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30
소녀 나래는 혼란스러웠다.
지금의 자신이, 자기가 아니란 말은 그녀의 마음을 심하게 동요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때 성인 나래가 말했다.
"이곳에 있자."
소녀 나래가 놀라 성인 나래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영원히 머물 수 있어. 언제든지 영이를 다시 볼 수 도 있어."
"하지만.... 돌아가야 해."
"왜? 뭐가 좋아서? 지긋지긋한 직장생활, 매일 똑같은 일상, 어느 누구도 널 좋아하지 않아. 맨날 돈타령하는 엄마도 지긋지긋하잖아. 친구들도 날 피하는 거 알잖아?"
그때였다. 소녀의 나래의 머릿속에 뭔가가 벼락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역시..."
소녀 나래가 성인 나래를 바라보았다.
"내가 나래야."
소녀 나래의 말에 성인 나래가 눈을 치켜뜨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 자신한테는 솔직해야지. 항상... 나 자신마저도 속여 왔던 거 같아. 난... 엄마를 미워하지 않아. 원망은 했어, 미워도 했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엄마를 사랑해."
소녀 나래의 말에 성인 나래가 버럭 소리 질렀다.
"위선이야.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소녀 나래가 슬픈 눈빛으로 성인 나래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친구들이 날 피한 거라고? 아니야. 알잖아? 내가 그들을 피한 거야."
소녀 나래의 말에 성인 나래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벽을 쳤어. 누군가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누군가는 능력이 좋아서 멋진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 그 애들과 내 자신이 비교되는 게, 너무 싫고,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그래서 멀리 한 거잖아. 그들이 날 멀리한 게 아냐."
"그들이 날 버린 거야. 만나면 애들 얘기, 여행 얘기, 내가 낄 수 없는 얘기들만 해댔잖아. 내 앞에서 자랑이나 하고, 날 불쌍해하며 측은한 듯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싫었어."
소녀 나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고 있어. 그래 맞아. 속상했었어. 왜 난 내 친구들에게 좋은 일이 있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한 걸까? 어렸을 땐 친구들이 잘되는 게 마냥 좋았는데, 커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그들은 자랑을 한 거야. 아무것도 아닌 나를 비웃으려고..."
"아냐. 단지 자기 얘기를 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 자리에 나는 나로서 있지 못했을 뿐이야. 비교했기 때문에..."
성인 나래는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소녀 나래를 바라보았다.
"난.... 나는...."
이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내가 너무 싫어."
소녀 나래는 용기를 내어 울고 있는 성인 나래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나래야. 괜찮아."
자기 자신을 타이르고 있는 것에 어쩐지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도 괜찮아. 겁이 좀 많으면 어때? 밝아 보이지 않으면 어때? 괜찮아. 그냥 그게 나잖아. 그게 최나래니까... 그냥 나는, 나인체로도 괜찮은 거야. 그래도... 괜찮은 거야."
소녀 나래의 손길이 성인 나래의 몸에 닿는 순간, 성인 나래의 모습이 일렁거리더니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소녀 나래의 발밑으로 스르륵 들어가 버렸다.
나래의 그림자가 돌아온 것이다.
이어 온 세상이 찢어질 듯한 괴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사방으로 번쩍 거리는 빛의 균열이 일어났다.
나래가 놀라 주위를 둘러보자, 어딘가에서 백하도령이 훌쩍 날아와 나래를 낚아채듯 붙잡고 날아올랐다.
"어떻게 된 거예요?"
솟구쳐 오르는 백하도령은 나래를 꼭 붙잡은 체, 무너져 내리는 검은 흑막들을 피해 푸른 창공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네가 자아를 찾았기 때문에, 심연의 공간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백하도령의 말과 동시에 뒤쪽에서 시간할망의 외침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이대로 보낼 성 싶으냐~"
거대화된 시간할망이 입을 쩍 벌리자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며 모든 것들이 시간할망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릴 빨아들이고 있어요."
