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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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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12.16분

31화 - #2


세자는 뒷짐을 쥔 체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좌포청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위험은 존재한다. 금호가 방심했다 하더라도, 저리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을 보면 상대는 상당한 고수임이 틀림없다.'

세자의 시야에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간병을 위해 물을 떠가는 연희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고 위험하게 연희 홀로 좌포청을 오다니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자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해야 위험을 최소화하고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문득 세자의 동공이 커지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적으로 하여금 나를 지키게 한다면, 대놓고 허튼 짓은 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세자는 뭔가 방법을 찾은 것 같아 마음이 흡족했다.

'좌상은 눈치가 빨라, 내가 보호를 요청하면 분명 반대할 것이다. 허나, 병판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세자는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마음먹었다면 지체할 이유가 없다.

그는 빈청으로 향하다, 때마침 빈청에서 나오는 병판과 이판을 볼 수 있었다.

빈청에서 나오던 두 사람은 걸어오는 세자를 보자 공손히 인사하였고, 세자 역시 그들을 반기며 다가갔다.

"병판대감, 바쁘신 일이 있으신 게 아니면, 이 사람이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세자의 물음에 병판은 의아한 표정으로 의문을 담은 눈을 들었다.

"저하께옵서, 이 사람에게 말입니까? 하문하시옵소서."

"알다시피 얼마 전, 제가 사교도 무리에서 사람을 한 명 구했었지요."

"예, 알고 있사옵니다."

"이 사교도 무리가 요즘 한양 인근까지 퍼져 여간 골치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사옵니다. 하여 의금부에서 그 일과 관련하여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하여, 빠르게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자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예... 헌데, 얼마 전 특별히 저의 경호를 맡겼던 운검 금호가 저들에게 당하였던 것을 알고 있으십니까?"

"예, 들었사옵니다. 부총관이 큰 부상을 입었다구요, 어쩌다가 그런 일이...쯧쯧..."

"그러니, 제가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더욱이 저의 최측근입니다. 이건 너무... 사람들 볼 낯이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병판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럴 수 있지요."

"병판 대감께서는 명예를 중시하시는 분 아니십니까?"

병판은 맞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습니다. 사내라면 무릇 명예를 중시할 줄 알아야 하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참으로 병판대감을 가슴속 깊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세자의 말에 병판이 기분이 좋은 듯 껄껄 거리며 웃었다.

병판이 공명정대한 위인이란 것을 세자는 잘 알고 있었다.

"저하께옵서 그리 말씀하시니 망극할 따름입니다."

"저는 이번 일이 저의 명예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범인을 직접 잡아 처리하고 싶은데..."

세자의 말에 병판이 아연실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안될 일입니다. 그런 위험한 일에 저하께서 직접 나서시다니 이는 아니 됩니다."

옆에 있던 이판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저하, 사교도를 잡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세자가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예, 물론 그렇지요. 알고 말고요. 허나, 병판대감께서 이 사람을 지켜줄 호위무사를 붙여준다면, 어찌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병판과 이판이 동시에 놀라 얼굴이 굳어졌다.

"예?"

병판이 놀라 되묻는 말에 세자가 차분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나라에 병권을 가지신 병판 아니십니까? 그 밑에 있는 수하 장수들로 따지면, 이 나라 조선에 내놓라 하는 위인들이 한둘이 아닐 터. 병판대감께서 그런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람의 호위를 맡게 한다면, 첫째로, 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돕는 것이요, 둘째로, 병권을 지휘하는 병조판서로써 위신도 한층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세자의 말은 병판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병판과 이판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안 그래도 최근 좌의정과 대면해지면서, 껄끄러웠던 두 사람이다.

권력의 최고봉에 있는 좌의정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 두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다.

수그리고 들어가든가, 아니면 맞서 싸우든가.

