자, 또다시 참았던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괜찮으십니까?"

연희가 고개를 돌리는 통에, 말을 멈췄던 삼길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아냐... 괜찮아.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봐야겠구나. 값은 치루고 갈 터이니 먹고 가거라."

"예."

"주모~"

연희는 주모를 불러 아이들의 국밥값을 지불한 뒤, 곧 주막을 나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던 그녀는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 얼마 걷지 못하고 멈춰 벽에 기대어 섰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길 없어 연희는, 누가 들을세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체 하염없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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