백하는 어떻게든 나아가려 나래를 꼭 붙잡고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빨아들이는 힘이 너무 강해 조금씩 이끌려가고 있었다.
나래는 힘들어하는 백하도령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뭔가 생각난 듯 품 안을 뒤적거렸다.
총명 부인이 줬던 마지막 초록 주머니를 들어 입으로 풀어헤치자, 그 안에서 조그마한 콩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
미처 잡을 겨를도 없이, 콩은 나오자마자 시간할망의 입김에 빨려 날아가 버렸다.
"안돼!"
나래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에 속상했다.
날아간 콩은 시간할망 입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고, 이대로면 자신과 백하도령이 빨려 들어가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또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찰나, 돌연 빨아들이던 기운이 한풀 꺾였다.
"억!"
거대화된 시간할망이 자신의 목을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뭐... 뭐냐? 무슨 짓을 한 거냐..."
백하는 갑자기 변한 상황에 놀라 날아갈 생각도 하지 못한 체, 나래와 함께 공중에서 시간할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할망은 계속 괴로워하며 뭔가를 토해내려 콜록 거려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컥!"
갑자기 시간할망의 옆구리로 나무 줄기 같은 것이 푹 튀어 나왔다.
이어 온몸 여기저기서 나무줄기 같은 것이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으어억!" 하는 비명소리와 동시에 시간할망의 입안에서 거대한 콩나무 줄기가 엄청난 기세로 솟아나기 시작했다.
"끼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거대화된 콩나무에 의해 시간할망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신기한 것은, 산산조각 난 시간할망의 몸은 마치 종이조각 같았으며, 피 한 방울 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가자!"
백하는 돌연 나래를 데리고 그 콩나무 쪽으로 향했다.
끝없이 솟구쳐 오른 콩나무를 보며 백하도령은 나무줄기를 따라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나래가 궁금해서 묻자, 백하도령은 나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것은 필시 총명 부인의 물건이니, 우리가 있던 세계로 인도해줄 것이다."
그렇게 백하가 날아오른 지 얼마 안돼 온 세상은 시커먼 세상으로 변하였고, 저 멀리서 별빛들이 반짝 거리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나무줄기는 그 우주 같은 공간에서도 끝없이 뻗어 나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고, 백하가 그 줄기를 따라 나아가니, 어느새 구름을 지나 하늘 같은 풍경이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다.
허공을 날던 백하도령이 손으로 휘파람을 불자, 어디선가 커다란 두루미가 날아왔다.
백하도령이 나래를 데리고 두루미 등위에 올라타자, 선선히 날던 두루미가 속도를 내어 날기 시작했다.
"되었다. 이제 홍저왕에게로 가자."
두루미가 큰 날개를 한번 펄럭일 때마다 순식간에 산 몇 개를 넘나들었다.
나래는 문득 자기가 가지고 있는 총명 부인의 호리병이 떠올랐다.
품 안에 잘 있는 것을 확인한 나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루미가 어느 산자락 아래로 내려설 무렵, 익숙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호통치는 솔이의 목소리도 따라서 들려왔다.
"어서 아씨를 돌려놔!"
솔이의 말에 홍저왕은 몸을 구부린 체 양귀를 막고 벌벌 떨고 있었다.
"이미... 저 나락으로 떨어져 버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홍저왕의 말에 솔이가 속상해하고 있는데, 자신의 옆으로 두루미가 내려앉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솔아!"
나래가 솔이 이름을 외치며, 백하도령과 함께 두루미에서 내려서는 모습에, 솔이는 환한 표정으로 달려와 안겼다.
"아씨!"
이어 나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되신 거예요? 금방 이 아래로 떨어졌는데, 어찌 하늘에서 나타나십니까?"
솔이의 물음에 도리어 나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 떨어졌다고?"
"예, 아씨. 금방 떨어지셨어요."
백하도령이 옆에서 설명해 주었다.