설령 수그릴 때 수그리더라도, 맞서 싸울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면, 두 사람의 체면이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병판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저하께서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다면,,,,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하를 안전하게 모실 만한 사람을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이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은 병판대감뿐입니다."

이내 세자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동궁전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병판이 돌아가는 세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듯 아무말 없이 서 있자, 이판이 놀란 표정으로 병판에게 물었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좌상대감이 알면 분명히 또 한마디 할겝니다."

병판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염려 마시게. 내 사람을 붙여 감시한다 하면, 좌상대감도 거절하진 못할 것이니. 내 사람으로 세자를 감시하니, 반대는 못하겠고, 나 없이는 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지 못할 것이니, 이 사람이 아쉬울 겝니다. 이 참에 세자와 친해지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요."

이판도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헌데 놀랍군요. 병판대감이 좌상의 사람이란 것을 알면서도, 저 세자가 도움을 청하다니."

이판의 말에 병판이 정색을 했다.

"허허,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본디 세자 저하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저 좌상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귐에 무리가 없다 보신 게지요."

병판의 자화자찬에, 이판은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



이른 아침 몸단장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연희는 누군가 자신의 앞으로 스윽 다가와 서자 화들짝 놀라 비명이 나올뻔 했으나 세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가까스로 비명을 삼켰다.

놀라 빠르게 뛰는 심장을 쓸어내리며 얼른 공손히 인사를 올리며 물었다.

"저하께옵서, 어찌..."

순간 연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세자의 복색이었다.

무관복에 망건을 두른 모습은 연희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내가 놀라게 했느냐? 미안하구나,,, 오늘 좌포청으로 가볼 것이다. 너와 함께 가려고 데리러 오는 중이었다."

"예? 제, 제가요?"

당황해하는 연희를 보며 세자가 장난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잊고 있었던 것이냐? 앞으로 너는 좌포청을 도와 사교도 무리에 대한 수사를 도와야 할것이다. 따라오너라."

말을 마친 세자가 뒤돌아 성큼성큼 걸어가니, 연희가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세자 뒤에 바짝 붙은 연희가 뒤따라 오는 내관과 궁녀들의 눈치를 살피며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저는... 나중에 따로 인사드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나와 함께 가야 내 너를 소개할 것이 아니냐. 또한 그 수사는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연희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에? 저하께옵서... 직접이요?"

앞서 걷던 세자가 멈춰 서서 연희를 돌아보았다.

"왜? 나는 못할 것 같으냐?"

"아, 아니옵니다. 허나, 사교도를 조사하는 일이라면, 위험... 한 일 아니옵니까?"

"다 생각이 있으니 믿고 따라오너라."

세자가 이내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자, 연희는 재빨리 세자의 뒤에 따라붙었다.

"정말... 직접 조사하실 것이옵니까?"

연희가 또다시 조심스레 묻는 말에, 순간 세자는 발걸음을 멈춰 차가운 눈빛으로 연희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다 눈썹을 휘며 물었다.

"어느쪽이냐? 내 말을 못 믿는 것이냐? 아니면 나를 못 믿는 것이냐?"

"아, 아니옵니다. 어찌 제가... 그저, 저하의 안전이 염려되어 그러는 것이옵니다."

"내 너의 근심을 살 정도는 아니다. 나도 내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고 너 또한 지킬 수 있으니, 염려 말거라."

걱정하지 말하는듯 강한 어조로 말을 마친 세자가 다시 걷기 시작했고, 연희는 얼른 뒤따라 걸으며 왠지 세자의 다른면을 보게된것 같아 새롭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한 마음에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궁궐 문에 다다르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네 명의 무관이 세자를 보고 공손히 인사를 건네 왔다.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오셨습니까, 저하. 병판 대감의 명을 받고 세자마마를 호위하기 나온 금위영의 별기위별장(別騎衛別將) 유상엽이라 하옵니다. 옆에 이들은 금위영 내에서 무예가 가장 출중한 별무사(別武士) 인원을 선발하였습니다."