"그곳은 모든 시간이 뒤섞여 있는 곳이어서, 이곳과는 시간의 흐름이 달랐던 것 같구나."
나래는 언뜻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벌벌 떨고 있는 홍저왕을 바라보았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이 말썽을 부리지 않게 하겠어요."
나래는 그렇게 말하며 총명 부인의 호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홍저왕에게로 내밀었다.
그러자 홍저왕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한 바퀴 빙글 돌더니 한줄기 연기처럼 변하여 호리병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래는 홍저왕이 호리병 안으로 들어가자 얼른 그 뚜껑을 닫아버렸다.
"홍저왕을 가두신 거예요?"
솔이가 신기한 듯 묻는 말에, 나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이 말썽쟁이는 내가 총명 부인께 보내야겠다."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나래를 보며 솔이가 방긋이 웃었다.
"이제 돌아갈 수 있겠구나."
백하의 말에 나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하가 다시 나래를 붙잡고 두루미 위로 올라 타자, 솔이가 도깨비불로 변해 나래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두루미가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오르자, 나래가 백하에게 말했다.
"초코님하고 아토님을 뵙고 가고 싶어요."
백하가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니, 두루미가 방향을 선회하여 흑석궁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초코와 아토는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하늘 위에서 두루미가 날아와 앉자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찌 하늘을 통해 오지? 흑비천상들이 없더나?"
아토의 놀란 물음에 백하도령이 두루미 위에서 답했다.
"흑비천상들도 이제는 요괴가 된 셈이니, 이곳에 가득한 요괴독 때문에 멀리 피한 것 같구나. 이제 나래를 원래의 누리로 돌려보낼 것이니, 함께 가자."
아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초코 등위로 훌쩍 올라탔다.
"살빼."
초코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아토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널 운동시키려고 일부러 살 안 빼는 거야."
두루미가 날아오르자, 초코도 아토를 태운 체 따라서 날아올랐다.
백하와 나래를 태운 두루미는 저녁 노을을 등진 체 초공연화가 놓여있던 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자신이, 자기가 아니란 말은 그녀의 마음을 심하게 동요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때 성인 나래가 말했다.
"이곳에 있자."
소녀 나래가 놀라 성인 나래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영원히 머물 수 있어. 언제든지 영이를 다시 볼 수 도 있어."
"하지만.... 돌아가야 해."
"왜? 뭐가 좋아서? 지긋지긋한 직장생활, 매일 똑같은 일상, 어느 누구도 널 좋아하지 않아. 맨날 돈타령하는 엄마도 지긋지긋하잖아. 친구들도 날 피하는 거 알잖아?"
그때였다. 소녀의 나래의 머릿속에 뭔가가 벼락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역시..."
소녀 나래가 성인 나래를 바라보았다.
"내가 나래야."
소녀 나래의 말에 성인 나래가 눈을 치켜뜨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 자신한테는 솔직해야지. 항상... 나 자신마저도 속여 왔던 거 같아. 난... 엄마를 미워하지 않아. 원망은 했어, 미워도 했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엄마를 사랑해."
소녀 나래의 말에 성인 나래가 버럭 소리 질렀다.
"위선이야.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소녀 나래가 슬픈 눈빛으로 성인 나래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친구들이 날 피한 거라고? 아니야. 알잖아? 내가 그들을 피한 거야."
소녀 나래의 말에 성인 나래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벽을 쳤어. 누군가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누군가는 능력이 좋아서 멋진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 그 애들과 내 자신이 비교되는 게, 너무 싫고,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그래서 멀리 한 거잖아. 그들이 날 멀리한 게 아냐."
"그들이 날 버린 거야. 만나면 애들 얘기, 여행 얘기, 내가 낄 수 없는 얘기들만 해댔잖아. 내 앞에서 자랑이나 하고, 날 불쌍해하며 측은한 듯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싫었어."
소녀 나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고 있어. 그래 맞아. 속상했었어. 왜 난 내 친구들에게 좋은 일이 있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한 걸까? 어렸을 땐 친구들이 잘되는 게 마냥 좋았는데, 커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그들은 자랑을 한 거야. 아무것도 아닌 나를 비웃으려고..."
"아냐. 단지 자기 얘기를 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 자리에 나는 나로서 있지 못했을 뿐이야. 비교했기 때문에..."
성인 나래는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소녀 나래를 바라보았다.
"난.... 나는...."
이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내가 너무 싫어."
소녀 나래는 용기를 내어 울고 있는 성인 나래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나래야. 괜찮아."
자기 자신을 타이르고 있는 것에 어쩐지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도 괜찮아. 겁이 좀 많으면 어때? 밝아 보이지 않으면 어때? 괜찮아. 그냥 그게 나잖아. 그게 최나래니까... 그냥 나는, 나인체로도 괜찮은 거야. 그래도... 괜찮은 거야."
소녀 나래의 손길이 성인 나래의 몸에 닿는 순간, 성인 나래의 모습이 일렁거리더니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소녀 나래의 발밑으로 스르륵 들어가 버렸다.
나래의 그림자가 돌아온 것이다.
이어 온 세상이 찢어질 듯한 괴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사방으로 번쩍 거리는 빛의 균열이 일어났다.
나래가 놀라 주위를 둘러보자, 어딘가에서 백하도령이 훌쩍 날아와 나래를 낚아채듯 붙잡고 날아올랐다.
"어떻게 된 거예요?"
솟구쳐 오르는 백하도령은 나래를 꼭 붙잡은 체, 무너져 내리는 검은 흑막들을 피해 푸른 창공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네가 자아를 찾았기 때문에, 심연의 공간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백하도령의 말과 동시에 뒤쪽에서 시간할망의 외침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이대로 보낼 성 싶으냐~"
거대화된 시간할망이 입을 쩍 벌리자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며 모든 것들이 시간할망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릴 빨아들이고 있어요."
백하는 어떻게든 나아가려 나래를 꼭 붙잡고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빨아들이는 힘이 너무 강해 조금씩 이끌려가고 있었다.
나래는 힘들어하는 백하도령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뭔가 생각난 듯 품 안을 뒤적거렸다.
총명 부인이 줬던 마지막 초록 주머니를 들어 입으로 풀어헤치자, 그 안에서 조그마한 콩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
미처 잡을 겨를도 없이, 콩은 나오자마자 시간할망의 입김에 빨려 날아가 버렸다.
"안돼!"
나래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에 속상했다.
날아간 콩은 시간할망 입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고, 이대로면 자신과 백하도령이 빨려 들어가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또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찰나, 돌연 빨아들이던 기운이 한풀 꺾였다.
"억!"
거대화된 시간할망이 자신의 목을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뭐... 뭐냐? 무슨 짓을 한 거냐..."
백하는 갑자기 변한 상황에 놀라 날아갈 생각도 하지 못한 체, 나래와 함께 공중에서 시간할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할망은 계속 괴로워하며 뭔가를 토해내려 콜록 거려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컥!"
갑자기 시간할망의 옆구리로 나무 줄기 같은 것이 푹 튀어 나왔다.
이어 온몸 여기저기서 나무줄기 같은 것이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으어억!" 하는 비명소리와 동시에 시간할망의 입안에서 거대한 콩나무 줄기가 엄청난 기세로 솟아나기 시작했다.
"끼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거대화된 콩나무에 의해 시간할망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신기한 것은, 산산조각 난 시간할망의 몸은 마치 종이조각 같았으며, 피 한 방울 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가자!"
백하는 돌연 나래를 데리고 그 콩나무 쪽으로 향했다.
끝없이 솟구쳐 오른 콩나무를 보며 백하도령은 나무줄기를 따라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나래가 궁금해서 묻자, 백하도령은 나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것은 필시 총명 부인의 물건이니, 우리가 있던 세계로 인도해줄 것이다."