세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음... 과연, 병판대감의 안목이 대단하구나. 하나같이 믿음직스럽고 용맹해 보이니, 내 안심이 된다."

세자는 조금쯤 과장스런 표정으로 무관들을 칭찬 한 뒤, 내관과 궁녀들을 물렸다.

미리 준비된 말은 무관들과 세자의 말뿐이라, 세자는 먼저 말위에 오른 뒤, 당연한 듯이 연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연스러워보이는 그 모습에 무관들은 순간 놀라 당황한 표정을 감추고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연희가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꾸물대며 망설였다.

"뭐하느냐? 어서 내 손을 잡고 말에 오르거라"

세자의 단호한 목소리에, 연희는 미적거리다 마지못한 듯 손을 내밀어 세자의 손을 잡았다.

세자는 연희를 말 위로 끌어올려 자신의 뒤에 앉혔다.

"너는 말을 탈 줄 모른다 하지 않았느냐? 다른 이들은 신경쓸것 없다."

"예... 저하..."

"자, 가자."

세자가 말고삐를 당겨 출발하니, 유상엽을 비롯한 무관들이 뒤를 따랐다.

달리는 동안, 연희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세자의 옷깃을 꼭 잡았다.

어쩐지 이전보다 더 세자에게 다가가기 어려워진 것만 같아서, 스스로도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를 때가 더 좋았던가.'

그렇게 연희는 이상한 기분에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아쉬움을 털어 버리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

세자가 탄 말은 곧장 좌포청으로 향했다.

좌포청에 이르러, 포도대장인 엄길상을 만난 것은 잠시 후였다.

그는 새벽같이 나와 일을 보고 있다가, 세자가 왔다는 보고에 황급히 마중을 나왔다.

"이른 시간에,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엄길상의 물음에 세자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간악한 사교도 무리 중 하나를 내 직접 잡아들여 응징코자 합니다."

세자의 대답에 엄길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하,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좌포청과 우포청이 모두 사교도 무리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였으니, 조속한 시일 내에 만족할만한 답을 들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만족할만한 대답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는지, 그 과정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오."

세자의 단호한 목소리에, 엄길상은 잠시 세자의 안색을 가만히 살핀 뒤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허면, 제가 어찌 도우면 되는 것이옵니까?"

"괜히 나서 좌포청의 업무를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조사를 거들고자 할 뿐이니, 현재 담당하여 살피는 이를 알려주시면,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하려합니다."

"현재 좌포청 내에서 사교도에 대한 조사는 여학수 종사관이 맡고 있습니다. 여종사관을 불러올 터이니, 잠시 안에서 기다리십시오."

"고맙소."

세자와 연희, 그리고 무관들이 방안으로 들어 잠시 기다리는 사이, 엄길상은 밖으로 나가 여학수를 데리고 왔다.

여학수라는 젊은 장수는 세자를 보고 크게 인사올리며 말했다.

"소신 사교도 수사를 맡고 있는 좌포청 종사관 여학수라 하옵니다."

세자는 그를 온화하게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방해하지 않고, 일을 도우려 할 뿐이니, 크게 괘념치 마라."

"예, 저하."

이어 엄길상을 돌아보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옵니다. 저하, 응당 저희가 해야 할 일이옵니다. 도움을 주신다 하니, 저희가 감사할 일이지요."

"도움이 많이 될지 모르겠으나, 훼방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지요."

"망극하옵니다, 저하."

세자는 엄길상을 보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자, 그럼 가봅시다. 어디부터 가면 되겠는가?"

세자가 여학수를 보며 묻는 말에, 여학수가 황급히 손을 내밀어 밖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예, 일단 저를 따라오시지요."

여학수가 앞장서고, 그 뒤를 세자와 연희, 그리고 무관들이 뒤따라 나갔다.

그런 세자의 뒷모습을 엄길상이 바라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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