그렇게 백하가 날아오른 지 얼마 안돼 온 세상은 시커먼 세상으로 변하였고, 저 멀리서 별빛들이 반짝 거리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나무줄기는 그 우주 같은 공간에서도 끝없이 뻗어 나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고, 백하가 그 줄기를 따라 나아가니, 어느새 구름을 지나 하늘 같은 풍경이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다.
허공을 날던 백하도령이 손으로 휘파람을 불자, 어디선가 커다란 두루미가 날아왔다.
백하도령이 나래를 데리고 두루미 등위에 올라타자, 선선히 날던 두루미가 속도를 내어 날기 시작했다.
"되었다. 이제 홍저왕에게로 가자."
두루미가 큰 날개를 한번 펄럭일 때마다 순식간에 산 몇 개를 넘나들었다.
나래는 문득 자기가 가지고 있는 총명 부인의 호리병이 떠올랐다.
품 안에 잘 있는 것을 확인한 나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루미가 어느 산자락 아래로 내려설 무렵, 익숙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호통치는 솔이의 목소리도 따라서 들려왔다.
"어서 아씨를 돌려놔!"
솔이의 말에 홍저왕은 몸을 구부린 체 양귀를 막고 벌벌 떨고 있었다.
"이미... 저 나락으로 떨어져 버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홍저왕의 말에 솔이가 속상해하고 있는데, 자신의 옆으로 두루미가 내려앉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솔아!"
나래가 솔이 이름을 외치며, 백하도령과 함께 두루미에서 내려서는 모습에, 솔이는 환한 표정으로 달려와 안겼다.
"아씨!"
이어 나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되신 거예요? 금방 이 아래로 떨어졌는데, 어찌 하늘에서 나타나십니까?"
솔이의 물음에 도리어 나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 떨어졌다고?"
"예, 아씨. 금방 떨어지셨어요."
백하도령이 옆에서 설명해 주었다.
"그곳은 모든 시간이 뒤섞여 있는 곳이어서, 이곳과는 시간의 흐름이 달랐던 것 같구나."
나래는 언뜻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벌벌 떨고 있는 홍저왕을 바라보았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이 말썽을 부리지 않게 하겠어요."
나래는 그렇게 말하며 총명 부인의 호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홍저왕에게로 내밀었다.
그러자 홍저왕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한 바퀴 빙글 돌더니 한줄기 연기처럼 변하여 호리병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래는 홍저왕이 호리병 안으로 들어가자 얼른 그 뚜껑을 닫아버렸다.
"홍저왕을 가두신 거예요?"
솔이가 신기한 듯 묻는 말에, 나래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이 말썽쟁이는 내가 총명 부인께 보내야겠다."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나래를 보며 솔이가 방긋이 웃었다.
"이제 돌아갈 수 있겠구나."
백하의 말에 나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하가 다시 나래를 붙잡고 두루미 위로 올라 타자, 솔이가 도깨비불로 변해 나래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두루미가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오르자, 나래가 백하에게 말했다.
"초코님하고 아토님을 뵙고 가고 싶어요."
백하가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니, 두루미가 방향을 선회하여 흑석궁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초코와 아토는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하늘 위에서 두루미가 날아와 앉자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찌 하늘을 통해 오지? 흑비천상들이 없더나?"
아토의 놀란 물음에 백하도령이 두루미 위에서 답했다.
"흑비천상들도 이제는 요괴가 된 셈이니, 이곳에 가득한 요괴독 때문에 멀리 피한 것 같구나. 이제 나래를 원래의 누리로 돌려보낼 것이니, 함께 가자."
아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초코 등위로 훌쩍 올라탔다.
"살빼."
초코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아토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널 운동시키려고 일부러 살 안 빼는 거야."
두루미가 날아오르자, 초코도 아토를 태운 체 따라서 날아올랐다.
백하와 나래를 태운 두루미는 저녁 노을을 등진 체 초공연화가 놓여있던 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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